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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상업용 발전소까지

핵융합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시작한다.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태양이 하나의 거대한 핵융합로이기 때문이다. 태양에서부터 오는 빛과 열로 지구의 온도가 유지되고 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곡식이 열매를 맺어 먹이사슬이 생성되며 인간은 그 먹이사슬에서 생존을 유지한다.

태양의 막대한 중력 하에 있는 1천5백만도의 태양 중심부에서는 수소와 헬륨 원자 사이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핵융합 에너지를 지구상에서 직접 생산하려는 시도의 출발점은 원자의 구조와 별의 에너지원을 밝히려는 연구에서 시작됐다. 1920년대 말 애트킨스와 호우터만스는 태양의 에너지가 열 핵융합 반응에 의해 생성될 것이라고 제안했고 10년 후에 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1934년 러더퍼드가 이끄는 연구진이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두개의 중수소가 융합돼 헬륨3과 중성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삼중수소와 양성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핵융합 에너지가 나오는 기초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과 옛소련의 핵융합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이후의 원자탄 관련 연구에 뿌리를 둔다. 1951년에는 옛 소련의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이고르 탐이 토카막(TOKAMAK, 러시아로 도넛과 같은 토로이드 모양의 자기 핵융합 실험장치)이라는 장치를 설계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1958년 유럽원자력공동체 조약(EURATOM Treaty)에 의해 핵융합 연구가 자기 핵융합 연구에 집중되는 유럽의 단일 핵융합 연구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또한 제네바에서 열린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 연구’(Atoms for Peace) 회의를 통해 핵융합 연구는 군사 분야에서 일반에게 공개되는 연구분야로 분리·정착돼 1960년대 활발한 핵융합 이론 연구를 불러일으켰다. 1968년 옛소련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T3 토카막이 성공적인 실험결과를 보인 이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약 30개국에 1백여개의 토카막 핵융합 실험장치들이 건설·운영돼 왔다.

1973년의 ‘석유위기’ 이후 핵융합 연구개발에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러시아(옛소련) 4개국은 ‘핵융합 발전소’(Fusion Reactor) 건설에 필요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대형 핵융합 실험장치들에 대한 설계와 건설에 착수했다. 1982년 완공된 미국의 TFTR(Tokamk Fusion Test Reactor), 1983년에 완공된 EU의 JET(Joint European Torus), 1985년에 완공된 일본의 JT-60(Japan Tokamak, 후에 JT-60U로 개조돼 1991년부터 재가동)과 같은 대형 토카막들이 가동되기 시작해 핵융합 연구는 대형화됐고 이에 따르는 실험결과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미국, 옛소련, 유럽, 일본 핵융합 연구 선진 4개국은 1988년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모든 물리적·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핵융합 발전소급에 준하는 초대형 초전도 토카막 핵융합 실험장치인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건설에 합의했다.
 

깨끗한 환경과 풍부한 전기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꼭 필요한 요 소다. 미래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는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050년 최초의 상업용 발전소 가동 예정

이후 유럽에서는 EU가 건설한 세계 최대의 토카막인 JET에서 1991년 중수소(D):삼중수소(T)=9:1 비율의 혼합연료를 쓴 세계 최초의 D-T 핵융합 실험이 성공해 약 1.5-2MW의 핵융합에너지가 방출됐다. 1994년에는 미국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의 TFTR 토카막이 D:T=5:5 비율의 혼합연료를 사용해 10MW의 핵융합 에너지를 방출하는 기록을 달성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1996년 문을 닫았다. 2년 후 다시 JET에서 D:T=5:5 비율의 혼합연료를 사용해 16MW의 핵융합 에너지를 방출해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1998년에는 일본의 JT-60U 토카막에서 에너지 분기점(핵융합 반응을 위해 주입된 에너지와 방출된 핵융합 에너지의 양이 같은 경우)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들을 얻기 위해 세계 30여개 나라가 1998년까지 핵융합 연구에 투자한 총 연구개발비용은 약 3백20억달러에 달하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ITER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물리적·기술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1998년 ITER 공식 파트너로서 주요 재정 분담국의 하나인 미국이 미 의회의 방침에 따라 ITER 컨소시엄에서 탈퇴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 일본, 러시아 3국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1998년에 끝난 설계를 다시 변경해 총 건설비용이 약 50억달러가 소요되는, 최소 5백MW의 핵융합 에너지를 1천초 이상 방출할 수 있는 ITER의 축소 설계를 2001년 6월에 완료했다.

한편 1980년 국가차원의 핵융합 투자를 시작해 1997년 ‘ITER 캐나다’를 설립해 ITER를 자국에 유치하려고 준비해온 캐나다는 2001년 11월 공식적으로 ITER 설치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ITER의 공식 파트너가 됐다. 단일국가로 현재 세계 최대 핵융합 투자국가인 일본과, 전세계 핵융합 연구의 50%를 담당하고 있는 EU의 경우는 향후 1-2년 안에 공식적인 설치 장소를 제안할 예정이다. ITER 파트너 각국에서 제안한 설치 장소 중의 하나가 선택된 후, ITER의 건설은 2004-5년경에 시작돼 약 10년 후인 2015년경을 전후로 완성된다. 이후 약 10-15년 간 운영기간을 거쳐 상업용 핵융합로 건설에 필요한 제반 기술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예정이다. 나아가 현재 가장 견실한 핵융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EU의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는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즉 ITER 건설 후 운영기간 중반에 ‘DEMO 핵융합로’(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로서의 시제품 DEMO)를 설계해 2030년경부터 운영할 예정이고, DEMO 운영 중반 단계인 2030년대 중반부터 최초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인 PROTO를 설계·제작해 1.5GW급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를 2050년경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핵융합 연구는 1920년대 원자핵의 구조와 별의 에너지원에 대한 기초적 의문에서 시작됐다. 1950-1960년대 수립된 핵융합 물리 이론체계와 1970년대 수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과정들을 거쳐, 1980년대와 1990년대 대규모의 실험시설에 투자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상업용 핵융합 발전의 실현성을 20세기 말에 검증했다. 21세기 초 약 20-30년에 걸친 마지막 실험을 마무리하면 1백년에 걸친 핵융합 연구는 그 대단원을 마치고 실용화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닐스 보어의 고전 양자론을 시작으로 해 거의 90년에 걸쳐 오늘날의 인터넷 세계를 이룩한 전자산업기술의 발전에 버금가는, 인류의 다가올 우주시대에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는 핵융합 실험장치인 ITER의 설계모습. 2015 년 경 완성될 ITER는 상업용 핵융합로 건설에 필요한 기술의 문제점을 해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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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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