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된지 꼭 10년이 흐른 지난 11월. 국내 나노과학연구진이 탄소나노튜브를 반도체소자에 초고집적으로 배열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1997년 이후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반도체소자가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나노튜브의 위치를 제어하지 못해 실용화에 한계가 있었다.
주먹구구식의 배열 방식
탄소나노튜브는 두께가 수-수십nm(1nm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보다 10만배나 가늘고, 긴관 모양의 탄소로 이뤄진 꿈의 신소재다. 1991년 11월 일본 NEC사의 이지마 박사에 의해 발견돼 오늘날 나노과학의 붐을 일으키는 주인공 중 하나다.
그 이유는 가늘다는 기본적인 외형 외에도 기존의 소재에게 기대하지 못하는 우수한 성질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탄소나노튜브의 전기적인 성질이 반도체소자로 응용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열전도율이 기존의 도선인 구리나 은보다 1천배 이상이고, 전기전도도가 월등히 높다. 또한 모양과 크기에 따라 도체가 되거나 반도체가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초저온에서 초전도를 띤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따라서 탄소나노튜브를 반도체소자에 이용하면 소자의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리나 은 도선을 점점 가늘게 했을 때 높아지는 열 발생 문제가 해결되고, 기존의 실리콘소자처럼 불순물로 넣지 않아도 전류의 방향이 쉽게 조절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탄소나노튜브는 개발 초기부터 반도체소자로의 응용가능성이 모색돼 왔다. 그리고 1997년 네덜란드 델프트대의 데커 연구팀은 최초의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이후 IBM사를 비롯한 몇몇 연구기관에서 탄소나노튜브 반도체소자의 개발을 앞다퉈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반도체소자 기판 위에 탄소나노튜브를 배치하는 방식은 매우 주먹구구식이다. 제조해낸 탄소나노튜브를 다량으로 기판 위에 뿌린 다음, 전자현미경이나 원자현미경으로 탄소나노튜브가 위치한 곳을 알아낸 후 반도체소자의 전극을 배치시킨다. 이는 탄소나노튜브를 원하는 위치에 맘대로 놓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원자현미경을 이용하는 것이다. 끝이 매우 가는 원자현미경의 탐침으로 반도체소자 위에 올려놓은 탄소나노튜브를 끌어서 제 위치에 배치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탄소나노튜브 하나하나를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실용적이지 못하다.
10년 후 실용화될 전망
때문에 탄소나노튜브 반도체소자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탄소나노튜브의 위치를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국내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삼성종합기술원 최원봉 박사 연구팀이 그 주인공. 최박사팀은 탄소나노튜브를 선택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위치제어뿐만 아니라 테라비트급(테라는 1012)인 꿈의 집적도를 반도체소자에 현실화시킬 수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산화알루미늄 기판에 구멍을 내고 이 안에서 탄소나노튜브를 수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산화알루미늄 기판에 만들어지는 구멍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 이는 탄소나노튜브를 마음대로 배치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수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에 기존의 수평성장보다 높은 집적도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7월에 열린 ‘나노튜브 2001’ 학회에 초청·발표돼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세계적인 권위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Applied Physics Letter, 2001년 11월26일)와 어드벤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2002년 1월)에 게재될 예정이다. 현재 이 기술과 관련해 국내특허 3건, 해외특허 2건을 출원중이다.
탄소나노튜브 반도체소자는 아직 가까운 현실이 아니다. 탄소나노튜브는 크기와 모양에 따라 도체 또는 반도체가 되는데, 현재의 제조방법으로는 이들을 선택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최원봉 박사는 “앞으로 우리 연구팀은 산화알루미늄 기판의 구멍 크기를 통해 반도체만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이조원 박사는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탄소나노튜브 반도체소자가 실질적인 제품에 이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박사의 연구는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 중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과제에 속한다. 이로써 국가나노기술개발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