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국의 문명을 특징짓는 키워드로 ‘자존심’을 든다. 수천년 동안 동부 아시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고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어왔던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존심에도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에도 과학기술이 있었는가?’라는 사뭇 도전적인 질문이다. 중국 과학문명의 뿌리를 찾아 방대한 사료를 발굴하고 집필하면서 이 도전적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인물이 과학사학자 니덤이었다.
영국 출신의 생화학자 겸 과학사학자였던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은 1954년 제1권이 출간된 이래 1995년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아니 지금도 그 집필과 출간이 계속되고 있는 20세기 최대의 저술 작업이다.
총 7권 34책의 규모로 출간이 기획돼 있으며, 현재 모두 19책이 출간됐다. 그 대체적인 규모를 살펴보면 제1권(1책) 서론 및 배경, 제2권(1책) 과학사상사, 제3권(1책) 수학, 하늘과 땅의 과학들, 제4권(3책) 물리학과 물리기술, 제5권(14책) 화학과 화학기술, 제6권(10책) 생물학 및 생물학기술, 제7권(4책) 사회적 배경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세기 최대의 저술
근대 이후 보기 드문 이 같은 대규모의 저술 작업은 초기 몇명의 중국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 연구활동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그의 기획 방향을 따라서 전세계 중국과학사 연구자들의 협조를 얻어 대규모의 공동연구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중국 전통사회 과학과 기술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그 자료를 수정, 정리, 분석, 평가해놓은 백과사전 같은 분량의 저술이다. 1954년 제1권이 나오자 ‘중국에는 과학이 없었다’는 서양인의 통념을 깨트리는 엄청난 지적 충격으로 작용했다.
한편, 니덤의 저술이 너무나 방대해 일반 독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로난(Colin A. Ronan)이 원 저자의 자문과 협력을 받으면서 그 내용을 간추려 축약해 1978년 이후 ‘The Shorter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를 출간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축약본은 제4권까지 출판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이 축약본 중 제1권은 1998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 사상적 배경’(김영식·김재란 옮김), 그리고 제2권은 2000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 수학, 하늘과 땅의 과학, 물리학’(이면우 옮김)으로 출판된 바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기술, 천문학과 역학 등의 과학혁명들, 그리고 모든 분야에 걸친 근대와 현대 과학의 형성. 과학기술에 관한 한 서구인의 긍지와 자부심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은 또한 계몽, 자유, 평등, 민주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이념 발전의 견인차가 됐으며,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떠받치는 확고부동한 기둥이었다.
아마도 이 같은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일 것이다. 수많은 사료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적어도 고대 이래로 13-14세기까지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서양에 크게 앞서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방대한 분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자국의 학자들조차 관심을 두지 못하던 엄청난 양의 과학기술적 전통과 발전의 증거를 찾아냈으며, 이러한 과학기술을 중국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서구인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을, 중국인에게는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계기였을 것이다.
잊혀진 공통 분모의 발견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중국’과 ‘과학기술’이라는 두 용어의 공통분모를 극명하게 보여줬던 이 책에도 물론 몇가지의 단순화와 왜곡들이 존재한다.
첫째, 니덤의 생각 저변에는 과학이 하나의 보편적인 발전유형을 따라 진보한다는 신념이 깔려 있으며, 이로 인해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과학의 역사를 바라보고 또 중국의 전통과학을 서구의 과학발전 단계와 대응시켜 비교·분석하는 경향이 숨어있다는 지적이 많다.
둘째, 지나치게 중국의 과학기술을 예찬한 나머지 중국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전체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학사 학자들은 니덤의 이러한 중국 편향적 관점은, 그가 부분적으로 한국과학사에 학술적 관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측우기나 인쇄술 등에서 우리의 고유한 역사적 발전을 중국의 것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중국의 문헌에만 의존한 채 우리나라의 사료를 꼼꼼히 살피거나 관련 전문가와 교류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몇가지의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그의 저작이 갖는 역사적 의의나 학술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원대한 집필 기획, 평생을 통한 철저하고도 집요한 연구의 수행, 동양과학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의 펼침, 니덤의 죽음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저술과 편찬 활동 등등.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과학고전이 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회주의와 중국에 심취한 과학사학자
조셉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은 1900년 영국 런던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역사와 철학을 강조하는 지적인 성향의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사립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의 키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의학을 공부하려던 마음을 바꿔 생화학을 전공했으며 24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키스 칼리지의 펠로우(Fellow)가 됐다. 그리고 1932년 동 대학의 부교수, 1966년에는 동 대학의 학장이 되는 등 평생을 키스 칼리지와 함께 했다. 또한 그는 학부 시절부터 던(Dunn)생화학 연구소에서 실험과 연구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중등학교 시절 이후 서서히 사회주의적 이념에 심취했으며 버널, 할데인, 호그벤 등 당시 케임브리지대를 거쳤던 여러 대표적 영국 과학자들과 함께 과학을 통한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1930년경부터 과학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1937년 던 연구소에 유학 온 3명의 중국인 연구생을 통해 중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1942년 영국문화원의 프로그램에 합류해 4년간 과학자문단으로 중국에서 체류했고, 그 후 2년간 파리에서 유네스코 자연과학부의 책임을 맡은 뒤,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1948년부터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의 50년 간의 모든 학문적 노력은 중국의 과학문명에 관한 것에 집중됐으며, 1976년 케임브리지대를 퇴직하고 동아시아과학사도서관을 설립해 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도서관은 1983년 니덤연구소(Needham Research Institute)로 재출범했으며, 현재는 중국과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의 세계적 중심이 되고 있다.
니덤은‘중국의 과학과 문명’이외에도‘위대한 적정: 동양과 서양의 과학과 사회’(The Grand Titration: Science and Society in East and West, 1969),‘ 중국의 학자와 장인’(Clerks and Craftsman in China, 1970), 그리고 우리나라의 천문학 기구에 관한 책인‘서운관의 천문기구와 시계’(The Hall of Heavenly Records, 1986)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