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세고 비와 눈이 많은 높은 산에 사는 식물들은 키가 작고 뿌리가 깊으며 누어자라는 특징이 있다.
지구상의 유구한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생성되는 지각변동은 대륙과 해양의 배분에 변화를 주고, 조산운동에 의해 새로운 산악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지사학적인 기후변동은 현재의 위도에 따라 다른 기후대를 만들었다.
식물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환경조건하에서 종(種)의 존속과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보다 적합한 환경을 향하여 도피하거나,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대한 내성(耐性)을 획득함으로써 생존하고 또 번영하여 왔다. 적극적으로 도피하는 방법을 갖지 못하는 식물들은 생육하는 환경에의 적응이라는 후자의 방법에 의존하여 왔던 것이다. 특히 식물의 경우, 내성의 획득이 질적인 변화로 나타날 때에는 종의 변화와 진화에 관계되어서 종의 존망에 연관되어 왔다.
환경조건으로서 지구의 기온은 위도적인 영향보다는 고도적인 영향이 약 1천배나 크기 때문에 환경압(環境压)으로서의 기온이 식물체에 주는 영향은 대단히 커 식물의 분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작용한다.
기온은 해발고도가 1백m 높아짐에 따라 약 0.6℃ 하강한다. 산이 높아지면 기압과 공기중의 포화수증기압은 낮아지며, 반대로 수중기의 함량은 높아져 습도가 높게 된다. 수증기는 기온의 강하 때문에 응축되어 비로 변하므로 강우량은 평지보다 많아진다. 높은 산은 바람이 거세어 노출된 암반이 많아, 낮에는 강한 광선이 작열하는 반면에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일교차가 심하다. 또한 높은 산은 겨울이 길고 따뜻한 계절이 짧아 한랭한 기후조건을 갖게 되며, 강우량과 강설량도 많다.
잔가지가 많다
높은 산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생육하고 있는 식물들은 평지에 자라는 식물들과는 다른 형태적 조직적 적응현상을 갖게 된다. 즉 나무든 풀이든 키가 작고, 지상부에 비하여 뿌리 등의 지하부가 깊고 길게 뻗는다. 특히 나무는 관목 상태로 지표변에 누어자라며 많은 잔가지가 발달한다. 잎은 단단하나 책상조직이 잘 발달되어 광합성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식물을 '고산식물'이라 한다.
우리나라 고산식물은 대략 1천5백m 이상의 높은 산에 분포하고 있는 데, 위도와 지형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그림1). 즉 한라산에서는 1천6백m 이상, 지리산에서는 1천5백m 이상, 설악산과 금강산에서는 1천4백m 이상, 관모봉이나 백두산에서는 1백3천m 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산식물은 백두산(2,744m) 관모봉(2,541m) 북수백산(2,522m) 두류산(2,309m) 묘향산(1,909m) 등 북쪽의 산악지방에 편재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오면서 고산식물의 수나 고산식물이 나타나는 면적이 감소한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고산식물의 종류는 51과(科), 1백75속(屬)의 2백96종(種), 5아종(亞種), 73변종(変種), 9품종(品種) 등 도합 3백83종류로 1942년 '조선박물학회지'(박민규 지음)에 보고되었다. 이중에 남한에 분포하는 종류는 34과91속의 1백1종 27변종 1품종 등 1백30종류임이 필자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러한 고산식물의 수는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서 생육하는 식물의 약 10%에 해당한다.
남한에 분포하는 고산식물은, 한반도의 중앙을 북에서 남으로 달리는 태백산맥의 중심부 북위 38~39˚사이에 위치하는 설악산(1,708m)과 그 주변의 높은 산들, 서울 근교인 광주산맥의 용문산(1,157m), 그리고 태백산맥에서 남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월악산(1,097m)과 속리산(1,058m), 그 끝에 있는 지리산(1,1915m) 등과 한반도에서 뚝 떨어져서 망망대해의 동쪽 끝에 있는 울릉도의 성인봉(984m), 제주도의 한라산(1,950m) 등 에 대부분 분포한다.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금강초롱
태백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설악산과 그 주변의 산들에는 78종류의 고산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중 눈잣나무 누측백나무 설악눈주목 흰장구채 바람꽃 톱바위취 분홍바늘꽃 등대시호 노랑만병초 만주송이풀 돌창호 말나리 산새풀 등 14종류는 속리산 이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식물로 휴전선 이남에서는 설악산 일대에서만 유일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설악산일대에 나타나는 금강초롱은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식물로서, 다른 꽃들이 별로 피지 않는 8~9월에 초롱모양의 자주색 꽃을 피운다. 말나리는 지리산에도 가끔 나타나지만 주로 강원도 이북의 고산에서 자라는데 황적색의 꽃잎이 안쪽에 자갈색의 반점이 있어 특이하며, 바람꽃은 7~8월에 하얀색의 꽃이 피는데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흔히 관찰된다.
서울 근교에 위치하는 용문산은 광주산맥의 주봉으로서 서해에 가까이 치우쳐 솟아 있다. 용문산 정상 근처에는 눈측백나무 범꼬리 세잎종덩굴 바위떡풀 산오이풀 둥근이질풀 노랑제비꽃 왜우산풀 큰앵초 꼬리풀 만주송이풀 등 11종류의 고산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한 월악산은 한강의 남안(南岸)에 솟아 있는데, 떡버들 사스레나무 산꿩의다리 바위떡풀 돌양지꽃 미역줄나무 노랑제비꽃 메제비꽃 개회향 큰앵초 백리향 각시괴불나무 쥐오줌풀 층층잔대털잔대 나리잔대 개쑥부장이 금방망이 나래박쥐나물 각시취 수리취 쇠서나물 비비추 꼬리새 산새풀 등 25종류의 고산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설악산과 지리산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속리산에는 산꿩의다리 세잎종덩굴 바위떡풀 산오이풀 돌양지꽃 참양지꽃 황기 시닥나무 미역줄나무 노랑제비꽃 층층잔대 개쑥부장이 솜나물 비비추 말나리 솜대 산새풀 개불알꽃 등 18종류가 분포하고 있어, 다른 산악에 비하여 고산식물의 수가 적다. 이중 노랑제비 꽃은 이른 봄에 다른 식물들의 궁이 피기 전에 노랑색의 꽃이 무리를 이루어 피며, 돌양지꽃은 7~8월에 바위틈에서 노란색의 꽃을 피운다.
북위 36~37˚ 사이의 산악지역에 위치하는 월악산에는 25종류, 속리산에는 18종류의 고산식물을 헤아릴 수 있다. 이들 두 산악에 서로 공통으로 분포하는 식물로는 산꿩의다리 바위떡풀 돌양지꽂 미역줄나무 노랑제비꽃 층층잔대 개쑥부장이 비비추 산새풀 등 9종류이며, 이밖에 월악산에 한정되어 분포하는 16종류 등 도합 34종류는 남한중앙부 산악지역의 고산식물로 알려졌다.
노고단(1,507m) 반야봉(1,751m) 등 1천5백m 이상의 여러 봉우리를 포함하는 지리산은 규모면에서 가히 남한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데, 고산식물은 78종류가 분포한다. 이중 좀자작나무 청부게꽃나무 큰쥐털이슬 봉래꼬리풀 과남풀 물쑥 등이 대표적인 지리산의 고산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의 능선에서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산오이풀은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서 붉은색의 꽃이 뭉쳐서 핀다.
한반도의 남쪽, 제주도에 위치하는 한라산에는 남한에 분포하는 1백30종류의 고산식물중 81종류가 자라고 있다. 이중 제주산버들 눈범꼬리 한라장구채 한라돌쩌귀 바위미나리아재비 섬바위장대 제주가시나무 좀양지꽃 암매 산매자나무 흰그늘용담 구름떡쑥 바늘엉겅퀴 한라돌창포 한라부추 등 15종류는 휴전선 이북을 포함한 한반도 전지역에서 오직 한라산에만 분포한다. 구름패랭이꽃 구름미나리아재비 큰오이풀 달구지풀 반디미나리 개회향 시로미 구름송이풀 나리잔대 금방망이 나도그늘사초 등 11종류는 북부의 고산에는 분포하지만, 남산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에서만 자란다.
키가 10cm인 나무
한라산에서 자라는 고산식물중 암매와 시로미는 나무이면서도 키가 10cm 정도도 안되는 식물이다. 암매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고산식물로 백록담 부근에서 간간이 볼 수 있엇다고 하나,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시로미는 꽃은 볼품없으나 여름에 까만 열매가 익어 산을 찾는 이의 갈증을 덜어준다. 현재 그 수가 줄어들고 있어, 암매와 함께 적극적인 보호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식물이다. 한라산 정상부근의 우리나라 고산식물의 보고로서 이곳에는 잎과 줄기가 많은 털로 덮여있고 전체가 왜소한 구름미나리아재비, 잎이 작고 잎뒷면에 황색가루가 덮여있는 설앵초, 용담과 비슷하나 꽃이 백색이고 외형이 작은 흰그늘용담, 꽃잎이 십자모양으로 되어 있는 섬바위장대 등이 나타나고 있다.
동해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울릉도의 성인봉에는 두메오리나무 황기 미역줄나무 메제비꽃 돌바늘꽃 만병초 홍만병초 백리향 섬백리향 쇠서나물 산마늘 큰두루미꽃 등 12종류가 분포하고 있다.
에델바이스와 솜다리
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적이 고산식물을 들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델바이스'를 꼽을 것이다. 실제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의 고산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솜다리'가 있으며,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에델바이스라 부르고 있다.
솜다리는 식물체 전체에 흰솜털이 있으며 잎 뒷면이 회백색을 띠는 식물로서 여름철에 백색의 꽃을 피운다. 그러나 솜다리는 많은 상인들이나 몰지각한 등산객들에 남획되어 설악산 부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으로, 한라산에 자라는 암매와 함께 철저한 보호가 요망되는 식물이다.
고산식물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자라며 또한 생육지가 좁은 까닭에 인간에 의한 조그만 생태계 교란, 즉 산정에 무심코 버린 쓰레기, 무분별한 고산식물의 채취 등에 의해 쉽게 없어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인간 역시 자연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므로 생태계의 파괴는 곧 인간 자신의 파괴임을 깨닫고, 또한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을 그대로 넘겨준다는 현명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고산식물의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