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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21세기 첫 노벨상 수상자들 : 물리학 - 제5의 물질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상태

2001 물리학상 코넬 · 케털리 · 와이먼

자연에는 고체, 액체, 기체, 플라스마라는 4가지 물질 상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물질 상태가 있다. 바로 제5의 물질이라 불리는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상태(Bose-Einstein Condensate, 이하 BEC)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이 새로운 물질 상태를 구현한 세명의 물리학자 미국의 에릭 코넬(Eric A. Cornell)과 카를 와이먼(Carl E. Wieman), 그리고 독일의 볼프강 케털리(Wolfgang Ketterle)에게 돌아갔다.

예측 70년만에 구현된 결과

20세기 초 고전역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개발됐다. 그러면서 자연계의 모든 입자들은 두개의 부류, 즉 보존(Boson)과 페르미온(Fermion)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보존과 페르미온은 입자가 가지는 고유한 각운동량인 스핀의 총합에 따라 분류된다. 즉 스핀의 총합이 플랑크상수의 정수배면 보존인 반면, 플랑크상수의 1/2 홀수배면 페르미온이다. 대부분의 원자들은 보존으로서 한 상태에 둘 이상의 입자가 있을 수 있으나, 전자나 양성자 같은 페르미온의 경우에는 한 상태에 오직 한 입자만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이처럼 각각 고유한 통계적 특성을 띤다.

물론 비교적 높은 온도(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인 온도 범위)에서는 두 입자의 통계적 차이는 관측하기 힘들다. 대개 아주 낮은 온도(절대온도 수K 이하)에서 특이한 양자 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아주 낮은 온도에서 유체의 저항이 사라지는 초유체 현상, 고체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 보통 기체상태에서 나타나는 BEC 등이다.

보존의 경우 가장 놀라운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BEC다. 어떤 시스템의 온도가 절대 영도가 되면 모든 입자는 바닥상태에 있게 된다. 하지만 보존의 경우에는 절대 영도가 아닌 유한한 온도에서 시스템의 거의 모든 입자가 바닥상태에 응집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BEC다. 이때 각 입자의 드브로이 물질파(온도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입자의 파동성이 두드러진다)가 서로 겹치며 위상이 결맞은 상태가 돼 각 입자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거대한 물질파가 된다(그림).


(그림) BEC를 얻는 과정^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원자들은 입자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점차 온도가 낮아지면 파동 성이 강해지고 임계점을 지나면 하나의 거대한 파동인 BEC가 된다.


이 상태는 20세기 초 보즈와 아인슈타인에 의해 이론적으로 예측됐으며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상태(BEC)라고 불려 왔다. 액체 헬륨 원자들이 갖는 초유체 성질도 BEC로 일부 설명될 수 있다고 봤지만, 액체 상태의 경우는 이론적으로 완전히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난 70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좀더 간단한 기체상태에서 BEC를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 또 BEC는 성배(Holy Grail)라 불렸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에서 예수의 성만찬 잔을 찾아 헤맸던 주인공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기를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증발 냉각기술이 핵심

지난 1995년까지 10여년 동안 콜로라도대학, MIT, 스탠포드대학 등 세계 여러 곳의 과학자들은 BEC로 응집된 원자를 누가 먼저 얻는가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먼저 매우 낮은 온도를 얻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학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콜로라도대학 JILA(미국립표준기술연구소와 콜로라도대의 합동연구소) 코넬 교수의 머리 속에 번쩍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바로 새로운 증발 냉각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1995년 봄 비로소 코넬 교수는 스승이자 동료인 와이먼 교수와 함께 기체 상태의 중성 원자인 루비듐 알칼리금속 원자에서 레이저 냉각기술(199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업적)과 자신만의 증발 냉각기술을 적절히 결합해 BEC를 얻는데 성공했다.

우선 고진공 속에서 움직이는 기체 원자에 움직임과 반대방향으로 빛(레이저)을 쏘면 빛을 흡수한 원자는 속도가 점차 줄어 수십 μK(10-6K) 정도로 냉각되고 자기장이 걸린 포획장치에 포획된다. 밀집된 원자들은 열적 평형상태에 놓이는데, 이 가운데 가장 에너지가 높은 일부가 증발냉각과정을 통해 없어지면 원자 전체의 평균에너지, 즉 온도는 내려간다. 마치 컵에 든 뜨거운 커피가 식을 때처럼 뜨거운 입자가 증발해 나머지의 온도가 낮아지는 과정과 같다. 결국 원자의 온도가 수십 nK(10-9K), 밀도는 1013개/cm3 정도에 이르면, 물질파의 파장이 원자간의 거리와 비슷해진다. 이때 물질파 간에 중첩이 생기며 응집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이들은 약 2천개 정도의 응집된 루비듐 원자를 얻었다.

코넬 교수는 이렇게 원자의 응집상태를 얻은 사실을 그해 봄 이탈리아의 카프리섬에서 열린 국제레이저 분광학회에서 처음으로 발표했다. 학회 첫날 아침 첫시간에 코넬 교수의 초청강연이 있었다. 이어서 경쟁자였던 MIT의 케털리 교수가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케털리 교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코넬 교수팀이 이미 응집상태를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실험하다가 학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이 학회 후 약 2달이 지나 케털리 교수팀은 역시 나트륨 원자에서 응집상태를 구현했고, 그해 가을 10만개 정도의 BEC로 응집된 나트륨 원자를 얻었다. 특히 응집된 원자들은 서로 위상이 일치돼, 마치 광자들이 유도방출에 의해 결맞은 상태(위상이 일치된 상태)인 레이저 빛의 경우와 비슷하게 된다. 이를 원자레이저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렇게 결맞은 빛이나 물질파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가 간섭현상이다. 1997년 케털리교수팀은 저온에서 응집돼 파동성을 가지는 원자들에서도 간섭 무늬가 생긴다는 새로운 사실을 관측했다.

무궁무진한 원자레이저 응용

BEC로 응집돼 결맞은 상태의 원자는 최근 원자의 위치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원자광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응용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해졌다. 아울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이론을 쉽게 적용해 검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선 광통신이나 우주항공 분야에서 많은 양의 신호를 주고받거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BEC 원자를 이용하면 측정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빛을 이용한 간섭계 대신 BEC 원자, 즉 결맞은 상태의 물질파를 이용한 간섭계를 사용하면, 빛의 파장에 비해 원자의 물질파장이 훨씬 작기 때문에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런 원자간섭계를 이용하면 수십km의 거대한 레이저간섭계 대신 실험실 내에서 수m 크기의 물질파 간섭계로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는 극히 미세한 신호인 중력파의 존재를 연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결맞은 상태의 BEC 원자의 용도는 무한하다. 마치 레이저가 발명되기 전 백열전구에서 나오는 빛만을 사용하던 시절에 비해 레이저가 발명된 후 과학과 첨단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원자레이저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레이저가 처음 발명됐을 당시 사람들은 별로 쓸데없는 것으로만 생각했고 실생활에 응용되는데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특히 21세기에는 BEC와 같이 양자역학적으로 흥미로운 상태의 물질을 이용한 새로운개념의 연구가 더욱 꽃피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젊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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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제원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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