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의 폐경기 증상이 남성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선천적으로 유전자 이상이 있거나 사춘기가 늦어지는 청소년도 안심할 수 없다. 남성 폐경기를 일으키는 성호르몬의 작용원리와 치료책을 살펴보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C군은 요즘 부모님의 키가 전보다 작아보여 이상스러웠다. 처음에는 자신의 키가 부쩍 커져 상대적으로 부모님이 작아보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키가 약간 줄었다. 허리도 조금 굽어 보였다. 엉덩이나 손목이 뻐근하다고 불편해하시는 모습도 잦아졌다. 병원에서 검진된 병명은 '골다공증'이었다. '바람든 무'처럼 뼈 속이 비어버린 것이다.
C군의 어머니에게 골다공증은 별로 낯설지 않은 병명이었다. 골다공증은 중년 여성병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C군 가족 모두는 남성이 골다공증에 잘 걸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골다공증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성호르몬이었다.
골다공증, 남성에 더 많이 발병
여성은 50대를 전후해 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급격하게 감소함으로써 난자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폐경기(menopau-se)에 이른다. 매달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월경이 멈추는 것이다. 에스트로겐은 뼈의 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폐경기의 여성은 뼈가 약해져 척추나 엉덩이뼈, 손목뼈 등의 관절이 유난히 시리고 아픈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남성은 어떨까. 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패턴은 여성과 다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분비가 줄어들 뿐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은 에스트로겐과 마찬가지로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줄어들수록 그만큼 뼈가 약해진다는 말이다.
남성은 50대에 이르면 성호르몬의 분비가 20대의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 이때 골다공증은 물론이고 성기능장애, 우울증, 자신감 결여 등 폐경기 이후 여성에게 찾아오는 증상과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성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는 중년 남성을 가리켜 '폐경기'를 맞았다고 종종 표현한다.
이전에는 남성의 골다공증 발병률이 여성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흔히 제시되는 통계수치를 보면 50대 여성의 50%, 남성은 20-30%라는 표현이 곧잘 등장한다.
그러나 김상우씨(삼성제일병원 남성골다공증·갱년기 클리닉 전문의)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수치로 나타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최근에는 남성의 발병률이 높아져 오히려 여성을 앞지르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경우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비율이 1972-1984년 사이에 42%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00년대 초에는 7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남성이 여성보다 골다공증에 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뼈의 생성 원리를 통해 대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뼈의 생성과 관련된 세포는 두가지가 있다. 파골세포는 오래된 부위를 찾아 갉아먹는다. 그러면 조골세포가 그 부위에서 새로운 뼈를 만들어낸다. 보통 파골세포의 작용 속도가 조골세포에 비해 빠른 편이다(그림). 이 두가지 상반된 작용이 균형을 이룰 때 뼈는 건강하게 유지된다. 뼈가 가장 단단해지는 시기는 35세.
그러나 35세를 넘어서면 10년마다 평균 5-10%의 뼈가 소실되기 시작한다. 이때 남성과 여성의 뼈 소실 메커니즘이 다르다. 여성의 경우 두가지 세포의 교체율이 빨라진다. 즉 조골세포가 미처 메우기 전에 파골세포가 다시 뼈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 여성 골다공증 환자에게 투여하는 호르몬제는 바로 파골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남성은 두가지 세포 모두의 기능이 떨어진다. 새로운 뼈를 채워넣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낡은' 부위를 제거하기도 힘들어진다. 여성에 비해 짐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골다공증이 남성에게 보다 치명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김상우씨는 "통계적으로 골다공증에 의한 남성 사망률이 여성보다 2-3배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풍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활동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누워만 있어 답답해 하는 것도 합병증 유발에 한몫한다고.
10대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골다공증이 중년 남성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또 누가 문제를 지적하면 남성 자신도 그 정도는 '배부른 소리'라며 가볍게 여겼던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몸의 변화를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우 폐경기 이후에 안면 홍조, 식은 땀, 우울증, 불면증 등 일상생활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남성은 호르몬이 서서히 감소함에 따라 몸의 증세도 서서히 다가온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바쁜 사회생활에서 우울증이나 식은 땀 정도는 가벼운 문제로 여기기 쉽다. 몸에 이상이 왔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 남성에게 많은 관심을 끄는 주제도 있다. 바로 '성기능'이 심각하게 감퇴한다는 사실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경우 성인 남성 인구의 약 12%가 조루증과 발기부전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40대 이상 남성의 10%가 비슷한 이유에서 성생활에 장애를 받고 있다.
문제는 성기능 장애의 다양한 원인 중 성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적게 분비되는 경우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다른 병이 없다면, 그리고 성호르몬의 양만 문제라면 성호르몬을 몸에 보충시켜서 치료해나가는 방법이 유용할 것이다.
성호르몬 분비 장애는 비단 어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분비에 결함이 있으면 어린 시절부터 중년 남성에게 닥치는 '폐경기' 증상을 겪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상인보다 여성의 성염색체(X)를 하나 더 가진 클라인펠터 증후군(XXY) 환자. 이병건씨(삼양사 의약사업부장)는 "미국에서 0.2%의 신생아가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라고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남성의 외적 성징이 발현되는 사춘기에 신체적인 결함이 발견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정소가 지나치게 작고 단단하며, 정자가 생산되지 않고, 수염이나 털이 자라지 않으며, 유방이 여성처럼 발달한다. 테스토스테론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현상들이다. '골다공증' 정도는 아니라도 뼈가 건강하게 자라지 않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춘기가 늦어지거나 아예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2-3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 13세에 사춘기를 맞는데, 3% 정도의 소년이 15세까지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이 18-20세에 이르렀을 때 사춘기 변화가 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평생 사춘기를 못겪는 경우가 10%에 달한다.
이병건씨는 "우리나라에서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나 사춘기 이상에 대한 통계가 없어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발생 빈도가 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치료책은 무엇인가.
먹는 약에서 붙이는 약으로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개발한 성호르몬제로는 먹는 약, 주사, 그리고 패치(patch)가 있다. 이중 먹는 약은 간에 독성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여러차례 보고되고 있어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다. 하루에 몇 회씩 먹어야 하는 번거러움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비해 주사법은 최근까지 병원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돼 왔다. 2-4주에 한 번씩 의사의 처방에 따라 주사제를 투여받아 효과를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안정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사제가 투입된 후 몸에서 작용하는 성호르몬의 농도 패턴이 정상적인 성호르몬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주사를 맞은지 1-2일 후에는 정상치보다 높은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관찰되며, 이후에는 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는 테스토스테론의 농도 변화에 따라 기분이 괜찮다가 나빠지는 식의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근육에 주사를 놓기 때문에 상당히 아프다는 단점도 있다.
몸에 고통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분비 주기와 유사한 호르몬제를 개발하는 것. 이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최근 새로 개발된 것이 패치제다. 피부에 부착함으로써 피부 아래에 분포한 혈관을 통해 약물이 몸 속 곳곳에 전달되도록 만들어진 제제다.
패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의 분비 주기와 비슷하게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유지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에서 테스토스테론은 아침에 최고 농도를 나타내다 자정 무렵에는 최저치로 떨어진다. 패치제를 매일 자기 전에 붙이면 이와 유사한 주기성이 나타난다. 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제제 개발에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초기에 만들어진 패치제는 정소 아래에 붙이는 방식이었다. 패치제는 건조하고 이물질이 없는 부드러운 곳에 잘 붙게 마련이다. 행동하는데 제약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잦았다.
최근 세계적인 의약품 연구개발회사인 미국 쎄라테크사는 기존의 패치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등이나 배, 허벅지, 그리고 팔 상단에 붙일 수 있는 간편한 약제를 생산한 것이다. 이 패치제는 국내 병원에서도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다. 쎄라테크사와 기술제휴를 맺은 삼양사가 자체 생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성호르몬제 투여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는 성호르몬이 전립선 질병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전립선은 요도 부근에 존재하면서 정액 성분의 3분의 1을 만드는 기관이다. 전립선에 이상이 생기면 암으로까지 발전하는 일이 잦아 성인 남성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성호르몬의 증가와 전립선 질병의 발생이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정상인은 사용 금물
그러나 김상우씨는 "전립선에 전혀 이상이 없는 경우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다고 해서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성호르몬이 전립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만일 아주 조금이라도 전립선 암세포가 있다면 성호르몬이 암의 진행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오히려 질병의 존재를 조기에 알아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립선 질병이 무서워 성호르몬 치료를 포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성호르몬제가 더욱 간편하고 더욱 효과적일수록 중년 남성의 '폐경기' 증상이나 선천적인 성적 질환은 좀더 완벽하게 고쳐질 것이다. 그러나 성호르몬제는 어디까지나 환자를 정상인의 수준으로 회복시키는데 사용되는 약품일 뿐이다.
잘못 사용하는 경우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규정된 양보다 많이 투여하거나 정상인이 사용한다면 오히려 정자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골다공증의 경우 일부 남성은 여성처럼 두가지 세포의 교체율이 빨라지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해봐야 효과가 없다. 질병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다.
테스토스테론
대표적인 남성호르몬. 95%이상이 정소(고환)에서 만들어진다.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된 성선(sexual gland)자극호르몬이 정소에 다다르면 정자의 성숙이 촉진되는 한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시작된다. 하루를 기준으로 볼 때 아침 8시에 최고치를 기록하다 밤 12시-2시에 최저값으로 떨어진다. 하루 총 생산량은 6-7mg. 한편으로 뼈의 무기질 밀도를 증가시키고 근육을 발달시키며 목소리를 굵게 만들어 사나이의 외형을 갖추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자의 생성을 촉진시키고 성욕을 증진시킴으로써 성적으로 성숙한 신체로 변하게 하는 주인공이다.
전립선
남성 정액의 액체 성분 가운데 약 3분의 1가량을 만들어내는 성 부속 기관. 발생학적으로 요도 양측의 측엽, 뒤쪽의 후엽, 앞쪽의 전엽, 그리고 중엽을 합쳐 모두 5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전립선액은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자에게 영양을 공급해 정자의 운동성을 높여 주는 한편, 정액의 주요 성분이기 때문에 남자의 생식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립선 질환으로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증, 그리고 전립선암이 있다. 전립선암은 서양 남성에게 매우 흔하게 발생하며, 질병에 의한 사망 요인 중 두번째를 차지한다.
붙이는 남성호르몬 개발자 메이저박사
지난 11월 15일, 미국 쎄라테크사 부소장 메이저 박사가 내한해 롯데잠실호텔에서 열린 대한비뇨기학회에서 '남성호르몬 치료요법'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기존 패치제에 비해 효능과 간편성이 모두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제품(앤드로덤)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서양에서 남성 갱년기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는가.
-미국의 경우 개발자나 환자 모두의 1차적인 관심은 성기능 장애다. 최근 병원에서 패치제를 직접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효과도 점차 입증받고 있다.
골다공증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다. 단지 성호르몬이 뼈세포의 형성에 중요한 인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골다공증 남성 환자가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 갱년기에 이르면 근육이 약해지므로 뼈가 부러질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새로 개발한 패치제의 장점은 무엇인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13세정도에 이르면 매일 밤에 테스토스테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수록 점차 낮에도 만들어져 분비량이 증가한다.
사춘기에 이상이 생길 경우 1매의 패치제(2.5mL)를 붙이면 체내에서 정상인 경우와 비슷한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나타냈다. 성인의 경우 보통 2매를 붙이며, 필요에 따라 3매를 붙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개발한 패치제는 정소에 붙이는 것에 비해 성호르몬 분비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굳이 불편하게 특정 장소에 붙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똑같은 효과를 보이지는 않는다. 임상실험 결과 등이나 배, 허벅지, 팔 상단에 붙일때 가장 효과가 크다고 판단된다.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사실 9%정도의 환자가 피부에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는 붙이는 약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손상 정도도 금방 치료될 정도로 경미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붙이는 부위에 크림을 발라 손상을 방지하는 방법이 효과를 보고 있다.
많이 사용할수록 좋은가.
-과용한다고 정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자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다. 즉 피임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애기를 가지려는 젊은 사람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강조하건대 성호르몬이 부족한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사용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