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나 전갈 같은 동물이나 곤충의 침에 포함된 독소는 인체에 치명적으로작용한다. 최근 이러한 독소 중 하나인‘보툴리늄 톡신’이 얼굴의 주름살을제거하는데 사용된다고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식물, 동물, 곤충 또는 박테리아 등에서 유래된 독소(toxin, venom)에 대해 인체에 무조건 유해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 독소로부터 다양한 의약품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독을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약과 독은 극과 극’이라고 여기는 일반인들의 관점으로는 특이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전문적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독소 정제해 약품 개발
약(drug)과 독(poison)은 같은 물질이다. 즉 사용하는 용량에 따라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고 유익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소에서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파라셀수스(1493-1541)는 “독성이 없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약물은 곧 독물이다.
다만 약물과 독물은 용량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독약과 극약이라 하면 인체에 해로운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의약품 중 약의 효력이 강하다. 따라서 소량이나 미량으로 인체에 대해 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의약품을 구별하는 용어일 뿐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약물은 치료 효과와 유해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며, 용량을 증가시키면 유해 작용이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최대 50%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약재의 용량을 ED50(Median effective dose)이라 하며, 약물을 투여한 총 개체수의 50%를 죽게 하는 용량을 LD50(Median lethal dose)라 한다. ED50이 너무 크면 의약품이라 하지 않고 식품 또는 기능성 식품이라 하며, LD50이 3백mg/kg 이하인 약물을 극약이라고 한다. 독약은 이보다 효력이 더욱 강해 LD50이 30mg/ kg 이하인 약물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큰 효력을 나타내는 독소를 정제하거나 유효 성분을 추출해 그 작용 메커니즘을 밝히고 유효 용량을 찾아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것은 아주 유용한 일인 것이다.
식중독의 원인 보툴리늄 톡신
그러면 현재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 보툴리늄 톡신(botulinum toxin)을 포함해 독소에서 유래된 몇가지 의약품에 대해 살펴보자.
보툴리늄 톡신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늄(Clostridium botulinum) 균에 의해 생성되는 신경독성물질로,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독소다. 1793년 독일 남부에서 조리되지 않은 혈액 소시지(우리나라의 순대와 유사한 식품)를 먹은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사망했는데, 그 이유가 음식물에 감염된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늄 균에 의해 생성된 보툴리늄 톡신 때문이었다. 1970년대 후반 안과의사인 알랜 스코트가 이 독소를 사시 치료에 처음 사용했다.
이 독소는 콜린성신경의 기능을 차단한다. 콜린성신경은 말초에서 부교감신경의 전부와 교감신경의 일부(땀샘에 분포한 신경 등), 그리고 골격근에 분포한 운동신경을 구성하는 신경이다. 보툴리늄 톡신은 콜린성신경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분비되는 것을 막아 그 기능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보툴리늄 톡신에 의해 콜린성신경이 차단되면 위장관 운동이 심하게 억제돼 복통이 유발되고 심장 운동이 촉진되며, 땀샘·침샘·눈물샘이 억제돼 피부와 입안, 그리고 눈이 건조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동공이 확대되고 시야의 원근 조절에 이상이 생겨 한개의 물체가 둘로 보이거나, 그림자가 생겨 이중으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며, 여러 가지 골격근이 이완돼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는데 장애가 생기고 음식을 꿀꺽 삼켜 넘기지 못하는 증세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콜린성신경의 차단 작용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치료적으로 사용할 때는 제한된 부위에서 적당한 정도로 신경을 차단하도록 용량이나 약물 투여부위를 조절해 사용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현재 뇌성마비, 사경(목 부위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해 머리의 자세가 기울어진 증상), 편측안면경축(한쪽 얼굴 근육의 마비 증세), 안검경련(안구에 경련이 일어나 눈을 뜨기 어려운 병) 등과 같은 질환에서 골격근의 비정상적 수축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다한증(안면이나 겨드랑이 손바닥 등에서의 체질적으로 땀이 심하게 나는 증세)을 치료하기 위해 해당 부위에 보툴리늄 톡신 주사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이밖에 타액분비 과잉증, 콧물이 심하게 분비되는 증상 등에도 활용된다.
이 모든 치료 작용은 골격근에서의 아세틸콜린 분비를 적절하게 억제함에 따른 골격근 이완 작용과 여러 분비선 조직에서의 타액, 콧물, 땀 등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콜린성신경의 작용을 적당한 정도로 차단하는 것에 의해 일어난다. 또한 미용 목적으로 얼굴의 주름살을 제거하고, 안검하수(윗눈꺼풀이 내려와 눈꺼풀을 올리기 힘든 증세)를 교정하는데도 보툴리늄 톡신이 사용된다. 그러나 보툴리늄 톡신의 아세틸콜린 분비 차단 작용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이런 치료 작용과 주름살 제거 작용은 장기간 지속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정기간 후에 다시 반복 투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이 독소의 주사가 통증이 매우 심한 것도 문제다. 일부 환자에서는 이 독소에 대해 체내에서 항체가 형성돼 효과가 감소되기도 한다.
골격 근육 풀어주는 독
비슷한 부위에 작용하는 독소로는 블랙 위도 스파이더(Black widow spider)라 불리는 독거미의 독소가 있다. 이것은 골격근의 운동신경에서 초반에 아세틸콜린 분비를 증가시켜 골격근 수축을 일으킨 후, 곧 아세틸콜린 분비를 완전히 억제해 골격근을 마비시킨다. 또한 대만 코브라의 독소는 골격근 이완제와 마찬가지로 골격근에서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차단해 골격근을 이완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치료제로 개발되지 않았으며, 이들 독소의 작용이 심하게 나타날 경우 호흡근이 마비돼 사망하게 된다. 수술시에 골격근 이완제로 사용된 대표적인 약물도 남미 인디언들이 동물을 사냥할 때 화살촉에 바르던 독을 연구해 개발된 약물이었다.
또 하나의 예로서 귀리 등의 곡식에 기생하는 맥각균(보리의 깜부기와 유사)이라는 곰팡이균이 있다. 오염된 곡식을 먹은 사람들이 식중독에 걸리는 이유는 곰팡이균이 생성한 맥각 알칼로이드라는 독소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물질을 연구한 결과 여러 가지 성분이 함유돼 있었는데, 그 중 에르고타민과 디하이드로에르고타민이라는 물질은 편두통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에르고미트린이라는 물질은 산부인과에서 분만 후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한 브로모크립틴은 파킨슨씨병의 치료에 사용된다.
이들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약물이 독소로부터 개발됐으며, 따라서 생체 내에서 매우 강한 작용을 나타내는 여러 독소들의 유효 성분과 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함으로서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