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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생체실험 그만, 디지털 가상세포 맹활약

컴퓨터에서 자라는 대장균

앞으로는 생물학자의 연구실에서 시험관과 실험동물이 사라질지 모르겠다.대사체학에서 생물정보학 기술을 이용해 사이버 가상세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가상세포를 이용하면 이제 더이상 과학자들은 손에 물 묻힐 필요없이컴퓨터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미생물을 키울 수 있다.

2010년 어느 날, 암세포를 연구하는 L박사는 오늘도 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억제 물질을 넣어 배양시킨 암세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컴퓨터 화면에는 밤사이 암세포가 눈에 띄게 위축된 모습이 보인다. 새로운 억제물질의 효능을 확인한 L박사는 미소를 띠며 컴퓨터 자판으로 또다른 억제 물질을 암세포에 첨가한다.

실험실 어디에도 시험관이나 배양접시, 멸균기 등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벽면에 커다랗게 걸린 각종 미생물의 대사회로도와 컴퓨터가 실험실을 채우고 있다. 물론 이 얘기는 단지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 최근 생물정보학을 바탕으로 대사체학에서 ‘가상세포’(virtual cell)를 개발중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문의 등장

대사체학(metabolomics)이란 말은 2001년 1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 처음 등장한 최신 용어다. 인간 유전자 전체를 다루는 학문을 유전체학으로, 단백질 전체를 다루는 학문을 단백질체학이라고 부르듯 대사체학은 미생물의 전체 메타볼롬(metabolome)을 생물정보학 도구를 이용해 다루는 학문이다. 메타볼롬이란 세포가 주어진 환경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대사산물(metabolite)을 총칭하는 말이다.

최근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포함한 많은 유기체의 게놈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유전자의 기능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또 현재 59종 이상의 미생물 유전자가 해독되고, 그외 다수의 미생물 게놈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이에 따라 각 유전자의 기능과 상호 연관관계에 대한 엄청난 자료가 축적되고 있다. 이는 세포 내 거의 모든 대사회로의 조작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생물 게놈프로젝트에서 얻어지는 유전정보와 이를 이용한 유전자 기능 연구에서 얻어지는 방대한 정보를 전산학·통계학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생물정보학이 대사공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생물정보학과 대사공학이 결합된 대사체학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 살아가는 방식 조작
 

대사체학에서 개발하는‘가상 세포’가 발전하면 암 등의 세포 도 컴퓨터에서 쉽게 연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은 면역 세포에 둘러싸인 암세포의 모습.


대사체학은 생물정보학의 도구를 이용하지만 그 근간은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이다. 미생물은 살아가면서 인간에서 유용한 각종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런 미생물의 대사특성을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기술을 대사공학이라 한다. 보기엔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개체수를 증가시키며 성장하는 미생물을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절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대사공학기술을 이용하면 미생물이 생산하는 유용한 대사산물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페니실린 등의 항생물질을 생산하는 미생물의 대사흐름 특성을 파악해 필요한 효소를 증폭하고 불필요한 효소를 제거함으로써 수십배의 생산량 증가를 이뤄낸 연구가 좋은 예다. 또한 자연적으로는 생산되지 않거나 효율이 낮게 생산되는 단백질과 생물고분자를 고효율로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 예들도 많이 있다. 필자의 연구실은 대장균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대사과정을 변형시켜 생분해성 고분자물질(PHA, 썩는 플라스틱)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항생제로 쓰이고 있는 폴리키타이드(polyketide)계통 물질을 합성하는 대사회로를 조작해 이 세상에 없던 신규 면역억제제를 만든 것도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사공학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세포작용과 대사과정에 대한 이해와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예전의 대사공학 연구는 원하는 대사산물의 생산에 관련된 몇가지 대사회로를 증폭시키고 억제한 후, 결과를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여러모로 한계를 지녔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의 경우 미생물의 대사조작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했지만 많은 경우 돌연변이가 생겨 미생물이 성장하지 못하거나 죽어버렸다. 그리고 독성물질 등 예상치 못한 부산물이 생기면 실험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또한 예전 방식은 돈과 시간, 인력 등이 너무 많이 들어가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효율적이고 신속히 신물질을 개발해야 하는 생명공학과 의약산업에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컴퓨터에서 세포 배양
 

유전체를 다루는 학문을 유전체학, 단백질을 다루는 학문을 단백질체 학이라고 부르듯, 생물정보학의 도 구를 이용해 미생물의 전체 메타 볼롬을 다루는 학문을 대사체학이 라고 한다.


대사체학에서는 세포의 대사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포의 대사회로를 조작하는 ‘디자인된 대사회로 조작’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생물정보학의 도구를 이용한다. 즉 대사회로의 특성을 구체적인 수식으로 표현하고, 이를 컴퓨터에 모사해 최적화된 모델을 얻는다. 이렇게 하면 세포의 전체 대사네트워크를 컴퓨터에서 구현할 수 있다. 이른바 ‘가상세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가상세포를 이용하면 실제 실험을 하지 않고도 컴퓨터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개량하고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 단백질·유전자를 발굴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지난 5월 바이오인포매틱스(주)와 함께 맨하이미아균에 대한 가상세포의 초기형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맨하이미아균은 소의 반추위(되새김질하는 위)에서 발견한 신종 발효균으로, 식품첨가물과 공업용 원료로 가치가 큰 숙신산을 만든다. 만약 숙신산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맨하이미아코의 특정 대사회로를 조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예전의 대사공학 방식에 의하면 각각의 대사과정에 대해 일일이 대사회로를 조작해 숙신산의 양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원하는 결과는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세포 시스템을 이용하면 너무나 간단히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맨하이미아균이 포도당, 유당 등을 숙신산, 아세트산, 에탄올 등으로 바꾸는 대사과정에서 일어나는 2백86개의 복잡한 화학반응을 수학적 계산식으로 만들어 그 결과를 컴퓨터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세포를 이용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숙신산을 생산하는 맨하이미아균을 설계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다. 즉 ‘가상 실험’ 결과 불필요한 대사회로를 없애고,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도록 맨하이미아균의 유전자를 조작하면 10배 이상 숙신산을 더 생산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처럼 가상세포를 이용하면 새로운 조작 결과를 생체실험을 통해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도 컴퓨터에서 이를 모사해 미생물의 대사회로를 그때그때 개량할 수 있다.

이미 59종 미생물 염기서열 완료

가상세포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가상세포 제작의 필수단계인 대사회로 구축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대사회로 구축은 미생물의 완전한 게놈 서열을 얻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2001년 5월까지 59종 미생물에 대한 게놈 염기서열 분석이 완료됐고, 수백여가지 미생물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이 진행중이다. 완료된 염기서열은 미 생명공학정보센터(NCBI)의 GenBank나 미 게놈연구원(TIGR) 등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제 원하는 미생물의 전체 염기서열을 얻었다면, 이를 생물정보학 기술을 이용해 다른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와 비교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구축하려는 대사회로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컴퓨터 모사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한다. 즉 기존의 알려진 대사회로와 비교해 구축하려는 대사회로가 어느 정도 유용한지를 예측해본다.

대사회로를 구성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크게 ‘하향 방식’(top-down )과 ‘상향 방식’(bottom-up)으로 나눌 수 있다. 하향 방식은 기존에 알려져 있는 대사 회로를 표본으로 이용한다. 구성하려는 대사회로가 기존의 대사회로에 포함되는 경우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태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필요에 따라 바꾸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상향 방식은 알려진 대사회로를 전체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하나의 효소(생물체 내에서 각종 화학반응을 촉매하는 단백질) 반응식으로부터 시작해 이에 연결되는 회로를 하나하나 붙여가는 방식이다. 이때 구축하려는 대사회로에 어떤 효소가 쓰일지는 그 미생물의 ORF(open reading frame) 분석을 통해 얻는다. 미생물의 전체 염기서열 중 유전자 지역을 찾고 그 염기서열이 어떤 단백질(효소)을 지정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목적이다. 만약 우리가 실험하는 미생물이 아밀라아제 효소를 지정하는 ORF를 가지고 있다면 그 미생물은 녹말이나 글리코겐을 가수분해하는 기능을 갖고 있고, 당연히 대사회로에 이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이같은 방법으로 대사 회로를 구성한 경우, 실제 생물체의 대사회로와 비교해볼 때 빠져 있거나 임의로 추가된 회로 구성요소가 있다. 이 점은 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전체 또는 부분적 회로를 대상으로 대사흐름 분석과 대사조절 분석을 실시한 뒤 수정한다.

디지털 대사공학 시대 열려

가상세포 시스템은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신약개발, 유용물질의 효율적 생산을 위한 대사공학적 세포개량, 새로운 생명공학 프로세스 개발 등에서 향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 에너지성은 10년에 걸쳐 1억5천만달러를 투입해 단세포 미생물의 대사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미생물 세포프로젝트(Microbial Cell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도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해 ‘E-Cell’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국내에서는 필자의 연구실을 중심으로 대장균 등 미생물의 메타볼롬 분석과 대사네크워크 분석을 통한 가상세포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런 연구가 무르익으면 머지않아 미생물뿐 아니라 인체세포에 대한 가상세포도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러면 암세포뿐 아니라 태아의 발생과정도 컴퓨터에서 연구할 수있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시험관이나 배양접시를 손에 들고 물을 묻히는(wet) 대신 컴퓨터에서(in silico) 모든 실험을 할 날도 멀지 않았다. 바야흐로‘wetmetabolic engineering’시대에서‘in silico metabolic engineering’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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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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