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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비밀

전쟁이 발명가에게 큰 기회를 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느 국가나 지배자들은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전쟁에 패배했을 때의 고통과 후유증이 승리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에 사용되는 군수품은 동시대 최첨단 기술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탄생한 신비의 하얀 분말

주부에게 가장 호평 받는 물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타지 않는 프라이팬처럼 사랑받는 것은 없을 것이다.

타지 않는 프라이팬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세가지 화학발명품 중 하나에서 태어났다. 세가지 화학발명품이란 합성물질의 대명사 폴리에틸렌, 고옥탄가 항공기 연료 그리고 테플론(폴리테트라플루오르에틸렌)이다. 이 중에서도 테플론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태어나지 못했을지 모르는 발명품이다.

테플론은 플랑켓트라는 미국 화학자에 의해 발명됐다. 그는 독성이 없는 냉매(프레온 류)를 만들 목적으로 봄베(고압 상태의 기체를 저장하는데 쓰이는, 두꺼운 강철로 만든 원주형 용기) 안에 불화탄소 기체를 가득 넣고 밸브를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 가스도 나오지 않았다. 봄베 안에서 기체가 사라질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가 결국 봄베를 톱으로 자르자 매끈한 하얀 분말로 된 왁스가 보였다.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테플론의 기체분자가 서로 중합돼 고체 물질이 된 것이다. 이 왁스와 같은 백색 분말은 놀라운 성질을 갖고 있었는데, 강한 산과 염기는 물론 고온에서도 끄떡없었고 어떤 용매에서도 녹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물질은 제조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이때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만들던 과학자들은 6불화우라늄(Hex)이라는 물질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원폭에 사용될 우라늄235를 추출하기 위해 ‘기체 분사식’이 채택됐는데, 이 방식을 이용하려면 길이가 수 km나 되는 가스가 새지 않는 파이프나 펌프가 필요했다. 그러나 Hex는 유기물질을 맹렬히 공격하기 때문에 어떤 재료도 이 위험한 부식성 가스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원자폭탄 제조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원자폭탄 제조에 활용된 테플론

원자폭탄 제조가 엉뚱한 문제로 난관에 처해있을 때, 원자폭탄 계획 책임자인 그로브즈 장군은 듀퐁사에서 이상한 물질을 개발했는데 생산비가 비싸 생산을 포기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로브즈는 플랑켓트에게 가격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그가 발견한 미끈미끈한 물질을 실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물질은 그들의 예상대로 우라늄 화합물과 반응하지 않았다. 사실 원자폭탄은 이 물질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플론이라 불리는 이 물질을 뒤퐁사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극비로 취급했으므로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거의 모든 물질에 녹지 않으며, 젖지 않고 열 저항에 강한 테플론은 그 비밀이 해제되자 듀퐁사에 의해 프라이팬으로 만들어졌다. 발매 처음에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타지 않는 프라이팬은 주방기구에서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음식물이 플루오르화탄소 중합체에 들러붙지 않으므로 기름없이도 음식을 구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테플론이 사용되는 분야는 프라이팬뿐이 아니다. 거부반응이 없는 인공장기를 만들 때에도 사용되며 우주복의 외피는 물론 일반 의류 부분에서도 선풍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테플론이 가장 폭넓게 쓰이는 곳은 전자산업 분야다. 사무실에 있는 수많은 전화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전선은 테플론 코팅으로 절연돼 있고 TV에도 테플론 부품이 들어 있다.

현재 사용자로부터 대환영을 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이 과거에는 특급 비밀을 요구하는 군사용 무기로 분류되던 것이다. 무선전화기도 과거에는 특급비밀이었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때를 잘 만나지 못하면 사장되는 반면, 테플론처럼 전쟁 용도로 사용되기 위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된 발명품도 있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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