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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6월 5일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는 남성동성애자 5명이 정체불명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가 최초로 발견된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에이즈 감염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유엔은 지난해 말까지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천1백80만명, 지난해 말 현재 감염자는 3천6백10만명(이 가운데 사하라사막 남쪽의 아프리카지역에만 2천5백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지난 한해에만 5백30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하루 1만5천명꼴인 수치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한 뾰족한 백신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균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밝히고, HIV가 증식하는 일을 막는 방법으로 환자의 수명을 늘리는 정도다. 물론 에이즈 치료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HIV에 대한 연구가 최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3일 ‘네이처 사이언스 업데이트’에 보도된 HIV 연구는 주목받을 만하다.

30분 내 5백개 유전자 파괴
 

어떤 바이러스가 침투할 때, 인체에는 정상적으로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항하는 면역체계가 있다. 이런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혈액 내의 면역세포인 T세포다. 그런데 사람이 HIV에 감염되면, HIV는 혈액 내의 T세포를 죽인다. 이 때문에 인체의 면역체계는 무너지고 이런 사람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한다. 미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자크 코르베일 박사팀은 최근 실험을 통해 이 과정이 매우 빠르고 무자비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코르베일 박사팀은 HIV를 T세포에 감염시킨 후 유전자칩(gene chip)을 이용해 거의 7천개의 유전자를 3일 동안 모니터했다. 이것은 에이즈 감염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일이었다. 실험 결과, 바이러스는 T세포의 유전자를 재빠르게 무력화시켰다. 5백개 이상의 유전자가 30분 내에 파괴됐다. HIV는 T세포의 복제 기구를 강탈해 자신을 급속하게 복제했고, 결국 T세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감염에 대항해 싸우는 고유경로 밝혀야

코르베일 박사팀은 새로운 바이오인포매틱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해석해낼 수 있었다. 유전자칩에 있는 각각의 유전자는 특정 기능과 관련돼 있다. 이것을 이용해서 HIV가 공격목표로 삼는 경로에 속한 유전자 그룹을 찾아냈다. 실험 결과, 에너지를 생성하고 DNA를 복구하는 경로는 단절되고, 세포 방어경로가 활성화됐다. 결국 세포 방어경로는 세포 자살유전자를 활성화시켰다.

미 메릴랜드 에이즈 백신연구소의 개리 내벨 소장은 “이런 연구를 통해 HIV가 T세포를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이전까지의 연구는 HIV가 침입할 때 세포가 HIV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개개의 유전자 산물에 초점을 맞췄다.

세포에는 원래 자살유전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자살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말은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세포가 자살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HIV가 감염된 직후 많은 T세포가 죽었다. 하지만 HIV 바이러스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과정은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다.

T세포의 수는 초기에 급격하게 감소한 이후, 일정 수준으로 안정화됐다. T세포가 안정화된 정도는 환자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약물 치료는 HIV 복제를 늦추기 위해 바이러스 내에 있는 효소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HIV에 공격받은 세포의 유전자 반응 실험 결과 중에는 숙주세포인 T세포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고유의 경로가 있음이 확인됐다. “이것을 밝히는 연구가 우리의 미래”라고 코르베일 박사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