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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 회화 공작새와 연극 가면

존경하는 사람 크게 그린 가치원근

고대 그리스에도 원근법이 있었을까. 원근법 자체는 근대 미술이 고안한 발명이라 이를 고대 미술까지 소급해서 적용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 하지만 원근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겐 가볍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데….

고대 그리스 화가들은 소재의 원근을 구분해 그리려는 시도를 했을까. 원근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이 처음 만들었고, 그걸 후대의 예술가와 수학자들이 완성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15세기초부터 2백년 동안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원근법이 처음 수학과 광학의 원리에서 시작된 다음, 조금씩 모순점을 해결해가면서 차츰 완전한 형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원근법을 말할 때 꼭 수학의 정확성이나 광학의 과학성, 또 근대적 공간 인식이나 시각 주체와 재현 대상 사이의 거리 두기 같은 철학적 사유를 전제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문제를 좀더 넓게 볼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원근법을 ‘가깝고 먼 것을 구분해서 평면 위에 옮기는 기술’ 쯤으로 이해해도 좋다면, 꼭 근대 미술에만 머리를 박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물 중요도 따라 크기 달라진다
 

| 주거지역 전경 |^폼페이 인근 보스코레알레의 빌라에서 발견된 침실 벽화. 기원전 1세기 중반.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소장.


기원전 8세기 무렵 디필론 도기 그림들을 보면 사람이나 동물들이 죄다 기하학적인 문양처럼 그려져 있다. 그리스 미술에서 평면 재현으로는 가장 오래된 작품들인데, 아테네의 집단 매장지 디필론 터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때는 원근이나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재현하는 일보다 줄거리를 분명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데 더 주의를 기울였다.

기하학 양식 시대의 도기 그림을 보면 주인공이 제일 크게 그려져 있고, 줄거리 안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꼭 시각적 원근 개념하고는 안맞지만, 역할의 중요성이 인물이나 소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재현 원리를 ‘가치 원근법’이라고 부른다.

디필론 도기들도 장례나 애곡 등 종교적인 매장 형식과 관계가 있었지만, 서양 중세 시대의 종교화나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보는 지옥도 같은 데서도 똑같은 가치 원근법의 원칙이 되풀이되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존경할 만한 큰 인물을 만났을 때 가끔 상대방이 몸집도 커보인다거나 이쪽이 좀 왜소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심리적인 인상이 가치 원근법이라는 재현 원칙으로 발전한 게 아닐까.

가치 원근법도 근대의 수학적 원근법과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과 대상 사이의 관계가 기본틀을 이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물론 수학적 원근법이 수치나 눈금 같은 객관적 잣대를 적용하는 데 비해, 가치 원근법은 획일적으로 계수화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나 영혼의 눈금으로 대상의 가치를 파악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수학적 원근법이 공간적·일체적 접근이라면, 가치 원근법에서는 시간적·서사적 접근방식을 취한다는 점도 다르다. 큰 것부터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니까 줄거리가 자연히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읽힐 수밖에 없다.


'주거지역 전경'은 진짜 풍경화가 아닌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건축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지붕의 시점과 창문들의 배열 방향, 그리고 열주 회랑이 뻗어나가는 소실선들이 모두 어긋나 있다(특히 원 안의 뒤틀림이 두드러진다). 벽화 화가가 근대적 의미의 원근법을 몰랐던 것 아닐까.


도기와 훼손된 벽화가 전부

그리스 미술은 기원전 7세기 무렵 전통적인 기하학 양식을 벗어 던지고 자연주의 시대로 접어든다. 전에는 삼각형, 사각형, 원형 같은 도형들을 갖다 붙여서 사람을 그렸는데, 차츰 어깨와 허벅지에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얼굴도 눈, 코, 입이 오목조목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공간을 점유하려고 한다던가 서사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도 좀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회화라고 해봤자 제대로 그린 큰 그림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그 당시 미술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무덤에서 나온 도기 그림이나 로마 시대 폼페이나 인근의 화산재 매몰지역의 벽화를 보고 배운 게 고작이다.

그런데 도기 그림은 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워낙 작은 데다가 가마에 굽는 과정을 거치니까 색깔 사용도 제한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도기 화가들의 그림 솜씨가 진짜배기 화가들하고 수준차이가 상당했을 거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로마 시대 벽화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원작들을 거의 베꼈겠지만, 해변 휴양도시의 개인 주거지에 벽지를 바르는 대신 그린 그림들이라서 질이 아무래도 많이 떨어진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대작을 옮길 때는 사람 머릿수를 크게 줄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고대 문헌에서 원근법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억지로 갖다 붙이면 비슷하게 우길 수는 있다. 이를테면 카이사르의 공병대장이었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에 보면 평면도(ichnographia), 입면도(orthographia), 조감도(scenographia)라는 개념이 나온다. 여기서 근대 원근법의 기초가 되는 수학적 원근법의 밑그림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르네상스 원근법의 발명자로 불리는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도 피렌체 성 요한 세례당 건축을 그리면서 건축의 평면도와 입면도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했으니까.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비트루비우스의 다른 대목을 인용하면서, 근대의 시각 피라미드하고는 다르지만 위성 안테나처럼 오목하게 생긴 부채꼴 시각 피라미드가 고대 미술에 존재했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입증된 건 아니다. 무엇보다 실물 자료가 부족한 게 큰 원인이다. 배가 불룩한 도기의 볼록 곡면에 그려진 그림들 몇점 갖고는 일관된 주장이 성립하기 어렵고, 또 같은 시대 같은 지역의 도기 그림을 갖고 이런 주장에 대해 얼마든지 반박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할 문제다.

문헌 가운데 그나마 신빙성 있는 인용으로 칠 수 있는 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실린 대목인데, ‘클레오네 출신의 키몬(Cimon)이란 사람이 단축법(catagrapha)을 처음 발명하고 인물을 3/4 시점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사람 얼굴을 뒤로 돌리거나 위로 젖히거나 아래로 수그린 자세로 그렸다’고 한다(박물지 35권 56쪽). 여기서 3/4 시점은 엄격한 정면이나 측면 시점을 벗어나서 비스듬히 돌아간 자세를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시점을 제대로 그려내는 솜씨라면 허리를 구부리거나 발을 엇갈려서 몸을 돌리거나 상체를 젖혀서 펴거나 접는 등 아무리 격렬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전혀 어려울 게 없다. 이 대목은 근대적 의미의 공간 개념이나 수학적 원리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원근법의 한 갈래인 단축법의 탄생과 의미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 구혼자들을 살해하는 오디세우스 | 익시온 화가, 캄파니아 종형 크라테르, 4세기 말, 파리 루브르 소장. 고대 로마 시대의 벽화와 모자이크, 그리스 도기 그림을 통해 그리스 미술에서 공간과 등장인물의 관계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공작새가 사람 눈 대신하는 것일까

그리스 미술에서 원근법이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실물 원작하고 문헌 증거가 하나같이 부실해 지금 단계에서는 확실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과 문헌 연구가 이뤄지면 나아질 가능성도 있다. 조금 우회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고대 로마 시대의 벽화와 모자이크, 그리스 도기 그림을 통해 그리스 미술에서 공간 재현의 문제를 살펴보자.

‘공작새와 연극 가면’은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 벽화다. 공작새가 휘장 위에 올라앉아서 뒤를 돌아보고, 그 모습을 왼쪽에 있는 연극 가면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뒤에는 도리아식 2층 열주 회랑이 늘어섰다. 건축이 비스듬히 안쪽으로 누워 있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공간 깊숙이 따라 들어간다. 여기서는 그림 속 건축이 공작새나 가면하고 한 공간 안에 잘 안 어울린다. 공작새가 보는 사람의 눈을 대신해 건축을 보는 건 아닐까.

또 가면이 놀란 표정으로 공작새가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시점을 여럿으로 흩어놓는 수단이다. 결국 우리는 가면을 보고, 가면은 공작새를 보고, 공작새는 건축을 보면서 줄거리의 사슬이 차례로 연결된다. 공작새와 가면이 그림 공간과 현실공간의 경계에 밀려나 있어서 근대적 일체 공간의 개념이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점을 다원화함으로써 보는 이의 다양한 시각 욕구를 충족시키는 건 아주 세련된 재현 전략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고대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그림 시합이 이 그림 안에 들어 있는 건 아닐까. 포도 그림을 그려서 새들을 그림 속으로 유인했다는 제욱시스와 그림 위에 휘장을 덮어서 제욱시스를 속였다는 파라시오스는 고대 회화의 전설적인 거장들이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도 새와 휘장이 다 들어 있다. 그렇게 보면 가면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현장에 초대된 듯한 착각 일으켜

‘주거지역 전경’은 언덕바지에 부유한 저택들이 잔뜩 들어서 있는 건축 풍경그림이다. 기원전 80년 직후부터 폼페이 벽화에는 이처럼 사실적인 소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고고학자들은 벽돌이나 대리석 장식을 본뜬 제1양식하고 구분해서 이런 걸 제2양식이라고 부른다. 정원에 온갖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새들이 날아드는가 하면, 열리지 않는 대문이 벽 한 가운데 그려져 있거나, 실물 크기의 사람들이 벽 너머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이 그림도 얼핏 보면 진짜 풍경화가 아닌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건축의 형태나 세부들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신상이 서있는 미끈한 석주, 장식이 호화스러운 청동 대문, 시원하게 꾸민 테라스, 가지런하게 짜 맞춘 붉은 기와 지붕이 마치 2천년 전 어느 잘 사는 동네로 우리를 데려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벽화 화가는 근대적 의미의 원근법을 아직 몰랐던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지붕의 시점, 창문들의 배열 방향, 열주 회랑이 뻗어나가는 소실선들이 모두 어긋나 있다.

‘가죽부대 춤’은 가죽부대 춤을 추는 켄타우로스 일족을 그린 모자이크다.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의 모습을 한 신화적 존재들인데, 흥이 많고 술을 좋아하는 게 특징이다. 술 때문에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 게 탈이지만. 여기서는 돼지가죽을 잘 묶어서 터지지 않게 해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균형을 오래 잡고 서있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하고 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축제일 둘쨋날에 이런 놀이를 했다고 한다. 가죽부대 안에는 바람을 불어넣거나 포도주를 채우기도 했다. 모자이크에는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 붓으로 그린 커다란 그림에서 구성을 베껴왔을 것이다. 인물들의 모습은 빛과 그림자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실물감이 두드러져 보이고 자세도 퍽 자연스럽다. 그런데 뒤쪽에 멀리 있는 구경꾼들은 어색해 보인다. 뒤에 있는 건지, 아니면 높은데 올라가서 내려다보는지 정확하지 않다. 나름대로 애는 썼지만, 공간과 등장인물의 관계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그렇다.

‘구혼자들을 살해하는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혼자 있던 아내 페넬로페를 못살게 굴었던 구혼자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이다. 강궁을 매겨서 쏜 활에 구혼자들은 하나하나 죽어 넘어진다. 활을 다 쏘고 난 오디세우스는 단검을 들고 휘두르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뒤쪽에 나오는 참혹하면서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것도 역시 작은 도기 그림이지만, 대형 패널 그림이나 원작 벽화의 구성을 베껴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 그림의 특징은 복수의 결전이 이뤄지는 궁정 내실의 밀폐된 공간을 도기 화면에서 절묘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못된 구혼자들이 뒤엉켜 죽어가는 모습은 마치 현장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다급한 동작들이겹치고, 시체들이 중첩되면서 훌륭한 원근법적 공간을 생산한다. 근대 미술에서도 보기 힘든 빼어난 솜씨다. 그렇지만 하나가 빠졌다. 아쉽게도 전체 공간과 등장인물의 관계가 모호하게 처리되고 말았다. 오디세우스의 궁정 내실을 암시할만한 건축 소재 같은 걸 조금 더 그려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두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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