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이때 여왕은 방한을 기념하는 의미로 하회마을의 충효당 앞뜰에 20년생 구상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일명 ‘여왕나무’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관광객 때문에 2년 후 구상나무는 심한 스트레스로 고사했다고 한다.
수목원, 휴양림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숲은 우리의 휴식처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녹색댐, 산소공장 등 환경 지킴이의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숲과 나, 환경과 나, 자연과 나를 한 몸처럼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88년부터 16년째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숲의 과학적 체험을 통해 환경의 소중함까지 가르치는 숲 체험학교 ‘Green Camp’의 프로그램과 노하우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소리로 풀어보는 숲
이른 아침, 동 틀 무렵이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자동차 경적 소음 대신 숲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기분 좋게 잠을 깨운다. 물 흐르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희미하게 들리는 곤충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 이런 소리에도 알고 보면 다 과학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다.
곤충은 자신의 날개를 비비거나 울림판 등으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교미를 위한 일종의 생존 수단이다.
또한 한밤중에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는 번식기에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허파로 들이 쉰 공기를 울음주머니 속으로 내뱉거나 울음주머니 속의 공기를 허파로 들이쉴 때 성대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생물의 소리뿐만 아니라 무생물의 소리에도 자연의 법칙이 담겨 있다. 물이 물과 부딪혀 소리를 내고 물보라가 일어나게 되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늘어 물속에 산소가 잘 녹아 들어가게 된다. 그만큼 더 많은 미생물이 산소를 이용해 물 속의 더러운 물질을 분해할 수 있다. 숲 속의 바람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해 식물의 광합성과 호흡을 조절하고, 도시와 숲의 공기를 섞어줘 공기 정화의 역할을 맡는다.
Tip!
아침에 일어나 그냥 듣고 흘려버리기 아까운 소리들을 종이 위에 소리 지도로 옮겨 보자. 새는 낮이나 밤보다는 아침에 활동량이 많이 때문에 아침이 더 다양한 소리를 듣기에 적합하다. 종이 한장과 필기구를 준비하고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의 상대적인 위치를 가늠해 지도로 나타내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람과 물은 그 물리적 특징에 따라 파동 모양으로 나타내볼 수도 있다.
♣ Green Camp는 …
1988년부터 유한킴벌리 주최로 매년 여름 열리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환경 체험 캠프다. 특히 나무와 물, 토양, 생물들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필드 스터디(Field Study)에서는 대학 교수, 연구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환경에 대해 직접 강연과 시범을 보인다. 지금까지 총 2천3백명이 넘는 인재를 배출한 만큼, 매년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의 지원자가 몰려들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환경체험캠프다. Green Camp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forestkorea.org’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온몸을 숲에 맡기는 녹색샤워
숲의 소리를 만끽한 후에는 숲의 공기를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해수욕, 일광욕과 함께 건강삼욕(三欲)이라고 불리는 산림욕은 숲에서 가장 손쉽게 체험해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산림욕의 효능은 피톤치드 때문이다. 피톤치드라는 이름은 식물을 뜻하는 ‘phyto’와 죽이다, 살균하다는 뜻을 가진 ‘cide’가 합쳐진 합성어로 식물성 살균물질을 뜻하며, 러시아의 토킨 교수가 명명했다. 식물은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미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살균물질을 발산하는데, 이런 기능 때문에 피톤치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피톤치드 외에 테르펜도 삼림욕의 숨은 공신이다. 테르펜은 식물체의 조직 속에 들어 있는 정유성분으로 잣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에 많이 들어 있는데, 방향성과 살균, 살충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숲 속을 걷게 되면 피톤치드나 테르펜이 자율신경을 자극하고, 체내분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감각계통의 조정 및 정신집중 등 뇌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피톤치드와 테르펜을 뿜어내는 숲 주변 1m내에는 세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살균력도 강력하다. 신선한 떡갈나무나 자작나무 잎을 잘라 그곳에 결핵균이나 대장균을 투입하면 몇분 안에 죽을 정도로 인체에 유익한 살균력을 지니고 있다. 생선회와 마늘을 함께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적어지며, 솔잎을 넣어 찐 송편은 쉽게 쉬지 않은 것도 이미 식물체의 정유물질을 인간의 식생활에 이용한 좋은 예이다.
Tip!
산림욕은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3시간 정도 지속하는 것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개인의 체력에 따라 산림욕 지속 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피로를 느낄 때까지 숲 속에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숲에 가면 꼭 해보자!
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자
상상했던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펼쳐진 하늘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만약 하늘 가장자리로 나무들이 심하게 겹쳐져있다고 판단되면 나무들 사이의 경쟁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솎아베기나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②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맨발로 걸어보자
흙과 풀의 감촉이 저마다 다르다. 단 낙엽송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가시들이 있으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③ 나무를 껴안아보자
혼자서도 껴안아보고, 여러명이 함께 껴안아보기도 하자. 나무의 냄새를 맡아보고, 나무껍질의 촉감을 느껴보면 부드러운 은행나무, 매끄러운 자작나무, 약간은 거친 소나무까지 나무의 특징이 피부로 전해진다.
숲 속 요리 공작소
이제 숲의 주인공인 나무를 탐험해보자. 12시에서 2시까지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가 곤충을 비롯한 숲 속 생물의 활동이 오전에 비해 저조해지므로 이 때를 이용해 나무를 탐험해보는 것이 좋다. 눈으로만 체험하는 소극적인 체험에서 벗어나 오감을 사용한 적극적인 체험에 도전해보자. 체험의 내용은 나무의 이름에 담겨 있다.
먼저 근처의 자작나무, 팽나무, 꽝꽝나무 등을 찾아 귀를 신나게 하는 음향효과부터 시도해보자.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을 불에 태우면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데, 나무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고 물 속에서 불을 붙여도 탈 정도로 불이 오래 지속된다.
팽나무는 지름 7-8mm 가량인 구 형태의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를 새총의 총알로 사용하면 날아가면서 ‘팽-’ 하는 소리를 낸다고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꽝꽝나무는 잎에 미세한 공기주머니들이 있어서 불 속에 던져 넣으면 이 주머니가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고개를 돌리면 숲 속이 마치 부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향신료로는 생강나무가 준비돼 있다. 생강나무는 그 잎을 비빌수록 생강향이 매우 강하게 코끝을 찌른다. 간을 맞추기 위해 쓴맛을 내는 소태나무도 함께 준비하자. 어른들이 가끔 음식 맛을 보고는 ‘소태같이 쓰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소태나무의 잎을 씹으면 지독히 쓴맛이 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제 메인 요리로 국수를 준비하면 된다. 국수나무의 나무줄기를 잘라 가운데 하얀 부분을 같은 굵기의 나뭇가지나 철사로 밀어내면 국수자락처럼 무언가 밀려나온다. 실제로 나무껍질 안쪽을 구성하고 있는 심(pith)에 해당하는 것인데, 하얗고 길쭉하며 말랑말랑한 생김새가 마치 국수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Tip!
나무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나이테를 세는 방법이 가장 쉽다. 하지만 숲 속에서 높이 10-20cm 안팎의 어린 소나무를 발견하면 가지를 유심히 관찰해 보자. 2cm 가량의 가지 한 마디가 자라나는데 1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나이테 이외에 가지로도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벌레 헤는 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텐트 밖에 켜놓은 등불로 곤충이 모여든다. 사실 곤충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는 비가 그친 직후다. 비를 피해 나뭇잎 밑에 있던 나비와 잠자리 등의 곤충이 빗물에 젖은 날개를 말리기 위해 모두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빛을 보면 곤충이 불빛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기 때문에 밤도 나쁘지 않다.
곤충이 불빛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곤충의 방향 감지 능력과 관계가 있다. 곤충은 밤에 날아다니기 위해서 방향을 알 수 있는 표식이 필요한데, 이 때 달빛이나 별빛을 이용해 방향을 가늠한다. 예를 들어 나방은 빛과 80-90도의 각을 유지하며 비행한다. 따라서 밤에 불을 켜 놓으면 곤충이 불빛을 달이나 별로 잘못 알고 모여드는 것이다.
곤충이 밤에 날아다니는 이유는 야행성 곤충과 주행성 곤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야행성 곤충의 경우 짝짓기를 위해 달빛을 보고 날아오른다. 빛과 일정한 각을 유지하며 날아오르면 일대의 곤충들을 일정한 높이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한편 모기처럼 빛이 있는 곳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모여드는 곤충도 있다. 매미 등 주행성 곤충의 경우에는 빛을 보고 낮으로 착각해 모여들기도 한다.
Tip!
전등을 고정시키고 그 앞에 흰색 천을 씌운 후천 주변에 모인 곤충들을 관찰해보자. 잠자리가모기 등의 작은 곤충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통해곤충 세계의 먹이사슬을 확인할 수 있다. 장수풍뎅이가 교미하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무섭게만 느껴졌던 나방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방의 날개를 잡고 더듬이를 살펴보면 미세한 털들로 인해 폭신한 깃털이 연상될 정도로멋진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