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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華城) - 2백년 역사의 성벽에 숨은 지혜3가지

“선생님, 담에 있는 구멍이 모두 달라요? 왜 다르게 만들었어요?”
너도나도 여장(성에 있는 담)에 가서 구멍을 들여다본다.
“정말 구멍이 달라. 하나는 땅을 향해 있고 나머지는 땅과 나란하게 구멍이 나있는데. 왜 그렇죠? 선생님 왜 그래요?”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먼저 여러분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얘기해볼까요.”
잠시 생각을 하던 선희가 다시 여장에 가서 구멍을 들여다본다.
“알았어요. 구멍으로 볼 수 있는 데가 달라요.”
“어떻게 다르죠?”
“땅쪽으로 나 있는 구멍은 성벽 가까이를 볼 수 있고, 나란한 것은 멀리 볼 수 있어요.”
그러자 다시 학생들이 여장에 가서 구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정말 그래.”
“맞아요. 그렇다면 구멍을 달리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보고 만지고 생각하면서 화성 과학탐방은 시작된다.

화성은 서울에서 한시간여 거리에 있는 수원시내에 위치한다. 조선 정조 때인 1796년에 축성됐는데, 아직도 2백년 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간직한 곳이다. 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화성의 공사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1796-1801, 의궤청)다.

화성성역의궤는 저자가 따로 없다. 공사 후 의궤청이 조직돼 쓰여진 책이다. 이에 따르면 70여만명의 인원이 동원되고 80여만냥의 비용이 투입됐다. 여기에는 사업의 자세한 내역과 건축물의 도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화성 공사에는 과학기술이 다양하게 적용됐다는 점도 찾을 수 있다. 재미있게도 화성 공사는 2년 6개월에 걸쳐 이뤄졌지만, 공사보고서는 5년여에 걸쳐 쓰여졌다.

화성은 2백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탐방을 통해 화성에 숨어 있는 조상들의 지혜를 찾아보자.

지혜 하나, 미석

화성 과학탐방은 화성을 직접 보면서 "왜 그럴까"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성벽 앞에 가서 “성벽에서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문제가 있으면 찾아보세요”라고 안내자가 주문을 한다. 한참을 쳐다보다 한 학생이 “선생님! 성벽 사이에 있는 검은색 돌은 뭐예요?”라고 질문한다. “어! 저기에 검은색 돌이 있네.” 이 말을 듣고서 발견하는 학생도 있다. 그냥 무심결에 보았던 검은색 벽돌은 이때부터 달라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화성 성벽을 자세히 보면 성벽과 여장 사이에 검은색 벽돌이 끼어 있다. 이것은 생김새가 꼭 눈썹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눈썹돌, 미석(眉石)이다.

성벽과 여장 사이에 미석을 끼워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물은 얼면 부피가 팽창한다. 만약 성벽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채로 겨울을 지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물이 얼어 성벽은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벽과 여장 사이에 미석을 끼어 넣으면 이를 막을 수 있다.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직접 스며들지 않고, 미석을 타고 바로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물질이 상태가 변화할 때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1) 성의 돌 쌓는 방법^화성에서 찾을 수 있는 선조의 지혜 중 하나는 미석이다. 성벽과 여장 사이에 검은색 벽돌을 끼어 넣어 성벽으로 직접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한다. 전통적으로 성벽을 쌓는 방법은 3단계를 거친다.

지혜 둘, 돌쌓기

전통적으로 성벽을 쌓는 방법은 먼저 돌을 쌓고 성의 안쪽 부분에 자갈과 흙으로 채워 언덕을 만든 뒤 그 위에 여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화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성의 성벽을 이루는 돌은 화강암으로 직육면체다. 이런 돌을 어떻게 쌓는 것이 좋을지 우리 조상들은 고민했을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했을 때 돌을 쌓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돌을 성벽과 나란한 방향으로 여러 겹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벽의 방향과 직각을 이루는 가로방향으로 깊숙이 박히도록 쌓는다. 어느 방법으로 쌓은 성벽이 더 견고할까.

화성 과학탐방에서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당연히 성벽과 나란하게 여러 겹을 쌓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다. 재차,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여러 겹을 쌓으면 당연히 튼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럴까? “책장에 책을 꽂을 때 어떻게 꽂는 것이 책을 안전하게 꽂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라고 안내자가 반문한다. 그러면 ‘잘못 생각했나?’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는 눈치다.

성벽의 앞부분이 무너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돌을 성벽과 나란하게 여러 겹 쌓으면, 만약 성벽 앞부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뒤에 있는 돌들이 노출돼 쉽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돌을 성벽과 직각으로 깊숙하게 박히도록 쌓으면, 성벽 앞부분이 무너진다고 해도, 뒤 부분은 여전히 다른 돌과 맞물려 있다.

이것이 바로 화성 성벽의 돌 쌓는 방법이다. 뒤 부분의 돌들이 더욱 잘 맞물리게 하기 위해서 화성의 성벽 돌에는 잘게 부순 자갈을 넣어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림2) 성벽 방향과 돌 쌓는 방향^돌을 성벽과 나란히 쌓는 것과 성벽과 직각방향으로 쌓는 것 중 어느 방법이 더 견고할까. 만약 성벽과 나란히 쌓으면 한쪽 벽이 무너졌을 때 나머지 부분이 쉽게 무너 지고 만다. 화성은 성벽과 직각방향으 로 돌을 쌓았다.

지혜 셋, 아치형의 성벽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성벽 전체 형태가 구불구불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성벽이 왜 구불구불한지를 탐방 참가자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참가자는 뒤를 돌아보고 성벽이 구불구불한지를 확인하고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은 “성벽을 반듯하게 쌓지 못해서가 아니냐”고 대답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견고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아치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벽의 돌과 돌이 더욱 견고하게 맞물려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성벽의 전체적 형태 외에도 아치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화성성역의궤에서 성벽의 형태에 대해 “밑에서 중간부분까지 안으로 욱여 들여 그 모양이 마치 안으로 축소시킨 것처럼 쌓고 중간부분에서 위로는 밖으로 뻗은 것 같아서 위에서 보면 안으로 구부정한 듯하게 쌓았다. 이렇게 된 결과 성벽의 허리가 잘록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성벽의 허리를 잘록하게 쌓음으로써 돌과 돌 사이가 견고하게 맞물릴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성벽을 쉽게 타고 오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보면 완전한 아치의 형태는 아니다. 대신 성벽 위로 갈수록 좁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축학자 김동욱 박사(경기대)은 이것이 재래식 기법에 익숙한 석공들에게는 위로 가면서 돌을 밖으로 내밀어 쌓는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돌이 굴러 떨어질 우려가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화성 축조의 전체 설계와 공사계획을 담당했던 정약용의 계획대로 축성되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만약 석공들이 아치 형태의 과학적 원리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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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재혁 박사과정
  • 사진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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