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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테냐 10년의 역작 신혼의 방

'개구리 원근법' 적용된 우물 구조

만테냐는‘신혼의 방’벽화 작업을 10년 만에 완성한다. 그는 천장 복판에 컴퍼스와 눈금자로 그리는 선형 원근법을 이용해 동심원을 그리고 우물 구멍처럼 뚫려 보이는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했다. 천장과 지붕 대신 하늘 우물이 뚫려 있고, 그 위로 흰 구름이 둥실 떠간다. 신혼의 방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우물 바닥에 엎드린 개구리가 된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만토바에는 중세 성곽처럼 생긴 위압적인 건축물이 들판에 우뚝 솟아 있다. 만토바 후작궁은 10-12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떴지만 이곳 사람들은 고대 양식이라고 불렀다. 그때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기준으로 삼고 옛것은 무조건 고대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후작궁 북동쪽 날개로 들어가면 놀랄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벽면을 빙 둘러서 5백년도 더 된 실물대의 정교한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르네상스 화가 만테냐의 정교한 솜씨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더욱이 천장을 올려다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고 천장을 올려보는 자세에서는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목 근육이 아래턱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만테냐가 이런 것까지 계산에 넣었을 지는 미지수다).

천장과 지붕 대신 하늘 우물이 동그랗게 뚫려 있고, 그 위로 흰 구름이 둥실 떠간다. 신혼의 방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우물 바닥에 엎드린 개구리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가파르게 올려보는 원근법을 전문용어로 ‘개구리 원근법’이라고 부른다.


신혼의 방^처음에는신혼의방이아니었다.‘ 카메라픽타’, 곧‘그림이있는방’이라는이름으로불 러졌다. 17세기에 이르러 곤차가 후손들이 이곳에서 혼인 예식을 치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신혼의 방’이라는 아름다운 명칭이 붙었다. 만테냐는 중앙투시 원근법을 완숙한 솜씨로 응용하고 놀라운 단축법을 선보인다. 어린 푸토들이 자칫 난간에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을 까 보는 사람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컴퍼스와 눈금자로 무한 공간 창조

만테냐는 1465년부터 신혼의 방 벽화 작업에 매달려 10년 만에 완성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원근법이 처음 발명되고 미술에 적용되기 시작한지 한세대쯤 지난 시점이다. 만테냐는 중앙투시 원근법의 원리를 깨치고 응용해서 새로운 실험을 선보인다.

그는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신적 비례론을 쓰게 될 당대의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레오나르도는 수기로 남긴 회화론 노트에서 선형 원근법의 문제를 깨닫고 빛 원근법, 색 원근법, 대기 원근법 등 여러 대안 원근법을 제안하지만, 그건 다시 한세대가 지난 다음의 일이다. 물론 만테냐가 레오나르도와 자주 만나서 미술 이론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러나 신혼의 방 작업에서는 아직 수학과 기하학에서 출발한 선형 원근법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선형 원근법은 컴퍼스와 눈금자로 그리는 수학적 원근법이다. 만테냐는 천장 복판에다 동심원 몇개를 그려서 마치 우물 구멍처럼 뚫려 보이는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했다. 만약 건축부를 생략하고 그냥 파란 하늘을 열어두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림이 훨씬 보기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우물 아래에서 눈을 들어서 올려보는 사람들의 시점과 천장 꼭대기에 붙은 파란 하늘 사이에는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공간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물은 보는 사람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주요 전제가 된다. 다시 말해 우물 건축은 시각 주체와 시각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연결짓고 규정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여기서 우물은 단순한 원형 구조물이 아니다. 만테냐는 컴퍼스를 하늘 꼭지에 붙이고 넷 이상의 동심원을 둘러쳐서 우물 건축을 쌓아올린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동심원 사이의 간격 비례가 올바르지 않으면 시각의 환영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렸을까.

 

작업 과정을 재구성하면 이랬을 것이다.

1. 우선 천장 복판에 중심점 A를 구한다.
2. 우물 크기를 결정하고 제일 바깥 원을 그린다.
3. 중심점 A에서 수직선을 늘어뜨린 후 원주와 닿는 접점 C를 구한다.
4. 우물 바닥에서 올려보는 사람의 시점 B를 중심점 A의 오른쪽에 정하고 눈 높이와 천장 사이의 거리를 잰다. 이 거리를 시선거리 $\overline{ AB}$라고 부르자.
5. 시선거리$\overline{ AB}$와 평행을 이루며 C를 통과하는 직선 D를 그린다.
6. 바깥 원주를 24등분한 길이를 구한다.
7. 원주를 24등분한 길이만큼씩 C의 왼쪽에 직선 D를 잘라내는 기준점 a, b, c, d를 구한다.
8. 시점 B에서 기준점 a, b, c, d에 닿는 시선 그물을 뿌린다.
9. 기준점 a, b, 시선 그물이 종축$\overline{ AC}$를 관통하는 지점의 좌표 a', b', c', d'를 구한다.
10. 컴퍼스 중심을 중심점 A에 두고 a', b', c', d'를 지나는 동심원을 그리면 마침내 우물의 기초 윤곽선이 완성된다.


우물의 동심원을 그리는 방법


납작하게 눌린 원형 벽돌

만테냐는 그림을 그리면서 두가지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나는 천장 형태가 실내에서 볼 때 오목한 구형이라서 시선거리나 시선그물 같은 직선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천장 바닥면에 눈금자와 컴퍼스를 직접 대고 작업할 필요 없이, 종이 위에 도형을 그려서 동심원 사이의 간격을 계산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또하나는 보통 화가들이 그리는 눈어림 원근법의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까 하는 문제다. 이 방식에서는 복잡하게 시선거리나 종축 좌표를 구할 것 없이 동심원 사이의 간격을 임의의 비례대로 줄여가면서 그린다. 이를테면 제일 바깥 원을 그린 다음 두번째 원의 반지름을 적당한 간격만큼 눈어림으로 짧게 그린다. 세번째 원은 앞의 두 동심원 사이의 간격을 1/3 만큼 줄여서 그린다. 네번째와 세번째 원 사이의 간격은 두번째와 세번째 원 사이의 간격보다 다시 1/3 만큼 짧아진다. 이런 식으로 반지름을 계속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해결은 골치 아픈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는 사람의 시점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눈어림 오차를 은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단박에 탄로가 나고 만다. 만약 만테냐가 신혼의 방 천장 동심원 간격을 조금이라도 길거나 짧게 잡았더라면 시선거리는 여기에 비례해서 급격히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 우물 형태가 어색해 보였을 것이다. 이럴 경우, 보는 사람의 시점이 공중에 붕 뜨던지 바닥을 뚫고 지하로 파고들던지 둘 가운데 하나다. 또는 우물이 수직으로 반듯이 서지 못하고 안으로 엎어지던지 바깥으로 넘어가던지 둘 가운데 하나다.

만테냐는 우물을 24방위로 나누고 바람이 잘 통하는 원형 벽돌을 이어 붙였다. 원형 벽돌 구멍 사이로 어린 푸토들이 머리를 쏙 내밀고 장난을 친다. 밑에서 올려본 원형 벽돌은 생김새가 납작하게 눌렸다. 원을 눌린 형태로 그리는 건 화가가 익혀둬야 할 원근법 실행에서 두번째 과제다.

눌린 꼴의 원을 그리려면 하늘 꼭지를 중심점으로 한 동심원을 그리고, 동심원을 24등분한 다음, 중심점에서 원주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24가닥의 종선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눈은 그림에서 눌린 꼴의 원이 4줄로 형성돼 있으므로 4줄x24칸=원형 벽돌 96개. 모든 원형 벽돌은 아래에서 올려봤을 때 정확한 비례로 눌려 보여야 한다.

원을 누르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1. 먼저 가로 세로가 똑같은 정방형 abcd를 그린다. 정방형의 한변 길이는 인접한 종선 둘을 연장했을 때 제일 바깥 모눈의 바닥선과 닿는 접점 ab의 간격으로 정한다(그림1).
2. 정방형 abcd 위에 삼각형 Aab를 올려붙인다.
3. 중심점 A에서 필요한 만큼의 동심원 e, f, g, h…를 그린다(그림2).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앞에서 계산한 비례 수치에 들어맞아야 한다.
4. 정방형 abcd에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 세로 줄눈을 그려 넣는다. 줄눈이 촘촘할수록 눌린원이 정확하게 나온다.
5. 줄눈 위의 대응점을 찾아서 동심원 e와 f 사이에도 같은 수의 가로 세로 줄눈을 치고 대응점을 찾아 연결한다.
6. 같은 방식으로 동심원 f와 g, g와 h 사이에도 눌린 원을 그릴 수 있다.


우물 벽면을 둘러싼 납작하게 눌린 원형 벽돌을 그리는 방법


황제의 권위 상징하는 월계수

만테냐는 천장 복판의 우물 안팎에 날개 달린 어린 푸토들이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그려뒀다. 난간에 앉은 공작새 한마리가 맞은 편에 아슬아슬하게 오려둔 오렌지 나무를 쳐다본다. 화분 옆에서는 젊은 처녀 셋이 머리를 맞대고 재미나게 소곤댄다. 보석으로 장식한 머리 두건을 쓴 귀부인과 흑인 하녀는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걸까. 푸토 하나는 월계관을 제 머리에 씌우고, 다른 하나는 붉은 사과를 들었다. 또하나는 가느다란 막대기를 손에 쥐고 먼 곳을 응시한다. 막대기는 권력을 암시하는 지휘봉이나 왕홀의 비유일 것이다. 사과는 예수가 아담의 죄를 씻기 위해 들었던 구원과 약속의 메시지로 읽힌다. 신성로마 황제들도 ‘제국의 사과’를 쥐고 평화와 희망을 말하곤 했다. 1465년 신혼의 방을 주문했던 루도비코 곤차가 후작은 스스로를 로마 황제와 비교하기 좋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그의 호사 취미일까. 그렇다면 푸토가 제 머리에 얹으려는 월계수는 황제의 권위를 거머쥐려는 만토바 후작의 야심찬 의지를 표현한 걸까. 혹시 만테냐는 자연을 이기는 회화 예술의 이마에다 면류관의 영광을 올려두려는 게 아니었을지.

만테냐는 궁정의 일상과 신화 속 장면을 섞어뒀다. 붓의 기적을 부려서 현실과 환영 사이의 경계를 말끔히 허물었다. 수학과 기하학의 우물 안에다 또 하나의 자연을 창조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만토바에는 중세 성곽처럼 생긴 위압적인 건축물이 들판에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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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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