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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용한 겨울의 살인마 일산화탄소

죽음을 부르는 무서운 친화력

연소에서 공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다. 탄소를 포함한 가연성 물질이 공기 중에서 산소를 만나 연소하면서 열에너지를 내뿜고, 탄소는 이산화탄소로 바뀐다. 하지만 산소가 많지 않다면 연소는 불완전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대신 ‘조용한 살인마’ 일산화탄소(CO)가 배출된다.

 

2018년 12월 18일 강원 강릉시 한 펜션에서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생 3명이 숨진 사건의 사인(死因)도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과거 수사했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전북 고창 선운산도립공원의 캠핑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 2014. 02. 16  텐트에서 변사자 2명 발견

 

며칠째 떨어지지 않는 감기를 안고, 현장으로 나섰다. 2월 한겨울 텐트 안에서 부부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의 변사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텐트 위 하얀 서리를 쓸어내리고 지퍼를 내리자 두 사망자의 모습이 보였다.

 

검시를 위해 변사자의 몸부터 확인했다. 사망 후 화학적 변화로 인해 형성된 강직 때문일까, 아니면 2월 한겨울 산속 차가운 기온 때문일까. 부부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검시를 진행하는 손끝에도 소름 돋는 냉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텐트 안에는 타다 남은 숯덩이와 가루가 양동이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한쪽에는 이들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가스랜턴도 있었다.

 

 

우선 시체의 시반을 살폈다. 사망 이후 혈액 순환이 정지하면 적혈구가 중력에 의해 혈관을 따라 점차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시체 아래쪽 모세혈관에 모이게 된다. 이 때문에 시체에 검붉은 얼룩이 형성되는데, 이를 시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망자들의 몸에서 발견된 시반은 뭔가 달랐다. 검붉은 색이 아닌 밝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반듯하게 누워 사망한 남편의 어깨와 등, 엉덩이와 종아리 부위에서, 또 그 옆에 누워있는 부인의 몸에서도 뚜렷한 선홍색 시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면 시체가 선홍색을 띤다. 혈액이 산소 대신 일산화탄소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은 폐로 들어온 공기 속 산소와 결합해 이를 온몸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일산화탄소는 헤모글로빈과의 친화력이 산소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이 때문에 일산화탄소가 폐로 들어오면 산소 대신 헤모글로빈과 결합한다. 이때 만들어지는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COHb)의 색깔이 선홍색이다. 이 부부의 사망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망 원인을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부부의 대퇴동맥에서 혈액을 채취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바로 혈중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 농도를 검사했다. 남편은 약 60%, 부인은 55%의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이 혈액에서 검출됐다. 부부의 사망 원인은 틀림없는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일산화탄소는 색도, 맛도, 냄새도 없는 비자극성 기체로 공기보다 가볍다. 주로 연탄가스나 자동차 배기가스, 도시가스에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높은 농도의 일산화탄소가 포함된 공기를 흡입하면 짧은 시간에도 혈중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의 농도가 높아진다. 도시 대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는 자동차 통행량, 도로 조건, 기후 등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정체가 심한 도로변에서는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게 나타나며 이때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의 혈중 농도는 13~18%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담배 연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기도 하며, 신체 대사과정에서도 부산물로 일정량의 일산화탄소(약 0.3~0.8%)가 생성된다.

 

문제는 이렇게 인체에 흡입된 일산화탄소는 오직 호흡기를 통해서만 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헤모글로빈과 일산화탄소의 강한 결합 때문에 배출 속도가 매우 느려, 적은 양의 흡입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죽음을 부르는 무서운 친화력이라 할 수 있다.

 

● 2014. 02. 27  쥐 이용해 일산화탄소 영향 실험

 

일산화탄소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무서운 존재다. 우리나라 특유의 온돌 문화 때문이다. 지금은 경제 성장과 함께 대부분 도시가스를 이용해 온돌을 데우지만, 과거에는 주로 연탄을 이용했다. 산소가 부족한 난로 속에서 연탄이 불완전 연소하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래서 과거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대부분 연탄이 원인이었다.

 

지금은 일산화탄소 중독 사건의 원인이 더욱 다양해졌다. 땔나무를 이용한 찜질방 구들장이나 아파트, 펜션 등의 보일러 연통에서 가스가 누출될 수 있다. 밀폐된 주차장에서 낡은 차량이 오랫동안 공회전할 때도 일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간혹 차량이나 실내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겨울철 레저 활동에도 위험 요소가 있다. 텐트에서 야영하면서 화덕을 이용하거나 휴대용 부탄가스를 이용해 물을 끓여 난방을 하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기도 하고, 캠핑카 등 밀폐된 장소에서 전기온돌을 돌리다가 발전기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에 중독되기도 한다.

 

이 사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타다 남은 숯덩이로 볼 때 이 부부는 난방을 위해 숯불을 켜둔 채 잠들었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추론일 뿐, 수사팀은 사고 원인을 더욱 확실하게 규명해야 했다. 일산화탄소의 위험성과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도 있었다.

 

이를 위해 수사팀은 사고 발생 열흘 뒤인 2월 27일 오전 11시, 사고가 발생했던 고창 선운산도립공원 캠핑장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사망자들처럼 텐트 안에서 난방 도구를 사용했을 때, 그 과정에서 생성된 일산화탄소가 인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실험은 사건 현장을 재현해 가스랜턴과 숯불을 피웠을 때 텐트 내 산소 농도와 일산화탄소 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또한 실험용 쥐를 이용해 텐트 내 공기 조성의 변화가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조사했다.

 

 

먼저 텐트 안에 가스랜턴 및 음식 조리에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넣어 분당 산소 변화량을 측정했다. 산소 결핍에 의한 질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가스랜턴을 켜놓은 지 8분이 지나자 산소 농도는 20%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실험 종료 시점인 40분 뒤에는 산소 농도가 18.4%로 줄어있었다. 산소 농도가 낮아지자 투입한 실험용 쥐 3마리 가운데 2마리의 활동이 급격하게 둔해졌다.

 

보통 대기 중 산소 농도가 18% 미만이면 산소 결핍으로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16% 수준에서는 구토와 두통 증세가 나타난다. 14% 이하로 떨어지면 코와 입, 손, 발 등이 검푸르게 변하는 청색증(cyanosis)이 발생하며, 6%에서는 질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번에는 텐트 안에서 숯불을 피워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측정했다. 숯불을 피우고 분석기를 돌리는 찰나에 일산화탄소 농도는 급격히 치솟았다. 허용기준치인 200ppm(공기 1kg당 일산화탄소 200mg)을 훌쩍 넘어섰다. 이는 충분히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숯불을 피운 지 4분 50초가 지나자 일산화탄소 농도는 1000ppm으로 증가했고, 8분 52초가 지난 시점에서는 2000ppm에 근접했다. 또한 15분 23초 뒤에는 허용기준치의 15배인 3000ppm까지 상승했다. 이는 급성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수준이다. 실험용 쥐 3마리는 모두 현저하게 활동이 느려져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사람의 경우 일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인 대기에 약 20분간 노출되면 메스꺼움과 두통, 경련 등을 보이며, 1시간 이상 노출되면 혈중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 농도가 30%를 넘겨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수사팀은 여기까지 실험을 마무리한 뒤 급히 실험용 쥐를 텐트 밖으로 꺼냈다.

 

 

201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현철호 전북지방경찰청 검시사무관
  • 에디터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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