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우리의 주변 환경을 둘러싼 수 많은 도구들은 각기 독특한 모양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들로, 바로 디자인과 인간공학의 접목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인식돼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능에 부합되는 형태를 창출하는 조형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디자인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물이 완벽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용적이며 조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종합적인 창작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 디자인은 이러한 디자인의 개념을 현대 산업 제품에 적용함으로써 대량 생산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제품에 물리적 특성을 부여하고, 이로 인한 사용자의 육체적 심리적 만족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는 고도의 창조활동인 것이다.

인간공학은 '기기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합리화를 도모한다'는 기본적인 취지 아래 인간이 사용하는 기기를 인간적인 요소를 고려해 설계하는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인간 공학은 사용자의 요구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인 산업 디자인과 비교해 볼 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공학과 산업디자인의 근본적인 목표는 다같이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에 적합한 제품을 창출하는데 있으며 이 두 영역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발전해 왔다.

오늘날 인간공학은 산업 디자인 작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산업 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활용하는 가장 필수적인 방법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공학적 방법과 연구 성과들은 산업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제품의 형태를 아름답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하기에도 편리하게 하는, 이른바 '기능의 미학'을 성취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사용하기엔 불편하지만 디자인만은 멋지다"라는 말은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육체적 행동을 최대한 편리하게
 

산업디자인에 인간공학적 지식과 연구 과정이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처럼 이해되고 있으나 실제로 산업디자인에서의 인간공학적 노력은 매우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산업혁명 이전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 장인(craftsman)이 도구를 제작할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현대의 인간공학과 유사한 관련 지식들이 일찍부터 중요하게 취급됐다. 특히 2차대전으로 인한 군수산업은 보다 확실한 인간공학적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전후 기계 위주의 철학이 인간 위주의 철학으로 대체됨으로써 제품 디자인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공식화됐다.

산업디자인에 인간공학적인 접근이 체계화되기까지는 미국의 산업디자이너였던 헨리 드레이퍼스(H Dreyfuss, 1904-1972)의 선구적인 역할이 컸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사용자들의 신체 비례 능력 등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제품 디자인에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했다. 그로 인해 인간공학을 통해 사용자의 요구를 디자인 해결안에 적절히 반영하고 평가하는 과정의 전형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그의 책 '인간계측-디자인에 있어서의 인간공학'(The Measure of Man-Human Factors in Design)은 인간공학적 정보와 산업 디자인 작업에서의 실제적인 적용에 관한 기초적인 자료를 전하고 있다.

아직 인간공학이라는 연구분야가 채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에 이미, 그것도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이러한 연구와 적용이 이루어진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그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그 이래로 산업 디자인의 인간공학적인 고려사항은 단순 인체계측치의 적용에서부터 인간의 인지심리와 인간과 제품 환경과의 관계를 포괄하는 범위로까지 확대돼 왔다.

현재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인간공학적인 노력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가지 접근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제품의 의도된 기능이 얼마나 물리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둘째, 제품의 기능과 조작방식이 얼마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가?
셋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심리적인 만족이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가?

우선 첫째 접근 방식인 물리적 편리성은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기본적인 접근방식이다.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육체적인 피곤이나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줄이고 편리성을 증대시켜 최대의 효율성을 얻기 위해 제품은 사용자의 '물리적 특성'에 적합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있어서 산업디자이너가 갖는 주요 인간공학적 관심은 인간의 육체적 행동을 생리적으로 편리하게 하는 방법, 예를 들어 손에 잡기 쉬운 형태, 신체에 맞는 크기, 힘이 덜 드는 조작 방법 등이다. 이를 위해 산업 디자이너들은 인간의 인체 치수, 행동 반경, 힘의 전달 등에 관한 인간공학적 자료를 제품의 디자인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
 

쥐기 편하고 엄지 손가락을 보호할 수 있즌 스키 폴 손잡이


제품의 물리적 편리성을 위해 인간공학이 효과적으로 고려된 제품의 디자인 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사진1)의 스키 폴 손잡이는 사용자와 사용 상황의 물리적 특성이 적합하게 디자인된 좋은 예다. 이 손잡이는 우선 쥐기 편하며 힘을 전달하기 용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키를 타는 도중에 상처 입기 쉬운 엄지 손가락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됐다.
 

손잡이가 회전함으로써 더 큰 회전력을 가할 수 있는 나사 드라이버


또 (사진2)의 나사 드라이버는 손잡이의 뒷 부분이 60도 각도로 회전됨으로써 나사를 조이거나 풀 때 좀 더 큰 회전력을 가할 수 있고 사용 상황에 따라 사용자가 손잡이를 변경할 수 있도록 가변성을 주어 편리성을 도모한 디자인의 예다.
 

사용자에 따라 편한 각도로 자유롭게 회전시켜 사용할 수 있는 키보드


손잡이나 드라이버 같은 손 도구뿐만 아니라 (사진3)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를 비롯한 많은 전자제품에도 이러한 원칙은 적용된다. (사진3)의 키보드는 인간공학적인 아이디어와 요구사항들을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검증함으로써 디자인한 것으로,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타이핑을 할 때 두 손과 몸체가 원호를 이루는 것이 작업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손목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힌 후 이를 반영, 키보드를 두 부분으로 분리하고 사용자에 따라 편한 각도로 자유롭게 회전시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이 디자인은 그 우수성으로 1993년 미국 산업디자인 우수상(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을 수상했다.
 

상체를 기울인 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의자


마찬가지로 (사진4)는 드로잉 작업과 같이 앉은 자세에서 상체를 기울여 작업하는 물리적 상황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의자다. 상체를 기울인 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체를 안정되게 고정시키는 적절한 각도의 하체 지지대가 무릎 아래쪽에 설치돼 작업의 편리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의 좋은 예다.

한편 두번째 접근 방식은 제품의 기능과 조작 방식을 사용자들이 좀더 이해하기 쉽고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디자인하는데 목적을 둔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조그만 크기의 제품에 수많은 기능이 부여되고, 또 제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스마트한' 제품이 개발됨으로써 이의 사용법을 사용자에게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디자이너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가령 조그만 손목시계의 경우만 하더라도 다양한 타이머는 물론, 계산기나 맥박기, 심지어 최근에는 무선 호출기 기능까지 갖춘 전자 손목시계가 등장했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이러한 제품은 의도된 기능을 인지하고 조작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이 따르고 제품의 조작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조작이 간편하고 기억하기 쉬우며 조작 오류를 줄이기 위한 사용자의 '인지적 특성'에 관한 연구가 디자인의 중요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용자의 인지적 특성은 사용자의 물리적인 특성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무형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이들을 디자인에 반영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제품 사용자의 인지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제품의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혹은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과 같은 새로운 연구 분야가 등장하게 됐으며 현재 산업디자이너들은 이 분야에 있어서 인간공학자나 인지심리학자 등과 함께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결과는 컴퓨터 관련 기기나 다기능화된 전자제품과 같은 다양한 제품 영역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어린이들의 정보처리 능력과 인지적 특성에 적합하게 디자인된 대화형 교육기기


(사진5)는 어린이를 위한 대화용 교육기기로 각 단추들과 조작부위들은 제품의 사용자들인 어린이들의 정보처리 능력과 인지적 특성에 적합한 형태와 질감, 색상들을 연구 적용해 어린이들이 사용방법을 이해하고 조작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디자인된 예다.
 

조작 과정과 절차를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킨 TV 리모콘


또 (사진6)은 90년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상을 수상한 텔레비전 리모콘으로, 조작의 단순성이라는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조작과정과 절차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이 리모콘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데 필요한 최소의 버튼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작방식을 인지하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다. 더 나가 각 버튼들 자체가 조작을 위한 적절한 시각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카메라 액정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픽토그램


이와 같이 제품 조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디자인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평면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진7)은 카메라의 액정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그림문자(pictogram) 디자인의 한 예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제품의 기능이 무엇이고 현재 제품의 상태를 평가해 지금 어떤 기능이 가능한지를 결정하기 쉽게 하며, 사용자 행동의 결과가 시각적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평면적 접근 방법은 공공 안내 표지판이라든가 설명서, 컴퓨터의 화면 디자인 등에 많이 활용된다.

세번째 접근 방식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심리적인 만족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최근 기술력의 급격한 발전과 평준화로 제품과 관련된 물질적 기본 욕구가 충족되자 사용자들은 제품에서 심리적 만족감이나 쾌적성, 혹은 자유로운 자기 표현 등과 같은 정신적 욕구 충족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감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이 제품에서 기대하는 감성과 '심미적인 특성'들을 파악해 이를 제품의 최종 물리적 형태에 적용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들의 추구하는 바는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가 형성된 이래 산업디자인의 본질적인 과제이자 존재 원인이기도 했다. 인간공학에서도 감성 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이 가지는 이미지나 표현성에 대한 폭넓고 체계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거미의 형태를 응용한 레몬즙 짜는 도구


(사진8)을 처음보는 독자들은 이 제품의 기능이 무엇인지 의아해 할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디자이너 필립 스타크가 디자인한 레몬즙 짜는 기구로, 거미의 형태를 제품에 응용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물리적인 기능의 충족 이외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이다. 거미의 머리부분에 레몬을 대고 으깨면 레몬즙은 머리부분의 굴곡을 타고 거미다리 사이에 놓인 컵으로 흘러내리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기분좋게 사용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의 감성을 반영한 스포츠카의 외양


(사진9)의 스포츠카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쾌적성이 다른 제품들보다도 중요시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스포츠카는 사용자들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미적 기호와 감성을 포착해 형태에 반영함으로써 사용자들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예다. 디자이너들은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스피디한 속도감을 자아내고 이를 이용하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파악해 이를 형태나 색채 재질의 디자인에 반영해 감성적 디자인을 이루고 있다.
 

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도록 고안된 전화기


한편 (사진10)은 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전화기로서 자신의 생활 환경과 제품에 적절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사용자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은 마치 책장을 넘기듯 전화기의 각 장을 넘겨가며 원하는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사용성을 높이기도 한 우수한 디자인의 한 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디자인에 있어 인간공학의 적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중요하다. 산업디자인의 인간공학적 접근은 단순한 인체계측적 조사 자료의 적용에서 시작됐으나 이제 인지심리학과 같은 보다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향후 인간공학은 현대 첨단 기술을 응용한 발전된 시스템의 개발로 인해 끊임없이 그 효용과 중요성이 강조될 것이고, 그에 따라 인간의 행위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품의 디자인에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평가하기 위한 요소로서 산업디자인에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한편 인간공학에서도 인간에 관한 여러 분석적 연구자료를 최종 제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산업디자이너의 종합적이고 개념적인 창조성을 필요로 할 것이고, 인간의 주관적이고 고차원적인 특성에 보다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 산업 디자인의 감성적이고 심미적인 속성과 그 구현을 위해 산업디자인과의 협동 작업이 더욱 중요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쾌적한 삶의 창조'라는 공동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 두 영역은 많은 부분에서 점차 통합화될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건표 교수

🎓️ 진로 추천

  • 산업경영공학
  • 미술·디자인
  • 심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