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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성공학이 세상을 바꾼다

21세기는 디지털 르네상스

컴퓨터와 디지털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개인화를 촉진해, 사람들 간의 만남을 가로막는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지털은 이런 우려를 역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산업사회에서 3D라고 하면 더러운(dirty), 위험한(dangerous), 그리고 힘든(difficult)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정보사회는 3D를 디지털, DNA, 그리고 디자인이라고 한다. 디지털과 DNA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지, 아니면 재앙과 파멸을 가져올 것인지 우려와 기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유닉스 언어를 개발하고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한 빌 조이는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미래를 걱정하는 수필집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 공학과 디지털 기술로 로봇에 사람의 뇌를 그대로 옮길 수 있다. 그러면 두뇌는 사람이고, 몸은 기계인 로봇이 탄생한다. 사람과 기계의 벽이 무너지는 시대가 오고, 결국은 이것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한다는 것이다.(이어령, "빛과 소금" 2001년 1월호)

디지털 기술의 주체는 인간

하지만 과학기술은 사람에게 더 좋게, 즉 편리하고 편안함을 가져다주기 위해 계속 발전해왔다. 즉 생각지 못한 부정적인 측면이 포함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본래의 의도와 방향은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이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을 인류의 필요에 맞도록 해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는 일이 디자인이며, 이때 인간의 신체적인 적합성뿐만 아니라, 이성적, 더나가서는 감성적인 적합성까지 만족시키는 작업이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에는 만남을 통해 만났을 때만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전달된다. 제스처, 표정, 또는 체취 등 전화나 통신으로는 불충분한 여러가지 다양한 정보가 존재한다.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전에는 전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감성정보를 충실하게 전송함으로써 단순한 만남보다 더욱 진한 만남이 이루어질 시기가 멀지 않았다. 예로 비디오에 밀려 사양길을 걷던 극장들이 최근에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THX 시스템과 안락한 인테리어 등을 도입해, 극장으로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받고 있으며, 전에 비해서 누구나 손쉽게 디지털 미디어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기술과 웹사이트를 통해 정보 공유의 폭은 더 넓어지고, 오히려 사람들끼리의 접촉은 이전보다 더 활발해져 인간적인 면이 더 견고해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은 사람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디지털은 ‘감성융합’이다

디지털 시대의 화두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느냐다. ‘6번째날’ ‘매트릭스’ ‘토탈리콜’ ‘스트렌인지데이즈’ 등의 SF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재 중 하나는 가상체험이다. 사람이 실제처럼 느낄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매초 수십억비트의 감각정보가 우리의 감각기관에 전달돼야 한다. 과거에는 이 정도 크기의 정보를 전송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제 충분한 양의 감각정보 전달을 가능케 해 생생한 체험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진홍 교수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은 오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그 오감을 자신의 몸 안에서 자유롭게 융합시킨다. 한마디로 ‘오감융합의 달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몸 안에서는 자유자재로 융합되던 오감을 몸 밖에서 이루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은 문자, 그림, 소리, 동영상과 같은 미디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각각의 감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융합할 수 없었다. 신문 따로, 라디오 따로, 텔레비전 따로, 즉 사람 몸 안에서는 가능했던 오감 융합이 사람 몸 밖에서는 문자, 소리, 동영상이 각각 분리됐다. 그런데 이런 분리를 드디어 하나로 융합할 수 있게 됐다. 바로 디지털화된 새로운 멀티미디어 환경을 통해서 말이다. ‘멀티미디어’란 이름 그대로 사운드, 이미지, 데이터 등을 컴퓨터가 융합한 일을 말한다. 디지털은 많은 양의 정보 전송뿐 아니라 이와 같은 다양한 감각 능력까지도 융합시켰다. "("빛과 소금" 2001년 1월호)

박세리의 골프스윙을 그대로 재현한다

예를 들어 박세리가 어떻게 골프를 치는가를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도 있다. 골프의 스윙은 타이밍이다. 수백개 근육의 타이밍을 조절해 완벽한 스윙을 하는 박세리의 스윙을 속도를 줄여, 보면서 익힐 수 있다면 매우 쉽게 골프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박세리가 운동할 때 골프스윙을 주도하는 근육의 근전도(electromyography)를 기록한다. 이 데이터를 인공근육으로 만들어진 체외골격계에 입력한다. 박세리의 스윙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이 체외골격계를 장착해 입력된 데이터에 맞게 움직여주기 때문에 스윙을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 마치 골프선생님이 팔을 같이 잡고 스윙을 가르쳐주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것은 단순한 운동지각적 경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골프 스윙을 통해서 얻어지는 근육적인 움직임 외에 존재하는 기분은 동일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연습경기나 메이저대회라는 상황조건과 골프장 등 여러가지 정보와 환경을 함께 느끼면서 스윙을 따라한다면 동일하게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전송 시스템을 통해 정보와 감각이 체험자에게 전달돼 진정한 경험 전달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박세리의 골프스윙을 그대로 재현한다.


정보 전달을 넘어 감성 전달까지

우리는 이제까지 시각을 통한 정보전달에 익숙해 왔다. 앞의 예는 시각이 아닌 운동감각을 통한 경험 전달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의미는 단순히 0과 1의 조합으로 정보를 표시하거나 모든 것을 숫자화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드는데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영상은 정지된 화상이 중첩되면서 나타나 이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경험을 증폭시키는 중첩된 현실(augmented reality), 즉 과거의 기억과 정보, 음성, 화상 등 그야말로 물리적인 세계(atom)와 정보의 세계(bit)가 결합돼, 뇌에 원하는 정보가 중첩됨으로써 지식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처럼 경험은 외부와의 정보교류를 통해 지식이나 기술을 얻는 과정으로 각종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서 얻는다. 과거의 기억에 근거해 책을 읽거나 영화를 통해서도 제한된 수준으로 간접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과 감각이 쌓여 이뤄진 것이 감성이다.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의한 감각, 지각으로부터 사람의 내부에서 야기되는 심리적 체험으로 쾌적함, 고급감, 불쾌감, 불편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의 조합이다. 이처럼 감성은 감각에 개인의 환경과 지식이 결부돼 나타나는 개인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가상현실은 외부자극으로 뇌에 진짜같은 경험을 심어준다. 미래 교육의 방향도 현재의 지식정보 전달을 넘어서 경험 전달로 변모해가고 있다. 현재 현장 학습과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강의 등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성과 대비되는 감성은 정보 전달 방식으로는 알려줄 수 없다. 이성을 넘어서 감성까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왼) 교육과 오락적 특성 을 살린 수중탐사선 (오) 손으로 버튼을 눌러 음악을 연주하고 합성해서 듣는 오락장치인 믹스 플래시 (아래)  이동이 편리하게 가벼운 소재를 이 용해 디자인한 킥보드


디지털은 인간중심주의

20세기는 확실히 과학과 기술의 세기였다. 1895년 X-선의 발견 이래로, 상대성이론과 핵폭탄, DNA의 구조 규명과 분자생물학의 출현, 달로의 우주여행, 반도체의 발명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등 미지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 진행되던 세기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을 통해 인류의 삶은 풍족해졌으나 사람의 존엄성이 존중되던 세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치 중세의 암흑기 이후의 르네상스처럼 21세기에는 기술중심에서 생활중심으로, 즉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폭넓게 이뤄져 맹목적인 기술개발을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즉 사람에게 불안감을 없애고 편안함을 안겨주는 감성과학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림) 인간 친화성에 따른 콘텐츠의 분포^현재까지 구현됐거나 상상으로 그려진 미디어와 시스템, 즉 콘텐츠를 상호작용의 3요소로 구분해보면 각각의 위치와 단계가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얼마만큼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가, 문화적인가 또는 기능적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는가라는 3차원적인 측면으로 보면 스타트렉에 나오는 홀로덱(Holodeck)이 가장 생생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이상향으로 나타난다. 반면 책과 신문은 가장 전통적이며 경험의 강도가 낮은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화된 요소일수록 사람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감성 디자인은 필수

정보사회에서 최종의 문제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위해서, 사람에게 효과적인 정보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정보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의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정보처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다양한 미디어의 활용이 가능해졌다. 문자, 소리, 영상 등 여러 미디어가 혼합됨으로 인해서 많이 복잡해졌지만, 컴퓨터 하나로 모든 것이 조합가능하고, 활용가능하다. 웹사이트에 가면 한꺼번에 원하는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

문서내용으로 평가받던 웹사이트 시대는 갔다. 어떻게 하면 웹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게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즉 웹사이트와 같은 대표적인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감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가 됐다. 책과 같은 단순 미디어에서는 정보 디자인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미디어가 활용되는 디지털 콘텐츠에서는 정보 디자인, 상호작용 디자인, 그리고 감성 디자인, 이 세영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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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남식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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