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자연이 만든 눈부신 아름다움의 결정체, 눈. 고대인들은 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지금의 사람들과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을까. 왜 6각형 구조인지, 왜 그렇게 다양한 모양을 가지는지…. 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고대 문헌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눈의 6각형 구조는 오랫동안 잘 알려져 왔다. 그런데 왜 하필 6각형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눈 결정 구조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자료가 1611년이 돼서야 나타날 정도니까.
과학적 연구는 케플러에서 시작
그것은 과학자 케플러가 쓴 ‘6각형의 눈송이에 대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이다. 케플러에게도 이런 결정체의 대칭구조가 매력적인 질문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3백년쯤 지난 후에야 인간은 답을 얻었다. 바로 X선 결정학의 도움을 얻어서 말이다.
눈은 0℃ 이하의 온도에서 수증기가 응결돼 생기는 결정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단순히 수증기가 영하라는 온도 조건에 놓인다고 해서 눈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수증기들을 모아줄 핵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것은 공기 중의 작은 먼지 입자. 먼지 입자와 만나지 않으면 영하라도 작은 수증기들은 얼지 않는다. 이 상태를 ‘과냉각’이라고 한다.
과냉각 수증기가 먼지와 만나면 얼음으로 곧바로 변하는데, 이것이 눈 결정을 형성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만약 0℃ 이상이라면 눈 결정 대신 비를 내리는 빗방울을 형성한다. 이후 빠르게 눈 결정이 생성되는데,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모습은 6각기둥 구조. 어떤 모양의 눈 결정에서도 처음 이 순간은 같다. 왜일까.
X선 결정학의 도움으로 얼음의 결정구조가 밝혀졌다. 압력에 따라 얼음결정은 I(1)-XIV(14)까지 분류될 정도로 다양한 구조를 가진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인 대기압 조건에서 가장 안정한 얼음의 형태는 I이다. 이 얼음구조가 바로 6각형이다.
6각형의 얼음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물분자만의 독특한 화학결합 때문이다. 물분자는 산소 1개, 수소 2개로 이뤄진다. 그리고 산소 원자를 사이에 두고 수소가 양쪽 팔을 펴고 있는 형태를 가진다. 이때 수소와 산소 간의 결합은 전자 하나를 공동으로 가진다. 공유결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유결합만이 전부는 아니다. 수소와 산소가 똑같은 수준으로 전자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수소보다 산소가 좀더 많은 부분을 가진다. 전자를 빵으로 생각했을 때, 산소가 절반 이상을 가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물분자를 이루는 수소가 약간의 양(+)의 전하를 띠고, 산소는 약간의 음(-)전하를 띤다.
이 때문에 물분자 간에도 결합이 형성된다. 즉 하나의 물분자를 구성하는 양전하를 띠는 수소가 다른 물분자를 구성하는 음전하를 띠는 산소와 약한 결합을 한다. 이로 인해 보통의 대기압에서 물분자 6개가 서로 고리를 형성해 6각형의 구조를 이룬다. 처음 형성되는 눈 결정 얼음이 바로 이 구조다. 기본 6각형 구조에서 다양한 형태의 눈으로 성장한다.
결정은 모두 제각각일까
1년간 ${10}^{24}$개 이상의 눈 결정이 대기 중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말을 한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이 질문에 대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눈 결정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켄 리브레츠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는 누군가가 어떤 물체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 것에 상관없이, 그 물체와 같은 종류이면 똑같은 물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전자가 그렇다. 소립자 물리학에 따르면, 하나의 전자는 다른 어떤 전자와 정확하게 똑같다. 전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소립자가 없기 때문이다.”
물분자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물분자는 똑같을까. 대개의 물분자는 원자량이 16인 산소 원자 하나와 원자량이 1인 수소원자 두개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자연에 존재하는 물분자는 5천개에 하나꼴로 수소-1 대신 동위원소인 중수소(원자량이 2)를 포함한다. 또한 5백개마다 산소-16 대신 산소-18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모든 물분자가 똑같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10}^{18}$개의 물분자를 포함하는 보통의 작은 눈 결정은 어떨까. 이 구성 분자들 중 약 ${10}^{15}$개는 모양이 나머지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똑같은 눈 결정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나도 작다. 따라서 원자나 분자수준으로 눈을 바라보면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눈 결정 모양을 단순히 물분자만 생각해서 떠올리면 안된다. 형성과정에서 주위환경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눈을 보면 모양이 비슷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눈을 몇가지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판모양, 별모양, 기둥모양, 바늘모양, 나뭇가지모양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눈 결정의 형태를 분류해줄 만한 완벽한 틀은 아직까지 없다.
별·나뭇가지·바늘 등 다채로운 형태
실험실에서 성장시킨 결과, 결정의 형태가 온도와 공기의 포화수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음이 밝혀졌다. 얼마나 공기 중에 수증기를 많이 머금고 있느냐와 온도가 몇도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가장 특징 있는 온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15℃ : 가장 일반적인 눈 결정은 온도가 -15℃ 근방, 과포화 정도가 클 때(눈 결정에서의 습도보다 공기의 습도가 상대적으로 10% 더 높을 때) 형성된다. 이때 판모양, 별과 나뭇가지가 섞인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온도와 습도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모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온도에서 습도가 낮아지면 특이하게도 거의 대부분 간단한 6각 판모양이 형성된다. 이것은 눈 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모양이다.
-5℃ : 이 온도에서 습도가 높은 경우에는 주로 긴 기둥모양이 형성된다. 좀더 자세히 나누면, 바늘모양이거나, 6각기둥형태, 기둥이 두개인 형태를 볼 수 있다.
-2℃ : -15℃에서처럼 판모양이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성장속도는 -15℃ 때보다 느리다. 만약 이 온도에서 습도가 높다면, 각이 점점 둥글게 확장하면서 성장한다. 이것은 녹는점 근처에서 얼음의 표면경계가 분명한 면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모든 온도조건에서 습도가 낮은 경우, 즉 공기의 수증기량이 불포화상태이면 단순한 구조의 눈 결정이 만들어진다. 즉 별이나 나뭇가지 모양처럼 여러 갈래로 나눠지지 않고 단순한 기둥모양을 띤다.
성장과정에서 온도와 공기 포화상태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모양이 바뀐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조건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눈 결정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사진으로 찍어 관찰하기도 한다.
습한 눈, 건조한 눈?
올해는 새해 첫날부터 강추위와 함께 수십 cm 높이가 쌓일 정도로 상당한 양의 눈이 내렸다. 특히 충북지방에 내린 집중 폭설로 하우스는 물론 철골구조의 지붕까지 내려앉았다. 상당한 양이기도 했지만, ‘습한’ 눈이어서 더욱 문제가 컸다고 한다.
솜털처럼 가볍게 내리는 눈이 얼마나 무겁다는 것일까. 지난 1월 7일 서울에 내린 15.6cm의 눈의 경우, 가로, 세로 1m 길이로 잘라 재보면 질량이 무려 2백20kg 정도. 1제곱미터의 공간에 질량이 70kg인 사람이 세명이 서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눈에도 ‘습한’ 눈과 ‘건조한’ 눈이 있다는 것일까. 지난 1월 7일 폭설이 내렸을 때의 상황을 살펴보자. 당시 눈구름을 몰고 온 저기압은 차가운 대륙을 거쳐 서해바다를 지나왔다. 이때 저기압을 구성하는 공기는 너무나도 차가웠고, 쿠르시오 난류가 흐르는 서해바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따뜻했다. 때문에 서해바다의 따뜻한 물이 증발돼 차가운 저기압대로 흡수됐다. 저기압의 공기가 다량의 수증기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공기가 높은 과포화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눈 결정이 높은 습도에서 형성돼, 결정에 빽빽하게 물분자가 붙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습한 눈은 많은 수분을 포함할 수 있는 구조인 여러 갈래의 별모양, 나뭇가지 모양이다.
그렇다면 건조한 눈은 어떤 경우에 생기는 것일까. 건조한 눈은 주로 극지방에 내린다. 극지방에서는 공기의 습도를 높여줄 따뜻한 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눈이 포화수증기량보다 더 적게 수증기를 포함하는 공기 중에서 형성된다는 말이다. 극지방의 매우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 형성되는 눈 결정은 기둥구조의 매우 단순한 형태를 가진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건조한 눈은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는 것일까. 대기 중으로 수증기가 유입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눈구름을 형성하는 대기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바람이 북풍인 경우에는 건조한 눈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
왜 다양한지는 아직 미해결
온도와 수증기량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을 드러내는 눈 결정. 왜 그렇게 다양한 구조를 가지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 문제는 아직도 미스터리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눈만이 이런 복잡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암석에서 복잡한 생체조직까지 자연에서 발견되는 결정의 종류는 무한해 보인다. X선 회절이나 화학적 분석을 통해, 광물을 조사하기만 해도 결정성장 패턴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패턴이 왜 그런 모양으로 성장하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결정 성장을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인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눈 결정 성장의 메커니즘으로 두가지를 말하고 있다. 확산, 그리고 얼음만의 독특한 표면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확산은 분자들이 스스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공기 중의 물분자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결정 표면에 닿게 돼 눈 결정이 성장한다는 것이 눈 결정 성장에서의 확산에 의한 메커니즘이다.
확산은 눈 결정의 기본구조인 6각형이 성장할 때, 각 꼭지점에서 뻗어나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 비해 꼭지점 부근의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물분자가 다른 부분보다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얼음은 독특한 표면구조를 이루고 있다. 얼음과 공기가 만나는 접촉면이 항상 간단한 경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녹는점에 가까우면 표면은 소위 ‘표면 액체’라는 상태변화를 겪는다. 즉 표면의 물분자들이 얼음에서처럼 일정 간격으로 고정돼 있지 않고, 액체처럼 약간의 움직임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층을 ‘준액체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준액체 층의 두께는 낮은 온도일수록 얇다. -10℃에서는 단지 몇개의 분자로 이뤄져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온도가 높아지면 두께가 두꺼워진다.
과학자들은 얼음 표면에 생기는 준액체층의 존재가 여러가지 중요한 환경적 결과를 낳는 것으로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얼음의 미끄러움이 그 중 하나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다른 겨울철 스포츠가 가능한 지배적인 기작은 마찰에 의한 열이지만, 얼음 위의 준액체층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구름 속의 얼음 결정이 번개가 일어나는데 거의 필수적인데, 현재 준액체층이 구름의 전기를 띠게 되는 과정(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또한 암석 사이에 얼음이 들어가 암석을 깨뜨리는 과정에, 상층 대기에서의 오존층을 만드는 것과 같은 화학적 반응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잡한 눈 결정 형성에서 준액체층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2℃에서 성장시킨 눈 결정은 기본 6각 구조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꼭지점 부근이 점점 둥근 모양을 가진다. 이것은 녹는점에 가까운 -2℃에서 준액체층이 두껍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아직 속시원하게 확산과 얼음 표면구조가 어떻게 눈 결정 형성에 관여하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눈 결정이 왜 그렇게도 다양하게 성장하는지는 열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