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과학은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하는 지식이요, 사람의 정서와는 먼 자연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한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알고 싶어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길섶에서 울고 있는 개구리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어하고, …, 하지만 할머니의 무덤가에 핀 할미꽃과 온실에서 사온 할미꽃을 구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시덩굴에 하얗게 핀 꽃이 찔레꽃이라는 것을 외워두었다가 어린 자식에게 가르치려 할 뿐 …. 과학이 어렵고 딱딱해서 싫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더욱 메마르고 날카롭게만 만들고 있는 것이다.”(서문 중에서)
할미꽃은 햇볕을 좋아해서 양지바른 곳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다. 청개구리 동화에서 청개구리 어머니가 양지바른 곳에 묻히길 바랬던 것처럼 무덤은 늘 양지바른 곳에 쓴다. 그리고 매년 추석이면 벌초를 해주기 때문에 무덤엔 키 큰 풀들이 자라지 않아 그늘이 없다. 그래서 무덤은 할미꽃이 살기에 가장 좋은 자리인 것이다. 할미꽃이 왜 유독 할머니의 무덤에 많고, 깊은 산속에는 없는지를 설명하는 지은이의 글에는 과학이 생활과 따로 떨어져서 이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는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지내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하고 느끼는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애썼던 지은이가 반듯하고 각진 과학이 아닌, ‘물기 있는 과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유년의 경험에서부터 뒤늦게 배운 과학을 다루고 있다. 과학동아에서 약 2년간 ‘물구나무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이야기와 새롭게 추가된 여러 이야기는 과학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소위 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과학적 현상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내력, 엄마 손이 약손인 까닭, 아이들을 오줌싸게 만드는 도깨비불의 정체, 초상화들이 대개 왼쪽 얼굴인 이유, 동물들이 경칩날을 아는 비결, 눈 오는 날 강아지가 행복해하는 이유, 솔잎 송편에 관한 따뜻한 관습 등 우리의 풍속과 생활이 담겨있는 37가지의 과학 이야기를 재미있고 독특한 일러스트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미끄럽다고 해서 시험에 떨어질까봐 미역국을 먹지 않는 금기가 있다. 미역은 피를 만들어주는 조혈작용이 뛰어나고 위에 부담이 없어 오히려 수험생 아침 음식에 적당하다. 그런데 과학적 근거가 없는 풍습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바로 정신적인 암시효과.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선하고 정성스런 마음은 하늘도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하니….
작가소개
저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감동보다는 지식을 위해서 책을 읽고, 지식인의 양심을 지녔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회의주의자로. 하지만 이런 소개에도 불구하고 실제 저자가 쏟아내는 내용은 인간적이고 감동이 넘친다. 서울대 천문학과를 나오고, 동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3년 동안 과학동아 기자로 지낸 후, 현재는 ‘조선 후기 서양 과학 수용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