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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산술 주비산경 완역한, 사회학자 차종천교수

아들 수능 수학점수 한달만에 10점 올려

“세웅 아버지, 세웅이가 수능 수학시험에서 10점이나 올랐다면서요.”
“그것도 한달만이라면서요. 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저희 재수하는 아들도 좀 봐주시면 안되나요?”

지난 1996년 말 당시 고3 대입수험생이었던 아들 세웅이 수능을 마쳤을 때 성균관대 차종천교수(사회학과)가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놀라움과 부러움의 소리였다. 차교수의 말을 빌자면, 자신은 사회조사를 통해서 얻어진 자료를 통계 처리하는 정도이지 수학하고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그의 학부때 전공이 영문학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라게 된다.

이런 차교수가 몇달 전에는 구장산술과 주비산경이라는 동양수학고전을 번역하고 풀이하는 책을 냈다. 경험분석을 위주로 하는 전형적인 미국유학파 사회과학도인 그가 한문투성이인 괴문서와 씨름을 했다니 더욱 의아스럽다.


사회학자 차종천 교수


일주일에 한단원씩 아들과 씨름

먼저 차종천교수가 아들 세웅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한달 동안의 비결을 들어보자.

차교수는 수능시험을 한달 앞둔 시점에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궁여지책으로 나섰다고 한다. 처음에는 수학의 여러 단원 가운데 자신없는 것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아침 5시반에 일어나서 밤 12시15분에 귀가하는 아들도 아들이지만 아무리 한단원씩이라도 대충 훑어보려면 일주일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능시험 전까지 미분, 적분, 삼각함수, 함수와 그래프 등의 단원을 다섯번에 걸쳐 가르쳐줄 수 있었다.

차교수의 대응전략은 이러했다. 하나같이 두꺼운 수많은 국내참고서를 검토하는 대신 한 대형서점 일본서적 코너에서 발견한 몇몇 수험서를 집중해서 파고들었다. 이들은 서술체계가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이었기 때문에 활용하기 좋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일일이 계산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대신 계산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20년 전 미국 유학시절 수학 프로그램이 각급 학교의 교육현장에서 활발하게 이용되는 모습을 봐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 세웅의 수능 수학점수 향상은 미국 수학프로그램과 일본 참고서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차교수는 이런 방법이 우리 수학교육 현실에 대한 궁극적인 개선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의 입시문제가 해결돼 한숨 돌린 상태에서 그는 중·고교 수학 내지 중등교육 전반에 걸쳐 좀더 깊이있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동양의 전통수학인 산학에 대한 관심도 이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산학문제풀이 직접 고안해 논문제출

1997년 초겨울 차교수가 우연히 명동에 있는 한 중국서점에 들렸다가 발견한 첫번째 산학서가 정대위(程大位, 1533-1606)의 ‘산법통종’이었다. 산법통종의 초판은 명말, 즉 우리 역사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에 나왔는데, 그때 입수한 책은 19세기 후반 청말에 만들어진 엉성한 목판본의 복사판이었다. 물론 그 길로 한문투성이책이 모두 다 해독되지는 않았으나, 어렴풋이 나마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문제들이 꽤 있었다. 거의 반년 가량 그는 산법통종에 매달렸다. 주옥같은 노래들로 이뤄진 이 책의 문제들은 신비감이 감도는 정대위의 초상화와 더불어 아직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차교수가 산법통종을 벗어나 더 넓은 산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때마침 안식년을 맞아 서너 달 동안 그는 모교인 미국 위스콘신대학을 방문했다. 그곳 중앙도서관인 메모리얼 라이브러리 3층에는 동아시아 관련 독서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거기서 ‘수학과 하늘과 땅에 관한 학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발견했다. 그 책의 셋째 권, 그 중에서도 특히 수학에 관한 부분을 정독하려고 애쓰다가 그는 책 속에서 논의되는 문헌들인, ‘사고전서’를 비롯한 중국학 관련 책들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인용된 문헌만 하더라도 수만 항목에 달하는 니덤의 대작을 그때 단순히 산학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모태인 동양문화권 전반으로 귀환하기 위한 나침반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소속된 문명을 이해하는데 어쩌다 서양인의 안내를 받게 됐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젖기도 했다.

차교수는 니덤의 안내를 받아가며 산학을 조감하는 과정에서 산법통종보다는 일단 ‘산학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장산술부터 체계적으로 정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점차 깨닫게 됐다. 이렇게 만난 구장산술과 주비산경을 여러날 고생한 끝에 1999년 말 번역하고 풀이하는 초고를 완성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사실은 이 책이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체계적인 문제풀이를 담은 책이며 이 중에서 어떤 풀이는 차교수가 직접 고안해서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산법통종의 저자 정대위(1533-1606)^중국 명나라 말인 1592년‘산법통종’이라는 산학서를 저술한 정대위의 초상화. 학자다운 꼿꼿함과 함께 감도는 신비감이 인상적으로 느 껴진다. 산법통종에는 매행이 일곱개의 한자로 이뤄지고 운율이 맞는 칠언율시라는 형식으 로, 실생활과 밀접한 상황 속에서 산학문제를 제시했다.


기존 수학참고서 뛰어넘는 기법

우리나라 수학교육에 대해 차종천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과목 중에서 수학이 서양식 사고방식을 가장 삭막한 형태로 주입시키려 드는 것 같다. 수학의 극단적인 추상적·논리적 성격이야말로 이 땅의 문화적 토양과 가장 어우러지기 힘든게 아닌가. 지금껏 입시나 국가고시가 여전히 조선시대의 인문교양 위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차교수는 우리가 과학이나 수학에서 동양의 것이 서양지식에 비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선입견 때문에 전통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위해 개화기 이후 근대화·서구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홀대당하고 무시돼 온 전통문화유산 중 하나인 산학에 대한 재조명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구장산술이나 주비산경과 같은 산학서를 직접 보고 연구하며 느낀 점이기도 하다. “고대 동양산학서에도 서양에 못지 않은 수리적 합리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놀라워했다.

앞으로 산학고전인 구장산술에 대한 연재를 통해 학생들에게는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차교수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나아가 구장산술을 자세히 살피다보면 국내 수학참고서뿐만 아니라 일본 참고서나 미국 수학프로그램에서 발견할 수 없는 또다른 수학원리와 기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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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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