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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만들어 진 비차를 건국대 연구팀이 복 원했다. 복원한 비차가 실제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


2000년 12월 초 일제히 일간신문들은 ‘세계 최초의 비행체 비차 일반에 공개’라는 제목으로 임진왜란 시절 만들어졌다고 생각돼 온 ‘하늘을 나는 차’(비차 혹은 비거)의 복원 소식을 알렸다.

공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이 비차는 건국대학교 복원팀의 노력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19세기 후반 실학자 이규경의 ‘비차변증설’이란 논리에 근거해 제작했다. ‘비차는 따오기 같은 모양으로 4명을 족히 태울 수 있고 30리를 날 수 있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대표적 과학기술사서적 가운데 하나인 ‘조선기술발전사’에도 문제의 비차에 대한 설명과 복원 상상도가 그려져 있고 은연중에 세계 최초의 비행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한 모두 과학기술 유산에 대한 공통된 점은 ‘세계최초’ 또는 ‘동양최고’ 등의 수식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 과학문화유산을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문화유산’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대략 1960년대 중반부터 현대까지 민족문화 유산에 대한 주체적 관점, 즉 ‘주체사상’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부터 1962년까지 북한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 출간된 과학기술문화 연구서로 ‘조선통사’(1956, 1958년)와 ‘우리 선조의 자랑·과학과 기술의 이야기’(1956, 1957년)가 있다.

조선통사는 북한의 공식적인 최초의 전체 역사서이지만, 전통 과학기술문화의 항목조차 마련돼 있지 않고, 이에 대한 내용 역시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와 달리 우리 선조의 자랑·과학과 기술의 이야기는 금속활자나 측우기, 거북선처럼 한국인이 처음 만든 과학기술유산을 비중 있게 다뤘다. 여기에서 나타난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1960년대 이후 더욱 강화됐다.

1970년대 들어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과거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폐단을 낳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런 논란은 1972년에 김일성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민족문화유산연구’로 일단락됐다. 이 책은 북한의 전통과학기술유산에 대한 평가기준을 제공하는데, 민족문화유산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업신여기는 경향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 허준의 ‘동의보감’은 ‘많은 것이 실지 경험에 입학한 치료법으로 실용성이 높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과학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전통의 과학기술유산 가운데 음양오행설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판받았다.

한편 1980년대는 ‘조선전사’나 ‘이조실록’의 완역이라는 역사학계의 성취와 함께 북한의 과학문화유산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조선 연구가 강조돼 학술지의 많은 지면이 고조선 연구로 채워졌을 뿐 과학문화유산 연구라 할만한 성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세과학기술사’(1990년)의 간행과 ‘조선전사’(1991년)의 개정작업이 진행되면서 그동안의 연구성과들이 많이 수록됐다. 특히 조선기술발전사편집위원회의 ‘조선기술발전사’는 1990년대 북한 과학기술사학계의 최대 업적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남한에서 간행된 과학문화유산 연구성과들도 참고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통틀어 전통과학기술문화에 대한 이만한 총서가 나온 일은 흔치 않다.

또 하나 1990년대 북한의 과학기술문화 연구의 특징은 주로 근·현대 특히 북한의 현대 기술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80년대까지 전근대 과학문화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축적했다고 판단한 결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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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호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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