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네이처 5월호에 영국의 남극조사팀을 이끈 파먼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 작성한 보고문이 실렸다. 이 글에는 남극지방 상공 성층권의 오존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관측결과가 담겨 있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오존 구멍’이라는 용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오존층 파괴의 원인과 영향, 방지 대책 등에 대해 전세계적인 관심과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987년, 오존층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프레온 등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말자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됐다.사진은 파먼이 오존구멍을 관측한 곳 중 하나인 할리 관측소다.
파먼의 발견이 가져온 충격과 파급 효과는 상당했지만 사실 오존층 문제는 그 전부터 줄곧 논란거리였다. 실은 파먼의 발견도 1957년부터 계속 오존층을 관측해온 영국 남극조사단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영국 남극조사단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성층권의 온도와 공기순환에 작용하는 오존의 역할에 주목하고 줄곧 관측데이터를 모아오고 있었다. 그 결과 오존의 양은 해마다 봄에 줄어들며, 양도 해가 갈수록 조금씩 감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1985년에 파먼은 자신의 관측값이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급감함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관측기기가 고장난 것으로 생각해 기기를 교체하고 재관측을 실시했지만 역시 이전의 관측이 옳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미항공우주국(NASA)은 위성을 통해 오존층을 관측하고 있었으나 1985년도 당시의 관측 데이터에는 오존량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파먼의 발견은 한때 의심받기도 했지만 곧 위성의 데이터 처리 소트프웨어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즉 관측값이 지나치게 낮으면 잘못 탐지된 것으로 처리되도록 프로그램돼 있었던 것이다. 관측값을 다시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파먼의 발견에서와 같은 오존양의 급감이 실제로 일어났음이 입증됐다.
1985년 비엔나에서는 세계 각국이 모여 오존층 보호협약을 채택하기도 했는데, 1987년의 몬트리올 의정서와는 달리 비엔나 협약에서는 오존층 파괴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는 오존층 파괴에 대한 ‘완벽한 과학적 증거’가 그때까지 제시되지 않았고, 오존층의 파괴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5년 파먼의 발견은 전세계 인류에게 오존층 파괴의 완벽한 증거를 '오존구멍'이라는 형태로 처음 제시한 것이다.이산화탄소의 과잉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과 함께 오존층 파괴는 인류의 활동이 자연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이제 인류는 오존층 파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1985년 네이처 5월호에 영국의 남극조사팀을 이끈 파먼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 작성한 보고문이 실렸다. 이 글에는 남극지방 상공 성층권의 오존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관측결과가 담겨 있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오존 구멍’이라는 용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오존층 파괴의 원인과 영향, 방지 대책 등에 대해 전세계적인 관심과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987년, 오존층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프레온 등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말자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됐다.사진은 파먼이 오존구멍을 관측한 곳 중 하나인 할리 관측소다.
파먼의 발견이 가져온 충격과 파급 효과는 상당했지만 사실 오존층 문제는 그 전부터 줄곧 논란거리였다. 실은 파먼의 발견도 1957년부터 계속 오존층을 관측해온 영국 남극조사단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영국 남극조사단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성층권의 온도와 공기순환에 작용하는 오존의 역할에 주목하고 줄곧 관측데이터를 모아오고 있었다. 그 결과 오존의 양은 해마다 봄에 줄어들며, 양도 해가 갈수록 조금씩 감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1985년에 파먼은 자신의 관측값이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급감함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관측기기가 고장난 것으로 생각해 기기를 교체하고 재관측을 실시했지만 역시 이전의 관측이 옳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미항공우주국(NASA)은 위성을 통해 오존층을 관측하고 있었으나 1985년도 당시의 관측 데이터에는 오존량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파먼의 발견은 한때 의심받기도 했지만 곧 위성의 데이터 처리 소트프웨어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즉 관측값이 지나치게 낮으면 잘못 탐지된 것으로 처리되도록 프로그램돼 있었던 것이다. 관측값을 다시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파먼의 발견에서와 같은 오존양의 급감이 실제로 일어났음이 입증됐다.
1985년 비엔나에서는 세계 각국이 모여 오존층 보호협약을 채택하기도 했는데, 1987년의 몬트리올 의정서와는 달리 비엔나 협약에서는 오존층 파괴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는 오존층 파괴에 대한 ‘완벽한 과학적 증거’가 그때까지 제시되지 않았고, 오존층의 파괴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5년 파먼의 발견은 전세계 인류에게 오존층 파괴의 완벽한 증거를 '오존구멍'이라는 형태로 처음 제시한 것이다.이산화탄소의 과잉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과 함께 오존층 파괴는 인류의 활동이 자연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이제 인류는 오존층 파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