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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 분리수술 생명윤리의 딜레마

생명포기 결정권 누구에게 있는가

영국에서 태어난 샴쌍둥이 메리와 조디.심장이 없는 메리는 조디에게 생명을 완전히 의지하고 있다.의료진들은 조디를 살리기 위해서 메리를 분리할 것을 권유하고 부모는 메리를 죽이는 수술을 거부한다.과연 누가 생명을 끊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8월 4일 영국 맨체스터의 성 메리 병원에서는 아랫배가 서로 맞붙은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른바 ‘샴쌍둥이’다. 이러한 쌍둥이는 탄생 자체가 매우 희귀하며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곧바로 죽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번에 태어난 샴쌍둥이는 생명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부모와 의료진의 입장차이

화제가 되고 있는 샴쌍둥이의 부모는 영국인이 아니라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 출신이라고 한다. 그들은 태어날 아기가 샴쌍둥이라는 사실을 출산하기 전에 검사를 통해 알게 됐고, 아기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의료 선진국인 영국으로 갔다.

영국의 샴쌍둥이가 매우 드문 형태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각 조디와 메리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이 여자 쌍둥이는 아랫배가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조디의 몸통에만 있는 하나의 심장과 한쌍의 폐로 둘이 살아가고 있다. 메리로서는 조디에게 완전히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가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못해 메리를 조디에게서 분리해내지 않으면 몇달 안에 메리뿐만 아니라 조디의 목숨마저도 잃게 된다는 것이 담당의사들의 의학적 판단이었다. 의사들은 쌍둥이의 부모에게 분리수술을 권유했다.

만약 부모가 의사들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논란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이 세계적인 화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는 자신의 아기들을 분리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며, 설사 둘 다 죽는다 하더라도 태어난 그대로 두어야 한다며 의사들의 권고를 거부했다. 둘 가운데 하나(조디)라도 살리는 것이 의학적으로 합당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의사들의 뜻과 함께 “모든 사람은 살 권리가 있는데 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기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부모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사건은 법정으로 번지게 됐다.

누가 결정하는가

소송을 맡은 영국의 1심법원은 8월 25일 의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샴쌍둥이에 대해 분리수술을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메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피와 산소는 조디로부터 오는데 조디의 심장과 폐로는 두 몸을 지탱할 수 없으며 수술하지 않을 경우 둘 다 사망할 수밖에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받아들여 조디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분리수술에 동의한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1심 판결에 불복한 부모가 항소했지만 항소법원 역시 9월 22일자로 “생존의 가능성이 있는 한쪽 아기를 구하기 위한 고심의 판단”이고 “살릴 수 있는 생명마저 살리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며 마찬가지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1·2심 판결에 대해 대부분의 의료전문가들은 그대로 둘 경우 모두 죽게 되므로 하나라도 살리는 편이 낫다는 법원의 판결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의료인과 의료윤리학자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예컨대 의료윤리학회지 편집인인 길론 교수는 “물론 한 아기라도 구하는 것이 나을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결정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반대하는 부모의 의견보다 다른 견해가 우선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와 생명단체 등은 부모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순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법부나 의료기관 등의 제도가 두 아기 중 하나의 생명을 죽게 하는 결정을 할 수는 없다며 법원의 판결을 비난했다.

쌍둥이의 부모가 항소법원의 판결 직후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며칠 뒤 부모가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이 사건 자체는 일단 종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즉 한쪽의 죽음이 분명히 예견되는 샴쌍둥이의 분리수술,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생명을 끊는 것에 대해 누가 결정권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샴쌍둥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샴쌍둥이 분리 판결을 한 영국 항소법원 앞에서 샴쌍둥이 부모측의 변호사가 상고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출산시 생존률은 10%


조디는 메리에게 산소와 피를 공급해야 하는데(1),메리가 되돌려주는 양이 적어 (2)조디도 생명이 위태롭다.


샴쌍둥이(Siamese twins)라는 말은 19세기 ‘샴’(태국)에서 태어난 유명한 쌍둥이에서 유래됐는데, 의학용어로는 접착쌍둥이 또는 결합쌍둥이라고 한다. 신체의 앞뒤면 또는 옆면이 붙어 있는 경우부터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 쌍둥이가 공유하는 형태까지 다양한 경우가 존재한다. 또 이번 영국의 샴쌍둥이처럼 작고 불완전하게 자란 아이(기생체)가 보다 크거나 충실하게 자란 아이(자생체)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샴쌍둥이는 일란성쌍둥이로 자랄 배아가 발생의 초기단계에서 불완전하게 분리되기 때문에 생긴다. 즉 보통 일란성쌍둥이의 배아는 세포의 분화가 일어나기 전에 분리돼서 각각의 ‘정상적인’ 아이로 자란다. 그러나 샴쌍둥이는 분리돼야 하는 시기를 놓치고 불완전하게 자라 몸의 일부가 붙어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샴쌍둥이는 일란성쌍둥이에서만 볼 수 있고 이란성쌍둥이는 있을 수 없다. 샴쌍둥이는 출생 5만-10만번에 하나꼴로 태어난다고 하며,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여자아기의 경우가 남자아기보다 3배 많다고 알려졌다.

붙은 부위가 매우 다양하지만 가슴이 붙은 경우가 70%로 가장 많으며 머리가 붙은 경우는 가장 적어 출생 2백50만회 당 1회꼴(샴쌍둥이 중 3% 정도)이라고 한다. 태어났을 때의 생존률은 의학의 발달로 차츰 올라가고 있으며 결합 부위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10% 내외다. 우리나라에서도 샴쌍둥이가 가끔 출산되는데, 1996년 9월 흉골 아래 부분부터 탯줄까지 붙은 샴쌍둥이의 분리에 성공하는 등 지금까지 몇차례 분리수술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팽생을 함께 지낸 태국의 가족들.만약 그들이 현재 태어난다면,각자의 인생이 가능하다.


행복한 삶을 보내기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샴쌍둥이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어원이 되기도 한 태국의 쌍둥이다. 1811년 태국(샴)에서 가슴과 허리 부위가 붙은 채로 창과 앵 형제가 세상에 태어났다. 물론 머리는 둘이고 팔다리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각 두 개씩 가지고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특이한 모습 때문에 널리 소문이 났고, 이 쌍둥이를 보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18살이 된 어느날 한 미국인이 찾아왔다. 이때 창의 키는 1백57cm이고 앵은 1백55cm이었다고 하는데, 1백70년 전 태국 사람치고는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다. 미국인은 이 보기드문 쌍둥이로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그들에게 미국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창과 앵은 권유를 받아들여 그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창과 앵은 처음 10년은 그 미국인과 함께, 그리고 그 후에는 둘만이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을 구경시켜서 돈벌이를 했다.

그러던 중 형제는 노스 캐롤라이나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창과 앵은 각각 사랑하는 여성 아델레이드와 사라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여느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즉 아델레이드와 사라는 서로 독립된 집에서 살았는데 쌍둥이는 4일 동안은 아델레이드의 집에서, 그리고 다음 4일은 사라의 집에서 지냈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했으며 행복했다고 한다. 창은 무려 10명의 자녀를, 앵은 그보다도 하나 더 많은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음에도 불편했던지 그들은 의사들에게 자신들을 분리시켜 달라고 거듭 부탁했지만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63세가 된 어느날 밤, 앵은 옆에 누워 있는 창의 맥박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두 시간 뒤에는 앵도 숨을 거뒀다.

기구하지만 의미가 있으며 그리 짧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샴쌍둥이들은 그밖에도 여럿 있다. 생존하고 있는 경우로는 올해 50살이 된 러시아의 마샤와 다샤 자매, 40년을 함께 살아온 미국의 모리와 도리 자매가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의학의 발달 덕분에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의 성공률이 더 높아질 것이며 분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의학의 도움으로 정상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이야기는 샴쌍둥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행복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을 끊는 것과 끊기는 것

영국의 샴쌍둥이의 경우, 두 아기를 모두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는 그 가능성이 전무하다(이것은 담당 의사들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만약 그 의사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면 머지않아 두 생명 모두 희생되는 것과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 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두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만이 남는다.

두 생명의 상황이나 조건과 자격은 똑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조디는 생물학적으로 스스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메리는 그렇지 못하다. 메리는 조디의 도움이 있더라도 몇달밖에 살 수 없는 반면, 조디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몇십년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단, 메리가 없어져야 하지만.

또 생명에 대한 권리에 차이가 있는가. 일부의 반대가 있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때 임신중절은 허용된다. 그것은 태아의 생명을 소홀히 한다기보다는 산모의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도 인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산모와 태아의 생명과 생명에 대한 권리에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조디와 메리의 관계가 산모와 태아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러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 따라서 조디의 생존을 위해 메리의 희생을 결정할 권리는 메리 자신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법원도, 부모도, 교회도, 의사도 아니다.

메리가 판단과 결정능력이 있는 어른이라면 문제해결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른다. 이를테면, 성장한 샴쌍둥이 한쪽이 치명적이며 곧 다른쪽에 전이가 일어날 암을 가졌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다른쪽을 위해 암환자인 쪽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결정을 자기 책임 하에 자발적으로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도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달을 갓 지난 메리는 그러한 결정을 할 능력이 전혀 없다. 이때 누가 메리를 대신해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그 결정의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자는 메리를 대신해 메리의 ‘생명을 끊는’ 결정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조디의 ‘생명이 끊기는’ 결정을 할 권리는 있는 것일까. 죽는다는 결과는 동일하지만 생명을 끊는 것과 생명이 끊기는 것은 똑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적으로 결과를 중시한다면 한 생명이라도 구하는 결정을 하게 되겠지만, 행위의 과정과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반대의 결정도 가능할 것이다.

​조디와 메리의 문제는 부모의 상고 포기로 일단 매듭지어질 수도 있지만,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그리고 조디와 매리의 문제는 의학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과거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이것은 앞으로 의학의 발전에 따라 이것보다 더욱 까다로운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지금의 문제에 대한 더 많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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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황상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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