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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단풍이 더 아름다운 이유

천혜의 지형에서 붉게 물드는 가을빛깔

해마다 가을이면 산은 울긋불긋하게 옷을 갈아입는다.가을날의 운치가 더욱 깊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단풍이 있기 때문이다.단풍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내장산의 단풍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리나라처럼 온대지방에 살고 있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두가지의 큰 숙제가 주어진다. 그 첫째는 튼실한 열매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멀리 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나무는 열매를 눈에 잘 띄고 맛있게 만들어서 동물을 유혹하거나, 깃털처럼 가볍게 해 바람에 날리고 동물의 몸에 직접 붙는 등 다양한 지혜를 동원한다.

이 일이 끝난 다음 두번째로 하는 일이 겨울준비다. 곧 닥쳐올 매서운 추위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나무는 마지막 준비를 서두른다.

엽록소가 파괴되는 과정

나무에 붉게 또는 노랗게 아름다운 단풍이 드는 것은 바로 나무의 겨울준비에서 시작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더이상의 생장을 포기한다. 한겨울 동안 꽃이나 잎은 우리가 마치 겨울외투를 입듯이 겨울눈 속에 숨어서 지낸다.

나무는 잎을 채우고 있는 엽록소의 광합성 작용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그동안 나뭇잎이 파랗게 보인 것은 엽록소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준비에 들어간 나무의 잎에서는 엽록소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가지고 있던 엽록소도 파괴된다.

엽록소가 파괴되면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양한 색깔들이 보인다. 보통 나뭇잎에는 70가지가 넘는 색소가 있다. 노란빛을 띠는 색소는 크산토필로 은행나무와 같이 잎을 노랗게 물들게 한다. 붉은빛을 띠는 색소는 카로틴이다. 느티나무처럼 갈색 또는 조금 붉게 단풍이 드는 것은 색소가 다양하게 혼합돼 있기 때문이다. 단풍의 ‘단’(丹)이 붉다는 뜻이지만 흔히 말하는 단풍은 이처럼 가을에 다양한 빛을 띠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단풍나무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붉은빛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다. 단풍나무는 가을이 되면 줄기에서 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떨켜를 만든다. 코르크층처럼 생긴 떨켜가 줄기에 생기면 그동안 잎의 엽록소가 만들었던 양분이 아래로 이동하지 못하고 잎에 쌓이게 된다. 잎에 쌓인 양분이 분해되면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세포액에 남아 나뭇잎을 붉은색으로 보이게 한이다. 안토시아닌은 단풍 이외에 꽃잎의 색깔에도 관여한다.


내장산에 자라는 다양한 단풍나무^복자기나무는 가을단풍 중 그 빛이 가장 곱다고 알려졌다.


종류만 10여가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울긋불긋 여러 색깔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을에 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종류는 생강나무와 싸리의 잎새가 많다. 참나무나 느티나무는 깊이 있는 갈색으로 단풍의 운치를 더한다. 붉은색으로 물드는 종류는 이름부터 붉은 붉나무와 화살나무, 그리고 단풍나무가 있다.

흔히 손바닥처럼 갈라진 잎을 가진 종류만을 단풍나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대략 10여가지의 단풍나무가 있다. 진짜 단풍나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잎이 5-7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주로 한라산과 같은 남쪽 지역에서 나타난다. 설악산이나 북한산과 같은 중부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잎이 9-11갈래로 갈라진 것은 당단풍나무다. 잎이 노랗게 물들며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에 속한다. 또 잎이 세갈래인 신나무, 잎모양이 다섯갈래로 약간 덜 갈라져 있는 부게꽃나무, 아예 3장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져서 가장 붉은빛의 단풍을 자랑하는 복자기나무 역시 단풍나무의 형제들이다.

단풍나무의 종류는 잎의 모양과 열매에 달린 날개의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나무가 단풍나무 종류인지를 알려면 잠자리 날개나 프로펠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열매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하는 편이 훨씬 쉽고 정확하다.

모든 단풍나무의 집합소

곱지 않은 단풍이 없고, 단풍으로 유명한 산도 많지만 내장산 단풍은 그 중 빼어나기로 소문나 있다. 내장산 단풍이 특히 아름다운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단풍나무의 종류가 많다. 남쪽에 주로 사는 단풍나무와 북쪽에 사는 당단풍나무가 내장산에서는 모두 한 산자락에서 자란다. 또 단풍나무의 변종인 아기단풍, 당단풍의 변종인 좁은단풍과 털참단풍, 그리고 고로쇠나무와 그 변종인 산고로쇠와 왕고로쇠, 신나무와 복자기 등이 있다.

또 내장산에서 처음 발견됐고 내장산에서만 자라서 ‘내장단풍’이라 이름이 붙여진 종류도 있다. 내장산 길가장자리에는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심어 놓은 중국단풍과 네군도단풍 등 다른 나라의 단풍나무도 있다. 이 모두를 더하면 열가지가 넘으니 내장산은 가히 모든 단풍나무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 종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내장산 단풍이 고운 것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울긋불긋 다양한 단풍빛을 만들어내는 다른 나무들이 그 색을 보태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는 것이다. 내장산은 온대 중부기후대와 남부기후대가 만나는 장소이다. 내장산의 식생을 살펴보면 양쪽의 식물들이 함께 출현한다. 예를 들어 온대 중부기후대의 서어나무와 남부기후대의 개서어나무가 함께 있다. 또 내장산은 비자나무나 굴거리나무와 같이 남쪽에 자라는 수종이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기도 하다.

물론 내장산의 지형적인 요건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증가시킨다. 가을이 되면 천혜의 지형을 가진 내장산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온갖 가을빛깔을 만들어 내니, 어찌 그 빛이 곱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장산에 자라는 다양한 단풍나무^당단풍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붉게 물드는 대표적인 단풍이다.


해마다 다른 빛깔

지난해에 단풍구경 갔을 때는 단풍이 좋았는데 이번에는 별로라는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실제 불붙은 듯 아름다운 단풍빛도 해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단풍이 좀더 아름답게 잘 들기 위해서는 우선 가을철에 날씨가 맑고 건조하며, 영하로 내려가 얼어버리지 않는 범위에서 서늘한 날씨가 계속돼야 한다. 또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지 않고 점차적으로 내려가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교차, 즉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면 단풍나무의 붉은빛은 더욱 곱게 든다고 한다. 이것은 안토시아닌으로 변하는 당분과 관련된다. 낮에 햇볕이 들면서 온도가 높으면 잎은 광합성을 활발히 해 당분을 많이 생산한다. 서늘한 밤에는 활동이 적어 당분을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잎에 당분이 많이 쌓이고, 이것이 안토시아닌으로 변해 선명한 붉은빛을 띤다.

서리가 내리는 것도 중요한 계기다. 잎안의 색소가 충분히 만들어지거나 발현되기 전에 서리가 내려버리면 그 단풍빛은 예년만 못해진다.

유럽이나 대만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단풍을 보고 크게 감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처럼 따뜻한 곳은 사계절의 뚜렷한 기후 변화가 없어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단풍을 구경하기 힘들다. 유럽의 경우, 건조하면서 기복이 심한 기후 때문에 단풍이 아름답게 들지 않는다.

또 유럽의 지형은 우리나라에 비해 평이하고 무엇보다도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종류도 단순하다. 이것은 빙하기를 혹독하게 거치면서 식물의 종류가 줄어 몇가지 수종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산의 단풍을 보면 '나무들은 참 장하다'고 느껴진다.닥쳐올 모진 겨울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어낼까.붉게 물들어 가는 나무를 보면서 이젠 우리도 서서히 한해의 마감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내장산에 자라는 다양한 단풍나무^잎의 뒷면에 은색 털이 있는 은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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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유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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