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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탄 공격에도 끄떡없는 고성능 장갑차

SF영화 속 수중도시 현실화되지 못한 까닭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인류 역사를 구분할 때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소재를 사용했는가가 기준이 된다. 소재가 그 시대의 산업형태, 주거양식, 전쟁하는 법 등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1년이 걸려야 할 일을 몇시간 만에 끝내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날아가며, 생명체를 복제하는 등 지극히 다원화된 현대사회는 더이상 우리가 어떤 소재를 사용하느냐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극한 환경 이겨낼 소재
 

(그림1) 소재의 종류


하지만 우리가 과거 상상했던 상황보다 그 발전 속도가 더디다. 10-20년 전 SF영화는 우주선을 타고 다른 은하계를 마음껏 여행하며 외계인들과 만나고, 깊은 바다 속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해 수중생활을 하는 미래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 영화 속 시대 배경이 1999년-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2003년 현재 우리는 우주여행을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선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참상을 목격해야 하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나 바닷가의 다리가 바닷물에 부식돼 썩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바다 속 도시 건설은 여전히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상황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엄청나게 높거나 낮은 온도, 극한적인 외부 힘, 화학적 부식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소재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좀더 획기적인 특성의 소재, 바로 나노구조 소재 개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량 소비사회인 현대의 산업구조에서는 실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산업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은 기형아 출산, 인간의 수명단축 등 과학발전으로 누리고 있는 우리의 편리함에 대한 반대 급부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함으로써 산업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고, 제조과정에서도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억제하는 환경친화적 고강도 나노소재 개발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나노미터 단위일 때 강도 10배 증가

그렇다면 나노소재는 어떤 이유에서 획기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소재에 대한 기초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재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가 원자다. 그리고 소재는 원자의 배열상태에 따라 크게 단결정 재료와 다결정 재료로 나뉜다(그림 1). 단결정 재료는 원자들이 재료 전체에 걸쳐 동일한 방향으로 규칙적인 배열을 이룬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에 장착되는 반도체 소자용 실리콘 단결정으로, 지름 30-40cm의 덩어리 전체에서 원자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

이 외의 대부분 재료는 다결정 재료다. 다결정 재료는 원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수십-수천μm 범위 내로 한정되며, 이 범위를 벗어나면 원자의 배열 방향이 달라진다. 이때 원자의 배열 방향이 동일한 영역을 가리켜 ‘결정립’(grain)이라고 한다.

나노소재는 다결정 재료 중 결정립 크기가 수십nm 이하인 초미세 결정구조 소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나노소재는 결정립의 크기가 1백nm 이하인 소재로 정의되지만 구조용 소재의 경우 수백nm 크기의 나노화만 돼도 획기적 특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원자의 규칙적 배열(결정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재료도 있다. 이를 비정질 재료라고 한다. 그러나 나노소재기술의 발달로 결정립이 점점 작아지게 되면서 비정질 재료와 초미세 나노소재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다시 나노소재로 돌아오자. 나노소재는 강도가 높고, 부식이 잘 안되는 등 매우 우수한 특성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재를 굽히거나 당기거나 또는 큰 힘으로 눌렀을 때 소재가 변형되는 까닭은 내부의 원자가 이동하기 때문이다(그림 2).
 

(그림2) 소재의 변형


이때 소재 내부의 원자들은 대열을 지어 순서대로 이동한다. 이같은 원자들의 이동대열을 ‘전위’라고 한다.

만약 소재 속 결정립 크기가 작아지면 작은 범위에서 원자의 규칙적인 배열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전위의 형성과 이동이 방해를 받게 된다. 따라서 결정립의 크기가 미세해질수록 소재의 강도는 증가하게 된다. 결정립이 수십nm 이하인 나노소재는 강도가 기존 재료에 비해 2배-10배 정도 높아진다.

획기적인 나노소재를 만드는 기술로는 재료의 종류나 용도에 따라 몇가지 기술이 연구·개발되고 있다. 먼저 소재에 극한의 변형을 가하는 방법을 살펴보자(그림 3).
 

( 그림 3) 극한 변형에 의한 나노화 ​


일정한 각도로 꺾이는 통로 모양의 금형에 소재를 집어넣고 압력을 가하면 소재는 금형의 굴곡부를 통과하면서 겉모양은 변화가 없지만 내부는 엄청나게 변형된다. 여기서 소재가 변형되는 까닭은 내부의 원자들이 대열을 지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큰 압력을 받을 경우 이동하는 원자 대열이 그 과정에서 서로 엉켜 원자의 규칙적 배열 범위가 매우 작아진다. 즉 결정립이 수십nm 크기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재에 극한 변형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으로는 소재를 회전하는 롤에 통과시켜 두께를 감소시킨 다음(이를 압연이라 한다), 두께가 얇아진 소재를 포개 다시 롤을 통과시키는 방법(반복겹침압연기술), 소재를 요철이 있는 기어 사이로 통과시켜 반복적으로 변형을 주는 방법(반복주름압연기술) 등이 있다.

극한변형방법으로 제조된 나노소재는 강도가 높고, 복잡한 형상으로 부품을 제조할 수 있으며, 화학적으로 부식이 잘 안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금속과 같이 외부에서 힘이 주어질 때 휘거나 늘어나는 성질이 있는 소재에 적용이 가능하다. 외부 힘에 부러지는 세라믹, PVC나 섬유와 같은 고분자 소재에는 쓰일 수 없다.

세라믹의 경우에는 제품이나 큰 덩어리 형태로는 나노구조를 직접 만드는 방법이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초미세 나노구조를 갖는 세라믹 소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중간단계인 분말형태가 필요하다.

세라믹 나노분말을 만드는 첫번째 과정은 세라믹을 원자나 분자 상태로 증발시키는 것이다. 그런 후 순간적으로 냉각시키면 액체나 고체상태로 응축되면서 미세한 분말이 만들어진다. 이때 분말의 크기는 나노미터 수준으로 미세하다. 금속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노분말을 제조할 수 있다.

나노분말은 형틀에 넣고 눌러 정밀 부품을 제조하는데 쓰인다. 그러나 세라믹의 경우 형틀에 넣고 눌러도 분말이 쉽게 결합되지 않아 원하는 강도를 얻을 수 없다. 형틀에서 대충 부품의 모양을 갖도록 성형한 후 도자기를 굽듯이 고온에서 일정 시간 동안 방치해두면 매우 높은 강도의 초미세 정밀 부품을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 분말을 고온에서 성형하는 동안 수십nm 크기의 결정립들이 성장해 나노소재의 특성이 소멸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이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로 옷감 짜 고강도 획득

이제 신소재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고강도 나노복합소재 개발을 살펴보자. 탄소나노튜브는 1991년 일본 NEC사의 연구소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물질로, 강도가 고강도 철강소재의 20-50배, 전기전도도가 구리의 1.7-17배에 달하는 등 매우 특이한 소재다. 이 외에도 우수한 전자 차폐 기능과 반도체 특성을 갖고 있어 앞으로 활용 범위가 점차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고강도 나노복합재를 만드는 과정은 직조과정과 비슷하다. 길게 뽑아낸 탄소나노튜브를 실처럼 꼰 다음 옷감으로 짠다. 이를 프리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구리나 알루미늄 같은 금속 또는 합성수지 등을 녹여 빈 공간을 채운다. 그러면 강도가 기존소재에 비해 수-수십배에 이르는 고강도 나노복합재가 만들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을 꼬는 과정을 생략하고 금속에 수백μm 길이의 탄소나노튜브를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해 나노복합재를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 직조 공정을 거쳐서 만든 나노복합재료보다 강도, 열전도도, 전기전도도가 낮다.

탄소나노튜브 나노복합재는 가벼우면서 강도가 매우 우수하므로 무게를 줄이는 일이 지상과제인 우주선, 로켓, 항공기 등의 몸체를 제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소나노튜브 나노복합재로 만든 장갑차는 기동성이 우수하고 적의 포탄 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한편 나노소재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비정질 소재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1960년대 철-실리콘 합금에서 처음으로 원자의 규칙적 배열이 존재하지 않은 비정질 소재가 제조된 이래 지르코늄, 니켈, 구리, 마그네슘, 코발트, 알루미늄 등 합금계의 비정질 재료가 개발됐다. 특히 1993년에는 지르코늄-티타늄-니켈-구리-베릴륨 합금을 이용해 수cm 크기의 비정질 합금을 제조하는데 성공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미사일탄두에 사용되는 비정질 재료

비정질 재료는 액체상태로 만든 소재를 급속하게 냉각시켜 고체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녹은 금속에 고압가스나 물을 뿌려주면 갑자기 냉각되면서 내부 원자들이 규칙적인 배열을 갖지 않게 된다.

비정질 재료는 기존의 금속재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높은 강도, 내부식성, 그리고 특이한 전자기적 성질을 나타내 차세대 금속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리퀴드메탈사는 미사일탄두, 장갑차에 사용하기 위한 군수용 비정질 재료를 미 국방성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 공장을 설립해 각종 전자 제품의 케이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나노코팅으로 경제와 환경 살린다

비정질 소재는 그 자체로 극단적인 나노소재의 한 형태다. 그래서 제조과정을 잘 선택해 원자들의 규칙적인 배열 범위를 수-수십nm에 이르게 하거나 비정질과 나노구조가 섞여 있는 신소재를 제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소재 자체를 나노구조화하는 것과는 달리 기존의 부품이나 소재의 표면에 나노구조의 보호막을 코팅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나노소재와 동등한 획기적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코팅이란 부품이나 소재 표면에 얇은 막을 입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막의 두께가 마이크로미터 이하일 경우에는 박막(얇은 막), 그 이상일 경우에는 후막(두꺼운 막)이라 칭한다.

박막코팅에서는 원하는 소재를 원자 또는 분자 단위로 부품이나 소재 표면에 부착시키므로 그 자체가 나노구조 코팅이 된다. 박막코팅의 연구에는 특히 수-수십nm 단위로 서로 다른 소재를 코팅하는 다층 박막코팅 기술 개발을 통해 고기능 나노구조 코팅을 형성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박막코팅 기술에는 화학증착법, 전기도금 등의 화학적인 코팅법, 그리고 아크나 플라스마를 이용해 원자 또는 분자를 원소재로부터 분리한 후 원하는 부품 또는 소재의 표면에 부착시키는 물리증착법 등 물리적인 코팅법이 있다.

후막코팅 기술의 응용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프라이팬에 음식물이 눌러 붙지 않도록 테프론 코팅을 하는 것이나, 건물 또는 철골 구조물에 녹이 슬지 않도록 페인트를 칠하거나 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후막코팅 기술에 포함된다.

고강도 코팅을 위해 나노기술을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후막코팅 기술로는 용사코팅이 있다. 용사코팅은 금속, 세라믹, 서메트(금속과 세라믹의 혼합재)를 미세한 분말이나 가는 선으로 제조한 후 고온의 열에 의해 가열하거나 녹인 다음 고압가스로 불어 급속 냉각시켜 재료의 표면에 코팅하는 기술이다. 쉽게 설명하면 코팅하고자 하는 재료를 마치 진흙이나 시멘트와 같이 어느 정도 끈적끈적한 상태로 만든 다음 벽에 붙이는 기술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때 비정질 또는 결정립이 1백nm보다 작은 나노구조의 코팅층이 얻어진다.

용사코팅기술은 공정이 쉽고, 코팅 소재의 제한이 적으며, 넓은 면적에 빠른 속도로 코팅할 수 있어 항공, 우주, 자동차, 석유화학, 섬유, 제철, 발전, 제지 등의 방대한 산업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 소재의 내마모성, 내식성, 생체 친화성 등의 표면특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물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적 공정기술이다. 이에 반해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내마모 크롬 도금의 경우 국제적 규제 대상이 되고 있는 심각한 환경오염 물질인 6가 크롬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코팅기술은 소재의 표면에 나노구조 고강도 코팅이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분당 10만회 이상 회전하는 초고속 회전체, 수명이 2-10배 이상 향상된 절삭공구와 산업용 롤, 반영구 수명의 교량과 건축물 등에 적용할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중국이 자동차 생산량에서 한국을 앞질러 자동차 생산순위 세계 5위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뒤쫓는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바로 산업의 기술집적화와 고부가가치화다. 이를 위해서는 시급히 소재기술의 선진화가 이룩돼야 한다. 소재기술은 건축에서 건물을 받치는 기초와 같이 모든 산업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원종옥
  • 제갈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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