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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Rama)

외계문명과의 첫번째 만남

신비를 가득 담고 태양계를 향해 비행하는 라마.광속도의 약1%로 20만년 가까이 날아온 놀라운 비행물체다.지구의 우주탐사선 인데버호 대원들이 둘러본 라마의 정체를 느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호수와 섬을 간직한 '우주의 방주'


호수와 섬을 간직한 '우주의 방주' 우주선 관리하는 거미 모양의 생체로봇

22세기 어느날, 아득한 우주 바깥쪽에서 태양계로 접근해오는 작은 천체 하나가 포착된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놀랍게도 그것은 길이 50km, 지름 20km의 원통 모양 인공물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지구는 순식간에 떠들썩한 흥분에 휩싸이고, 무의미한 번호만 붙은 채 관리되던 그 천체는 ‘라마’라는 이름을 얻는다. 궤도 계산 결과 라마는 광속도의 약 1%로 우주 공간을 무려 20만년 가까이 날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라마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를 지나 계속 태양에 가깝게 다가오자, 지구에서는 근처를 지나던 우주탐사선 인데버호에게 긴급 명령을 내려 그 정체 불명의 물체를 탐사하도록 조치한다. 노턴 선장이 이끄는 인데버호는 세심한 조종 끝에 라마의 표면에 착륙하고, 탐사대원들은 원통형의 한쪽에 붙어있는 복잡한 구조물의 관문을 지나 라마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라마는 안쪽 공간이 텅 비어있는 거대한 우주선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체는 전혀 찾을 수 없는, 마치 주인을 잃은 ‘우주의 방주’ 같은 것이었다. 라마의 안쪽 표면엔 길이 방향으로 도랑 같은 것이 세줄씩 있었으며, 중간 쯤에는 마치 원통의 안쪽을 빙 둘러 띠를 두른 것 같은 모양으로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호수 가운데엔 섬이 하나 있고, 그 섬에는 도시가 있었다.

한편 라마는 태양에 가까이 접근하자 마치 꺼져 있던 스위치가 작동한 것처럼 살아나기 시작한다. 긴 도랑처럼 보였던 것은 밝은 빛을 내면서 일종의 인공 태양이 됐고, 태양열을 받아 라마 내부의 공기가 데워지면서 바람과 같은 활발한 대기 운동도 일어난다. 게다가 라마 내부의 공기는 인간이 호흡할 수 있는 성분이었다.

탐사대는 라마의 바다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면서도 마땅히 건너갈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데, 젊은 사관인 팩 소위가 자원해 나선다. 그는 달이나 화성에서 스포츠용으로 탔던 자전거비행기를 갖고 있었다. 라마 내부 공간의 중심부는 인공중력이 약하므로 팩 소위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페달을 밟아 프로펠러를 돌리면서 라마의 바다를 건너간다. 그러나 건너편 해안에 도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대기 중의 정전기가 높아지면서 고도를 잃고 추락하고 만다. 그는 거의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비행기는 완전히 부서져버린다. 난감해진 팩 소위 앞에 갑자기 거대한 거미 모양의 생물체가 나타난다. 팩 소위는 외계인과의 최초 접촉이라 생각하고 잔뜩 긴장하지만, 그 거미는 비행기의 부서진 잔해만을 챙겨서 들고 사라져 버린다.

그 즈음 탐사대 캠프에도 팩 소위가 본 것과 비슷한 정체 불명의 생물체들이 나타나는데, 관찰 결과 그들은 일종의 생체로봇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탐사대는 그들을 ‘바이옷’(biot : 바이올로지컬 로봇)이라고 불렀는데, 바이옷의 종류는 무척 많았지만 그들은 지구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청소 등의 작업에만 열중한다. 사실 바이옷은 라마를 유지, 보수하는 로봇 관리인이었던 것이다.

탐사대는 작은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 가운데의 섬으로 가서, 그곳의 도시를 주의깊게 탐사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일종의 박물관 같은 장소를 발견하고, 보관된 물건과 라마 자체의 내부 구조 등 모든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 라마인들의 세계는 ‘3’의 철학이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계단이나 도랑 등이 세개로 구성된 것처럼 모든 것이 3으로, 또는 세개로 이뤄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팩 소위가 다시 귀환하기 위해 탐사대원들은 물론이고 지구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지혜를 짜내는데, 결국 라마의 중력가속도가 적기 때문에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배를 타고 온 탐사대원들과 무사히 합류한 뒤 다시 탐사캠프로 돌아간다.

라마가 태양에 점점 다가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성인(수성에 사는 지구이주민과 후예)들이 라마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간주하고 우주 미사일을 발사해 폭파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노턴선장 일행의 슬기로운 대처로 이 위기가 극복되고, 마침내 라마는 태양을 향해 똑바로 전진한다.

인데버호의 관측에 따르면, 라마는 태양으로부터 일종의 에너지 충전을 받는 것 같았다. 그 뒤 항로를 바꾼 라마는 다시 태양계를 뒤로 하고 우주 공간으로 사라진다. 언제, 어디서, 누가 보냈는지, 그리고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얼마나 더 날아갈 것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아서C.클라크 1917- SF적 감성의 본령에 오른 정통파


아서C.클라크


SF작가와 미래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은 아서 클라크는 고국인 영국이 아니라 인도양의 섬나라인 스리랑카에서 4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 아마 그곳의 이국적인 환경이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문학계의 ‘빅쓰리’(The Big Three) 중 한명으로 불리는 클라크는 1917년 영국 서머셋 지방의 마인헤드에서 출생해 1936년에 런던으로 상경했다. SF 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에 입대해 레이더 장교로 복무했는데, 그 당시 인공위성을 통신 중계용으로 활용하는 통신위성 아이디어를 처음 내놨고 관련 소설도 발표했다. 이런 선구적인 아이디어는 나중에 높이 평가돼 전자통신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마르코니상을 수상했고, 오늘날엔 ‘클라크상’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클라크가 “나의 통신위성 아이디어에 특허권이 있었다면 지금쯤 갑부가 됐을텐데”하며 껄껄 웃어넘긴 일화는 유명하다.

SF 작가로서의 아서 클라크는 ‘정통파’로 분류할 수 있다. 수많은 SF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스릴, 드라마, 사회적 풍자나 은유 등 SF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정서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늘 ‘경이감’이라고 하는 SF만의 독특한 감흥에 충실하다. 미지의 우주가 펼쳐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정서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나 할까. 그의 작품은 과학적 설득력뿐만 아니라 스토리 구성, 유머나 진지함, 미래에 대한 전망, 사회에 대한 안목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적절히 버무려내, 전체적으로는 우주를 향한 원대한 동경으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클라크는 SF적 감성의 본령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작가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공군을 제대한 클라크는 킹스 칼리지에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뒤 우등으로 졸업했다. 1946년 SF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SF 작가로 등단했고, ‘영국행성협회’의 의장도 두차례나 역임하는 등 미래학자로서의 길도 걸었다. 특히 클라크는 SF 작가로서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바탕으로 보수적이고 완고한 과학자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클라크의 작품들로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01’ ‘2010’ ‘2061’ 등 ‘우주의 오디세이’ 시리즈(‘3001’은 제외)와 ‘낙원의 샘’ ‘지구제국’ ‘도시와 별’ 등 다수의 장편 및 단편이 있고, 영화인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와 ‘2010년 오디세이 2’가 비디오로 출시돼 있다.

발표 당시 SF 문학상 모두 휩쓸어 인류와 외계 문명의 최초 접촉 장면을 묘사
 

발표 당시 SF문학상 모두 휩쓸어


라마와의 랑데부는 1973년 발표 당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비롯한 주요 SF 문학상 네가지를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는 곧 SF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 분야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최초의 접촉이란 글자 그대로 인류가 다른 외계 문명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이 반드시 살아있는 외계인이 아니라 그저 다른 외계 문명이나 외계 생물의 흔적만일지라도 최초의 접촉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 ‘콘택트’도 좋은 예다.

라마와의 랑데부는 ‘최초의 접촉’ 테마를 하드 SF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드(hard) SF란 과학기술적 묘사의 정밀함에 중점을 두는 SF를 말하는데, 대개의 경우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최첨단의 과학기술이나 이론을 동원해가며 생소한 감흥을 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이런 점 때문에 일반인들이 SF에 대해 지레 겁먹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들은 놀랍도록 현실감을 자아내면서도 그 배경이 되는 과학 지식은 결코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 중에서도 정점에 섰다고 할만한 작품이 바로 라마와의 랑데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 우주선은 기본적으로 인류가 우주 궤도에 건설하려는 우주 식민지 모델과 많이 닮아 있다. 수십 km 길이의 거대한 원통이 자전하면 안쪽 표면엔 원심력에 의한 인공중력이 생기므로, 작품에 묘사된 것처럼 호수나 도시 건설이 가능하다. 또 원통 안쪽 공간의 중심부로 갈수록 인공중력이 약해지므로 공기의 부양력을 이용한 비행체는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중력에 따른 아래위 개념의 혼란, 여러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간단한 과학적 이론을 응용해 재치있게 빠져나오는 장면 등은 감탄에 감탄을 머금게 한다. 이 모든 치밀한 묘사를 온전히 감상하는 데에도 그저 중학생 정도의 과학 지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아서 클라크는 이 작품을 쓴지 14년만인 1987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엔지니어 출신인 젠트리 리와 공저로 ‘라마 2’를 발표했고, 그 뒤 잇따라 라마의 후속편을 내놨다. 우리나라에도 이 작품들이 모두 번역, 소개돼 있다.

한편 라마와의 랑데부는 현재 미국에서 영화 제작을 추진중인데,감독은 '에일리언3'와 '세븐' '파이트클럽'등을 연출했던 데이빗 핀처가 맡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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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상준 SF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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