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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인삼과 가짜 구별하는 전자코

향기 추적해 품질 측정하는 첨단 센서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후각.마침내 과학자들은 '전자코'라는 기계를 발명해 냄새의 신비에 도전하고 있다.카메라와 오디오가 시각과 청각을 정복했듯이 전자코도 후각을 대신할 수 있을까?최신 센서 기술의 결정체,인공후각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사람의 코를 대신할 수 있는 '전자코'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최근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과의 닐 라코우와 케네스 서스릭은 냄새를 감지해 색깔로 바꾸어 표시해주는 차세대 전자코를 개발했다고 '네이처' 8월17일자에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냄새 분자가 결합하면 색이 변하는 색소인 금속포피린 화합물을 센서로 채택했다. 휘발분자가 여기에 달라붙으면 금속포피린 분자의 전자상태가 바뀌고, 그 결과 색이 변하는 것이다. 금속 이온의 종류를 바꾸면 금속포피린 분자의 색이 바뀌고 휘발성 분자에 대한 반응성도 달라진다.

전자코란 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1980년대 연구자들은 전류가 흐르는 센서에 어떤 기체분자가 닿을 경우 센서의 전기저항값이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 변화된 저항값을 적당한 신호로 변환하면 그 기체분자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 과정이 사람의 코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런 장치를 ‘전자코’라고 부르게 됐다(그림1).

이번에 개발된 전자코의 장점은 냄새에 대한 반응을 색의 변화로 나타내기 때문에 결과를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시각의 도움을 빌어서 냄새 정보를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얻어진 결과는 후각정보가 뇌속에서 패턴을 만드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다고 사람의 후각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후각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대략 다음과 같다.


토종 인삼과 가짜 구별하는 전자코


1만가지 냄새 구분

콧속 천장에 있는 후각상피라고 불리는 부분은 콧구멍을 통해 흘러 들어온 냄새분자와 결합한다. 전자코의 센서에 해당한다. 후각상피세포의 표면에는 냄새분자를 감지하는 냄새수용체 단백질이 있다. 1991년 연구자들은 사람의 경우 약 1천가지의 수용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에 발표된 전자코의 센서가 11종이라는 사실을 볼 때 사람의 후각이 얼마나 복잡한 기관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냄새정보가 후각신경을 타고 뇌로 전해지면 뇌는 그 정보를 해석해 ‘냄새’라고 느끼게 된다. 보통 사람이 구별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약 1만가지. 1천가지 수용체로 1만가지 냄새를 구별한다는 것은 각각의 수용체가 여러 가지의 냄새분자와 반응하고 각각의 냄새도 여러 가지의 수용체에 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계산기 액정화면의 단위가 점멸하면서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나타내듯이 1천개의 냄새수용체 단위가 모여 점멸하면서 만들어진 패턴이 수많은 냄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쉽게도 후각에 대한 연구는 여기서 더 진전되지 못한 상태이다. 어떤 냄새 분자가 어떤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지가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각각의 수용체 단백질의 구조조차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후각에 대한 기초연구가 이렇게 부진한 가운데도 전자코 개발 같은 응용연구는 해가 갈수록 활기를 더하고 있다. 센서 개발 기술과 데이터 처리 기법이 나날이 향상되는데다 사람의 후각을 대신할 수 있는 측정장치에 대한 수요 역시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 응용분야도 과거에는 식품이나 주류 등의 품질관리 등에 머물렀으나 점차 환경, 미생물, 의학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림1)인삼향기를 인식하는 과정


인삼연구원이 전자코를 구입한 이유

최초의 상업적인 전자코는 1993년에서야 선을 보였다. 여기에는 일련의 금속산화물이 냄새센서로 쓰였다. 6-12가지 센서에서 나오는 신호는 데이터처리과정을 거쳐 좌표상의 한 점으로 변환된다. 이미 우리나라의 몇몇 연구소에서도 전자코를 구입해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인삼연초연구원 제품개발부의 손현주 박사에게 이미 전자코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기가 됐다. 손박사가 전자코를 생각하게 된 것은 몇년 전부터 기승을 부리는 중국산 인삼때문.

주로 길림성과 요령성에서 재배되는 중국인삼은 값이 국산의 1/3-1/6에 불과한 반면 전체 생산량은 오히려 더 많다. 따라서 중국산을 한국에 몰래 들여와 한국산으로 속여 팔면 막대한 차액을 챙길 수 있다. 손박사는 “중국인삼과 한국인삼은 같은 종이지만 재배지의 풍토가 워낙 달라서 향기가 서로 다르다”며 “우리같은 전문가들은 한눈에 인삼의 국적을 알 수 있지만 문제가 날 때마다 일일이 쫓아다니며 판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손박사가 용단을 내려 구입한 전자코는 12가지 금속산화물 센서가 달린 최신형 모델이다(그림2). 손박사는 각각의 인삼향이 서로 다른 패턴을 보이도록 전자코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전자코의 결과만 보더라도 누구나 국산인지 중국산인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원산지에 따라 좌표상의 냄새위치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한국인삼과 중국인삼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효기간 지난 제품 판별도 가능

전자코의 응용이 단순히 판별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냄새가 얼마만큼 변하는지 정량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제품의 유효기간을 정한다거나 원료의 최적 보관 조건을 알아내는 등 그 응용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손박사는 “사람의 코는 매우 우수하지만 항상 일정하지가 않고 냄새의 강도를 수치로 표시할 수 없다”며 “앞으로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전자코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자코로 제품이 올바른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코가 사람의 코를 대신할 수 있는 진정한 ‘인공코’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냄새분자에 따른 코의 엄청난 민감도의 차이를 재현하는 일이다. 상큼한 오렌지향이 나는 리모넨의 경우는 440ppb (1ppb는 10억분의 1) 이상이 돼야 코가 그 냄새를 느끼는 반면 바닐라향의 주성분인 바닐린은 0.03ppb의 농도라도 감지할 수 있다.

현재의 전자코를 보면 사람에게는 냄새가 나지 않는 물질과는 종종 반응하는 반면 냄새가 강해 사람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농도인데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센서의 감도도 대체로 1ppm(1백만분의 1) 내외로 후각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수많은 냄새분자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센서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센서 중 실제 응용할 만한 것은 수십종에 지나지 않는다. 휘발분자와 결합하다고 해서 모두 센서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센서가 되기 위해서는 이 결합이 일시적이어야 하고 센서분자가 변형되면 안된다. 또 같은 분자에 대해서는 언제 측정해도 똑같은 신호를 보내야 한다. 사실 아무리 좋은 센서라도 수명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코도 마찬가지이다. 후각상피세포가 수많은 냄새분자에 계속적으로 시달리다 보면 냄새분자와 결합하는 수용체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후각상피는 약 1달마다 계속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보통 신경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외적인 현상이다.


인삼연초연구원 손현주 박사의 연구실에는 12가지 센서가 달린 전자코가 설치돼 있다.


냄새 전문가에게 드는 비용 절감

그렇다고 전자코를 사람코에 맞춰 평가할 수만은 없다. 몇몇 경우에서는 사람코보다 훨씬 쓸모있을 때도 있다. 인체에 해로운 가스를 탐지할 때나 사람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의 공기를 분석할 때 전자코가 능력을 발휘한다. 미생물이 내는 특이한 휘발분자를 감지해 감염 여부를 판별할 수도 있다. 특히 이번에 일리노이대 연구팀이 만들어낸 신형 전자코는 복잡한 데이터 처리 장치 없이도 모니터 화면을 통해 냄새를 볼 수 있으므로 휴대용 전자코로 쓰일 전망이다(그림3).


(그림3)향기를 색으로 표현하는 최신형 전자코^최근 '네이처'에 소개된 전자코는 센서 색의 변화로 냄새를 확인한다.냄새분자가 없을 때 11가지 센서의 색깔(1).센서와 반응하지 않는 질소기체의 경우 센서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2).이외에는 냄새분자의 종류에 따라 센서가 다양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자코로 인한 경제적인 이득도 만만치 않다. 손박사는 “예민한 후각으로 냄새를 정확히 판별하는 전문가에게 제품평가를 의뢰할 경우 건당 수천만원이 들고 몇달 간 초빙할 경우 억대를 요구한다”며 “전자코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이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자코가 후각을 완전히 모방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사람코를 일일이 쫓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람의 능력밖에 있는 많은 일들이 전자코 앞에 널려 있다. 최근 전자코 관련 문헌의 발표 빈도가 늘고 적용 분야도 대폭 확대되는 추세를 보더라도 그 무한한 잠재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정도의 발전속도라면 10년쯤 지난 뒤에는 곳곳에서 전자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각종 병균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고 병의 진행상태를 진단한다. 주부들은 과일의 신선도를 판별하고 유해농약이 남아있는지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중국산 인삼은 시장에서 발도 붙일 수 없다. 이때쯤에는 전자코가 필수적인 가전제품의 하나일지 누가 알겠는가?

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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