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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과의 끝없는 전쟁 기상예측

인간 6주걸린 계산 몇분이면 끝내

20세기초 인간은 단순한 산술로 기상을 예측했지만,6시간 동안의 정보를 얻기 위해 꼬박 6주일이나 허비해야 했다.오늘날 슈퍼컴퓨터는 이 작업을 불과 수십분 안에 끝낸다.


예보관들은 슈퍼컴퓨터로부터 데이터가 나오면 분석에 들어간다.실질적인 예보를 위해 슈퍼컴퓨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90-1백50분 정도다.


지난 8월 4일 오전 11시 30분. 기상청 3층 슈퍼컴퓨터실에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바쁜 일정이 계속된다. 전세계 3천개 이상의 주요 지점에서 오전 9시에 관측된 기상자료들이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73위이자 국내 최고인 슈퍼컴퓨터(NEC사 SX-5/24A)에 모두 입력되자, 가상공간에서는 일분 일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씨름이 시작된다.

일분 일초 다투는 일기예보실


11시30분부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예보자료는 17시가 되면 매체를 통해 방송된다.


11시 50분. 먼저 계산된 전지구적인 거대 기류의 변화 정보가 나온다. 멀리 북태평양 고기압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서쪽으로 일본열도를 향해 다가오는 제8호 태풍 젤라왓의 향후 일주일간의 이동 경로가 모니터에 동화상으로 나타났다. 예보관들은 슈퍼컴퓨터로부터 데이터가 나옴과 동시에 분석에 들어간다.

12시 50분. 사방 30km×30km의 그물눈에서 분석된 동아시아 지역의 대기 정보가 산출된다. 남해안에서부터 발달한 빵 모양의 구름대가 앞으로 2일간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예상도 위에 나타난다.

14시 00분. 한반도 지역에서 앞으로 24시간 동안 예상되는 비의 양이 사방 5km×5km의 면적마다 자세하게 계산돼 나온다.

15시 00분. 예보 부서에서는 슈퍼컴퓨터에서 산출된 각종 예상자료와 위성, 레이더 등의 최근 관측자료, 그리고 미국, 일본 등의 외국기상기관에서 예상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예보 토의를 벌인다.

17시 00분. 최종적으로 결정된 일기예보자료들은 TV,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일반인에게 방송된다.

밤 11시 30분이 되면 같은 밤 9시에 관측된 자료가 슈퍼컴퓨터에 입력돼 똑같은 절차에 따라서 다음 예상자료가 나온다.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슈퍼컴퓨터에서 분석과 예측계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관측자료가 확보된 이후부터 고작해야 90분 내지는 1백50분 정도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슈퍼컴퓨터는 방대한 관측자료를 분석하고, 물리방정식을 풀어내 앞으로 수일간의 예상도를 그려내야 한다.

특히 집중호우의 경우 20-30분 내에 비구름이 발달하거나 이동해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므로 더욱 신속한 자료처리가 필요하다. 이때 슈퍼컴퓨터의 역할이 단연 빛난다. 실제로 지난 7월 22-23일 용인, 수원 등지에 4백mm 이상의 비를 쏟아 부은 집중호우 때에도 슈퍼컴퓨터가 한몫을 했다. 슈퍼컴퓨터가 호우 발생 12시간 전에 강수량예상도를 계산해내 그 가능성이 파악됐는데, 미리 방재기관에 알릴 수 있어 피해를 줄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오늘날의 기상 예측은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컴퓨터공학과 대기과학 덕분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이전 시대에는 기상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6만명으로 구성된 기상 오케스트라


복잡한 대기방정식의 해를 단순한 산술계산으로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국의 기상학자 루이스 프라이 리차드슨 박사.


20세기 초 영국의 기상학자 루이스 프라이 리차드슨 박사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일기예보를 시도했다. 1922년 발간된 저서 ‘수치적 과정에 의한 일기예측’에서 그는 단순한 덧셈, 뺄셈으로 계산해 일기를 예보할 수 있음을 보였다.

대기 상태는 바람, 온도, 기압, 그리고 습도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들은 공간에 따라 다르고, 수시로 변한다. 이들이 서로 영향을 미쳐 대기는 복잡한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과 시간에 따라 대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미분항이 포함된 방정식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방정식은 매우 복잡해서 이상적인 조건에서만 풀 수 있다. 자유낙하하는 사과의 운동을 기술할 때 공기의 저항을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연속적인 대기 공간을 유한개의 단위 상자로 나누고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도 유한개의 단위 시간간격으로 자르면, 이 미분방정식을 풀지 않고도 단순한 산술계산을 반복해서 근사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훨씬 전이라, 필요한 시간 안에 해를 계산해내려면 6만명 이상이 한데 모여 직접 덧셈, 뺄셈을 해야만 했다. 때문에 일기예보 전문가는 수많은 인간 계산기를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될 수 있었다. 리차드슨은 이런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호된 정신적 노력을 마친 후 환타지아를 연주한다면 어떨까? 극장같이 넓은 홀을 상상해보자. 홀의 벽면에는 전세계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천장은 북극을 가리키고, 영국은 이층 전면에, 열대 지방은 이층 후면에 각각 자리잡고 있다. 객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지역의 날씨를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각자는 방정식의 일부를 맡고 있다. 한사람이 계산한 값은 작은 야광 전등판에 표시되고, 옆사람은 이를 계산에 이용한다. 숫자들은 주위의 3방향으로 표시돼 동서남북으로 교환된다. 홀 중앙의 커다란 단상에는 전 극장을 총괄하는 자가 앉아서, 각지의 계산작업이 서로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통제한다. 이 점에서 그는 흡사 악기 대신 계산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 지휘봉을 흔드는 대신 계산이 앞서가는 단원에게는 빨간색 전등, 뒤쳐진 단원에게는 파란색 전등을 비추는 것이다.”

리차드슨 박사는 책을 출판하기 전 혼자서 이 작업을 해보았다. 꼬박 6주간에 걸쳐 셈한 결과, 그는 1910년 5월 20일 새벽 4시에서 같은 날 오전 10시까지 6시간동안 유럽지역 지상기압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6시간을 예측하기 위해 꼬박 6주가 걸리다니…. 당시 이 방법의 문제는 예보하려는 기간보다도 계산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데 있었다. 도저히 예측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셈이다.

“희미한 장래에 날씨가 진행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예측 계산을 해낼 수 있고, 예보의 계산 비용이 이로 인한 사회적 이득에 비해 훨씬 작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다.” 리차드슨은 자신이 고안한 기상예측 기법이 실용화될 날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아마도 사람을 대신할 슈퍼컴퓨터의 탄생을 갈망하지 않았을까.


슈퍼컴퓨터에서 운영되는 전지구 예보모델로부터 얻은 5일 후의 해상풍의 속도


최초 컴퓨터 애니악 기상에 활용

1946년,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은 작동되자마자 날씨 예측에 활용됐다. 비, 눈, 바람 등의 기상현상은 복잡하면서도 과학적인 법칙에 따라 예측이 가능하기에 컴퓨터의 성능을 시험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저명한 대기과학자 챠니와 엘리어슨은 1950년 3월, 3차원인 대기를 수직방향의 성분을 무시한 채 간단한 2차원의 공간으로 간주하고 애니악 컴퓨터에서 대규모 기류 변화를 예측해보았다. 예보실험은 약 한달간 밤낮으로 계속됐다. 애니악 컴퓨터는 10자리 수를 셈할 수 있는 20개의 레지스터와 3백12개의 12자리 수를 기록할 수 있는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다. 입출력 과정에 쓰인 천공카드만도 1십만장이나 됐다. 계산량도 엄청났다. 당시 휴대용 계산기로 5년 동안 계산해야하는 분량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예보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대기 중층 기압골의 이동과 발달과정이 정량적으로 잘 예측됐다.

애니악 컴퓨터로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는데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겨우 날씨와 같은 속도로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후 컴퓨터의 계산속도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수백배씩 빨라졌다. 일례로 미국 기상청에서 기상예측에 쓰인 컴퓨터의 계산속도 변화를 살펴보면, 70년대 말에는 초당 1억번, 80년대 말에는 30억번, 90년대 말에는 7천억번 정도로 증가했다.

현재 영국, 일본 등의 주요 기상예측 센터에서 운영되는 슈퍼컴퓨터는 초당 수백억번 이상의 연산을 해낸다. 며칠 간의 기상상태를 컴퓨터로 예측하는데 불과 몇십분이 안 걸리는 정도다. 이와 함께 예측능력도 개선됐다. 보통 예측기간이 길수록 예측정확도가 떨어진다. 현재 대기 중층의 기류에 대한 72시간 후의 예측정확도는 15년전 36시간 후의 예측정확도에 근접할 만큼 향상됐다.

지구대기는 가상공간 속에서 양파껍질처럼 여러개의 층으로 나눠지고, 각 층은 다시 바둑판처럼 동서남북으로 분할된다. 마치 카레에 들어갈 양파처럼 잘게 쪼게져 남게된 단위 세포들은 슈퍼컴퓨터가 분석할 수 있는 계산의 최소단위가 된다.

각 세포들은 주위의 세포들과 질량, 운동량, 열, 수증기를 교환하고 이로 인해 세포의 기온, 바람, 습도, 기압에 변화가 생긴다. 각 세포의 기상상태 변화로 지구 대기의 복잡한 운동들이 연출된다. 대기의 운동을 영화보듯이 연속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분마다 한번씩 각 세포들간의 에너지 교환량이 슈퍼컴퓨터에서 계산돼야 한다.

이때 국내를 비롯한 전세계 주요 기상센터는 슈퍼컴퓨터에서 운영되는 수치모델이라고 불리는 기상예측 프로그램을 일기예보에 사용한다. 국내 기상청이 사용하는 수치모델로는 전지구 예보모델, 아시아 예보모델, 한반도 예보모델, 태풍 예보모델, 파랑 예보모델 등으로 세분된다. 이들은 예보하고자 하는 지역과 단위세포의 크기가 다르다.

그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기상변화를 예측하는 아시아 예보모델의 단위세포는 크기가 30km×30km×3백m(가로×세로(수평성분)×수직성분)이며 수가 1백만개 정도이다. 여기에서 매 1분마다 각 세포들의 기상상태를 분석해 24시간 후의 일기를 예측하는데 계산되는 덧셈, 뺄셈의 수가 수조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를 기상용 슈퍼컴퓨터에서 계산하는데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리차드슨이 당시 영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사방을 3백km씩 나눠 수천km나 되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일어나는 기상변화를 계산하는데 무려 6주가 걸린 것에 비한다면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현재 이 체스판을 이루는 하나의 사각 크기는 한반도 예보모델의 경우 5km×5km이다.


신차 생산 기간이 슈퍼컴퓨터로 인해 1980년대 중반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다.


지구 온난화 측정 위해 ‘울트라’ 슈퍼컴 필요

단위세포가 작고 단위시간이 짧다면 더 정교하게 대기의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단위세포의 각 변의 길이를 각각 1/2로, 단위시간도 1/2로 줄인다면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얼마나 빨라져야 할까. 계산량이 무려 16배로 증가한다. 따라서 일정 시간 안에 슈퍼컴퓨터가 계산해내려면 성능이 16배로 늘어나야 한다.

현재의 슈퍼컴퓨터 수준에서 어떤 지역의 기상정보를 보다 자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단위세포를 작게 하면 예측기간이 짧아진다. 역으로 보다 장기간을 예측하려면 단위세포의 크기가 커져야 한다. 따라서 기상청에서는 단위세포의 크기가 1백10km×1백10km×5백m인 전지구 예보모델은 1개월간의 장기 기상예측에 활용하고, 반면 단위세포가 작은 한반도 예보모델은 24시간의 단기 기상예측에 쓰이고 있다.

한편 엘니뇨와 같은 전지구적 규모의 이상기후를 컴퓨터로 재현하거나 예측하기 위해서는 전지구를 에워싼 대기뿐 아니라 해양 운동을 함께 다루는 대기-해양 접합 기후모델이 이용된다. 대기의 운동을 지배하는 유체의 법칙은 해양의 운동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기대신 물을 다루는 점을 제외하면 해양모델은 대기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수년전 미국에서 열린 차세대 기후모델 워크숍에서, 단위세포의 가로가 10km인 기후모델로 이러한 계산을 하고자 할 때 초당 수조번의 계산이 가능한 울트라 슈퍼컴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미국에는 이미 초당 2조번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가 국방 등의 목적으로 로렌스리버모어 연구소에서 가동중이다. 그리고 곧이어 6조번 이상의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가 피츠버그 슈퍼컴센터에 들어서게 돼 기상예측 등의 비군사적 분야에 이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프론티어 프로젝트를 통해서 단위세포가 사방 1km 정도인 고분해능 전지구 예보모델을 슈퍼컴퓨터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세계는 지금보다 정확하고 장기간의 기상예측을 위해, 보다 빠른 슈퍼컴퓨터를 확보하거나 개발하려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형차 생산 기간 절반 이하로 단축

기상예측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시간과의 전쟁에서 한발 앞서가기 위해 슈퍼컴퓨터가 이용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산업이다. 최근 ‘왜 이렇게 자주 신차가 발표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자동차업계의 신형차 발표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이것은 슈퍼컴퓨터가 신형차 개발에 소요된 시간과 비용을 절감시켰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우 어떤 새로운 차를 개발할 것인가의 문제부터 공장에서 출시되기까지 60개월이 소요됐다. 그러나 1998년 초에는 그 절반 이하인 18-30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슈퍼컴퓨터는 어떻게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이전에는 신차의 디자인 과정에서 상당한 노동력을 요하는 진흙모형이나 기타 다른 모형을 만드는 일이 이뤄졌다. 이것만 해도 3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당장 이 일은 슈퍼컴퓨터의 가상시스템으로 대체됐다.

또한 과거 ‘새로 갓 출시된 신차는 시험용이다’라고 할 정도로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충돌실험도 슈퍼컴퓨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신차에 안전성 확보도 보태진 셈이다. 이와 더불어 자동차와 공기의 마찰을 줄여주는 공기역학적 측면도 슈퍼컴퓨터에서 조사해볼 수 있다.

몇년 전부터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생산업체는 무게를 40% 줄이고, 공기와의 마찰력계수를 0.2로, 기름 3L로 1백km 갈 수 있는 슈퍼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자동차의 개발은 슈퍼컴퓨터의 도움없이는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개발비용도 엄청나다.

이처럼 슈퍼컴퓨터가 시간과의 전쟁에서 치르는 일들은 결코 일상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매일 방송과 신문에서 보는 내일의 날씨가 바로 시간을 앞서가는 슈퍼컴퓨터가 보여주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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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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