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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가 토끼를 발로 밟는 이유


토끼


올해는 기묘년 토끼의 해다. 흔히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두고 토끼 같은 자식새끼라고 하듯이, 우리에게 토끼의 이미지는 대체로 귀엽고, 연약하고, 선하며, 재빠르고, 영특하다. 옛날에는 토끼를 지칭하는 말로 명시(明視)라고 했는데, 이는 눈이 밝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초식동물들은 대체로 자신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많아 멀리 보면서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눈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토끼는 또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밤눈이 밝다.

용왕의 병은 간경화?

그러나 토끼는 눈이 밝은 것 때문에 용왕에게 수난을 당할 뻔했다. 판소리 ‘토별가’에서 “퇴끼가 눈이 밝아, 별호를 명시라 하옵기를, 목속간(目屬肝, 눈은 간에 속함)을 하였으니, 간경이 좋은 고로 눈이 그리 밝사오니, 퇴간 곧 먹사오면, 병환이 직차하고, 장생불로 할 것이요”라고 했다. 토끼의 간을 먹으려 한 것을 보면 당시 용왕의 병은 간 계통의 병이었다고 생각된다. 예로부터 몸의 특정 부위에 병이 생겼을 때 이와 유사한 모양이나 기능을 지닌 동식물의 기관을 취해 약으로 삼는 일이 많다. 관절염에는 관절이 부드러워 도약력이 좋은 고양이가 좋고, 정력제로는 물개의 성기가 좋고, 눈이 나쁜 아이들에게 소의 간이 좋다는 민간 요법들이 그것이다. 실제로 한의학에서도 뇌의 모양을 닮은 호두가 머리에 좋다는 등 상당히 많은 동종요법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용왕의 병이 심하고 생명이 위험할 정도였으면 아마도 간경화나 간암이 아니었을까.

토끼는 소화기관이 풀, 나뭇잎, 나무 껍질, 씨앗, 뿌리 등 식물성 먹이에 알맞게 특수화돼 있다. 특히 맹장이 토끼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대장과 소장 사이에 있는 긴 맹장에서는 셀룰로오스의 분해를 돕는 박테리아가 있다. 맹장에서 소화된 영양분은 대개가 직접 혈액 속으로 흡수되지만, 중요한 비타민 B12 등은 곧바로 소화되지 않고, 두번 소화시켜야 한다. 때문에 토끼는 미량의 영양소를 얻기 위해 자신이 배설한 똥의 일부를 다시 먹는 특이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토끼가 가끔 자신의 입을 항문에 대고 핥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배설물을 먹으려는 행동이다.

토끼몰이는 아래로 해야

호랑이, 표범, 늑대, 곰, 여우, 너구리를 비롯, 솔개, 부엉이, 올빼미까지 포식자가 많아 토끼는 선천적으로 경계심이 강하다. 이들은 긴 귀로 소리를 민감하게 듣고 앞발보다 뒷발이 긴 신체조건을 이용해 재빨리 포식자로부터 달아난다. 얼마나 재빠른지 몸집이 큰 멧토끼의 경우 시속 80km에 이른다고 한다. 토끼는 뒷발이 길어 신체구조상 언덕길을 오르는데는 선수다. 그래서 토끼몰이를 할 때는 아래서 윗방향으로 몰지 않고 등성이에서 골짜기 방향으로 내려 모는 게 요령이다. 토끼는 아래로는 쉬 달아나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듯이 산을 내려갈 뿐이다. 그리고 눈이 있다면 더욱 달리지 못한다.

토끼는 90% 이상이 태어난 그 해에 사망한다. 포식자에게 먹히고 병으로 죽고,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에게 물려죽는 등 이들은 참으로 모진 생을 산다. 그러나 이들의 높은 사망률은 높은 번식률로 인해 금방 보충된다. 임신기간은 약 1개월이지만, 이들에게는 배란 간격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이들은 출산간격을 짧게 하기 위해 수컷이 교미자극을 하면 이에 반응해서 배란이 일어나는 ‘유도배란’이라는 현상을 보인다. 또 암컷은 출산 후 바로 다시 임신할 수 있는 ‘분만후발정’이라는 현상도 보인다. 숲멧토끼의 일종은 지난번 새끼를 모두 출산하기 전에 다음 임신이 가능한 중복임신이라는 특이한 현상도 보인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은 1년 내내 쉼없이 새끼를 배고 낳아 좋은 환경만 주어진다면 순식간에 엄청난 수로 불어난다.

음란의 상징

토끼의 엄청난 번식력은 때로 큰 해를 끼친다. 호주에는 원래 토끼가 없었는데, 1859년 유럽에서 토끼를 들여와 풀어놓게 됐다. 그런데 이들을 잡아먹을 천적이 없어 그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1km²에 무려 3천마리의 토끼가 득실거려 야생의 초목을 초토화시키고 농작물까지 먹어치우며 전체 생테계를 위협하는 귀찮은 존재로 변해버린 것이다. 번식력이 강한 토끼는 집단의 70%가 죽어도 1년 안에 본래 숫자를 회복한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1950년에는 점액종이라는 토끼 전염병을 바이러스를 풀어 이들을 한차례 학살했지만, 조금 지나자 토끼들 사이에서 이 병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 이 병이 들어도 50%만이 죽을 뿐, 그 숫자가 다시 불어나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지난 97년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야생굴토끼 수를 줄이기 위해 토끼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토끼들이 사는데 풀어놓았다. 이 바이러스는 맹렬한 기세로 토끼를 감염시켜 단 8주만에 전체 토끼의 80-90%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로 토끼의 숫자조절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점액종에 면역된 것처럼 저항성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맹렬한 토끼의 번식력 때문에 서양에서는 토끼가 사랑스럽고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매우 천하고 음란한 존재로 인식돼왔다. 르네상스시대의 유명한 이탈리아 화가인 티치아노의 ‘신성한 사랑과 속된 사랑’이라는 작품을 비롯해서 서양의 미술작품에서는 음란함이 팽배한 세속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들토끼가 등장한다. 들토끼의 번식력이 매우 강한 것을 음욕이 많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화에서 토끼가 뛰노는 들판은 음욕과 사욕이 팽배한 속된 세상을 의미한다. 성모 마리아는 토끼를 발로 밟거나, 손으로 잡아 누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성모마리아가 음욕을 누르고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순결한 영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토끼와 대비되는 동물인 양떼들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로, 교회, 향로와 더불어 신성한 세계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인식된다.

위험을 경계하는 감지자

학살과 천시에도 불구하고 토끼는 사람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왔다. 옛날에 노인으로 변신한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신)이 원숭이, 여우, 토끼가 있는 곳에 와서 먹을 것을 청했다. 원숭이와 여우는 나무열매랑 물고기를 잡아왔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토끼는 자기 몸을 불 속에 던져 제석천을 대접했다. 토끼가 자신의 몸을 던져 불법을 지켜낸 것이다. 제석천은 토끼의 덕을 기려 토끼가 달 속에 소생하게 했다.

또 잠수함 안에 산소농도를 알아보는 감지자로 토끼가 이용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토끼는 산소의 부족을 민감하게 감지해 행동이 불안해지는데, 이로부터 배 안의 산소가 언제 고갈될 것인지를 알았다고 한다. 보통 토끼가 불안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해서 6시간이 한계시간으로 생각됐다. 토끼는 인간에게 정상에서 벗어난 위험상태를 알리며 인간을 살려온 동물인 것이다.

고대 중국 송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나오다가 밭 가운데에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덕분에 공짜로 토끼를 얻은 농부는 농사를 집어치우고 매일 밭둑에 앉아 지난번 그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쳐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농부는 온 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변통할 줄 모르고 늘 해오던대로만 하려고 하는 게으른 복고주의를 경계한 ‘한비자’의 가르침이다. 토끼해에 토끼의 미덕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생활을 계획함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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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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