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여개에 달하는 인간 유전자에 대한 전체적인 지도가 그려지고 아니가 단백질 형성이나 질병과 연관된 각 유전자의 기능이 정확하게 밝혀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도대체 '인간게놈프로젝트'에 대해 세계 언론들은 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윤리의 파괴'를 우려하는 것일까?
유전자는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물론 유전자가 한 인간을 100% 결정하지 않으며, 또 특정 유전물질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러한 특질이 발현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에 내재되지 않은 특질이 인간에게 발현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피부색과 연관된 유전자에 검은 색 유전정보가 들어있다면, 다른 제3의 요인이 의해 나의 피부가 검은 색으로 발달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피부가 백색으로 발달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인간은 유전정보에 의해 발달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식은 부모가 낳지만, 부모가 자식의 유전자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유전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전공학의 발달로 유전자에 대한 지식과 유전자에 대한 간섭이 가능하게 됐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바로 ‘유전자에 대한 인간 간섭의 서곡’으로 유전자 검사와 유전자 치료를 가능케 해줄 것이다. 유전자 검사와 치료는 인간 발달의 모든 단계, 즉 ①정자와 난자 ② 수정란 ③ 태아 ④ 출생 후 인간 존재 각 단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혀 새로운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과학기술과 달리 유전공학은 인간의 핵심 요소인 유전자를 바꾸어, 결국 인간 자체를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 유전자진단서 요구
유전자 지도와 그 기능이 밝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알고자 운명철학자가 아니라 유전공학자를 찾아 유전 상담을 의뢰할 것이다. 유전자 검사와 유전 상담은 물론 선한 방향으로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B형의 혈우병과 같은 X-염색체 의존성 질병이나 가계에 흐르는 유전적 질병을 예방하는데 유전자 검사가 이용될 수 있다. 그래서 종합건강 진단의 일종으로 유전자 검사는 각광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느냐에 따라 그 윤리적 사회적 파장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한 예로 갑이란 사람이 모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갑에게 간암 유발 유전 물질이 있음이 밝혀졌다. 담당 의사는 유전 상담을 통해 이 사실을 갑에게 알려주었다. 여기서부터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간암 유발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미래에 언젠가 필연적으로 간암에 걸린다는 법은 없다. 왜냐하면 유전인자는 단지 하나의 잠재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유전자 검사는 ‘자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지닌다. 자충족적 예언이란 예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예언한 대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미래에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상담을 듣게 됨으로써 갑은 실제로 간암에 걸리게 된다. 설사 간암이 발병하지 않아도, 갑은 심리적으로 간암 발병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그 예방책이나 치료책이 없는 경우 삶의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방지하자면 유전자 치료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의사가 유전자 이상을 당사자에게 알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또다른 윤리적 의무와 상충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개인은 자신의 유전 정보에 대해 알 권리를 지니고, 의사는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 그 정보를 알려주어야 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유전자 치료술이 개발될 때까지 의사는 이런 윤리적 곤경으로부터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 고민거리이다.
유전자 검사는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한 개인의 유전정보는 그 개인의 사생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며, 그에 대한 소유권 역시 개인이 가진다. 왜냐하면 그 유전 정보 속에는 그 개인의 미래 삶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의사는 개인의 유전 정보에 대해 비밀유지의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이 유전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제3자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현재 갑은 모 회사에 취업예정이며, 보험회사와 생명보험 계약을 맺고자 한다. 갑의 건강에 이해관계를 지닌 회사와 보험사에서는 유전자 검사 대학병원에 갑의 유전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전자에 이상이 있을 경우, 회사 입장에서 보면 갑의 취업이 부담스러울 것이며, 보험사의 입장에서 보면 갑에 대한 보험료를 달리 책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체에서 신입사원에게 건강진단서를 요구하듯이 유전자 진단서를 요구할 수 있는가? 보험회사는 계약을 체결할 때 유전자 진단서를 의무조항으로 넣을 수 있는가?
사생활 권리를 옹호하는 자들은 유전자 진단서와 같은 유전 정보의 공개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유전 정보 공개는 곧 ‘유전자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즉 갑이 간암 유발 유전자 보균자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기업체나 보험사가 갑을 다른 사람과 차별 대우하는 것이 정당한가?
갑에게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단지 갑이 간암 유발 유전자의 보균자로만 살아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 어느 때에 간암이 발병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갑은 직장생활이나 보험에 있어서 전혀 결격 사유가 없기에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은 공평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비윤리적인 처사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잠재적 범죄자를 실제적 범죄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듯이, 잠재적 질병 유발 유전자 보균자를 실제로 그 질병에 걸린 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 역시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체나 보험사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질병 유전물질 보균자를 차별 대우하고 싶을 것이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나아가 유전자 진단서 교환이 결혼의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단지 특정 유전자가 이상하거나 열성이라고, 또는 ‘유전자 궁합’이 맞지 않다고 결혼이 취소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차별은 한 개인을 넘어서 사회의 특정 집단에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이나 소수 민족이 사회적으로 열성 유전자를 지녔다고 그 집단이나 민족을 차별대우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부당하듯이, 특정 집단에 대한 이러한 유전자 차별 역시 부당하다.
자식 비만은 부모탓?
실제로 미국의 경우 70년대 초반 20여개 주에서 겸형 적혈구 빈혈증 보균자에 대해 강제적인 유전자 확인 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검사 대상은 미국 내 흑인으로 제한해 본인의 사전동의 없이 검사가 실시되었다. 이런 경솔한 처사로, 미국은 흑인에 대한 보험가입 거부와 고용감소라는 인종차별의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지니게 됐다. 따라서 유네스코 총회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에서 유전자 차별이 비윤리적임을 선언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양수검사나 초음파 검사 등의 산전진단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태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검사가 산전진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전자 검사는 단순히 태아의 현재 건강 상태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미래 건강까지 예측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체외수정과 결합하게 되면 유전자 검사는 수정란 단계나 정자·난자 단계에서도 실시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유전자 검사를, 예를 들어, A B형의 혈우병과 같은 X-염색체 의존성 질병이나 가족에게 대대로 유전되고 있는 유전적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등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이미 행해지고 있는 성감별, 성선택이나 원하는 기질의 자녀 갖기에 이용될 수 있다. 유전자 검사로 인해 여성의 자궁에 수정란을 착상시키기 전에, 정자나 난자 또는 수정란의 유전자를 검사해 원하는 성뿐만 아니라 원하는 기질-예를 들어, 큰 키, 금발 머리, 높은 지능, 천재적인 예술감각 등-의 자녀를 예비 부모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임신하기에 앞서 자녀 출산에 관한 ‘유전 상담‘이 필수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똑똑하고 건강한 자녀를 갖고자 인간은 소망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유전자 선택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미 뿌리깊은 남아선호 사상과 성감별이 결합해, 임신중절과 남녀성비 불균형이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또하나의 차별이다. 또 수정 순간을 인간의 출발점으로 보는 보수주의에 따르면, 명백한 살인 행위이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가 이루어지면 단지 먼 훗날 기형을 유발할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더 심한 경우에는 육손과 같은 약간의 기형을 유발할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예비 부모는 손쉽게 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 생명 경시 풍조를 낳는 또하나의 비극이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의 경우 이런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녀의 유전자를 선택함으로 자연스러운 출산이 억제돼, 결국 ‘자연스럽게’ 태어난 아이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미 현재에도 비만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심각한 정체감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만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기 때문에 그래도 비만인 사람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비만 자녀를 낳은 부모는 일종의 태만 내지 책임 회피로 손가락질 당할 것이며, 아이 자신도 심한 열등감과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즉 유전자 검사로 인해 소수가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유전 정보에 근거해 개인의 자녀 출산을 제한하려고 할 것이다. 심신장애인이 태어날 경우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보장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다시 유전정보에 대한 접근권의 물음이 발생한다. 물론 개인이 자발적으로 유전자 이상을 발견해 자녀 출산을 삼가한다면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정상과 장애를 구분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사회보장비용을 이유로 개인으로 하여금 유전자 검사를 강요하거나, 얻어진 유전 정보에 근거해 개인의 자녀 출산을 제한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기본권 침해이다. 이런 비윤리적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면, 유전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정부가 갖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맞춤인간의 등장
암, 노화, 치매 등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유전자와 관련된 이러한 질병치료의 새 장이 열릴 것이다. 그래서 정형외과나 내과와 같은 의학의 한 분야로 ‘유전의학’이 생겨나고 ‘유전자 병원’이 세워질 것이다. 유전자 병원은 각 개인의 유전자를 검사해 유전 정보를 담은 DNA칩을 제작해 질병예방과 유전정보에 따른 차별화된 진료 내지 맞춤의학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다.
이미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노화 촉진 유전자 ‘p21’을 발견해, 노화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노화를 방지해 인간이 1백5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하자. 물론 한 개인으로 보면 이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노령인구의 증가로 전혀 예상 밖의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장수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노화 방지는 인간에게 행복의 근원이 아니라 불행의 주범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정말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전자 치료는 질병치료를 넘어서, 자질 함양을 위한 우생학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 인간 세포는 크게 체세포와 생식세포로 나누어지는데, 전자와 달리 후자는 그 유전 물질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생식세포 유전자 치료가 자질 함양을 위해 특정 유전자를 개선시킬 경우, 그 당사자뿐 아니라 그 후손도 우수한 자질을 가질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신체뿐만 아니라 지능지수(IQ)와 같은 정신적 능력, 심지어 도덕적 능력까지도 유전자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에,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자질 함양을 위한 유전자 치료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미 실제로 미국의 한 인터넷 경매사는 공공연히 미녀 모델의 난자를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고 있으며, 하버드대나 예일대 남녀 학생들은 정자와 난자 판매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 검사의 정확도가 높아지면, 유전 형질이 우수한 정자나 난자를 쉽게 판독할 수 있기 때문에, 난자와 정자의 판매는 더욱 성행하게 될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매매는 근친상간과, 영화 ‘가타카’가 말해주듯이, ‘맞춤인간’의 길을 열어준다. 이는 곧 아기를 절대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제품’으로 추락시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유전자 치료가 자본의 논리와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치료는 고비용 의술이기에 부자만이 이용할 수 있다. 부자는 유전자 치료를 통해 아예 생물학적으로 더 우수한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 반면, 가난한 자는 자연적인 자질만 갖고 태어나 이 양자 사이의 격차는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빈부 격차가 생물학적 차원에서 고착화돼, 인간 평등의 이념은 ‘빛깔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새로운 신분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옛날 노비가 상업을 통해 돈을 벌어 노비문서를 불태워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꾀했듯이, 21세기 열등 유전자를 지닌 ‘하층 인간’ 역시 돈을 벌어 유전자를 새롭게 치료함으로써 ‘상층 인간’으로 신분상승을 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와 달리 이러한 신분상승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신체 조건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을 비롯한 정신 능력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생학적인 유전자 치료는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인종 개발’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우생학 프로그램에 이용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지닌 유전공학 기술 및 자본의 수준에 따라 이런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 역시 상당한 차이를 보여, 국가간의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21세기의 화두, 생명윤리
물론 이는 하나의 가상적인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비롯한 유전공학의 발전을 과학의 논리에 맡겨둘 경우 실현 불가능한 ‘가상’도 아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1997년 유네스코 총회가 발표한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언문에서는 인간게놈 연구와 그 응용에 따라 제기되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 각국은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또 과학정책 책임자들에게 생명윤리 교육을 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신의 가혹한 벌을 받았다. ‘생명의 책’으로 알려진 인간 유전자를 해독해 인간이 ‘신 노릇’(playing God)을 할 경우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생명공학자의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때이다.
미국 케네디 윤리연구소장 리로이 월터스 유전정보 차별로 보험 혜택 소외자는 늘 듯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다는 발표로 세상이 떠들썩한 시기에 미국의 케네디윤리연구소 리로이 월터스(LeRoy Walters)소장이 방한,프로젝트의 사회적·윤리적 파장에 대한 강연회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한국생명윤리학회(회장 박이문) 주최로 5월31일과 6월1일 가톨릭대학과 서울중앙병원에서 열린 이번 강연회에서 월터스 소장은 '20세기 생물윤리학의 탄생'과 '21세기의 유전학,윤리,그리고 의학'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미칠 막대한 사회적 영향에 미리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월터스 소장은 미국 정부에서 추진해온ELSI(Ethical,Legal,and Social Implications Research Program),즉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윤리적·법률적·사회적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다.ELSI는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출범할 때부터 동시에 추진되고 있으며,연간 전체 프로젝트 비용의 3-5% 예산을 할당받고 있다.월터스 소장을 만나 ELSI와 관련한 미국의 현안을 들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파장과 관련해 현재 미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의료보험 문제라고 생각한다.보험회사들은 프로젝트의 성과물을 활용해'고객'의 유전정보를 얻으려 할 것이다.그런데 '미래에 암에 걸릴 가능성이 50%'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보험회사로서는 보험료를 현재보다 훨씬 높게 책정할 것이다.만일 비싼 보험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예 상품을 팔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미국은 의외로 다른나라에 비해 의료보험제도가 열악한 형편이다.물론 극빈자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문제는 중하층이다.매달 지불해야 하는 보험금이 월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못낸다.그 수는 4천만명(인구의 14%)에 이른다.만일 보험회사가 유전정보마저 보험료 책정에 사용한다면 이 소외된 사람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길은 훨씬 멀어질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올해 초 클린턴 대통령은 공무원의 경우 유전정보에 기초한 차별이 없도록 공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물론 미국 정부는 이런 유전자 차별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지난 2월 8일 클린턴 대통령은 유전병의 유무와 암에 걸릴 간으성을 검사한 결과를 연방직원의 채용과 승진에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하지만 보험회사의 움직임에 대해 얼마나 제재를 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더욱이 연방직원(2백80여만명)외의 공무원이나 일반인에 대한 보호조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월터스 소장 개인의 견해는 어떤가.
한마디로 보험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즉 초상집에 가서 부조금을 내듯 누군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준다는 취지를 살려야 한다.유전정보를 이용해 차별이 더욱 심해지고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면 보험 원래의 정신은 퇴색하는 셈이다.
하지만 고객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유전정보를 파악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겠는가.
유전정보는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해 100%확실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단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몇%'라고 말할 뿐이다.사실 유전병은 제비뽑기와 같은 것이어서,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또 어떤 사람에게 질병 관련유전자가 발견됐다 해도 그 사람이 반드시 병에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보험회사가 이런 불확실한 정보를 활용해 차별을 시행하는 일은 부당하다고 본다.
월터스 소장의 전문분야는 윤리학이다.한국에서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논쟁에서 인문사회학자들이 과학자들로부터'내용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분위기 있다.일을 할 때 이런 어려움은 없는가.
물론 있다.이런 문제는 학문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과학자는 특수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반면 인문사회학자는 좀더 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일반화시키려는 특성이 있다.현재 생각으로는 인문사회학자가 보다 특화될 필요가 있다.예를 들어 생물윤리의 경우 심장전문가,뇌전문가 등으로 분화돼야 한다.또 인문사회학자는 과학자들이 연구에 투여하는 시간과 노력이 대단하다는 점을 인정하고,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