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시스코 시스템즈

인터넷 접속환경의 빌더

 

각종 인터넷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시스코사의 홈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시스코사.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터넷 통신장비업체다.전문가들이 '앞으로 10년은 시스코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미래가 창창한 회사인데….그 성장에서 한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시스코의 최고경영자,존 챔버스^1995년부터 시스코를 맡아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열정의 소유자다.인터넷의 전도사로 불릴 만큼 잘 나간다.


20세기가 저물어가던 작년 10월. 4년마다 한번씩 개최돼 ‘정보통신분야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텔레콤99’로 북적대는 스위스 제네바에는 또 하나의 이색적인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넷에이드’(NetAid).

본 조비, 지미 페이지, 조지 마이클, 스팅, 마이클 더글라스 등 인기스타들이 한데 모여 ‘세계는 하나’(We Are The World)라는 주제로 자선공연을 가진 것. 이 공연은 제네바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과 미국 뉴저지 세군데에서 동시에 열려 릴레이 형식으로 11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생중개됐다. 전세계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은 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공연을 보면서 자선기금을 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이 사이트에 축하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콘서트를 주관한 기관은 유엔개발계획(UNDP)이었지만 행사의 실질적인 진행과 준비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통신장비업체인 미국 시스코사가 맡았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이 행사에 대해 “과거 공연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한 곳에 모였다가 다음날 잊어버리는 하룻밤 꿈이었지만 이번 콘서트는 영원히 빈곤과 싸울 무기인 넷에이드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누구나 사이트에 접속해 클릭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무려 2천만달러(약 2백40억원)를 기부하고 행사를 진행한 시스코사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인이 하나의 문제에 공감을 가질 수 있었고 인터넷이 다음 세기(21세기)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첨단 미디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에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

시스코는 올들어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3월 24일 미국 증시에서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올라선 것. 이날 시스코의 주가는 주당 79.4달러를 기록, 시가총액 5천7백92억달러(약 6백40조원)로 마이크로소프트의 5천7백82억달러를 앞질렀다. 그후 나스닥의 첨단기술주 폭락과 미국 법원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독점 판정으로 시스코는 5월 8일 현재 시가총액 4천3백41억달러로 제너럴 일렉트릭(5천3백40억달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3천4백68억달러)는 인텔(3천8백81억달러)에도 뒤져 4위로 밀려났다.

시스코의 기업가치가 두달 전에 비해 25%나 떨어졌지만 외신들은 여전히 “앞으로 10년은 시스코의 시대”라고 말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IBM이 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90년대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다면 21세기의 10년을 대표하는 기업은 시스코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스코는 지난 15년간 매년 2배씩 성장을 했으며 작년에는 매출 1백20억달러에 순익을 30억달러나 내는 초우량기업이 됐고 10년전에 이 회사 주식을 산 주주들에게 수백배의 이익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스코라는 회사가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고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시스코는 인터넷시장과 함께 성장했다. 이 회사는 인터넷 서버들을 연결하는 통신장비인 라우터의 세계 시장을 80%나 장악, 인터넷 사용인구와 시설이 늘어날수록 매출도 저절로 늘어난다. 야후나 아마존 같은 포털업체나 전자상거래업체들이 사업을 하려면 시스코의 통신장비를 먼저 구입해 네티즌들이 접속하기 편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 세상이 될수록 시스코는 소리소문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1984년 실리콘밸리 중심지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일하던 5명의 연구자가 시스코를 설립했다.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레오날드 보사크와 샌디 러너 부부였다. 당시 스탠퍼드 대학은 학부별로 다른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어서 전자메일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학내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데이터중계기인 라우터를 개발했다. 이것이 캠퍼스 내부는 물론 다른 대학이나 기업에도 화제가 되자 그들은 대학을 뛰쳐나와 라우터를 제조·판매하는 전문회사를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그러나 시스코의 성공에는 당시 실리콘밸리 명문 벤처캐피털회사인 세코이어캐피털의 돈 발렌타인의 역할이 크다. 그는 초창기부터 시스코의 성장가능성을 확신하고 투자했을 뿐 아니라 이 회사 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능력있는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해왔다. 발렌타인은 지금도 시스코의 부회장을 맡아 배후에서 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시스코가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은 1988년 존 모그리지를 CEO로 영입하면서부터. 모그리지는 틈새상품으로 여겨지던 라우터를 네트워크 시장에 널리 사용되는 제품으로 키워냈다. 그가 취임한 해인 1988년의 매출이 5백5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1994년에는 12억3천만달러로 늘어나 시스코는 포춘지의 급성장기업 순위에 상위로 올랐다. 초대 경영자였던 보사크와 러너 부부는 1990년 주식공개와 동시에 이 회사의 지분을 모두 팔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시스코의 주식이 그후 수백배나 올라 대박을 터뜨렸지만 창업자인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기업의 참된 가치를 몰라보고 그 열매를 제대로 따먹지 못한 셈이다.

시스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인물은 1995년 초 사장 겸 CEO로 취임, 현재까지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존 챔버스(51). 그는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인디애나 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IBM과 왕연구소를 거쳐 시스코에 입사했다. 지금은 클린턴 대통령이 “네트워크업계의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인터넷의 전도사”라 부를 만큼 잘 나가는 경영자지만 그에게도 어둡고 추운 시절이 있었다.

IBM 영업담당 중역을 거쳐 왕연구소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던 챔버스는 인력감축이란 껄끄러운 임무가 주어지자 1990년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퇴직하면 그의 능력으로 보아 전화통에 불이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몇주일이 지나도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수백장의 이력서를 작성해 실리콘밸리에 뿌렸고 몇차례 인터뷰도 했다. 챔버스는 “한달만에 나는 반항을 모르는 순한 양이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행히 챔버스의 능력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중소기업이던 시스코의 전략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취직했다.

챔버스는 이때부터 물 만난 고기처럼 정열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인수합병과 비용절감에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재주를 보였다. 또 누구보다도 의사결정이 신속했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CEO들과 달리 정장차림을 주로 하지만(아마 IBM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 때문일 것) 그는 하루 40%를 길 위에서 보낸다. 그리고 최소 2명에서 수십명의 고객을 만난다. 남부 특유의 투박한 말투로 상대방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모습에서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발렌타인이 모그리지의 후임으로 챔버스를 지명했을 때 모그리지가 “나는 시스코를 10억달러 기업으로 만드는 정열에서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지만 1백억달러 기업으로 만드는 정열에서는 챔버스에 미치지 못한다”며 기꺼이 자리를 물려줄 정도.

스타트업 회사를 잡아라


창업 제품인 라우터


챔버스는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모그리지와 CTO(최고기술책임자)인 에드 코젤의 도움을 받아 네가지 경영방침을 발표하게 된다. 첫째 광범위한 제품라인을 갖추고 네트워크의 원스톱쇼핑을 지향한다. 둘째 효율적인 기업인수를 체계화한다. 셋째 네트워크업계의 표준을 확립한다. 넷째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챔버스는 선배 경영자들이 강조했던 ‘검약’을 바탕으로 이같은 ‘속도와 성장’의 전략을 추가해 시스코를 고도성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부터 시스코의 주력제품인 인터넷 통신장비들이 때마침 불어닥친 인터넷붐과 물려 주문이 밀릴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는 운도 따랐다.

시스코가 빠른 성장을 이룬 첫번째 비결은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적시에 인수합병, 고객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군을 재빨리 확보한 점이다. 시스코는 원래 라우터 하나로 출발한 벤처기업으로 IBM이나 루슨트, 모토롤라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자신의 연구소에서 모든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챔버스의 경영전략은 남들이 진출하지 않은 시장을 먼저 선점해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토대로 주가를 끌어올리며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또다시 필요한 기업을 사냥한다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스코는 라우터, 스위치, 허브(여러개의 워크스테이션을 LAN에 접속하는 장치), ATM(비동기식데이타전송모드) 등 인터넷 통신장비분야에서 어느 기업보다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게 된다.

시스코는 절대로 대기업이나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의 기업을 인수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시스코가 눈여겨보는 기업은 스타트업(start-up) 회사들. 원천기술은 있지만 아직 제품을 완벽하게 생산하지 못하거나 마케팅 또는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들이다. 시스코는 이들을 인수해 가능성이 풍부한 제품을 재빨리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높은 이익을 실현하고 또 우수한 기술자를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인수 당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시스코에 인수되는 순간부터 안정된 시장을 얻을 수 있고 인수조건으로 초우량주인 시스코의 주식을 배당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스코란 직장을 얻게 된다. 시스코로부터 인수교섭을 받고 있는 스타트업기업의 CEO는 이렇게 말한다. “루슨트나 노텔에 인수되는 거라면 당장 사표를 쓰고 말겠어요. 그런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문화가 다르거든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시스코에 팔리는 편이 낫습니다. 인수되는 순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요.”

Listen! 직접 만나서 경청하라

챔버스가 기업경영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고객밀착이다. IBM은 직원들에게 ‘생각하라’(Think)는 사훈을 강조한다. 고객이 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이를 고객에게 제안하는 것이 IBM의 방식이다. 이에 비해 시스코는 ‘경청하라’(Listen)를 입이 닳도록 강조한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머리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객을 만나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다.

시스코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된 1993년 크레센도의 인수 역시 고객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시스코의 거물고객이던 보잉사의 간부는 시스코측에 “여기 1천만달러짜리 주문이 있는데 시스코에는 발주하지 못하겠소. 당신네 회사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 없거든. 이 주문이 탐이 난다면 크레센도를 인수하시오”라고 권했다. 시스코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단시간에 크레센도를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시스코는 창업기술이던 라우터에서 스위치로 영역을 확대했다.

챔버스 사장은 문제를 안고 있는 10여개 회사를 매일 체크한다.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 고객과 상의하고 종종 그 회사를 방문해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사장이 이러니 직원들은 고객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다. 시스코의 사원들이 어떤 제안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안서에 고객들의 반응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초기 5분 안에 주요 고객의 이름이 최소한 서너개는 거론되고 이들이 아이디어를 얼마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증명할 수 있다면 이 아이디어는 통과된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장비를 만드는 회사답게 시스코는 전자상거래의 모델기업으로 손꼽힌다. 제품판매의 80% 정도가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며 간단한 애프터서비스와 기술상담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다.

그러나 시스코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터넷을 잘 활용했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고객들은 팩스로 주문을 보내고 주문서에 적힌 부품이나 가격의 오류 때문에 납품이 몇주일씩 연기되기가 비일비재했다. 시스코는 1994년 기술지원을 위해 개설된 전자상거래 시스템인 CCO(Cisco Connection Online)를 통해 제품판매를 시작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고객이 시스코의 사원을 만나지 않고도 가격과 제품구성을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이 잘못 선택하면 프로그램이 에러 표시를 해주고, 적절한 제품이 구성되면 자동적으로 가격이 표시된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미국에서는 3-5일, 해외에서는 7일 정도면 주문제품을 받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해졌다.

애프터서비스도 인터넷에 크게 의존한다. 시스코의 기술지원센터는 1994년부터 이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술자들은 고객들의 질문에 회답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여전히 고객들은 애프터서비스를 받기 힘들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고객들의 질문은 대개 사소한 고장에서 기인하며 엇비슷한 것이 많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런 사례들을 모아 고객들이 찾기 쉽도록 정리해두면 일일이 기술자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고객들 입장에서도 바쁜 기술자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만약 이러한 자동지원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면 시스코는 1천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채용해야 했고 적어도 매년 1억달러 이상 경비를 지출해야 했을 것이다.

가장 입사하고 싶은 직장

시스코에서는 사원들이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많이 낼수록 급료와 보너스가 올라가고 중요한 직책을 맡게된다. 챔버스 사장이 직접 챙기는 사항이므로 사원들은 누구나 네트워크 활용에 정성을 다한다.

시스코의 전체 발행주식의 40%를 사원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직원의 10%인 2천여명이 이미 백만장자의 대열에 들어 평생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또 30대에 수백만달러를 현금으로 확보하고 은퇴해버린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미국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시스코가 가장 입사하고 싶은 직장 1위’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투자자들이 인터넷 관련 기업에 대해 미래 가치만을 바라보고 현재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거품론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터넷 관련 기업들이 실적을 남기기보다 적자를 보는 곳이 많다는 것이 이를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시스코는 5월 9일 올해 1·4분기(1∼3월)에 10억3천만달러(약 1조1천억원)의 순익을 올렸다고 밝혔을 정도로 실적면에서도 탁월한 회사다. 새 천년의 10년을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시스코사가 미래 인터넷 세상을 어떻게 주도해갈 것인지 사뭇 기다려진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벤처컨설턴트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정보·통신공학
  • 경영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