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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망가진 생체리듬이 병을 부른다

소화불량에서 겨울형 우울증까지

하루의 생체리듬이 깨지면 생활이 유지될 리 없다.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잠도 제때 오지 않아 날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 심한 경우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이를 다시 복원하기란 쉽지 않다. 딱히 어떤 치료책을 써야 할지 난감한게 사실이다. 인체에 수많은 리듬이 존재한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 메커니즘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잠의 리듬, 즉 수면-각성 주기가 흔들려 몸에 이상이 오는 경우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의 과학적 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일조량이 부족한 북미의 경우 겨울형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과다식욕이 주요 증상의 하나다.


빛을 쪼이는 것이 핵심

치료 원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일주기리듬을 조절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극은 햇빛이다. 만일 이른 아침에 빛을 쪼여주면 일주기리듬 전체가 앞당겨지기 때문에 그날 밤 빨리 잠자리에 든다. 또 저녁시간에 밝은 빛을 쪼여주면 일주기리듬은 뒤로 밀려가서 밤에 늦게 잠들게 된다. 즉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면 일찍 잠들고, 늦게까지 밝은 빛 아래에서 일을 하면 늦게 잠든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햇빛과 비슷한 강도의 빛을 발하는 기계를 개발해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집에서 형광등을 휜히 밝히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일반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인간은 수면 습관과 관련해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 그리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이다. 일반적으로 노인층으로 접어들수록 종달새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종달새형의 경우 대개 저녁 9-10시부터 새벽 4-5시까지 잠을 자기 때문에 저녁 9시만 돼도 졸음이 몰려든다. 반면 올빼미형의 사람은 새벽 2-3시가 될 때까지 잠을 잘 수 없다.

만일 이 패턴을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달새형 사람은 오후 8시에서 밤 11시 사이에 밝은 빛을 1-2시간 가량 비춰주면 된다. 그러면 몸은 점차 ‘아, 내가 아직 잠들 때가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되고 일주기리듬 전체가 뒤로 미뤄진다. 그 결과 다음날부터 잠드는 시간이 점차 늦춰지기 시작한다. 빛을 비춰주는 횟수는 며칠에 한번 정도면 충분하다.

올빼미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며칠 동안 아침에 밝은 빛을 1-2시간 가량 비춰준다. 일주기리듬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흥미롭게도 빛을 잠에서 깨자마자 비춰주면 기상시간이 매일 15분 정도씩 점차 빨라진다는 통계가 보고됐다.

일반인이 생체리듬의 변화로 인해 겪는 또다른 괴로움은 해외여행에서 발생한다. 시차(jet lag) 때문이다.

인간은 비행기의 발명으로 짧은 시간에 지구의 여러 시간대를 거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고유한 생체리듬이 깨지는 경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출발해 1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면 몸의 일주기리듬은 저녁에 맞춰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착지의 시간대가 여전히 아침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몸은 쉬고 싶은데 쨍쨍한 햇빛 탓에 몸이 다시 각성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수면장애는 물론 피로감, 소화불량, 설사, 식욕부진이 빈번히 나타난다. 집중력, 기억력, 판단력이 떨어져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낭패가 아니다.

이 경우 역시 햇빛을 쪼이는 시간을 미리 조절하는 것이 좋은 방책이다. 현지 도착 시간을 고려해 한국에서 미리 수면-각성 주기를 앞당기거나 뒤로 늦추면 도움이 된다. 만일 그럴 여유 없이 현지에 도착했다면 병원에서 광(光)치료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의사의 적절한 처방 아래에서 약제로 개발된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책이다. 비행기나 현지 숙소에서 자고 싶은 시간대에 멜라토닌을 복용하면 수면-각성 주기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조절할 수 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의 경우 수면패턴을 고치려면 아침마다 1-2시간씩 밝은 빛을 쪼이면 된다.


겨울형 우울증의 원인

근무 시간이 밤낮으로 바뀌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간호사, 경비, 택시운전사는 남다른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 신체의 정상적인 휴식(수면)-활동(각성) 주기가 거꾸로 변하는 바람에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오전에는 잠자려고 애쓰고, 한밤중에는 졸음을 피해 버티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탓에 몸에 무리가 오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사고의 위험이 증가되고, 위장이나 심혈계통에 질환이 자주 발생한다. 여성의 경우 월경장애가 일어나기도 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다. 밤에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탓에 이를 극복하려고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긴장을 풀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술과 담배, 각성제, 진정제와 가까워진다.

교대 근무자들이 이 악순환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최선의 방책은 자신의 일주기리듬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야간근무를 할 때는 일주기리듬을 늦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이 느끼는’ 잠자야 할 시간을 새벽이나 아침으로 늦춰버리자는 얘기다. 즉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으로 점차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루 중 야간근무가 시작될 때는 밝은 빛을 쪼이고 끝날 무렵에는 빛을 피한다. 그리고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귀가하는 동안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해 밝은 빛을 차단시킨다.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어두운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며칠 동안 같은 시간대에 잠을 자도록 노력한다.

반대로 야간근무가 끝나고 정상근무가 시작될 때는 일주기리듬을 앞당기면 된다. 즉 아침에 빛을 쪼이고 저녁에는 어두운 곳에서 지낸다.

일주기리듬의 심한 장애는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절성 우울증이다.

우울증이 계절에 따라 오는 사람들이 있다. 10-11월경부터 기분이 저하되기 시작해 3-4월경까지 우울증을 앓는 ‘겨울형’ 그리고 반대로 여름철에 우울해지는 ‘여름형’ 환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임상적으로 겨울형 우울증 환자가 여름형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간 일조량이 부족한 북미에서는 인구의 약 4-8% 정도가 겨울형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또 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기분이 가라앉는 정도의 기분 변화를 나타내는 사람이 20%에 이른다. 이들의 주된 증상은 과다수면과 과다식욕이다. 따라서 잠에서 깨어나기 힘들어하고, 아침은 물론 하루종일 피곤함을 느끼며, 체중도 늘어난다.

대부분의 겨울형 우울증 환자들은 일주기리듬이 늦춰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심한 환자의 경우 아침시간에 광치료를 하거나 멜라토닌을 복용시킨다.

한편 기분이 저하되는 우울증과 너무 들뜨는 조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증 역시 일주기리듬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1년에 3-4회 이상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에게 하룻밤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더니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금새 바뀌었다는 보고가 있다.

우울 증상 자체도 일주기리듬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이른 아침에 우울증이 특히 심하고 오후에 나아지는 현상이나, 우울증 환자들이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는 현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울증 환자들을 좀더 일찍 잘 수 있게 도와줬더니 우울증이 호전됐다는 보고도 있다.

하루 리듬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복잡한 사회생활로 인해 자신의 생체 일주기리듬을 와해시키면서까지 불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나 대개 이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빠져든다.

일주기리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함으로써 각종 질병에 대해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만일 자신의 리듬이 조금 깨졌다면 그냥 무시하지 말고 치료에 노력을 기울여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신경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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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조숙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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