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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그 후

잿더미 민둥산에 새 새명을

수십년을 가꿔온 동해안의 울창한 숲들이 화마에 쓰러졌다.산야를 지키던 동물들이 떠나고 끝없이 불타버린 잿빛 산등성이를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떠나려 한다.그러나 불탄 자리에는 어렵사리 다시 생명이 자라나고 인간의 보살핌을 기다리고 있다.과연 불탄 산야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하늘에서 본 고성,강릉,삼척 지방 산불피해지의 처참한 모습.


잿빛 산야는 참혹했다. 산불의 화마가 거쳐간 영동지방의 산야에서는 재생, 풍요, 생명력을 상징하는 봄 숲의 참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온통 잿더미로 변한 황량하고 삭막한 모습뿐이었다.

사상 최대의 산불이 발생한지 1개월이 지났고 이제는 산림전문가, 생태전문가, 환경단체의 전문가들이 산불피해지의 생태계 복원 방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또한 이 기회에 이번 산불피해가 컸던 원인과, 예방과 방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나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번 기회에 산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산불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산림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산불피해지의 생태계 복구(복원)에 대해 제각각 다른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산림전문가들은 인공조림으로 피해지를 하루빨리 복구시키자고 주장하는 반면에 생태전문가들은 자연의 힘으로 복원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한편 초지(草地) 전문가들은 산불피해지를 먼저 풀밭으로 만들어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정부의 대책회의, 시민단체의 토론회, 그리고 언론매체를 통해서 제시된 산불피해지의 생태계 복구(복원) 방안의 장단점을 함께 살펴보고 다시 한번 최선의 방책을 모색해보자.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의 합작


불씨가 날아가는 장면.삼척·울진 지방의 산불은 강풍으로 불씨가 1km이상 날렸다.


지난 4월6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을 필두로 강릉, 동해, 삼척, 울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영동지방의 산불은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순간최대풍속이 초당 25m나 되는 강풍으로 동해안의 산불은 급속히 확산됐고, 9일만에 모두 2만3천4백48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특히 군부대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번진 고성지방의 산불은 4년 전 산불이 났다가 겨우 복구되고 있는 곳을 다시 덮쳤고, 어렵게 뿌리내렸던 어린 묘목(해송, 소나무, 자작나무, 잣나무)들은 채 자라보지도 못하고 다시 잿더미로 변했다. 그리고 9일간 지속된 삼척지방의 산불은 시가지는 물론이고 백두대간이나 울진 원자력발전소까지 위협하면서 온 국민이 산불의 무서움에 떨게 만들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불은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하지만 왜 올해는 영동지방에서 유독 피해가 극심했을까?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가장 먼저 올해의 독특한 이상건조기후를 든다. 50여일 이상 계속된 영동지방의 이상건조는 숲바닥은 물론이고, 서있는 나무들까지도 바싹 마르게 했고, 작은 불씨에도 숲은 금새 화마의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상건조기후와 함께 동해안 지역에서 특히 4월에 볼 수 있는 이상기상조건(강풍과 일정치 않은 풍향)은 산불피해를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특히 이 고장 특유의 양간지풍(陽杆之風, 양양과 간성지방 사이의 강한 바람)은 헬기에 의한 산불의 초기진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영동지방의 산불피해가 극심한 이유를 건조한 기후와 강풍으로만 돌릴 수 없다. 산불 예방 활동(산불 위험에 대한 홍보교육, 산불예보체제)이 허술했던 점, 초기진화체계(공중진화장비)의 부실, 산불관리 전문조직체계(중앙 및 지방정부 또는 민·관·군의 유기적 협조)가 정비돼 있지 않은 점, 산림 기반시설(임도, 저수 댐)의 부족 등도 빠트릴 수 없다.

산불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산불발생 자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영동지방의 산불재앙 속에도 산불 감시에 최선을 다한 양양군만이 인접한 시·군과는 달리 산불의 엄청난 재앙을 피해갈 수 있었던 사실은 주민계몽이나 산불감시 같은 산불예방 활동이 산불방제에 최선의 길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산불은 발화원인에 따라서 자연적 발화와 인위적 발화로 나눌 수 있다. 자연적 발화에 의한 산불은 대부분 마른번개(落雷)로 발생한다. 때문에 습한 지역이나 열대우림 지역에선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의 예를 보면, 활엽수림이 잘 발달된 동부지방은 마른번개 때문에 발생하는 산불은 2% 미만이다. 그러나 건조한 중서부의 록키산맥은 산불의 60% 이상이 마른번개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마른번개에 의한 산불은 활엽수보다는 침엽수림에서 훨씬 더 자주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침엽수가 수지(樹脂)성분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과실이나 부주의로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서 대부분의 산불은 3-5월 사이의 봄철에 가장 많이 발생(80% 이상)하며, 하루 중에 공중습도가 낮고, 바람이 불며, 가연물의 함수량이 낮은 오후 2시에서 6시 사이에 약 절반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입산자의 실화(40%), 논·밭두렁 태우기(21%), 쓰레기 소각(10%), 담배불 실화(9%), 성묘객 실화(7%), 어린이 불장난(4%) 등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산불의 90% 이상이 인위적인 것이며 그밖에 원인불명에 의한 산불 역시 사람의 잘못으로 발화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산불이 사람에 의해 일어나지만 드물게도 1993년 4월 22일 강원도 홍천군의 소나무와 낙엽송 숲에 발생한 산불은 번개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돼 있다.

산불은 연소상태 및 연소부위에 따라서 지표화(地表火)·수간화(樹幹火)·수관화(樹冠火)·지중화(地中火)로 분류할 수 있다. 지표화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이며, 지표에 쌓여 있는 낙엽, 떨어진 가지, 관목, 어린 나무 등을 태운다. 숲바닥에 낙엽이나 가지들이 많이 축적돼 있을 경우, 수간화나 수관화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산림관리가 철저한 외국에서는 숲바닥에 가연물(可燃物)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축적되면 인위적으로 불을 놓아 대형산불을 예방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처방화입(處方火入, prescribed burning)이라고 한다. 지표화는 나이가 어린 숲에는 치명적일 수 있지만, 수피가 두텁게 발달한 큰 나무들이 있는 숲에서는 큰 피해를 주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처럼 두꺼운 코르크층의 수피를 가진 참나무류는 산불에 강하다.

나무줄기가 타는 수간화는 지표화로부터 연소되는 경우가 많다. 고사목이나 고목의 줄기에 구멍이 생겨 나무의 목질부가 죽어 있는 늙은 나무에 불이 붙어 목질부가 타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고사목이나 고목이 많은 숲에서 일어나기 쉽지만 80% 이상의 산림이 20-30년생 미만의 어린 숲으로 구성된 우리 산림에서는 흔한 산불이 아니다.

수관화는 나무 줄기는 물론이고 잎을 달고 있는 가지(樹冠)까지 태우는 산불이다. 이번 영동지방의 산불에서 볼 수 있듯이 수지(樹脂)가 많은 수령 20-30년 생의 소나무나 해송 같은 침엽수림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발단은 대부분 지표화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이번 영동지방의 산불피해가 막심했던 이유도 이 고장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20-30년생의 어린 나무들로 키가 크지 않고 줄기 아랫부분에 마른 가지를 달고 있어서 쉽게 수관화로 발달한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관화가 위험한 것은 화염으로 온도가 1천1백℃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피가 두꺼운 나무라도 이 같이 높은 고온에서는 형성층의 관다발 조직이 쉽게 파괴된다. 특히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른봄에는 세포분열이 왕성한 줄기의 형성층 조직이 고열에 취약한 연약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수관화나 지표화는 보통 1시간에 4km의 연소진행 속도를 가지지만 강풍이 있을 경우에는 한시간에 15km 이상을 연소시킬 수도 있다. 특히 강풍을 동반한 이번 영동지방의 산불은 불꽃이 1.5km 이상의 거리를 날아가 발화되면서 피해를 더욱 확산시켰다.


1996년 고성산불 이후 인공적으로 조성된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


산불 뒤에 홍수 걱정

낙엽층 밑에 있는 유기물층과 이탄층(泥炭層)을 태우는 지중화는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문 산불이다. 땅속으로 탄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지중화(地中火)는 낙엽층의 분해가 매우 더딘 고산지대나 저습지대에서 주로 발생하는 산불이다.

산림생태계에 미치는 산불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산불피해지의 생태계 복원방안을 모색하는 첫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산불은 수목과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을 태울 뿐만 아니라 토양을 척박하게 하며, 산림이 보유하고 있던 다양한 기능을 감퇴시킨다.

대부분의 수목은 비교적 약한 산불에도 피해를 입기 쉬운데, 그 이유는 수목의 잎이나 형성층의 치사온도가 55-65℃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나무들은 껍질이 얇아서 비교적 강도가 낮은 지표화에 의해서도 고사하는 일이 많다. 반면에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층이 발달된 늙은 나무들은 약한 산불에는 어느 정도 견디지만, 가지 끝까지 달려드는 화염을 동반한 산불에는 대부분 고사한다. 다행이 살아남아도 몸이 쇠약해져 병해충의 2차적 피해를 피할 수 없다.

4년 전 일어난 고성산불 피해지에 대해 생태계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살아남은 소나무는 산불 발생 후부터 고사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2년 후에는 45%, 3년 후에는 95%가 죽었다. 또한 산불 피해를 입은 나무들은 산불발생 2년 후 가을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산불은 토양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악화시켜서 생태계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원래 숲바닥의 낙엽층은 지표의 토양을 빗줄기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호층이다. 또 낙엽층 아래의 부식질은 토양알갱이 사이사이에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물이 토양 속으로 잘 침투할 수 있는 투수성을 증가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산불은 숲바닥의 낙엽층과 부식층을 태워서 잿더미로 만들기 때문에 산림 토양이 원래 가지고 있던 다공질 공간을 줄이고 투수성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산림토양의 녹색 댐으로서의 저수능력이나 투수성은 악화되며,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릴 때에는 지표로 흐르는 물의 양이 갑자기 많아져서 홍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산림토양이 쉽게 침식되는 것은 물론이다. 산불의 피해를 받은 토양은 피해를 받지 않은 토양보다 지표면을 흐르는 물의 양이 3-16배나 증대된다고 한다.

또한 타고남은 재에 남아 있던 질소성분은 공기중으로 날아가고, 인산, 석회, 칼륨성분은 빗물에 의해 유실되기 때문에 자주 산불피해를 받으면 토양은 쉽게 척박해진다. 또한 부식질로부터 공급받던 유기물이나 치환성 양이온(칼슘, 마그네슘, 칼륨)도 급격히 감소해 토양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악화시킨다.

불탄 자리에 참나무 먼저 자라

산불은 피해 이전에 존재했던 수종을 태우고, 또 그 생육기반인 토양의 물리화적성질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수종 구성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강원대 정연숙 교수는 강원도 지방의 소나무숲에서 산불이 난 뒤 그대로 방치하면 4수종의 참나무류(굴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순으로)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80%)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정교수는 불탄 소나무 숲에 이들 참나무류가 가장 많이 출현하는 이유로 소나무군집의 아교목층(키큰 나무로 자라는 단계에 있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나무들)을 우점하고 있던 참나무들의 맹아(움)생산능력이 다른 수종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교목층(키큰 나무)을 차지하고 있던 소나무는 맹아로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비록 숲바닥에 떨어진 소나무 종자가 발아해서 새롭게 싹을 틔운다고 해도 맹아로 재생한 참나무류의 빠른 생장속도에 억압을 받아 도태된다고 한다.

임업연구원은 최근에 고성 산불피해지를 방치했을 경우, 산불발생 1년 후에 참나무의 맹아는 초본층에 나타나고, 산불 발생 2년 후부터 맹아간에 경쟁이 시작되며, 산불발생 3년 후에는 관목층(키작은 나무)을 이루게 된다고 생태계 변화 조사결과를 밝힌바 있다. 이런 결과와는 달리, 미국 서부지방의 고지대에 산불이 나면 자작나무나 사시나무 같은 나무들이 불탄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들 수종은 종자가 가벼워 비교적 먼 거리까지 바람으로 종자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발아지연(serotiny) 특성을 가진 소나무들(jack pine, lodgepole pine, pitch pine)은 오히려 산불을 이용해 자라나기도 한다. 이들 소나무들은 보통 때 솔방울이 단단하게 닫혀 있어서 쉽게 종자를 틔울 수 없다. 그러나 산불이 나면 수지성분으로 닫혀있던 솔방울이 높은 온도 때문에 벌어져 종자를 방출하고, 마침내 싹을 틔울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그래서 산불은 이들 수종의 분포를 지배하는 중요한 영향 인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소나무 숲은 산불이 지난 뒤에 동일한 수종이 일시에 싹을 틔워 숲을 이루기 때문에 동령단순림(나이가 같은 단순림)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처럼 산불은 산림생태계를 교란시켜 수종의 조성이나 군집구조를 변화시키며, 종국에는 식생군집의 천이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산불은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산불의 종류에 따라, 화염의 강약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나무의 잎과 가지까지 태우는 수관화가 발생한 지역의 피해는 막심하지만 지표면의 낙엽류만 태우는 지표화가 지나간 곳은 피해가 경미한 경우도 있다. 산불피해가 심한 지역은 대부분의 나무들이 1-2년 내에 고사하지만 경미한 지역은 그루터기에서 맹아가 발생해 새로운 숲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피해지에 따라 모자이크 식으로 식생의 천이단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천이형태는 숲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산불은 생물다양성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산불이 생태계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 여름 호우로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지역은 사방공사를 우선적으로 실시해 산불피해지에 대한 응급복구에 임하고 있다.


인공복구냐 자연복원이냐

산림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에 따라 산불피해지의 복구방안도 제각각이다. 먼저 산림전문가는 급경사지나 암석지, 그리고 생태계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주능선, 계곡, 조림지 외곽지역은 자연회복을 유도하고, 토사유실 위험 정도, 산불피해 정도, 산주들의 요구 및 경제림 조성측면을 고려해 나머지 지역은 인공복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식생, 지형, 지질, 기후, 임지의 생산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인공복구대상지와 자연회복 대상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전문가는 현재 성숙해가고 있는 우리 숲의 구조가 자연복원능력이 있기 때문에 조림을 할 경우보다 자연복원 하는 것이 생태계를 더 빨리 안정화시키고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산불피해지 복구 정책은 조림복구보다는 원칙적인 자연복원정책을 취하되, 현지 주민의 의사와 경제적 기반조성의 측면에서 불가피한 곳만 조림하라는 것이다.

초지전문가는 산불피해지에 먼저 목초씨를 뿌려 회복시킨 후 가축의 방목장으로 이용하다가 가축의 배설물로 토양이 어느 정도 비옥해진 후 조림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 3가지 의견 중 산림전문가와 생태전문가의 주장은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

먼저 산림전문가는 ‘모든 산불피해지는 인공적으로 복구해야 된다’는 종래의 고정관념을 하루빨리 깨뜨릴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숲의 여건이 민둥산을 녹화하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실시했던 조림과 사방사업 덕분에 우리 숲의 구조는 자연회복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됐다. 특히 소나무 숲 밑에서 때를 기다리는 아교목층의 참나무류가 번성하는 산지가 많아졌다. 그래서 산불피해지는 참나무류 맹아로 숲을 자연회복 시킬 수 있게 됐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인공조림보다 자연복원지구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산지의 지형과 기후와 토양과 식생경쟁이 천태만상이고 산불피해지 또한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정된 시험지역에서 단기간의 연구 결과를 영동지방 산불피해지 대부분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산림전문가들은 산불피해지의 생태계는 참나무의 맹아로 더 빨리 자연 복원된다는 생태전문가들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하지만 생장이 우수한 맹아일지라도 산불피해를 입은 그루터기가 쉽게 썩기 시작하므로, 다 자란 참나무라 하더라도 밑둥치는 썩어있는 채 임산물로서 가치가 없는 참나무 숲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목재는 적어도 금세기에는 필요불가결한 자원이 될 것이다. 특히 외국산 목재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의 실정에서 생물다양성 못지 않게 임산물 생산의 중요성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동해안 산불피해지 산림은 우리나라 최대의 우량형질 금강소나무 생산 농장이었으며 송이 생산 농장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산림관계자는 조림면적에 집착하지 말고 목재생산에 경제성이 있는 임지에 한해서 집약적으로 조림과 육림을 실시하는 한편 산불피해지에 살아남은 참나무류의 맹아를 적절히 이용해 소나무와 참나무의 혼효림을 유도할 수 있는 육림방법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산불피해지에 초지를 조성해 가축을 방목한 후 토양이 비옥해지면 나무를 심자는 의견은 우리 나라 지형, 기후, 토양, 식생경쟁을 고려할 때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우리는 과거 외국산 목초로 초지 조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영동지방 산불피해지는 토양이 척박하고 경사가 심할 뿐만 아니라 기상조건 또한 겨울철 혹한과 강풍, 여름철의 고온과 한발 등으로 목초생육에 경제성이 없다. 경북대 임학과 홍성천 교수는 산지사방의 기초단계인 억새류, 솔새, 개솔새 등 척박지에 강한 향토초류로서 토사유출의 위험이 높은 피해지를 덮는 것이 생태계의 교란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폐지를 조기에 회복시킬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영동지방의 산불피해지 복구 방안은 자연복원을 주장하는 생태전문가의 의견과 인공복원을 주장하는 산림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수립해야 할 것이다.

아카시아 꽃피면 발뻗고 잔다

해마다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월 초순부터 5월 초순까지가 흔히 말하는 산불조심 기간이다.특히 4월은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로 올해의 산불도 4월에 절정을 이루었다.산불전문가들은 이번 고성,강릉,삼척지역의 동해안 산불처럼 유독 동해북부지방에서 산불이 맹렬했던 것은 지형적 특성에 따른 습도와 바람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떠어진 때문으로 풀이한다.

습도와 바람의 합작

바람은 한겨울에 가장 세게 불지만 이때에는 눈이나 비가 내려주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편이다.그런데 초봄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봄가뭄'이라고 불리는 가뭄이 계속되면서 습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전국적으로 연일 건조주의보가 발령된다.특히 산림청에서는 실효습도(당일과 전날의 상대습도에 가중치를 부여해 얻은 평균습도)가 40% 이하, 최대풍속이 7m/초이상,산불위험지수(나무의 마른 정도,실효습도,일조량,강수량 등을 종합해 구함)가 80을 넘을 때 산불위험 경보를 발령한다.이번 산불이 일어난 4월 중순까지 50일 넘게 계속해서 건조주의보가 발령되는,최근 10년간 가장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특히 강원지역은 지역적 특성으로 봄에는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돼 봄철에 산불위험지수가 90을 넘는 일이흔하다.옛날 우리 조상들이 바싹 마른 쑥을 비벼 부싯돌로 불을 붙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마른풀은 작은 불꽃에도 불이 붙고 만다.강원지역의 초목은 언제든 불꽃만 있으면 산불로 번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건조한 날씨와 함께 이번 산불을 키운 것은 바람이었다.동해안 지역은 해륙풍이 늘 불고 있는 바람이 많은 지역이다.특히 이 지역에서는 4월이 되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영서지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건조해지는 유사 푄 현상(푄 현상은 영동지역에서 영서지방으로 바람이 불면서 영서지역에 건조한 날씨를 만드는 현상이다)이 생긴다.그리고 산맥을 넘어간 바람은 갑자기 낮은 지대와 바다를 만나면서 수직으로 내리꽂듯이 불게 된다.이 지역에서는 이를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양간지풍'이라 부른다.양간지풍은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하며 평균풍속이 초속 15-20m에 이르고 순간최대 풍속이 초속 40m에 이르기도 하는 강풍이다.

이런 조건에서 발생한 산불은 사람이 접근할수 없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고,강한 바람으로 인해 소방헬기조차 뜰 수가 없었다.또한 불꽃은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면서 마치 쥐불놀이 하듯이 동시 다발적으로 퍼져갔다.특히 삼척지역의 산불이 약1.6km폭의 강물이 흐르는 계곡을 뛰어넘어 울진 지역으로 퍼져가면서 원자력발전소를 위협하자 전문가들은 경악했다.전문가들은 산불이 강을 경계로 더 이상 남하하지 않으리라고 믿었지만 불꽃은 바람을 타고 강을 훌쩍 건너뛰어 울진 지역으로 번졌다.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간 아주 작은 불씨들도 바싹 말라있는 풀을 쉽게 발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맹렬했던 산불은 5월에 들어서면서 거의 소식이 없어지고 있다.왜 그럴까.동해안지역 시군의 삼림과 직원이나 산림감시원들 사이에서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발뻗고 잔다'말이 있다.5월이 되면 습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초목의 잎들이 피어나고 산불발생 위험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산림관계자에게는 아카시아 꽃이 피어야 비로소 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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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영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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