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만약 산소 반응성이 두배 높아진다면?

주변은 늘 불바다, 삶의 속도도 두배

 

옥텟 규칙에 따라 이중결합을 하는 산소 분자가 단일결합을 하겠다고 고집피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아마도 연소와 같은 산화 반응이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다.몸 속의 연소 반응도 빨라져 평상시보다 더 빨리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귀족기체들의 출현

봄철에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산불은 큰 걱정거리다. 다른 경우와 달리 산불은 규모가 크고 좀처럼 끄기 어렵다. 하지만 공기의 21%가 산소라는 사실과 산소가 어떤 물질을 태우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몸 안에서도 연소가 일어난다. 사람이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원해서가 아니라 질소보다는 적게 들어있지만 화학적으로 활성이 높은 산소 때문이다. 산소를 이용해 음식으로 섭취한 탄수화물을 연소시켜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고 보면 몸 속에서 일어나는 연소는 산불에 비하면 상당히 천천히 일어나는 것 같다.

산소의 반응성이 지금보다 빠르거나 느리다면 어떨까. 산소의 반응성이 지금보다 두 배정도 높다면 주변은 늘 불바다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물질들이 산화물로 존재할 테고, 심지어는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금반지도 얼마 안 가서 녹슬지 모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공기 중에 산소가 별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달리 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면들을 생각해 보면 산소의 반응성이 지금 정도인 것이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 산소의 반응성은 어떤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반응성이 전혀 없는 비활성기체로부터 얻어진다.

19세기 후반 가장 뛰어난 과학자 중 한사람이었던 영국의 레일리는 1882년 기체의 밀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려고 했다. 그 이전인 19세기 초반 영국의 프라우트는 모든 기체의 밀도가 수소 밀도의 정수배인 것 같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레일리는 프라우트 가설의 진위를 가려내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수소의 원자핵인 양성자들이 모여 다른 원소들을 만드는 것이니 만큼 프라우트의 가설은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자핵에는 양성자 뿐 아니라 중성자도 들어있기 때문에 프라우트의 가설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성자는커녕 양성자와 전자도 발견되기 전인 당시로서는 프라우트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동료 화학자인 램지의 조언에 따라 암모니아를 태워서 얻은 질소의 밀도와 공기 중의 산소를 뜨거운 금속에 결합시켜 제거한 후 얻은 질소의 밀도를 비교한 레일리는 공기로부터 얻은 질소가 0.5% 정도 더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결과 공기의 0.93%를 차지하는 아르곤을 분리해냈다. 아르곤의 원자량은 40으로 질소의 분자량(28)이나 산소의 분자량 (32)보다 많기 때문에 1% 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공기로부터 얻은 질소와 암모니아로부터 얻은 순수한 질소의 밀도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1894년에 레일리와 램지는 아르곤의 발견을 발표했다. 그 다음 해에 태양의 스펙트럼에서 처음 발견됐던 헬륨이 우라늄 광석에서 발견됐다. 램지는 공기에 아르곤보다 훨씬 작은 양이 들어있는 네온, 크립톤, 크세논도 차례로 발견해 주기율표에 새로운 족을 추가했다. 이 원소들은 화학적 활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0족 원소로 불렸다. 남들과 상종하기를 거부하는 고상한 0족 원소들은 귀족기체(noble gas)라고도 불렸다. 인간 세계에서 귀족들은 유유상종한다는데 원소 세계의 귀족들은 철저하게 고독을 즐기는 모양이다. 비활성기체의 발견으로 레일리는 1904년 노벨 물리학상을, 램지는 같은 해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결합 원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반응성이 거의 없어 0족 원소로 불리는 비활성기체의 발견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19세기 초반 돌턴의 원자설과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나오고 화합물에 들어있는 원소의 성분이 측정되면서 원소들이 어떤 규칙에 의해 결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산소는 항상 양손을 사용해서 두개의 결합을 이루고, 수소는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었는지 항상 한 손만 가지고 결합을 이룬다고 생각됐다. 따라서 수소 둘이 만나서 손을 잡으면 더 이상 손을 잡을 여지가 없어진다. 산소 둘이 만나면 자연스럽게 두 손을 마주잡는다.

그러니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어떻게 결합해서 물을 만들지는 자명하다. 탄소는 손발을 다 사용해서 네 개의 결합을 이룬다. 탄소 하나는 네 개의 수소와 결합해서 메탄을 만들고, 두개의 산소와 결합하면 이산화탄소가 된다. 이를 두고 결합수(여기에서 수는 손을 뜻한다; 結合手)가 수소는 하나, 산소는 둘이라고 말한다(그림 1).
 

(그림1)19세기 초반 우너소들의 결합에 대한 생각^수소는 한손,산소는 두손,그리도 탄소는 손과 발 4개를 이용해 결합한다.원소에 따라 고유의 결합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따라서 수소 둘이 각각의 손을 잡고(H₂),산소 둘이는 두손을 맞잡고(O₂),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산소의 두 개의 팔이 수소의 각각의 팔을 잡아 물(H₂O)을 만든다고 여겼다.이것은 1897년 전자가 발견되고 분자들의 결합원리가 밝혀지면서 훨씬 간단하게 설명됐다.


한편 1860년대 말에 러시아의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이 주기율표에 따르면 수소는 1족, 탄소는 4족, 그리고 산소는 6족에 속하는데 탄소와 산소의 결합수가 각각 4와 2인 점을 생각하면 족의 수와 결합수의 합이 8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5족인 질소의 결합수는 3이고, 7족인 플루오르나 염소의 결합수는 1이다. 이쯤 되면 비활성기체에 대해서도 뭔가 짐작이 가지만 전자가 발견되기 전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발표할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0족 원소들이 발견되고 이어 1897년에 전자가 발견되면서 갑자기 소경이 눈을 뜨듯이 모든 사정이 쉽게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7족의 플루오르가 미친 듯이 반응을 하는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네온처럼 자기도 귀족이 되고 싶어서이다. 전자를 하나만 얻으면 네온과 같이 될 수 있는 플루오르는 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는 수소 원자와 연합해 플루오르화수소(HF) 분자를 만든다. 수소 좋고 플루오르 좋은 공유결합을 활용해서 족의 수 7에 결합수 1을 보태 8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네온에서 두 족이 떨어져 있는 6족의 산소는 둘의 결합수를 가져야 8이 되고, 4족의 탄소는 결합수가 4이어야 한다(그림 2).


(그림2)옥텟규칙^맨 바깥 전자껍질에 8개의 전자가 채워져 있으면 화학적으로 안정하게 된다는 것을 옥텟규칙이라고 한다.비활성기체인 헬륨,네온,아르곤,크립톤,크세논은 이미 최외각 전자껍질에 8개의 전자가 있으므로 다른 물질들과 반응하지 않는다.즉 화학적으로 안정하다는 말이다.

 


8은 모든 원소들의 이상향

이러한 원리는 공유결합뿐 아니라 이온결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족의 리튬이나 나트륨이 전자 하나를 치워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동기도 7족의 플루오르나 염소가 전자 하나를 얻어서 귀족이 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를 바 없다(그림 3). 주기율표를 둥글게 말아서 머리에 맞는 왕관을 만들어보자. (이마 부분에 Ne,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Li, Be, B, C, N, O, F를 표시, C가 뒤통수에 오도록 하고, Ne 기호 위에 별 같은 것을 붙여서 귀족임을 나타내보자) 그리고 보면 산소나 플루오르는 전자를 얻어서 0족으로 가는 편이 쉽지만 1족의 리튬(Li)이나 나트륨(Na)은 전자 하나를 누구에게 줘버리면 쉽사리 바로 옆의 0족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속 나트륨에 염소 기체를 흘려주면 격렬하게 반응해서 소금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일은 공유결합이나 이온결합을 하는 모든 원소들이 귀족기체(noble gas)를 꿈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8이라는 숫자는 모든 원소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인 듯하다. 이처럼 8이라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원소 세계의 법칙을 옥텟 규칙이라고 한다. 도에서 도까지 여덟 음계를 옥타브라고 하듯이 옥타는 8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주기율표의 발견으로 시작된 근대 화학은 비활성기체의 발견으로 주기율표가 완성됨에 따라 이해의 폭을 한 단계 높이게 됐다. 알고 보면 어떤 원소들이 같은 족에 속하는 이유는 그들이 비활성기체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전자의 수가 같기 때문이다. 또한 옥텟 규칙은 화학 결합을 이루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자들이 원자로서 존재하지 않고 분자를 이루는 화학의 기초적인 원리를 제공한다. 네온에서 전자 두 개가 부족한 산소는 그 상태에서 만족하지 않고 둘이 손을 맞잡아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산소는 원자로 존재하지 않고 이중결합을 이룬 분자로 존재한다.

 


단일결합의 산소분자, 빠른 산화반응

모든 원소가 헬륨이나 아르곤처럼 반응성이 없다면 자연은 1백 종류 정도의 원자들이 뒤섞인 상당히 단순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2천만 종류의 화합물로 대변되는 자연의 다양성은 원자들이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옥텟이라는 이상향을 찾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원소들이 옥텟 규칙에 권태를 느끼고 행동 양식을 약간 바꾼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옥텟 규칙이 잠시 동안이라도 깨어진다면 지금의 모든 물질 세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일례로 산소가 이중결합을 이루는 대신 단일결합을 이룬다고 해보자. 그러면 주위에서 연소와 같은 산화 반응이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다. 공기 중의 산소가 산불을 일으키려면 우선 이중결합이 깨져야 한다. 그런데 이중결합은 단일결합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산불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산화반응이 쉽게 일어난다면 항상 가스 폭발과 같은 화재의 불안을 떠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몸 속에서 일어나는 산화반응이 빨라지면 어떻게 될까.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는 2백년 전에 “촛불이 보통의 공기에서보다 산소 속에서 훨씬 빨리 타버리는 것처럼, 사람도 순수한 산소 속에서는 너무 빨리 살아버리기 때문에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사람도 옥텟 규칙을 거역하는 산소 속에서는 너무 빨리 살아버리기 때문에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 원소들이 옥텟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이래저래 아주 다행한 일이다.


(그림3)주기율표로 보는 이온결합^원소를 원자번호의 순으로 가로로 나열하면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이 세로줄에 나타난다. 원소의 화학적 성질은 그 원자의 맨 바깥 전자껍질의 전자인 원자가 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원자는 항상 비활성기체와 같은 전자배치를 해 안정하게 되려는 화학결합을 한다. 이온과 이온 간의 결합도 옥텟 규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1족에 속하는 나트륨 같은 우너자는 전자 1개를 쉽게 내놓고,17족에 속하는 염소는 전자 1개를 받아들이므로 서로 쉽게 결합한다.또 2족의 마그네슘은 전자 2개를 내놓고 +2의 양이온으로,16족의 산소는 전자2개를 받아들여 -2의 음이온으로 돼 둘은 쉽게 결합한다.이 모두가 원자가 전자를 8이 되도록 하면서 이뤄지는 현상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희준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