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한 후 수십억년의 세월 동안 식물들은 수많은 종류의 위협에 처해 왔다. 하지만 식물종의 감소가 지구차원에서 그리 큰 문제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인구 증가와 공업화로 많은 식물종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1996년 국제자연보존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많은 식물종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열대림은 이미 67%가 파괴됐다.
사라진 이유부터 알아야
우리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약 4천여종의 식물들 중 상당수가 자생지에서 감소하고 있다. 현재 자연환경보전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식물은 돌매화 등 멸종위기식물 6종, 한계령풀 등 보호종 52종이 있으며, 산림청에서는 가시연꽃을 비롯한 희귀식물 2백17종을 선정해 지속적인 보전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섬시호는 자생지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판단되는데, 어느 곳에서도 살아 있는 개체를 확보할 수 없어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정부는 1970년대 초에 미선나무를 시작으로 지리산 제석봉의 구상나무, 덕유산의 주목림, 울릉도의 고추냉이 등을 복원해왔다. 특히 산림청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군산 청사조, 북한산 산개나리 등 모두 10종에 대해 활발히 복원을 실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원서식지에 단순히 옮겨 심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미 파괴됐거나 훼손된 특정 야생식물을 원래 서식처에 다시 도입하는 식물 자생지 복원은 식물보존을 위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옮겨 심는 것은 무턱대고 동물을 방사하는 것과 같다.
식물을 제대로 복원시키기 위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정확한 식물종을 구별해내는 일이다. 자칫하면 ‘무늬만 같은’ 전혀 다른 식물을 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서식지에 대한 조사이다. 멸종위기동물의 자연방사와 마찬가지로 우선 멸종원인을 알아야 한다. 산이 깎이는 등 서식지가 물리적으로 파괴돼 식물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꽃가루받이를 방해하는 요인이 생겼거나, 숲이 너무 우거져 태양광선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에게 광선이 차단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멸종원인을 없애고 나서야 비로소 식물을 옮겨 심을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은 식물에게도 중요하다. 그래서 복원을 위한 식물의 증식은 종자를 통해 시행하는 것이 좋다. 종자마다 다양한 유전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멸종위기식물은 대부분 식물원에서 일부만 남아있다. 이런 경우 복원에 충분한 양의 종자를 얻기가 어려우므로 조직배양, 꺾꽂이 등의 증식방법이 사용된다. 마치 제몸을 조금씩 떼어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증식된 식물들은 유전적으로 모두 같은 개체인 셈이다. 그래서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인공변이를 유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복원 규모의 결정이 필요하다. 많을수록, 다양할수록 좋겠지만 인력과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해, 식물이 유전적인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규모를 계산해내야 한다.
DNA분석도 동원
영국은 1981년 멸종위기생물복원을 법적으로 제도화해 야생식물 62종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설문조사를 통해 복원이 시급한 식물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한 뒤, 그 식물에 대한 분포, 생태에 대한 기초조사, 서식지의 상태와 위협요인에 대한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적절한 복원방법과 관리방안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식물의 생리적, 생태적 연구는 물론 DNA분석과 교배실험, 자생지 토양분석 등 체계적인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생겨나면서 희귀식물, 멸종위기식물을 선정하고 이를 보전하는 노력이 체계화되고 있다.
멸종위기식물의 복원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늦었다고 생각될때가 가장 빠른 때다.지금부터라도 사라져 가는 식물을 하나하나 되살린다면 더 많은 꽃과 나무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