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너무 신중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을 거라고 평가를 받는 사람. 바둑을 배우기 전에 50여권의 책을 독파한 후 대국을 할 정도로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완벽주의자. 97년 맥아피사 빌 라르슨 회장이 1천만 달러 이상에 연구소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한 인물. 그가 바로 안철수 박사(38)다.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 안철수 박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이한 이력과 더불어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순수 패키지 소프트웨어 업체로 매출액 1백억원이 넘는 회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만의 독특한 경영방침이 있을 텐데. 너무 평범해 독특한 것일까. 이 연구소는 정직, 성실, 공부하는 자세를 신입사원 채용 기준으로 삼고 있다. 조직과 재무 관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마케팅 영업은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공격적으로 계획을 짠다는 것이 비결 같지 않은 비결이다. 너무 모범적인 답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가 된다. 과학자가 꿈이었지만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의대로 진학했을 정도로 그는 모범생이다.
인생궤도 수정시킨 컴퓨터 바이러스
그렇다면 의사의 길을 가던 의학박사가 어떻게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됐을까. 1982년 의대를 다니던 시절 우연히 친구 하숙방에서 만난 컴퓨터에 빠져들어간 것이 계기다. 그때 안박사는 컴퓨터와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을 자신의 유일한 재주로 생각한 안박사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덕분에 어느덧 안박사는 컴퓨터세계의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이때 그의 인생 궤도를 수정시키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1988년 파키스탄의 프로그래머에 의해 제작된 ‘브레인’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공교롭게도 그의 디스켓에 침입한 것이다. 애써 모아둔 자료가 모두 날아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안박사는 할말을 잃었다. 별것도 아닌 작은 프로그램이 공들여 모아 놓은 파일을 한순간에 못쓰게 만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그는 악성 프로그램들을 퇴치할 방법과 예방할 방법을 강구한다. 의사가 질병을 다루듯 이렇게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V3’시리즈다. 이제 V3시리즈는 10여종으로 불어나 바이러스가 침입하려는 통로마다 컴퓨터를 보호해주는 근위병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안박사가 아무리 사회적 공익을 염려했더라도 의사라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중소벤처기업의 프로그래머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도 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고 싶은 일이 필요하고 옳은 것이라면 단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결정을 믿어준 부인과 부모님의 성원도 큰 힘이 됐다.
안박사는 먼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자신의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새들은 알을 품어 새끼를 깐다는 말을 듣고서 메추리알을 품고 잠이 들었던 소년의 탐구심은 범상하지 않았다. 만화책을 많이 읽어 우주과학자가 돼 악당들을 물리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공학도가 되고 싶어했다. 중학교 때는 ‘학생과학’과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를 애독하면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학생과학’의 ‘나의 공작실’이란 코너에 설계도를 응모해 라디오를 선물 받기도 했으며, 부산 시내 과학경진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여기에다 쓸만한 모든 물건을 분해하는 재주도 있었다. 남몰래 공학도로서의 수업을 차근히 받아왔다고나 할까.
행복은 하고 싶은 것을 잘 하는 것
안철수 박사는 스스로를 책을 읽으면서 만들어진 인물로 평가한다. 책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다듬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어하는 일, 그리고 잘하는 일’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힘있게 말한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탐구하라는 것이다. 교육에 의해 선입관이 생기면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말하는 전망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안철수 박사는 현재 경영자로서 힘든 일도 많지만 무엇보다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해야 모르는 것이 생기고 그래야 겸손해지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훌륭하다고 평가해도 자만하지 않고 중심을 갖고 정상의 길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원칙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