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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제 관심은 평화적 이용방안에 모아져

폐기시대의 핵무기


원자력은 생태계와 더불어 공존할 수 있을까? 사진은 란초 세코원전 주변에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광경


그동안 핵무기제조에 쓰였던 엄청난 양의 핵연료들이 재활용처를 찾고 있다.

50년대 초부터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던 미국과 소련에서 최근 핵감축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먼저 일방적으로 단거리 핵폐기를 선언한 후, 이에 답하듯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도 단거리 핵을 폐기하기로 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항공기 탑재 핵무기까지도 폐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해빙무드는 모든 인류가 가장 위협적인 핵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할만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이래 지속적으로 대치상태에 있으면서 핵의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위협을 받아왔다. 최근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조바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강대국들이 자진해서 핵무기의 감축을 선언하고 나와 중국과 북한도 이에 동조해 주기를 진심으로 원하면서 그동안 핵무기제조에 사용됐던 엄청난 양의 핵원료들이 폐기될 경우, 그 활용 방법을 찾고 평화적인 이용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발전용 원자로의 농축도는 20% 이하로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무기의 위력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가미가제특공대와 같은 자살특공대의 무차별한 공격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던 미국이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원자폭탄을 개발, 일본에 투하한 당시만 해도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까지도 그렇게 많은 인명을 순식간에 죽이고 폐허로 만들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차례에 걸친 원폭의 투하로 새삼 엄청난 파괴력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개발중지로 이어지게 됐다.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연구진들이 앞장서서 핵무기사용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했으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적극적으로 결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49년 소련이 최초로 핵실험을 시도함으로써 그 양상이 크게 변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핵무기의 개발이 경쟁적으로 가속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의 핵전략은 공격적인 개념에서 방어적인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서로 더 많은 수의 핵무기를 보유해야만 전쟁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핵무기의 개발은 필수적이었다.

'대량보복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만일 핵무기로 공격을 받게되면 도저히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핵무기로 보복공격을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공격을 자제하도록 위협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으로 60년대 초에는 이미 양대진영의 핵무기 수가 5만기에 달하는 군비확산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런 군비확산경쟁은 결국 지나친 국방비를 요구하게 되었고 국가경제를 뒤흔드는 상태까지 이르렀으며, 그러면서도 서로가 큰 위협을 느끼게 되어 군비감축논의가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런 결과 1970년에는 강대국들이 주축이 되어 핵무기의 개발을 억제하자는 '핵확산 금지조약'이 조인됐다. 이 조약은 핵무기의 추가생산은 물론이고 원천적으로 핵물질의 원료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의 생산까지 제한했다. 즉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로는 차츰 배제시키고 대신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도록 설계변경을 요구했으며, 발전용 원자로는 아예 20% 이상의 농축도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 원칙에 동의해 협조하고 있으나 중국 북한 이라크 등 몇몇 국가들은 핵무기의 개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핵잠수함^폐기된 핵무기에서 얻어진 핵연료는 핵잠수함의 연료로 쓰일 수 잇다.


고농축돼야 핵무기의 원료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핵무기의 원료는 핵분열반응을 거치면 다량의 열에너지가 생성되는 물질이어야 한다. 이런 특성을 갖춘 핵물질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들 수 있다. 우라늄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들중 가장 무거운 원소인데, 질량이 235인 동위원소와 238인 동위원소, 두가지가 있다. 이들 동위원소중 질량이 235인 우라늄 동위원소는 어떤 에너지의 중성자와 반응해도 핵분열반응을 잘 일으키지만 다른 동위원소(우라늄 238)는 중성자의 입사에너지가 높아야만 핵분열이 일어나고 반응시 생성되는 에너지의 양도 많지 않아 핵무기의 원료로는 적합치 않다. 그러나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라늄을 채취하면 우라늄 235는 기껏 0.7%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복잡한 농축과정을 거쳐 우라늄 235의 함유량이 93% 이상돼야 핵무기와 같은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우라늄원소가 중성자와 반응, 핵분열을 일으키면 한번의 핵분열에서 대략 2백MeV 정도의 에너지가 생성되며 동시에 2, 3개의 중성자가 튀어나온다. 이렇게 발생된 여분의 중성자들이 남아있는 핵물질과 다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면서 연쇄적으로 또 기하급수적으로 반응이 계속된다. 하나의 핵반응이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7}$~${10}^{-8}$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므로 만일 연쇄반응을 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1초동안에 7x${10}^{15}$J의 에너지가 발생되는 셈이다.

핵폭탄은 바로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발생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며, 실제로 핵폭탄이 가지고 있는 총질량을 고려 한다면 그 폭발력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핵폭탄은 이런 열에너지에 의한 피해도 엄청나지만 핵분열시 부산물로 발생되는 방사선량도 엄청나기 때문에 그 피해는 가중된다.

또 다른 핵연료인 플루토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원소로 질량이 239에서 242까지 분포되는 핵물질이다. 우라늄 238에 중성자를 반응시키면 우라늄 238은 핵분열을 일으키기 보다는 중성자를 흡수해 복합핵을 형성시킨다. 플루토늄은 바로 이 복합핵이 붕괴되면서 만들어진다. 플루토늄 동위원소들 중에서 홀수 질량을 갖는 239와 241 동위원소는 우라늄 235보다 더 좋은 핵특성을 나타내며, 핵무기에는 이런 홀수질량을 가진 플루토늄이 사용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핵연료가 연소될 때 발생하는 우라늄 238의 변환에 의해 상당한 양의 플루토늄이 생성될 수 있으며, 타고난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순도(純度)가 비록 낮지만 일정량의 플루토늄을 얻어낼 수 있으므로, 핵확산 금지조약 문안에는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금지돼 있다.

세가지 방안을 떠올릴 수 있어

핵무기의 제조원리는 이해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핵물질에 중성자를 반응시키면 그 자체로 폭탄이 된다. 이것은 마치 화약을 쌓아 놓고 불을 당기면 폭발하는 것과 같다. 이때 핵물질은 화약이고 중성자는 불에 해당된다. 문제는 핵무기는 폭발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만드는 도중에 또는 운반과정에서 터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제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핵무기를 만든다면 그 무기는 상대방 진영까지 안전하게 운반돼야 하고 또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떨어져 목표물을 중심으로 폭발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제조하는 측에서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흔히 핵무기는 만들기보다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핵무기는 이중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보관되는 동안에는 자체폭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 임계질량에 도달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일단 발사한 뒤에 목표지점에서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려면 임계질량을 초과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보관할 때에는 핵물질이 분산돼 있다가 목표지점에서 일시에 모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강대국들도 고심하고 있다. 어떻게 핵무기를 비밀리에 보관하고, 불에 해당하는 중성자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킬 수 있는가가 늘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언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는 핵폭탄을 보유하면서 행여 자기 진영에서 터질까봐 전전 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며, 항상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의 폐기는 사실상 양대진영이 서로 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균형이 깨지면 상대방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쌍방이 같이 핵무기의 수를 줄여나가기를 원하는 상태다.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엄청난 경비를 요구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감축할 경우, 양 진영이 얻는 경제적인 이득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그 속에 들어 있는 고농축우라늄과 핵특성이 우수한 플루토늄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조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폐기되는 핵연료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보는 당장 가능한 활용방법으로는 다음의 세가지 정도가 요약된다.

첫째 고농축우라늄을 직접 활용하는 방안, 둘째 고농축우라늄을 희석시켜 저농축 상태로 바꾼 뒤 활용하는 방안, 셋째 혼합 핵연료를 개발해 플루토늄을 활용하는 방안이 그 것이다.

추정컨대 단거리핵폐기로 인해 사용 가능한 핵원료의 양은 15만t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우라늄의 과잉공급이 이뤄져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원자력발전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원자력발전소의 발전단가는 더욱 저렴해질 전망이다.

먼저 고농축우라늄을 직접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알아보자.

1979년 국제 핵주기평가회의에서는 핵물질의 도난을 방지하고 또 핵물질이 잘못 사용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농축도 20% 이상의 핵물질을 사용하던 기존의 원자로에 대해 농축도 20% 이하의 핵연료를 쓸 수 있도록 설계변경을 하라고 요구 했다. 아울러 몇몇 연구용 원자로에서도 점진적으로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이후 고농축핵연료를 쓰는 원자로들은 점차 건설이 중지됐다. 뿐만 아니라 고속증식로에서도 농축도 20% 정도의 핵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가 변경됐다.

만일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되던 고농축우라늄을 재활용하려면 과거에 구체적으로 설계됐다가 건설이 중지됐던 원자로형의 도입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아울러 폐기된 핵무기에서 얻어진 고농축 우라늄은 연구용 원자로에도 활용할 수 있으므로 그 부문의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고전환원자로 고속증식로와 같은 미래의 원자로형 개발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간단한 가공과정만을 거치면 고농축우라늄을 바로 재활용할 수 있다.

둘째로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시켜 저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뒤에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 되고 있다.

고농축우라늄을 불소가스와 혼합해 우라늄6화불소(${UF}_{6}) 기체로 바꾸고 동시에 천연 우라늄을 같은 공정을 통해 농축도가 낮은 우라늄화불소기체로 만든 뒤 몇 단계에 걸쳐 서로 섞으면 우라늄의 농축도를 낮출 수 있다. 대부분의 발전용 원자로는 기껏해야 3% 정도의 농축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폐기되는 핵무기에서 얻어진 고농축우라늄은 몇 단계의 희석과정을 거쳐야 핵연료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희석된 우라늄연료의 경우, 균질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까지 농축기술은 많이 개발됐으나 희석과정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농축과정보다는 쉬울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의 리망시 핵폐기물 처리장^ 사진은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수조다.


혼합 핵연료로도 활용가능

셋째 폐기된 핵무기 내의 플루토늄을 혼합 핵연료의 한 성분으로 쓰는 방안도 가능하다.

플루토늄을 원료로 사용한 핵무기가 폐기되면 고순도의 플루토늄이 많이 공급될 수 있다. 플루토늄은 앞에서도 언급이 됐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원소이기 때문에 약간의 다른 공정을 통해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로 전환시킬 수 있다.

지금 운전되고 있는 대부분의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산화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의 핵특성이 우월하기 때문에 산화플루토늄과 산화우라늄을 동시에 사용하는 새로운 핵연료를 개발하고자 하는 연구가 이미 진전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몇 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혼합핵연료를 시험중에 있는데 결과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혼합핵연료의 개발성과가 좋다면 곧 실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플루토늄의 가공이 약간 어렵다는 정도의 기술적인 문제가 있지만 곧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의 감축논의는 원자력시대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원자력은 양면성, 즉 원자폭탄과 같은 엄청난 폭발력을 내는가 하면 값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두가지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워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왔던 터였다. 핵무기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원자력은 인류복지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 우선 석유자원의 고갈이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볼 때 별다른 대체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원자력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여겨진다. 금년도 우리나라의 전체 전력생산량중 51%가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공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빈약한 국가의 경우, 원자력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느껴 진다. 우라늄자원도 1백년 정도분 밖에 없기 때문에 고갈을 우려해 왔지만 핵무기의 폐기로 많은 양의 핵원료가 공급될 수 있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인류가 핵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이다. 앞으로 단거리핵무기 뿐 아니라 장거리핵무기까지 완전히 폐기돼 지구상에서 핵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은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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