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트랜지스터에서 시스템온칩으로, D램에서 F램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디지털문명 시대의 주인공, 반도체. 이제 반도체는 우리들의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트랜지스터에서 출발한 반도체가 시스템온칩까지 발전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무선전신, 상대성이론, 플라스틱, 텔레비전, 진공관 컴퓨터 에니악, 트랜지스터, 최오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시험관 아기, 복제양 돌리 중 지난 20세기 문명 발전의 일등공신은 무엇일까. 어느 것 하나 사소하게 다룰 수 없지만 그 무엇보다 발전의 가속도를 붙인 것으로는 트랜지스터의 발명을 꼽을 수 있다. 왜냐하면 트랜지스터는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반도체 혁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도체는 어디에 있을까. 시계, 핸드폰,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비디오, 전자레인지 등의 모든 전자제품을 비롯해 컴퓨터와 같은 전산 기기와 공장의 자동제어기 등 이제는 반도체가 쓰이지 않은 곳을 찾는게 더 쉽다고 표현될 정도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일까.

불순물 이용해 전기전도도 변화시켜

대개 물질의 상태를 고체, 액체, 기체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전기적인 특성에 따라서는 구리, 금, 철과 같은 도체와 고무, 플라스틱, 나무와 같은 부도체, 그리고 이둘의 중간에 위치한 반도체로 나뉜다. 그렇다면 반도체에는 어떤 물질이 있을까. 다이아몬드, 규소, 게르마늄과 같이 1가지 원소로 된 반도체와 갈륨비소 같은 화합물 반도체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규소(실리콘)와 게르마늄. 반도체들은 낮은 온도에서는 거의 부도체와 같으나 상온에서는 약간의 전자들이 공유결합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전기전도성을 갖는다.

반도체 내에 불순물을 주입하면 더 많은 전하운반자(홀이나 전자)가 생기므로 전기전도도는 더 높아진다. 대개 전자나 홀의 농도는 불순물의 농도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전기전도도가 높은 도체를 두고 굳이 불순물은 넣어가면서까지 반도체를 이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도체는 전자의 수가 물질 고유의 값으로 일정해 전기전도도는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다소 감소하기도 하지만 거의 일정하다. 이에 비해 반도체는 불순물의 농도를 조절해 전기전도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불순물의 종류에 따라 전하운반자가 전자인 n형 반도체와 전하운반자가 홀인 p형 반도체를 각각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46년 1만8천개의 진공관을 달고 등장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위)과 1947년 최초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왼쪽). 현재의 보드(아래)를 보면 에니악은 매머드에 비유될 수 있다.


실리콘이 대접받는 이유

반도체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이 실리콘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1947년 발명된 트랜지스터에 쓰인 반도체는 게르마늄이다. 왜 게르마늄이 반도체 소재로 입지를 굳힐 수 없었을까.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게르마늄의 전자와 홀의 농도가 너무 높았고, 산화게르마늄이 불안정했으며, 습기에 녹아 상온에서 쓰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실리콘은 상온에서 잘 작동했으며 그 무엇보다 이산화규소라는 안정된 산화물이 존재했다. 이산화규소는 절연체로 전기장이 걸림에 따라 반도체와 절연체 사이로 전류가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도 않는 것을 이용하는 전계효과트랜지스터에서 꼭 필요한 물질이다. 물론 다른 산화물을 입혀도 되지만 실리콘을 산소와 반응시켜 이산화규소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소자 성능이 제일 좋다.

또 모래에 포함된 규소는 지각 물질 중 산소 다음으로 풍부해 값이 싸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근래에는 실리콘 이외에 고온에서도 트랜지스터로 작동하고 고전력을 내는 반도체 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규소와 탄소의 화합물인 탄화규소가 대표적인 예이고, 다이아몬드도 고온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으나 아직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반도체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소자가 바로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다. PN접합으로 이뤄진 다이오드가 정류작용을 한다면 트랜지스터는 증폭작용과 스위칭 작용을 한다. 이러한 트랜지스터에는 p형과 n형 반도체를 접합시켜 만든 접합트랜지스터와 반도체 위에 절연막를 입히고 절연막에 전기장을 가하는 전계효과트랜지스터(FET)가 있다. 이중 MOS라고 부르는 전계효과트랜지스터는 제조공정이 쉽고 직접도를 높일 수 있어 대규모 집적회로의 길을 열었다. 또 트랜지스터는 컴퓨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트랜지스터가 크기는 진공관의 2백20분의 1에 불과했으며 작동속도는 몇 배 빨랐고, 전력 소모도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진공관은 1904년 플레밍이 발명한 증폭기로 진공 유리관 속에 필라멘트와 전극을 마주보게 넣고 필라멘트를 가열해 만든 것이다.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이 바로 이 진공관을 이용한 컴퓨터다. 당시 1만8천개의 진공관을 지니고 있었던 에니악은 무게가 30t, 면적이 1백35m².

필라멘트와 전극 사이는 진공이라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가열된 필라멘트에서는 열전자가 튀어나온다. 전극이 +극이면 열전자는 전극으로 끌려와 진공을 이동해 전류가 된다. 그러나 전극이 -극이면 전자는 이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류작용이다. 3극 진공관에서는 2극 진공관의 +극과 -극 사이에 그리드를 둔다. 그리드에 가하는 전압을 조정함으로써 +극에 도착하는 전자의 양을 조정해 증폭효과를 얻는다.


실리콘 웨이퍼에 만들어진 반도체(왼쪽)와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가 조립된 모습(원안).


집적회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스템온칩

진공관에 비해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작은 것이 사실이지만 컴퓨터가 그 몸집을 줄이는데는 집적회로의 개발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란 실리콘 기판에 많은 수의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콘덴서 등을 만들어 넣어 일정한 회로를 만든 것이다. 과거엔 개별 소자들이 회로의 구성요소였으나 이제는 집적회로가 기본 요소가 됐다. 근래 상용화 된 256MD램이라는 것이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가 각각 2억5천6백만개씩 들어가 있는 대규모 집적회로다.

1960년대부터 실용화된 집적회로는 전자회로의 부피와 가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이 때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를 한개의 IC속에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인텔사가 1970년에 중앙처리장치를 수용한 집적회로를 만들었다. 이것을 마이크로프로세서라고 한다. 반도체 하면 흔히 메모리 반도체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쓰임새가 더 많다. 늘 사용하는 PCS를 포함해 모든 통신기기에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다 들어가 있다.

섬유의 오염상태를 스스로 판단해 세탁할 수 있는 세탁기, 가마솥처럼 밥을 기름지게 짓는 전기밥솥,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 등에는 마이크로 컴퓨터라는 것이 들어있다. 이런 마이컴 기능에 두뇌역할을 하는 것이 마이크로프로세서다. 마이크로 컴퓨터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기억부(RAM과 ROM), 그리고 입출력 제어부의 IC를 조합한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근래에는 손톱만한 크기의 칩에 그래픽, 오디오, 모뎀 등 각종 멀티미디어용 부품과 마이크로프로세서, D램 등 반도체가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온칩이 개발되고 있다. 시스템온칩이 개발되면 이제 커피메이커가 스스로 오전 6시에 커피를 끓이면서 주인의 스케줄을 알려주고, 슈퍼에서는 각 식품의 신선도를 알려주는 정보와 오염된 식품을 수시로 안내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반도체가 그려내는 미래다.


반도체는 쓰임새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진다(위). 반도체 회로 설계도(왼쪽)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4천배 확대한 사진(아래).


D램 대체하는 F램

반도체로 된 기억 소자 중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감있게 다가가는 것이 롬과 램이다. 롬은 인쇄된 책처럼 읽어내기만 하고 수록된 내용을 변경하거나 새로 기록해낼 수 없는 기억소자다. 하지만 데이터를 써넣을 수 있는 롬도 존재한다. 대개 컴퓨터를 켰을 때 부팅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프로그램이 롬에 기록돼 있다.

이에 비해 램은 녹음 테이프나 노트와 같이 그 위에 정보를 수록하거나 그 내용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전원을 끄면 모든 데이터가 지워져버리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HWP 파일을 실행하면 하드디스크에서 램으로 제어권이 넘어가면서 이때부터 소프트웨어는 램에서 동작한다. 하드디스크에서 동작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램은 D램이나 사실 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D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1비트의 정보를 기억하는데 1개의 트랜지스터와 1개의 커패시터가 필요하다. 커패시터의 충전 여부에 따라 데이터를 기억한다. 커패시터의 자연 방전을 막기 위해 수 ms(1ms=${10}^{-3}$s)마다 기억한 내용을 한번 읽어내고 재차 써넣어야 하므로 제어회로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구조가 간단해 집적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IC 한개당 기억용량을 크게 할 수 있어 가장 널리 쓰인다.

S램(Static Random Access Memory)은 D램과 달리 전원만 연결돼 있으면 칩 내부에 기록된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고 유지된다. 트랜지스터 4개와 커패시터 2개를 쓰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IC 한 개당 기억 용량은 크게 할 수 없으나 고속처리가 가능하고 저전력에서도 동작한다.

F램(Ferroelectric Random Access Memory)은 강유전체램으로 정보를 기억하는 커패시터에 강유전물질을 사용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강유전체는 D램의 커패시터에 넣는 이산화규소와 달리 전원이 꺼져도 계속 정보를 유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전하를 저장하는 커패시터에 강유전체를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현재 D램의 구조와 똑같다. 따라서 F램은 고집적, 초소형의 D램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대 노태원 교수팀이 발표한 비스무트 란탄 티탄 산화물(BLT)이라는 물질이 바로 F램에 쓰일 수 있는 강유전체 물질이다. 기존의 F램에 사용하던 강유전체 물질은 반복적으로 정보를 읽고 쓰면 성능이 저하되는 피로현상이 있는 단점이 있었다. 이 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바로 BLT다. 앞으로 F램은 고성능, 저전력을 요구하는 휴대용 PC나 이동통신 단말기, 그리고 스마트 카드에 널리 이용될 전망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도움

    윤의준 교수
  • 사진

    GAMMA 외

🎓️ 진로 추천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 반도체·세라믹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