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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은 붉지 않고 낮에 나온 달은 하현달

가요무대에서 불리는 흘러간 노래 중에 백난아씨가 부른 ‘찔레꽃’이 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고향에서 이별한 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다.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을 추억케 하는 찔레꽃은 예전에는 배고픈 어린 동무들의 간식거리였다. 보릿고개를 아는 어른들은 봄에 돋아나는 연한 찔레 순의 껍질을 벗겨 먹었던 일이 그립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하는 민중가요에서도 이 추억을 볼 수 있다.

붉은 찔레꽃은 없다

하지만 백난아의 '찔레꽃'에는 한가지 어색한 점이 있다. 찔레꽃에는 연분홍과 흰색꽃은 있지만 붉은 꽃은 없기 때문이다. 광릉수목원의 이유미 박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나무 백가지' (현암사)에서 찔레는 붉은 꽃이 없으며, 특히 따뜻한 남쪽지방보다는 중부지방에 흔해서 남쪽나라의 추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작사가는 어감상 어쩔 수 없이 "붉게 피는"이라고 한 듯하다. "연분홍으로 피는" 이나 "하얗게 피는"은 운율적으로도 안 맞고, "희게 피는"이라고 해도 "붉게 피는"보다는 어쩐지 어색하다. 이런 것도 '시적 허용'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시나 노래에서는 과학적으로 볼 때 오류가 적지 않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로 이어지는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민들레의 씨는 ‘홀씨’가 아닌 것이다. 홀씨는 식물학에서 다른 말로 ‘포자’라고 한다. 포자는 ‘다른 생식세포와 접합 없이 새로운 개체로 발생할 수 있는 생식세포’로 정의된다. 포자는 조류, 선류, 태류, 양치류와 같이 씨를 만들지 않는 식물에서 두드러질 뿐 종자식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민들레의 씨를 홀씨라고 부르는 것은 커다란 오류이다. 물론 포자로 번식하는 것들 중에는 바람을 이용해 멀리 날아가 퍼지는 식물들이 많다. 민들레 씨 또한 머리부분에 잔털이 달려있어 쉽게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간다. 아마 ‘홀씨는 바람을 타고 퍼진다’와 ‘민들레 씨도 바람을 타고 퍼진다’는 두 사실을 연결해 ‘바람을 타고 퍼지는 민들레 씨는 홀씨다’는 잘못된 결론을 만들어낸 것 같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가수 임주리가 불러 히트시킨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중년여성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노랫말의 의미는 너무나 시적이어서 약간의 오해마저도 감추어버린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처럼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팔꽃이 아침 햇살에 꽃잎을 벌렸다가 저녁때가 되면 속절없이 시드는 생리를 표현한 듯하다. 그러나 나팔꽃은 단 하루만에 지지 않는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꽃잎을 닫고 시들해지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생기 있게 며칠을 피고 시드는 일을 반복한다. 꽃잎을 닫고 시드는 것을 그냥 ‘진다’고 표현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일상어에서 꽃이 ‘진다’는 말은 ‘떨기가 떨어진다’는 의미가 강하다.

다만 옛사람들은 나팔꽃의 이런 생리를 상심의 눈으로 보면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져버리는 허망한 사랑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나팔꽃을 ‘아침의 영광’(모닝 글로리)라고 부르고, 꽃말처럼 ‘허무한 사랑’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겼다. 작사가는 아마도 나팔꽃의 생리를 사실대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꽃말에서 허무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따오고자 했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쨌건 나팔꽃의 사연을 알고서 이 노래를 부른다면 허무한 사랑이 더 깊은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김태곤씨가 부른 ‘망부석’이라는 노래의 2절에는 “깊은 밤 잠 못 이뤄/ 창문 열고 밖을 보니/ 초생달만 외로이 떴네”라는 구절이 있다. 엄밀성을 추구하는 과학에서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개념적으로 정확히 지시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비슷한 것들을 뭉뚱그려 한통속으로 표현하는 일이 많다. 반달만 하더라도 과학에서는 그것이 상현(오른쪽 반달)인지 하현(왼쪽 반달)인지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저 ‘반달’ 해버리고 만다. 동요 ‘반달’에서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이래요”로 표현된 반달은 과학적으로 보면 하현달이다. 하현달은 새벽녘에 떠서 낮에 보이고, 반대로 상현달은 초저녁에 떠서 밤에만 보인다.

초승달 또한 그믐달과 구분하지 않고 눈썹모양의 달이면 대충 ‘초승달’이라고 표현하고 만다. 하지만 노래에서처럼 새벽이 가까운 깊은 밤에 보이는 달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믐달이어야 한다. 초승달은 저녁때 서쪽하늘에 잠깐 보였다가 지는 달이고, 그믐달은 새벽에 동쪽하늘에서 잠깐 보이다 날이 밝아져 보이지 않게 된다.

초승달과 함께 나온 금성

이병기의 시에 곡을 붙인 ‘별’이라는 노래가 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여기서 시인에게 ‘초사흘 달’이 정확한 ‘월령 3일의 달’이냐고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눈썹모양의 달을 ‘초사흘 달’로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시인은 정말로 초사흘 달과 별들을 보면서 이 시를 지었을까. 과학적인 분석을 해보건대, ‘그렇다’이다. “서산 머리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므로 이 때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저녁 무렵이다. 그리고 “바람이 서늘”하다고 했으므로 계절은 가을철. 그렇다면 가을철 저녁 무렵 초승달이 어둠과 함께 나타나는 때이다. 이 때는 완전히 어두어지지 않아 1등성 정도의 밝은 별들만 달과 함께 보일 수 있다. 가을철 서쪽에 있는 별자리는 목동자리, 처녀자리 등 봄철 별자리이다. 이곳에서 처녀자리 1등성인 스피카는 고도가 낮아 이미 지평선 아래로 졌을 가능성이 있다. 목동자리 1등성 아크투루스는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천정 부근의 별이므로 고도가 너무 높아 달과 함께 나온다고 보기는 힘들다. 때문에 이 별은 행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중에서 금성이 유력하다. 화성이나 목성 같은 외행성도 가능성이 있지만, 가을철 서쪽 하늘 지평선 근처에 있을 확률은 금성보다 크게 떨어진다. 시인은 아마, 어느 가을철, 음력 초순, 해질 무렵에 동방최대이각 근처에 있는 금성이 서쪽하늘에서 초승달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와 노래에서 과학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한다. 아폴로가 달에 착륙함으로써 토끼가 사라졌다고 억울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잘 사용할 줄 몰라서 그렇지 과학의 눈은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눈이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에 작용하는 만유의 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다음 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중 ‘이탈한 자가 문득’ 전문)

199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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