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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들썩이는 산업비타민 전쟁

과학기술강국이 희소금속 거머쥔다

1817년, 스웨덴의 화학자 아르프베드손은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이 원소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폭발하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17세기 과학자들은 이 원소에 돌을 뜻하는 그리스어 리토스(lithos)를 따와 리튬(Li·Lithium)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나름 타당했다. 유리광물의 일종인 페탈라이트(엽장석)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같은 알칼리원소인 나트륨이나 칼륨이 동식물에 널리 존재했던 데 비해 리튬은 돌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 발견도 더뎠다.


 



다른 원소에 비해 뒤늦게 발견된 이 원소 덕분에 현대사회는 더 없이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등 고 효율 배터리가 필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리튬이 쓰인다. 휴대전화 배터리의 25%는 리튬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리튬 확보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 가 많다. 한국 정부도 최근 세계 리튬매장량의 50% 이상을 가진 볼리비아와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으로 리튬시장을 공략키로 했다. 개인용 운송수단이 전기자동차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면서 리튬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이다. 리튬을 처음 발견했던 아르프베드손 역시 리튬이 지금처럼 중요한 금속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소금속 없으면 현대 산업 무너져



이런 ‘귀한’ 금속은 리튬뿐이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리튬 말고도 수많은 금속들이 차례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화학자들은 이런 금속에 눈독을 들였다. 철, 구리, 알루미늄 등 흔한 금속에 이런 금속들을 조금씩 섞어가며 강도, 전기전도율 등을 바꿔 나갔다.







이들은 ‘희귀금속’, ‘희유금속’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지만 지식경제부에선 공식적으로 ‘희소금속’(Rare Metal)이라는 이름을 쓴다. 총 35종류 56개 원소를 지정해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미국은 33종류, 일본은 31종류의 금속을 희소금속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희소금속은 어떻게 쓰일까. 강철(Fe)에 니켈(Ni), 크롬(Cr) 등을 조금씩만 섞어 넣어도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변하는 것은 희소금속을 활용한 기초적인 사례다. 희소금속을 섞으면 금속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 크롬, 몰리브덴(Mo), 바나듐(V), 티타늄(Ti) 등 고융점 금속(녹는 점이 높은 금속)을 조금만 섞어 넣어도 기존 철보다 훨씬 단단해진다. 철 원자 사이에 탄소가 끼어들어 단단하게 결합하는 ‘마텐자이트’ 상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희소금속은 IT혁명을 겪으면서 사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희소금속을 쓰면 다양한 물질의 특성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소재, 화학 전문가들은 너도나도 희소금속에 눈을 돌렸다. 희소금속을 ‘산업의 비타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흔히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희소금속이 20종류나 들어간다. 배터리에는 리튬은 물론 코발트(Co), 망간(Mn) 등 5종류 이상의 희소금속이 쓰인다. 휴대전화를 포함해 다양한 IT 제품에는 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우수하게 만드는 ‘희토류’라는 금속 원소군이 고루 쓰인다. 희토류란 ‘란탄(La)’ 족에 속하는 15종의 금속과 이트륨(Y), 스칸듐(Sc)을 합친 17종의 금속 원소군을 통칭하는 단어다.



가정에서 흔히 보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에도 희토류 금속이 들어가 있다. 제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이트륨과 란탄, 가돌리늄(Gd), 유로퓸(Eu) 등이 들어간다. 희토류는 조건이 맞으면 빛을 내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희토류 금속을 어떻게 화합하느냐에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다. 형광등이나네온사인 등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만들 때도 쓴다. 유로퓸은 이트륨, 가돌리늄과 섞으면 적색 빛이 나지만 바륨(Ba), 마그네슘(Mg), 알루미늄(Al)과 섞으면 청색 빛이 난다.







희토류는 고급 사진기나 캠코더의 렌즈와 같은 광학제품을 만들 때도 많이 이용된다. 란탄을 섞은 유리는 굴절률이 높고 빛이 잘 퍼지지 않는다. 가돌리늄이나 에르븀(Er) 같은 희토류 금속들은 광섬유를 만드는 데 쓴다. 이런 금속을 미량만 첨가해도 빛의 손실이 일반 광섬유의 1%까지 낮아진다. 세륨(Ce)은 반도체 표면이나 휴대전화 액정 화면을 매끈하게 연마하는 광택제로 쓰인다. 네오디뮴(Nd)은 강한 자력을 만들 수 있어 전기 모터를 만들 때 흔히 쓰이지만 레이저 빛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된다.



현대 산업사회의 기틀은 희소금속 기술을 통해 얻은 첨단 소재와 부품산업이다. 다양한 첨단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희소금속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세계 각국에서도 이런 자원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할 ‘첨단 과학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은 쇳조각’을 놓고 사활을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희소금속 어디에 묻혀 있나



희소금속은 말 그대로 ‘희귀해서 양이 적은’ 금속을 말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희소금속사업기술센터는 희소금속을 ‘지각 내에 존재량이 적거나 추출이 어려운 금속자원 중 현재 산업적 수요가 있고 향후 수요 신장이 예상되는 금속원소’라고 정의한다. ‘극소수 국가에 매장과 생산이 편재돼 있거나 특정국에서 전량 수입해 공급에 위험이 있는 금속원소’라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설명 그대로 희소금속은 일부 국가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철이나 구리 등 광물에 비해 매장량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80%는 중국, 캐나다, 러시아나 동부유럽 등 구소련 지역, 호주, 미국 등에 집중돼 있다. 희소금속 중에서도 희토류는 편중현상이 더 심하다. 세계 매장량의 98%가 중국에 집중돼 있다(LG경제연구소 추정).



희소금속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수입이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원보유국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희토류 세계 소비량의 95%를 공급하는 중국이 지난 8월 12일에 수출량을 60%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중국에서 네오디뮴, 이트륨, 세륨, 란탄 등의 희토류를 수입하는 일본에선 가격이 한 달도 안 돼 30% 급등했다. 중국은 지난 6월에도 실리콘(Si), 텅스텐, 몰리브덴 등의 수출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했을 만큼 희소금속 수출에 인색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에는 희소금속이 전혀 생산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지질자원연 광물자원연구본부는 최근 경상도, 강원도 인근에서 적잖은 희토류 원소가 매장된 것을 확인했다.



충북 충주시 어래산 인근에는 갈렴석, 브리솔라이너, 바스트너사이트, 스핀, 저어콘, 인회석 등의 광물이 비교적 풍부하다. 지질자원연은 이런 광물을 제련하면 네오디뮴, 이트륨, 란탄, 세륨 등 희토류 원소를 2000만t 이상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도 란탄, 세륨, 유로퓸, 가돌리늄, 테르븀(Tb), 디스프로슘(Dy) 등 희토류 원소가 2500만t 이상 묻혀있다. 경남 단성군 하동 지역에도 600만t 이상의 란탄, 세륨, 이트륨 등이 묻혀 있다.



희토류 이외의 희소금속 역시 존재한다. 전북 무주 지역, 충북 단양군, 경상북도 울진군 등에서 니오브, 탄탈, 리튬 등 희소금속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윤호성 자원활용소재연구부장은 “외국에 비해 광물 속에 들어 있는 희토류 금속의 함유량(품위)은 낮지만 자원수급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강원 홍천 지역에서 희토류와 경북 울진 지역의 희소금속 군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매장량 적어도 기술력 있으면 경쟁력 있다”




국내에 희소금속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첨단산업을 유지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희소금속을 수출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국내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원하는 금속을 뽑아내는 제련, 정제 기술’ 등 희소금속을 얻는 과학기술을 확보하면 해외 자원 확보에도 유리하다라고 보고 있다. 기술력도 자원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이유 역시 과학기술력을 갖춘 외국 기업에 비해 뒤떨어진 금속 추출 기술을 확보하려는 의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희토류의 생산량과 수출량 조절에 나선 것은 희토류를 해외자본 유치의 매개체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뛰어난 기술을 이전해 주면 희토류를 수출해 주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한국도 기술력을 무기로 자원확보에 나섰다. 지난 8월에는 리튬 부국인 볼리비아와 계약을 맺고 볼리비아에서 리튬을 생산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볼리비아 우유니 지역의 소금호수는 전세계 리튬의 50%가 매장돼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계약이 성사된 것은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리튬 개발 기술 덕분이다. 침전제와 흡착제를 이용해 소금 호수 바닥에서 리튬을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공동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한 이 기술은 원래 바닷물에서 리튬을 생산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지질자원연 해수용존자원연구팀 정강섭 박사 연구팀은 7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2012년 경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리튬을 상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일 볼리비아와의 계약에 실패했다고 해도 이 기술만 활용하면 리튬을 상당부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희소금속 관련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식경제부는 지난 해 말 코발트, 인듐(In), 망간, 몰리브덴, 리튬, 크롬, 텅스텐, 희토류, 마그네슘, 티타늄의 10대 희소금속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3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21세기에는 희소금속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 될 것”이라며 “기업체, 대학, 연구기관이 힘을 합쳐 관련 과학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껴쓰고-나눠쓰고-바꿔쓰고-다시쓴다”그렇다면 국내 과학기술계는 어떤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걸까. 일단 광석에서 원소를 뽑아 금속형태로 가공하는 원천기술터 확보해야 한다. 평범한 돌덩어리에서 원소를 분리해내는 제련, 성분의 순도를 높이는 ‘정련’ 과정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기술은 왜 중요할까. 산업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쉽게 바꾸지 못하면 아무리 흔한 원소라고 해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희소금속의 한 종류인 실리콘도 마찬가지다. 지각 속에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지만 쉽게 활용하긴 어렵다. 알루미늄도 1800년대에는 희소금속 대우를 받았지만 정련기술이 확보되면서 일반금으로 바뀌었다. 알루미늄에 비하면 양이 많지 않은 구리는 보통금속으로 분류돼 왔다. 제련, 정련이 쉽기 때문이다. 망간, 티타늄도 제련, 정련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희소금속에 속한다.



처음부터 양이 적은 희소금속이라면 ‘아껴서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조건 사용을 제한하기보다는 과학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소량만 쓰고도 같은 효과를 얻자는 것이다. 희소금속을 촉매로 활용할 때는 입자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방법을 주로 쓴다. 표면적이 넓어져 적은 양으로도 같은 효과를 낸다.



최근 한국광물자원공사 김선수 박사팀이 이트륨, 세륨 같은 희토류 금속을 입자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1μm=100만 분의 1m)가  되도록 가공하는 데 성공했다. 이트륨은 PDP나 발광 다이오드(LED)의 형광체 역할을 한다. 구형으로 제작하면 빛이 균일하게 뿜어 나오고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세기가 달라지는 현상도 줄어든다. 세륨 입자를 작은 구형으로 제작하면 반도체 표면에 광택을 낼 때 표면에 흠집이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김 박사팀은 이 기술로 중국 특허까지 얻었다. 중국정부가 김 박사팀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희소금속의 공동사용권을 나눠줘야 하는 셈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 김신종 사장은 “희토류 금속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해 희토류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한번 썼던 희소금속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이 이런 방법을 자주 쓴다. 망가진 TV와 같은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희소금속을 다시 추출하는 기술이다. 일본은 ‘도시 광산’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내며 이런 재활용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도 산업에 쓰이는 희소금속의 40% 가량을 폐

전자제품에서 얻어 쓰고 있다. 한국정부도 일본을 따라 ‘도시 광산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정부부처별로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윤호성 자원활용소재연구부장은 “도시 광산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자원 확보 방안을 모두 동원해 산업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소재, 화학 분야 기초연구를 통해 희소금속을 대체하는 신물질 개발 역시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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