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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럼타는 배롱나무와 음악듣는 오이

7월에서 9월까지 약 1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을 피워 나무백일홍으로도 불리는 배롱나무. 한자로는 파양수( 痒樹), 즉 ‘간질임을 두려워하는 나무’인데, 전라 충청도 지역에서는 실제로 이 나무를 간지럼나무로 부른다. 원숭이도 떨어질 듯한 반질반질한 줄기에는 흰빛이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를 손톱으로 살살 긁어주면 나무 전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산들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배롱나무가 손톱자극에 대해 어떤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산들거리는지 그 이유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식물들이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간지럼을 타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짓과 바람 구별하는 뽕나무

흔히 의식이 없고 자극에 대한 반응도 거의 없는 사람을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은 식물에게는 참으로 모욕적인 말이다. 식물 생리학자들에 따르면, 식물은 무감한 존재가 아니라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공격자에게는 적극적인 방어를 하는 활동적인 존재이다. 또한 식물 상호간에도 의사소통을 하면서 다가올 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한다.

농촌진흥청 잠사곤충부의 이완주 부장은 지난 94년부터 식물이 외부자극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한 바 있다. 식물의 체내에는 늘 미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뽕나무에 검류기를 설치하고 전류의 변화를 관측했다. 잎을 손으로 잡거나 뜨거운 것을 대고 있는 동안에는 전류가 계속해서 격렬하게 변동하다가 손을 떼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선풍기를 가져다가 바람을 일으켜 주면 전류는 처음에 심하게 반응하지만, 2분쯤 지나면 바람이 계속 불어도 전류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식물이 인위적인 자극과 자연의 자극을 구별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손 타는 강아지는 안 큰다’는 말처럼 식물도 자꾸만 귀찮은 자극을 주면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이 저해된다. 옛 어른들은 웃자란 곡식들이 쓰러지지 말라고 아침마다 장대를 들고 곡식을 쓸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태풍이 와서 다른 집의 곡식들이 쓰러져도 장대로 쓸어준 곡식은 단단히 설 수 있었다. 바로 식물에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어 생장을 억제한 때문이다. 식물이 휘었다 폈다 하는 자극을 많이 받으면 체내에 에틸렌이 많이 분비돼 이것이 길이 생장을 억제하고 부피생장이 증가하도록 작용한다. 바람이 그칠 날 없는 고산지방에서 키 낮은 식물들이 많은 것도 계속되는 바람이 식물을 흔들어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바람 속에서도 스트레스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바람 같은 자연의 자극에는 일시적으로 반응하다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식자 오면 소문 퍼져

식물은 늘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지만, 공격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방어를 한다. 강원대 생물학과 진창덕 교수에 따르면 버드나무의 일종은 메뚜기 떼가 몰려오면 미리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려 자신이 맛없는 존재로 보이게 한다. 또한 담배의 한 잎사귀를 벌레가 갉아먹기 시작하면 이 소식은 순식간에 몸 전체에 퍼져 특정한 화학물질을 생산해 방어한다. 이 물질은 곤충의 소화관 속에서 단백질 분해를 억제하는 물질로 작용해 해충이 입맛이 없어져 더 먹을 마음이 안 생기게 한다.

한편 벌레에 공격받은 담배는 다른 개체에게도 이 소식을 알린다. 공격받은 잎에서는 페놀계 화합물인 살리실산이 생산된다. 이 물질은 휘발성이 있어 바람에 날려 다른 담배에 전해진다. 그러면 다른 담배들도 일제히 소화억제 물질을 분배해 벌레의 공격을 저지시키는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는 빠르기는 1분에 약 24m 정도라고 한다. 또한 사막의 초목들이 초식동물이 잎을 뜯으려고 몰려들 때 옆 나무의 소식을 전해듣고 순식간에 씁쓸한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을 분비해서 맛없는 잎사귀로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동물들은 자신이 왔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다른 식물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늘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하고 풀을 뜯는다고 한다.

음악을 즐기는 오이

최근에는 식물들이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개척자는 그린음악 농법을 만든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부장이다.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연구를 통해 부드럽고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자란 미나리, 오이, 토마토 등의 소출이 월등히 많아진 것을 실험실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농가의 재배에서도 음악효과가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또 음악을 들려준 난초의 생장이 음악 없이 자란 쪽보다 훨씬 좋고, 무의 발아율이 확연하게 좋아진다는 후속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이를 보면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우리 속담이 실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다. 이 속담은 흔히 발이 닳도록 부지런히 곡식을 돌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사실은 곡식이 아침저녁으로 자신을 돌보러 오는 주인의 경쾌한 발소리에 성장이 촉진됐던 셈이다.

음파가 직접적으로 세포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리적인 과정을 거쳐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직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떻든 음악이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주며 키운 콩나물은 머리가 95% 이상 깨진 채 성장했다는 보고다. 사람에게 싫은 소리는 식물에게도 싫은 소리일 가능성이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유실수는 해거리라고 해서 어느 해에 결실이 많으면 다음 해에는 수확이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 해마다 제사는 정해져 있어 필요한 제수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조상들은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해서 수확을 늘렸다. 이는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두는 것이다. 보통은 돌멩이로 인해 가지가 벌어져 더 많은 잔가지가 생겨 수확이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그런데 이렇게 끼워놓은 돌멩이가 의외로 나무의 결실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져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한다.

농학자 임경빈 박사가 쓴 ‘나무백과’에 따르면, 유실수는 가지와 잎 속에 탄소가 많고 질소가 적을 때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질소는 뿌리를 통해 얻고 탄소는 잎을 통해 들어온다. 가지 사이에 끼워놓은 돌멩이는 나무가 성장하면서 나무의 형성층 주변을 파고 들어가 물과 양분이 흐르는 관다발을 파괴한다. 통로가 제한되면서 질소는 위로 가지 못하고 탄소는 아래로 가지 못해 나뭇가지와 잎 속에는 탄소가 많아지고 질소가 줄어든다. 그 결과 대추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유실수 줄기의 일부 껍질을 벗겨 내거나, 철사로 줄기를 감아두기도 하고, 뿌리를 조금 잘라주거나, 줄기에 칼자국을 내거나 했던 조상들의 방법이 모두 같은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뭇가지 끝을 아래로 휘어지게 잡아맨 것도 휘어진 부분에서 조직을 긴축시켜 수액의 이동을 어렵게 해 과실을 늘리려는 지혜였던 것이다.

주변에는 무슨 화분이고 잘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날짜에 맞춰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는데도 잘 자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화분에 담긴 식물이 자신의 말소리와 손짓을 느낀다는 것을 모른 채 식물을 무시하고 거칠게 대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무감각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무시해왔던 식물이 사실은 간지럼을 타고,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고, 시집을 보내주어야 열매를 많이 맺는 존재임을 되새겨보자. 웃자란 곡식들을 아침마다 장대로 쓸어주었던 농부의 지혜와 정성으로 화분을 키운다면 머지않아 예쁜 꽃이 피게 될 것이다. 식물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라면.

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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