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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수태


환웅께서는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쪽을 주시면서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고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먹었다. 21일 동안 금기를 지키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어서 늘 신단수 아래서 아기를 배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임시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고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곧 단군왕검이다.(삼국유사 권1 고조선)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나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장 34-37)

곰이 변해서 사람이 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이나 남자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가 무염수태(無染受胎)했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무염수태가 사실이라고 믿지만,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믿어지지 않는 신비한 이야기, 그래서 신화(神話)라 부른다. ‘삼국유사’에서 일연 스님은 “새로운 임금이 나실 때는 하늘이 표시를 내려 그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이런 신화가 지어진 내력을 풀이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하고 상상을 절하는 이야기라 해도 요즘에는 이해할만하고 가능하기도 할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신화들이 있을 듯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마늘과 쑥으로 유전자 재조합

유전자를 하나의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운반해주는 ‘플라스미드’라는 조그만 DNA 사슬이 있다. 이것은 종이 다른 세포간에도 유전형질을 전달할 수 있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서 매우 특별하고 유용한 요소다. 또한 인간은 오늘날 유전자 발현을 통제할 수 있어서 특정 유전정보가 선택적으로 발현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전공학적인 기술을 이용하면 간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를 심장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로 바꾸기도 하고 젖소에서 사람 젖을 생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미 성체에서 기능이 분화된 세포들의 기능을 바꾸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배발생단계에서 유전자에 조작을 가하면 얼마든지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기능을 하는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서 마늘과 쑥, 그리고 햇빛 차단 등의 요소가 유전공학적인 작용을 해서 곰 세포의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로 변환됐다면 어떨까. 쑥은 향기가 강해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정화력을 상징하는 식물로 유명하다. 서양 중세에는 쑥이 마귀와 병을 쫓는 힘이 있다고 생각됐다. 일부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쑥을 초경을 보이는 여성의 성년식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출산의 여신인 에일레이튜이아에게 쑥이 바쳐졌다. 민간에 알려진 쑥의 여러 효능 중에는 안태(安胎), 생리불순 치료의 효능도 포함된다. 마늘 또한 득남을 상징했다. 마늘쪽이 여러 개로 갈라진 것은 다남(多男)을 상징하는데, 동양화의 기명절지도에 마늘이 그려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인식된 것처럼, 쑥과 마늘에는 항균능력과 비타민 합성능력 등 과학적으로 규명된 효능 외에도 생식과 관계 있는 어떤 미지의 작용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을 먹고 곰의 생식세포에 유전자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곰의 유전자는 사람의 유전자와 상당히 다르겠지만, 곰에 유입된 플라스미드가 마늘과 쑥의 힘을 빌어 아주 부지런히 작용해 곰의 유전자 중 사람과 다른 부분을 수리하고 보충해서 유전자가 바꿔지면 일은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유전공학으로 탄생하는 슈퍼쥐, 슈퍼젖소, 그리고 복합동물의 형질을 지닌 하이브리드(잡종)는 모두 이러한 유전자적인 변형을 거친 것들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술과 이해가 아직 미치지 못할 뿐, 과학이 더욱 발달하면 곰의 겉모습이 사람으로 변하고, 곰에게서 사람이 태어나는 일도 그리 신비한 일은 이닐 수 있는 것이다.

남자 없이 임신하는 무염수태

마리아의 무염수태는 어떠한가. 사실 무염수태에 관한 이야기는 마리아가 처음은 아니다. 옛날 중국의 전설시대에 태호 복희씨는 어머니가 무지개 빛에 감긴 후에 임신돼 낳았고, 주나라 시조 후직은 어머니가 대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해서 낳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위대한 탄생임을 드러내기 위해 세속적인 정염의 개입을 없앤 무염수태를 상정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무염수태가 불가사의한 신성을 보여주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이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돼가고 있다.

동물에게는 단성생식이라는 현상이 오래 전부터 관찰돼 왔다. 수컷과 암컷의 결합 없이 부모의 한쪽에서만 모든 유전자를 받아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다. 진딧물이 단성생식을 하는 대표적인 예이며 꿀벌, 물벼룩, 육상의 도마뱀류에서도 이 현상이 관찰된다. 심지어 포유류까지 단성생식을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피임제 개발의 선구자였던 그레고리 핀커스 박사는 1930년대 초에 포유동물인 쥐에게 인공적으로 단성생식을 유도했다고 보고했다. 어미 쥐가 수컷과 수정하지 않고 곧바로 새끼를 밴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재현실험에 성공하지 못해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극소수지만 사람에서도 단성생식이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2차대전 중 독일에서 한 여성이 폭격을 당한 후 성교 없이 임신한 사례가 있었다. 이 여자는 딸을 낳았는데, 외모에서부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너무나 유사했다. 학자들은 폭격 당시의 충격이 생식 메커니즘에 변화를 유발해 단성생식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렇다면 복희씨나 후직처럼 어머니가 무지개에 휩싸여 임신했다거나 발자국을 밟고 임신했다는, 여성이 남성 없이 아이를 뱄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신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성급한 사람들의 주장처럼 성모 마리아의 무염수태도 단성생식으로 설명될지도 모를 일이다.

과학이 설명 못하는 것

그러나 모든 인간의 단성생식체들은 정자와 수정되지 않고 곧바로 여성 난자에서 유래되므로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 남성염색체인 Y염색체는 정상적인 수정이 일어날 때 남자의 정자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복희, 후직, 예수가 단성생식체라면 이들은 모두 여성이어야 하는데 과학은 아직 여기까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단군왕검과 예수의 탄생이 과학으로 완전히 설명되는 날 신화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에게서 인간의 유전자 재조합이 가능하고 인간에게 단성생식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신화가 과학으로 대체되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미녀와 야수’에서 인간이 야수로 변하는 것도, ‘인어공주’에서처럼 인어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자신이 감동을 느끼고 마음의 정화(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왜인가. 단군신화를 읽고 한민족의 정서를 공감하는 것은, 예수의 탄생을 읽고 감사로 충만해지는 신앙인들의 심정은 왜일까.

인간을 원죄에서 구하려는 성령의 사랑이 없었다면 마리아의 무염수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민족을 복되게 하려는 환웅의 안배가 없었다면 웅녀의 변신이 무에 그리 신비할까. 야수를 왕자로 변하게 한 공주의 눈물이 소금기가 약간 있는 한방울의 H2O임을 안 다음에도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 우리는 행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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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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