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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머리 치료하고 몸매를 날씬하게

삶의 질 향상시키는 기능성 약품

노인이 돼서도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수는 없을까. 딱히 질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생활의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약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대머리는 딱히 질병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외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준다. 그래서 최근 대머리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다.


21세기에는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더욱 연장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수명이 연장된 만큼 노화와 함께 찾아드는 암, 심장병,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 역시 급격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성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머리가 보기 싫게 벗겨진다면 긴 인생이 그다지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에는 길어진 수명을 보다 활력있고 유쾌하게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신약들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약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 영어로 ‘life quality improving drug’ 또는 ‘lifestyle drug’라고 불린다.

정신적인 죽음

어느날 늙으신 부모님이 갑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온 가족은 그야말로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 치매(dimentia) 또는 알츠하이머병(Alzheimer disease)이라고 불리는 이 질환은 오늘날 85세 이상 노인의 절반 정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병의 비극은 기억을 잃게 되고, 언어능력이 마비되며,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평생의 아름다운 기억이 모두 깜깜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병은 ‘육체적 죽음 이전에 맞게 되는 정신적 죽음’이라고 표현된다.

알츠하이머병의 주된 원인은 노화로 추측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점차 죽어감으로써 대뇌의 운동영역, 언어영역, 감각영역에서 장해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인간의 평균수명이 오늘날처럼 길지 않았을 때는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병의 위협은 단순히 기억 상실에 그치지 않는다. 증상이 일단 나타난 환자는 8년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심장질환과 암에 이어 사망원인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기술로는 알츠하이머병을 완치시킬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21세기에 확실한 치료약이 반드시 개발되리라고 믿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치료책은 신경세포 간에 신호가 전달되도록 도와주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보통 아세틸콜린은 몸 안에서 합성된 후 분해효소에 의해 신속하게 파괴돼 기능이 10만배 정도 약해진 콜린으로 분해된다. 따라서 치료책은 환자에게 아세틸콜린을 주입하는 동시에 분해효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을 투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제로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된 약물은 2종(Tacrine과 Donepezil)이다. 이들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한 후라도 환자의 인식 능력을 어느 정도 향상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간장에 심한 독성을 일으키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설사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 더욱이 약값이 매월 2백40달러(30여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는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다.

최근에는 현재의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으면서 비용은 적게 드는 약물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와 부룩해븐 국립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는 약물(Hup A)이다. 이 약물은 동양의 한 식물에서 분리된 천연물질인데, 부작용이 거의 없고 뛰어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의 효능을 평가하고 있으며, 조만간 상품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전망된다.


노화를 비롯한 다양한 원인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말못할 고민'이 속시원히 해결될지 모른다. 성기능을 향상시키는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불편의 중간

질병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를 없애주는 약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즉 ‘고통과 불편의 중간쯤 되는 증상’을 해소하는 신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파이자사가 개발한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는 개발된 해에 1년 간 50여개국에서 약 8억달러어치가 팔렸으며, 2002년에는 전세계 1억5천만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약 1백억달러어치가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비아그라의 주성분은 실데나필(sildenapyl)이라는 물질이다. 애초에 협심증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다. 실데나필은 인체 내의 산화질소(NO)를 활성화시켜 발기를 유지시킨다. 흔히 대기오염물질으로 알려진 산화질소가 인체에서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비아그라는 약 20분 간의 발기 지속 효과를 일으켰다. 또 통증이 없으며, 성적 자극이 없을 때는 발기가 되지 않는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전체 임상시험 대상 환자의 80%가 ‘만족스럽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비아그라의 발명은 남성의 ‘제2의 삶의 혁명’을 일으킬지 모른다.

최근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성기능 부전을 치료하는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년 이내에 남성의 비아그라에 필적하는 ‘여성용 비아그라’도 시판될 것이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또다른 대표적인 약물은 대머리 치료제이다. 머리가 빠진다고 해서 몸에 질환이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정력이 강하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 대머리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탈모로 인해 외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위 ‘대머리사업’이 성업중이다.

대머리가 되는 원인은 아직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머리이면 아들도 대머리’라고 생각하는 유전적 원인설도 있고,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이 많으면 심한 탈모가 일어난다는 호르몬설도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 역시 탈모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까지 대머리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약은 두가지다. 미국의 머크사에서 개발한 피나스테라이드와 업존사가 만들어낸 미녹시딜이다. 흥미롭게도 두가지 모두 비아그라와 마찬가지로 다른 약을 개발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나스테라이드의 개발은 남성 전립선 비대증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이 약물을 복용한 대머리 환자의 일부에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또 미녹시딜의 경우 고혈압치료제를 연구하다가 이 약물이 머리를 자라게 하는 ‘부작용’이 알려져 대머리 치료제로 개발됐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미녹시딜은 약 40%의 탈모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또 약물이 두피에 잘 스며들도록 충분히 마사지를 해야 한다는 사용상의 불편함이 있다. 피나스테라이드의 경우 이를 많이 복용한 남성이 결혼을 했을 때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됐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해독될 21세기에는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자 자체를 치료하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 이 일이 가능해진다면 단순히 두피의 탈모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할 때 유전자 결함으로 인해 눈썹이나 체모가 자라지 않는 선천성 질환도 정복될 것이다.

성별 따라 맞춤식 개발

뚱뚱한 몸을 날씬하게 바꾸는 비만치료제도 연구가 활발하다. 적당한 운동과 음식 섭취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문명의 이기 덕분에 섭취한 에너지를 소모할 기회가 줄어드는 반면, 영양 보급은 더욱 좋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비만자가 인구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비만은 심장병이나 고혈압의 발병률을 높일 뿐 아니라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근육이나 골관절에 무리를 줌으로써 관절염에 잘 걸리게 만든다. 그래서 과거에 ‘좀 오동통한 것이 복스럽다’는 통념은 깨지고, 다른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1차적인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비만치료제는 주로 과도한 영양섭취를 소화계에서 흡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약물들은 심장이상을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고 있어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한다. 최근에는 체중을 줄이는 동시에 적절한 양만 먹도록 만드는 약물이 개발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예 음식에서 살이 찌는 원인을 제거하자는 발상도 있다. 미국의 프록터앤드갬블사는 지방과 똑같이 고소한 맛을 내면서도 소화계에서는 그대로 통과돼 몸 밖으로 배설되는 올레스타라는 물질을 만들었다. 이 물질을 쿠키나 아이스크림에 넣으면 지방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은 찌지 않게 된다. 또 당분을 제거한 탓에 설탕보다 6백배나 강한 단맛을 내면서도 살을 찌게 만들 염려가 없는 아세설팜과 수크랄로스가 개발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새로운 세기에는 ‘단 것을 많이 먹지 말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필요없게 될 것 같다. 물론 이들은 약이라기 보다 건강보조식품에 가까운 물질들이다. 이 밖에도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신약의 종류는 우울증 치료제, 월경전 증후군 치료제, 피부의 노화방지제, 기억력 증강제 등 수없이 많다.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처방되는 약이 달라지는 ‘맞춤 의약연구’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한 예로 미국의 일라이 릴리사는 항우울약으로 개발된 프로작이 여성에게 특히 효과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기분을 조절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에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이 원리를 활용해 똑같은 약이라도 성분을 약간 바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한 종류들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미래의 신약은 생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고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점잖은’ 언론매체인 뉴욕타임스와 뉴스위크는 비아그라를 비롯한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신약이 은밀한 호기심의 대상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표현했다. 오히려 사회문화적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로마의 교황청 역시 비아그라의 사용을 승인하고 있는 추세다.

복음과 재앙의 두얼굴

하지만 의약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에게 복음으로 작용하던 신약이 곧 재앙으로 바뀐 경우가 많이 있다.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류에게 결정적인 무기로 작용했던 항생제 페니실린이 한 예다. 당시에는 지구의 모든 감염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됐지만, 무절제한 항생제의 남용으로 내성이 증가하는 바람에 어떤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강력한 병원균이 출현했다. 또 먹는 피임약이 개발돼 여성이 임신의 불안에서 상당히 벗어났지만 그와 함께 성도덕이 문란해졌다.

수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병들거나 고장난 장기를 마음대로 바꾸며,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꿈의 신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삶의 사소한 불편마저 해소하는 복음이, 그 역작용으로 언제 어떤 재앙을 가져올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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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원태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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