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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현상의 진원지를 가다

黃土高原(황토고원)

한반도 면적의 1.5배나 되는 방대한 황토고원에 퇴적돼 있는 황토입자들이 이동성 저기압을 타고 계속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면…

중국 황하 중류 내륙고원에는 한반도 면적의 1.5배 정도 되는 방대한 황토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이곳을 황토고원(黃土高原)이라 부른다. 이 황토들은 약 2백만년 전부터 중앙아시아 사막에서 바람에 날려와 쌓인 풍적토(風積土, loess)로 그 두께는 보통 1백m이상이다. 어떤 곳은 수백m에 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황토의 퇴적은 지표를 평탄하게 만들었다. 기복이 심한 산들만 제외하고 퇴적이전의 대부분의 지형을 매립한 것이다. 다만 유수에 의한 침식이 골짜기를 파 들어가 평탄한 황토고원을 해체하고 있다. 황하의 물이 누런 이유는 이렇게 황토고원에서 깎인 토사를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황토는 바람에 의해 수백km 이상 이동될 수 있는 직경이 0.01~0.05mm인 미립물질로 구성돼 있다. 이 입자들은 겨울에 얼었던 땅이 녹고 수분이 증발돼 입자들 간의 응집력이 약한 건토가 되는 봄철에는 쉽게 바람에 날리게 된다. 이때가 보통 4월 중하순 경이다. 이 무렵 황토고원을 떠난 물질들이 우리나라 상공에까지 이동해오면 황사현상이 나타난다.

황토고원은 황사현상의 진원지일 뿐만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이기도 하다. 요즈음에는 이곳 황토층에서 60만~1백10만년 전의 직립원인 화석인류가 발굴됐다. 또 고대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며 진(秦) 한(漢) 당(唐)에 이르는 중국 고대사의 중심무대가 바로 황토고원이다. 그리고 오랜기간 황토고원과 중앙아시아사막을 통해 동서교역이 성행했고 불교가 전래됐으며 고승들의 성지순례도 이뤄졌다. 따라서 황토고원에 대한 지식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황토고원은 화북평야와 중앙아시아 사막 및 고산지대 사이에 펼쳐진 지역으로 남북으로는 만리장성에서 진령(泰領)산맥까지, 동서로는 서쪽 난주(蘭州)일대에서 동쪽 대행(大行)산맥에 이른다. 면적이 약 30만㎢나 되는 이곳은 중국에서 뿐만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풍적토 즉 뢰스(loess)지대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중앙황토고원이라 부른다. 중국에는 황토고원 외에도 만주 송화강유역, 산동반도, 화북평야 등에 황토지대가 필쳐져 있다. 학자들에 의해 뢰스로 확인됐거나 그와 유사한 황토층들이 곳곳에 쌓여있는 것이다.
 

황토의 퇴적으로 형성된 황토고원^이 황토들은 2백만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쌓였다. 퇴적작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풍적토지대

황토고원의 뢰스들을 세분하면 니토(泥土, silt, 직경 0.05~0.002mm인 입자)가 75~90%로 대부분을 점유한다. 점토(clay, 직경 0.02mm이하)도 대개가 니토질토다. 그리고 직경 0.05~0.1mm의 미세한 모래입자가 3~10% 함유돼 있다. 하지만 직경 0.25mm 이상되는 중조립모래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와같이 니토의 비율이 높은 것은 유럽이나 북미 등지의 뢰스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점토와 모래의 함량은 퇴적이후의 풍화 및 토양발달, 뢰스를 구성하는 물질공급지와의 거리, 유수작용에 의한 재이동, 퇴적양상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황토고원의 경우 점토함량은 고토양이 발달된 층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그리고 황토고원 동부에서 뢰스구성물질 공급지와 인근한 서북부로 가면서 점차 가는 모래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니토의 입자들도 점점 굵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뢰스층도 따라서 두꺼워진다.

황토가 바람에 날려와 퇴적된 이곳 황토층에는 보통 10% 내외의 석회질 성분이 함유돼 있다. 황토고원의 기후가 건조한 편이므로 이 석회질 성분은 고스란히 황토층에 남게 된다. 석회질 성분은 니토와 점토 입자들을 견고하게 결합시키거나 석회응결체를 이루게 한다. 이로 인해 유수에 의해 깊게 파인 가파른 절벽이 붕괴되지 않고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황토의 주축을 이루는 니토들은 주로 석영입자지만 하천퇴적물과는 달리 화학적 풍화에 약한 다양한 종류의 염기성 광물입자들도 많다. 중앙아시아 사막에서 주로 기계적 풍화로 인해 생성된 물질이 바람을 통해 이동해와 퇴적됐기 때문이다.

황토의 주요 구성물질인 니토입자는 일반적으로 서릿발 작용에 의한 기계적 풍화가 활발한 환경에서 많이 생성된다. 지표의 결빙과 관련된 서릿발 작용으로 암석이 암설, 모래단계를 거쳐 니토로까지 쪼개져 많은 양의 니토가 생기는 것이다. 황토고원 뢰스의 공급지로 알려진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은 이러한 풍화환경을 지닌 지역이다. 기계적 풍화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서릿발 작용이 없는 저위도 고온사막의 경우에는 암설들의 쪼개짐이 모래크기까지는 쉽게 진전돼도 이것이 니트로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사하라사막이나 아라비아사막 주변에 뢰스층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니토들은 풍속 4~8m/초(시속 14~20km)이상이면 바람에 실려 날아가지만 풍속이 0.5~0.8m/초(시속2,3km 정도) 이하로 매우 잔잔해지면 땅에 떨어진다. 한번 바람에 실린 니토들은 입자가 굵은 것도 수십 km이상, 가는 것은 수백 km이상 이동한다. 시베리아에서 동남방향으로 부는 바람, 시베리아기단 말단부에서 생성돼 동쪽으로 이동하는 저기압성 기류가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에서 생성된 니토들을 황토고원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황토고원에 퇴적되지 않고 계속 이동해 가거나 일단 퇴적된 것이 다시 바람에 실려 재이동한 물질은 화북 화중평야 곳곳에 쌓인다. 물론 이곳에도 뢰스층이 형성돼 있다.

난전원인이 발굴되고

2백만년 이상 지속된 신생대 제4기 전기간에 걸쳐 황토고원에 퇴적된 보통 1백m가 넘는 두꺼운 황토층은 후창뢰스 리시뢰스 마란뢰스 포투뢰스라고 불리는 4개의 층서군이 중첩된 단면을 보여준다. 그중 후창뢰스는 제4기 초(2백40만년 전)에 퇴적된 최하부 뢰스층(두께 20~50m)으로 제3기 말에 발달한 적색토를 덮고 있다. 후창뢰스 위에 쌓인 리시뢰스는 제4기 중엽(1백10만년 전)에 퇴적된 것으로 두께가 70m 정도다. 이 뢰스층에서 북경원인보다도 오래된 직립원인(Homo erectus)인 난전원인(蘭田猿人)이 요 근래에 발굴됐다.

리시뢰스 위에 쌓인 마란뢰스는 제4기 후기(10만년~1만년 전)에 퇴적된 층으로 두께는 7m 정도에 불과하다. 지표에 드러난 포투뢰스는 제4기 빙기가 끝난 현세(1만년 전~현재)에 퇴적된 층으로 두께는 1.5m 정도다. 신석기시대의 채색토기 등은 바로 이 뢰스층에서 발굴된다. 이 뢰스층들 내부와 경계면 부근에서 비교적 생물활동이 활발한 환경에서 발달한 여러개의 고토양(古土壤)들이 화석화한 상태로 발견됐다.

신생대 제3기말, 즉 북극과 남극에도 빙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황토고원이 온난 습윤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사막으로부터의 니토공급도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황토고원 뢰스충들 아래에서 발견되는 적색토는 이때의 고환경을 반영한다. 제4기가 시작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고비사막 등지에서는 서릿발 작용으로 다량의 니토가 생성됐다. 바로 이 니토가 이동해 황토고원에 쌓이게 된 것이다. 그후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하면서 뢰스의 퇴적속도가 달라졌으며 황토고원의 기온 및 건습 정도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았다. 황토고원이 보다 냉랭하고 건조했던 기간에는 뢰스의 퇴적이 빨랐고, 상대적으로 온난 습윤했던 기간에는 뢰스 퇴적속도가 늦어졌다. 물론 그 대신 토양형성작용이 활발했다. 두꺼운 황토층에 나타나는 고토양들은 대체로 이러한 상황을 잘 반영한다.

하천과 지표수에 의한 침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황토고원은 평탄한 대지다. 황토가 퇴적된 제4기에는 히말라야와 티벳이 많이 융기하면서 황토고원의 고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높이 6백~1천5백m의 고원의 모습을 보일 정도로 융기했다. 이 기간에 하천과 지표수에 의해 주도된 침식은 황토고원의 평활한 면을 좁고 깊은 곡지, 경사가 급한 1백m 내외의 산, 넓은 하곡 등으로 해체해오고 있으며 이러한 침식작용은 현재도 활발히 진전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해체되지 않은 고원의 평탄한 면이 황토고원의 지형경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황토고원 서쪽 끝에 위치한 난주시에서 발생한 황사현상. 4~6월이 되면 맑은 날에도 황사현상이 심하다고 한다.
 

혈거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황토고원의 자연환경은 전반적으로 열악하다.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건조한 기후에다 황토층은 매우 치밀하고 견고한 상태다. 따라서 식물이 쉽게 뿌리내려 성장하기 힘들다. 비가 올 때는 지표수가 황토에 스며들어 토양수로 저장되지 못하고 거의 모두 유실되면서 지표를 심하게 침식한다.

그리고 고원의 평탄한 지표에서는 바람에 의한 수분증발과 표토유실(表土流失)이 많다. 이곳의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고원의 평활한 지표면보다는 곡지나 산의 급사면을 계단식으로 개간, 농경을 하고 이곳에 동굴을 파서 주택으로 이용해 왔다. 이러한 경지개간은 비가 올 때 표토가 유실됨을 막고 또 바람에 의한 수분증발과 표토의 날려감을 극소화해 준다. 그리고 혈거생활(穴居生活)은 석재와 목재의 조달이 어려운 황토지대에서 심한 기온 연교차와 강풍 등을 극복하게 하는 딱 알맞은 주거양식이다.

그러나 넓은 하곡의 경우에는 고원의 평지나 이를 침식한 급사면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인간생활에 유리한 자연적 여건을 지니고 있다. 하천에 의해 재이동된 풍적황토가 퇴적돼 덮여 있는데 이것은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지 않다. 그리고 지하수면이 높아 토양의 수분함량도 높은 편이므로 식물의 생장에 매우 유리하다. 홍수문제를 비교적 쉽게 다스릴 수 있는 하류를 끼고 발달한 넓은 하곡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기에 적합하므로 이곳에 황토고원의 주요취락과 도시들이 발달해 있다. 고대 황하문명이 발상한 황하의 지류인 위하(渭河)의 하곡과 분지들은 바로 이런 곳이다.

이러한 하곡들이 있기 때문에 황토고원 지역은 건조기후지대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찌기 농경문화가 뿌리내려 고대 중국역사의 중심무대가 될 수 있었다. 황토고원 북쪽 말단부를 따라 축조된 만리장성은 바로 이 황토고원의 농경사회를 주변유목민의 침공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 중국역사의 중심부인 황토고원은 오랜 기간 육로를 통한 동서교역의 요지였고 또 불교전래의 동아시아쪽 거점역할을 했다.

황토고원에 4월이 찾아오면 긴 겨울 동안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수분이 증발된다. 그러면 지표에 노출된 황토층의 입자들은 입자들간의 응집력이 약해져 쉽게 바람에 날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는 대체로 첫 비가 내린 후 기후가 고온건조해져서 다시 땅이 견고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풍화혈(風化穴)을 이용해 축조한 사찰. 이런 동굴은 비단길을 왕래한 상인들과 불교순례자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황사와 함께 오염물질도 실려올 듯

봄이 되면 서서히 위력이 약화되는 시베리아기단이 간헐적으로 강세를 보여 북서풍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바람은 우리나라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여기에 실린 황토입자들은 멀리까지 이동하지 않는다. 이 바람은 중앙아시아 모래사막에서 생긴 니토를 황토고원까지 운반한다.

그러나 시베리아기단과 중위도 대륙기단간의 전선대를 따라 생성되는 이동성 저기압은 황토고원의 물질을 우리나라까지 운반해 준다. 중국 쪽에서 생성돼 동진하는 이동성 저기압들은 강한 회오리 바람을 수반하기도 하는데 이때 많은 양의 황토입자들이 이동한다. 먼지폭풍(dust storm)상태의 이러한 이동성 저기압은 동쪽으로 진행하면서 회오리의 강도가 점차 약해진다. 화북지역을 통과할 때는 상대적으로 굵은 입자들이 땅에 떨어진다. 이 이동성 저기압이 우리나라에 도달하면 풍속 1.5~2.5m/초(시속 5.5~8.5km) 정도로 잔잔해진다. 이때 화북에서 퇴적되지 않고 계속 날려온 가는 황토물질들이 높은 밀도로 대기에 정체돼 황사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앞으로 산동반도에 많은 공장이 세워진다고 한다. 황사와 함께 날려올 오염물질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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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오경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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