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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을수록 강해지는 나노물질 합성

10억분의 1세계에 도전하는 화학자들


나노물질은 반도체뿐 아니라 화학공정에서도 활용될 여지가 크다.


작은 것이 강하다.

10억분의 1이라는 극미의 세계를 탐구하는 나노기술(nano technology) 분야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나노(n)는 고대 그리스에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말이다. 1nm는 10억분의 1m에 해당하는데, 원자 3-4개를 이어놓은 정도의 크기다. 이 엄청나게 작은 세계에 대한 연구가 21세기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주력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고 가정하자. 바이러스는 보통 나노 수준의 크기를 갖추고 있다. 이를 퇴치하기 위해 몸 속에 비슷한 크기의 나노 기계를 주입한다면 어떨까. 바이러스를 파괴하도록 프로그램된 나노 로봇이 마치 잠수함처럼 혈액을 타고 이동해 바이러스를 격파시킨 후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 꿈처럼 들리는 얘기가 나노기술의 발전에 의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먼지 한 톨보다 작은 첩보로봇, 머리핀 끝보다 작은 크기에 백과사전을 저장하는 초미니반도체 등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일들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난관이 있다. 흥미롭게도 물질은 크기가 작아질수록 성질이 바뀐다. 즉 같은 물질이라도 나노 수준까지 크기가 줄어들면 녹는점이나 색깔과 같은 물성(物性)이 변한다. 문제는 이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미니반도체를 만들 때 현재 반도체의 크기만 무작정 줄인다고 해서 같은 기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극미의 세계에서 물질이 어떤 성질을 가지는지 연구하는게 급선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늘로 알려진 탄소나노튜브다.

쓸만한 국산품 제작

탄소나노튜브는 탄소로 이뤄진 지름 1nm 수준의 튜브형 물질이다. 그런데 기존 분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과 성질을 지녔다. 우선 지름이 아주 작은데 비해 길이는 지름의 1만배에 이를 만큼 길다. 또 모양을 바꾸면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가 되기도 하고 반도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튜브를 잘 배열하면 현재 사용되는 반도체보다 1만배 정도 작은 규모에서 동일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나노튜브의 제조는 현재 탄소 외에 여러 가지 다른 원소와 화합물에 대해 시도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가장 실리기 쉬운 논문이 나노튜브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는 분야다. KAIST 화학과의 물질화학연구실에서 최근 몇년간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새로운 나노튜브를 생산하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 외국에서 만들어놓은 나노튜브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쓸만한’ 나노튜브를 새롭게 만들어내면 훨씬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연구실을 이끄는 유룡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유룡 교수 연구팀은 지난 96년 전혀 새로운 구조의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한 연구 결과를 전문 학회지에 기고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기존의 한줄로 늘어선 길죽한 모양과 달리, 지름 3nm의 미세한 탄소나노튜브들이 횡적으로 무수히 연결돼 다발을 이룬 형태였다. 이 입체 구조를 잘 변형시키면 화학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촉매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촉매에 비해 훨씬 뛰어난 효율을 가지는 물질이다. 고성능의 수소저장물질이나 연료전지로도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유룡 교수 연구팀은 이 외에도 이산화규소(SiO2)와 백금으로 나노튜브를 만드는데 이미 성공한 상태다. 연구팀의 성과에 힘입어 머지않아 국산 나노기술이 현실에서 활발하게 응용되는 날이 다가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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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최문갑 기자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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