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기술 덕분에 전화, 케이블 TV, 아파트 인터폰 등 가정에 들어오는 모든 선들이 데이터 통신의 고속도로가 되고 있다. 전화선을 이용한 ISDN과 ADSL, 케이블 TV망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 유선방송망과 구내배선을 이용한 HDSL 등 다양한 통신 서비스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수백kbps에서부터 10Mbps까지 속도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인 고속 인터넷 상품들을 알아본다.
타잔이 코끼리를 부르자마자 화면에 코끼리 떼가 달려오는 PC가 있다. 그 옆의 PC에는 코끼리 그림이 이제 겨우 3분의 1쯤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고속 인터넷을 바라는 네티즌들의 욕구와 불만을 극명하게 드러내준 TV광고의 장면이다.
짜증나는 속도
무엇이 이 두 대의 PC를 차이나게 했을까. 컴퓨터로 들어오는 정보는 똑같은 코끼리 그림이지만 이 그림 데이터가 전달되는 속도에 차이가 있다. 일반 전화선을 따라 아날로그 모뎀으로 데이터 통신을 하면 최고 56kbps(bps, 1초당 전송되는 바이트(bite) 수를 나타냄)의 속도가 난다. 그러나 근래에 나온 새로운 방식의 데이터 통신에서는 초당 8-10Mb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어 기존의 모뎀을 이용한 데이터 전송속도의 수백배가 넘는다.
이론적으로 보면 보통 5.6Mb짜리 사진 한 장을 받는데 56kbps의 일반 모뎀은 1분40초가 걸린다. 해상도가 높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수십Mb-수백Mb인 경우도 있으니 이런 자료를 받기 위해서는 몇십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가뜩이나 사진자료, 음악파일, 동영상 등 새로운 형태의 자료들이 넘쳐나는 인터넷 상에서 56kbps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런 때에 속도에 대한 짜증 없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은 가뭄에 단비와 같다. 또한 어떤 상품들은 인터넷을 하는 중에도 전화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각 통신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한둘이 아니고 각각의 특징이 달라서 선택의 가닥을 잡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전화와 인터넷을 동시에
가정에서 PC 사용자가 전용선을 설치하지 않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서비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전화선을 이용한 것이다. 소위 모뎀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전화선을 통해 외부 컴퓨터와 접속하는 것이다. 모뎀은 모듈레이션(modulation, 변조)과 디모듈레이션(demodulation, 복조)을 앞 글자만 합친 말이다. 컴퓨터의 정보를 전화선을 통해서 전달해줄 수 있는 형태의 신호로 바꾸어주고(변조), 들어오는 신호는 다시 컴퓨터가 알 수 있는 신호로 바꾸어주는(복조) 장치이다. 모뎀이 정보를 얼마나 빨리 처리하고 보내주느냐에 따라 데이터의 전송속도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보를 전달해주는 선로의 상태도 문제가 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간망들은 광통신망으로 연결돼 있어서 실제로 가장 문제가 되는 속도는 기간망에서 갈라져 가정의 사용자에게까지 들어오는 구리선에서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속도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 공중전화교환망(PSTN)을 이용해 데이터 통신(인터넷)을 하는 아날로그 모뎀의 전송속도는 현재 최고 56kbps가 일반화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에서는 폭주하는 인터넷 정보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벌써부터 한계가 지적돼 왔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전화나 인터넷 한가지 통신밖에 할 수가 없다. 즉 인터넷을 접속하면 전화선을 완전히 빌려쓰는 것이므로 동시에 전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데이터의 전송속도를 높이고 전화도 함께 할 수 있게 개발된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 전송방식인 종합정보통신망(ISDN)이다. ISDN에서는 데이터의 전송속도가 초당 128kbps로 빠른 속도로 인터넷 정보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전화 통화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음성과 데이터를 전달하는 신호의 주파수를 각각 달리해서 음성과 데이터 정보를 분리하는 것이다. 출범 초기에는 전송속도가 빠른 것을 무기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해 지금까지 14만여명이 가입하고 있지만,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좀더 빠른 속도의 데이터통신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1분만에 1시간 짜리 영화 한 편, ADSL
ISDN의 전송속도보다 수십배 빠르면서도 전화를 함께 쓸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근래에 나온 ADSL이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으로 번역되는 ADSL은 기존의 전화선으로 음성정보와 고속데이터의 전송이 가능한 새로운 모뎀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대칭이라는 말은 데이터를 받을 때와 보낼 때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최대 다운로드 속도 7Mbps 이상, 업로드 속도 640kbps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보는 일이 많으므로 다운로드 속도가 인터넷 속도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송속도가 비대칭이 되는 것은 기술적인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굵은 관에서 높은 압력으로 보내진 물이 가는 관으로 분리돼 가정까지 올 때는 속도가 빠르지만, 반대로 가정의 가는 관에서 기간망인 굵은 관으로 갈 때는 압력이 낮아 느리게 가게 되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업로드의 속도가 적더라도 다운로드의 속도가 크다면 크게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자료를 올리기보다는 내려 받는 일이 많고, 느끼는 속도도 다운로드에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통신이 판매하는 ‘수퍼코넷’과 하나로 통신의 ‘나는 ADSL’이 이 서비스에 해당된다.
일반전화의 아날로그 모뎀이 최대 56kbps를, ISDN이 최대 128kbps를 제공하는 것과 비교하면 ADSL의 최고속도 8Mbps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최고 속도일 뿐 사용상의 실제 속도는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 이론적으로는 1초에 단행본 3권 정도의 정보를 받을 수 있고, 2분만에 2시간 짜리 영화 1편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최대속도에 따른 계산일 뿐 선로의 사정에 따라 속도는 달라진다.
하지만 가입비 10만원 수준에 월 이용료가 4만원대로 비교적 고가이고, 대부분의 이용자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빠른 속도라 아직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최고속도가 1Mbps 정도로 ADSL보다 느리지만, 대부분의 데이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범용의 ADSL 상품을 내놓고 있다. 월 이용료가 3만원대로 ISDN의 2만원대보다는 높지만, 속도대비 가격은 낮은 편으로 일반 이용자에게는 적당한 상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나로통신에서 내놓은 ‘나는 ADSL-라이트’와 한국통신의 ‘ADSL B&A’가 여기에 해당한다.
서비스 안 되는 곳 많아
그러나 ISDN과 마찬가지로 ADSL 또한 서비스 가능지역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지역과 도시지역에서도 아파트 및 빌딩 밀집지역이 현재 서비스 가능지역이다. 최근에 건설된 분당 등의 신도시 아파트들의 경우 아파트 입구까지 광케이블이 설치돼 단지별로 이러한 초고속 정보통신 서비스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
기존에 가정으로 설치된 구리 전화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아날로그 모뎀, ISDN, ADSL 등이 모두 공통적이다. 다만 이 선을 타고 흐르는 정보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전달해줄 수 있느냐가 기술의 차이이자 서비스의 차이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집집마다 광케이블을 설치해서 TV, 라디오, 컴퓨터, 전화는 물론 어떤 형태의 정보도 하나의 선을 통해 들고날 수 있는 고속 광대역 서비스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비를 위해서는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통신수요 또한 광대역 고속서비스를 요구할 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구리선으로 구축된 통신 선로를 이용하면서 고속의 정보전달을 이루어낼 수 있는 과도기적 형태로 ADSL이 당분간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10년 이상 ADSL 기술이 지배적인 데이터 통신기술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케이블TV선으로 인터넷을
ADSL이 기존의 전화선을 이용해 데이터 통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 설치돼 있는 케이블TV망이나 유선방송망을 데이터 통신에 이용하는 서비스들도 나왔다. 두루넷에서 제공하는 초고속 인터넷은 케이블 TV망을 이용해 데이터 통신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서비스다. 전송속도가 최대 10Mbps에 이를 정도로 빠른 속도이며 평균적인 데이터 전송속도도 1.5Mbps정도로 빨라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 두루넷을 이용하는 가입자만도 11만여명에 이르러 고속인터넷 중에서는 선두자리를 굳히고 있다. 두루넷의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하나로통신 등 다른 업체에서도 케이블TV망을 통한 고속 인터넷에 투자를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산간벽지나 도서지역의 외진 곳에는 고속의 유선통신이 제한을 받기 때문에 위성을 통한 위성인터넷이 시도되고 있다. 이미 삼성 SDS가 약 6천4백74명, 한국통신이 616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무궁화위성을 이용해서 가입자에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가입자는 전화선을 통해 자신의 자료를 업로드 하는 방식으로 돼 있다.
가정으로 들어가는 모든 통신선로들이 고속인터넷 통신의 매개가 될 수 있는데, 최근들어 중계유선방송망이나 빌딩 내의 구내선로를 이용하는 방안도 각광받고 있다. 데이콤과 드림라인은 유선방송망이나 구내 선로를 자사의 전용선으로 연결해 데이터서비스를 제공하는 HDSL(HyperDSL)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HDSL은 최대 10Mbps의 속도로 인터넷을 제공한다.
특히 HDSL은 평균 1Mbps정도의 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ADSL보다 낮아 가격대 성능이 우수하다. 이에 따라 한국통신과 하나로통신도 ISDN과 ADSL 외에도 HDSL 서비스를 부가상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속도보다 자신에 맞는 서비스를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①두루넷, 한국통신, 하나로통신이 제공하는 케이블TV망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 ②한국통신, 하나로통신이 전화선을 이용해 제공하는 초고속 ADSL 서비스(전화+데이터 통신) ③데이콤, 드림라인, 한국통신, 하나로통신이 구내통신시설과 유선방송망을 이용해 제공하는 HDSL ④한국통신, 삼성 SDS의 위성 인터넷 등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줄기에서도 속도의 차이나 서비스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있어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으로 초고속 데이터 통신이 가능해지고 있지만 사실상 이런 기반시설을 완전하게 활용할 만한 내실 있는 정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길만 뚫어 놨을 뿐 그 길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만한 귀중한 정보가 없다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셈이다. 통신 사업자들은 PC통신 서비스와 제휴해 PC 통신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빠른 속도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데도 맹목적으로 속도만을 고집하는 네티즌들의 태도도 문제다. 자신의 정보요구와 서비스의 질을 잘 살펴 자신에게 맞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