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우리나라는 수학 화학 물리 정보 등 4개의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 대표단을 파견, 각각 18위 20위 12위 4위를 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중 국내에서는 처음 출전했던 화학 정보올림피아드의 이모저모를 여기에 참가했던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들어본다.
7월 11일 토요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속에 제24회 국제 화학올림피아드(ICHO)에 참가하기 위한 우리 대표단은 첫출전이란 설레는 가슴을 안고 미국 피츠버그를 향해 김포공항을 출발하였다.
우리 대표단은 한국화학올림피아드 위원회 위원장이신 장세희교수(서울대)를 단장으로 화학회 올림피아드 간사 이선행교수(경북대) 박대순선생(경기과학고) 박상민(서울과학고3) 오태영(서울과학고3) 나문호(경기과학고2) 박천호(경기과학고2) 등 학생 4명과 필자를 합해 8명이었다.
뉴욕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은 토요일 오전 11시 30분이었다. ICHO에서 전세기로 준비한 델타 항공기로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오후 7시에 탑승하여 목적지인 피츠버그로 가도록 예정되었지만 항공기 정비문제로 2시간 이상 지연되어 피츠버그에 도착하니 밤 11시나 되었다. 학생들은 피츠버그대학 기숙사에, 그리고 인솔자들은 학생들과 떨어져 카네기멜론대학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미국은 올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백 주년을 맞아 ICHO를 주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행사 준비와 진행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끈기」가 학자의 제일 관건
이번 대회에는 34개국에서 1백 35명의 고교생이 참여하여 화학 실력 대결을 벌였다. 작년에 참관인으로 왔던 한국 멕시코 뉴질랜드 대만이 금년에 모두 학생들을 데리고 정식 참가하였다. 금년에 참관인만 보낸 나라는 이란 이스라엘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네나라였다.
학생들은 피츠버그대학 기숙사에 머물면서 화학과 건물에서 실험시험과 학과시험을 치렀고 인솔자들은 카네기멜론대학 기숙사에 머물면서 시험문제 작성과 채점을 하게 되었다.
제24회 ICHO의 기획 및 국제사정위원회 공동의장은 라발리교수(CUNY, Hunter College)가 맡아서 7월 12일 개회식에서부터 21일 폐회식을 할때까지 모든 공식 혹은 비공식 모임을 주재하였다.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ICHO를 주최하기 위하여 4년동안 한 발자국씩 차근차근 계획서에 따라 진행해 왔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미국이 ICHO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84년부터인데 당시 미국화학회(ACS) 후원하에 16회 ICHO참가를 주도했고 또 8년후인 이번 ICHO를 미국에서 주최하는데 앞장섰던 가드너 교수(20여 년간 메릴랜드대학 교수였으며 그후 캘리포니아대학 로렌스사이언스홀 책임자로 있다가 작년에 타계하였다)를 추모하는 뜻으로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12일 저녁 7시부터 피츠버그대학 대강당에서 거행된 공식 개회식에는 34개국 대표단 2백여명이 알파벳 순서로 국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모습이 진풍경을 이루었고, 미국화학회 회장인 엘리엘교수의 축사가 학생들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그는 11살때 과학에 흥미를 느낀 이후 수 많은 난관이 계속 있었지만 끝까지 견디고 나아가는 태도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도록 선발된 학생들은 모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는데 '끈기'가 장래를 결정해 주는 관건이라고 충고하였다.
1984년 미국 최초 참가팀의 대표 학생으로 은메달을 수상한 바 있는 브라운군은 현재 워싱턴대학(시애틀) 대학원생인데 개회식에서 피츠버그대학 총장, 카네기멜론대학 총장의 뒤를 이어 축사를 하는 영예를 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학술회의나 국제전문학회가 관련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계획 조직 운영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ICHO는 그 조직의 범위와 내용, 운영의 구석구석까지 미국화학회의 교육분과와 올림피아드 기획위원회, 출제위원회 뿐만 아니라 피츠버그시의 올림피아드를 위한 조직위원회의 활동이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산학협동이요 관민일체의 거시적 행사를 위해 피츠버그시는 '웃는 얼굴로'(City with a smile on its face)라는 구호아래 미국시민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100% 발휘했다.
다른 나라 학생들끼리 팀워크 다지기
화학올림피아드의 주무대는 물론 실험시험과 학과시험이 치러지는 이틀간의 일정이지만 그 전후기간에 이루어진 모든 행사, 예를 들면 7월 16일 마일스 회사가 후원한 아메리카나 이브닝 피크닉에서는 포크댄스 컨트리뮤직 폭죽 등으로 외국 학생들을 열광하게 하였다. 7월 17일 오후 카네기멜론대학 운동장에서 벌어진 '팀워크로 활동하기' 행사는 학생 1백35명을 한팀에 5명씩(5명 모두가 각각 다른 나라) 27팀을 구성하여 화학과 스포츠를 겸한 재치있는 협동경기를 즐겼다. 이 행사가 끝난 뒤 피츠버그 알리게니강에 정박한 유람선을 타고 푸짐한 저녁식사와 잔치를 벌였으며 선물교환, 팀워크 운동경기의 시상식도 겸하여 이루어졌다.
이렇게 1주일 동안 주요행사가 피츠버그에서 거행되고 7월 18일 토요일에는 전세버스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로 향했다(조지타운대학에서 체재). 워싱턴에 있는 동안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많은 관광명소를 둘러 볼 시간도 가졌고 특별히 7월 20일에는 볼티모어에 있는 메릴랜드대학에 가서 화학쇼(Chemistry Demonstration Show)를 관람 하였다. 이 쇼는 미국화학회 주요행사중의 하나인데 위스콘신대학 교수팀이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재미있는 시범실험이었다.
그날 오후에 미 국무부에서 환영 리셉션을 베풀었는데 우리가 주빈이고 공식 참가한 34개국의 대사관에서 초청된 인사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마지막 폐회식은 7월 21일 오후 3시에 국립과학원에서 거행되었는데, 개회식 때에 만국기를 들고 엄숙하게 입장하던 때와는 대조적으로 편안하게 앉은 자리에서 그동안 화학올림피아드의 이모저모를 촬영한 30분 짜리 비디오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드디어 시상식에는 미국화학회장 엘리엘 교수를 비롯하여 엘리온박사(198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와 립스콤박사(197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축사를 한 뒤에 참가한 학생 모두가 단상에 올라가서 영광스러운 메달을 받았다.
우리 학생들은 3명이 동(Bronze)메달을 받고 1명은 쿠퍼(Copper)메달에 그쳤지만 엘리온 박사가 축사에서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우리의 뇌리에 깊숙히 남아 있다.
그녀는 15살되던 소녀 때에 숙부가 불치의 암으로 타계하는 것을 보고 크게 쇼크를 받았는데, 그후 그녀의 집념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품을 개발하는데 혼신의 정열을 기울여서 백혈병의 치료에 탁월한 약품을 개발하였다. 그가 개발한 치료제의 효과로, 죽어가는 어린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은, 그가 노벨상을 받을 때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고 엘리온박사는 고백하였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모든 수고와 노력의 과정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환경화학 유기화학이 주종
이번 ICHO의 실험 및 학과시험 내용을 살펴보자.
실험시험의 제목은 이산화탄소가 탄산칼슘의 용해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고체 탄산칼슘과 이산화탄소 기체가 포화된 시료 수용액을 받아서 EDTA를 사용한 착물화적정법에 따라 용해된 ${Ca}^{2+}$ 농도를 측정하였다. 그리고는 시료 수용액을 끓여서 이산화탄소를 날려 보낸 후 다시 EDTA 적정법으로 이산화탄소 기체가 용해되지 않은 상태의 수용액에 포화된 ${Ca}^{2+}$ 농도를 측정하였다. 칼슘이온 농도를 EDTA 적정법으로 결정하는 실험순서와 EDTA표준화 실험순서 및 pH 메타 사용법에 대해서는 시험문제지에 자세히 기록되었으며 결과보고서는 실험 데이터 및 농도 계산 그리고 객관식 답안을 요구하는 5개 문항 속에 13개 항목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다.
학과시험은 모두 9문제인데 대기 수질과 관련된 환경화학과 자연물의 유기화학이 주종을 이루었고 예년 수준보다 평이한 편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광합성 반응에 관한 화학양론 문제
2) 황철광(Fe${S}_{2}$)의 산화환원반응과 호수의 오염 문제
3) 코니페릴알콜의 반응과 성질에 관한 roadmap 유기화학 문제
4) 게라니올의 반응과 성질
5) 이산화질소의 2합체 평형에 대한 구조 및 평형상수, 열역학, 반응속도 문제
6) 대기중 이산화탄소 증가와 관련된 수질 오염 문제
7) 굴 서식에 적합한 염도와 분석화학 문제
8) 푸르바이 도표를 이용하는 질소 및 망간의 전기화학 문제
9) 페로몬의 구조를 밝히기 위한 여러가지 유기반응 문제
왜곡된 화학교육, 전환점은 없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과학 육성이 크게 강조되면서 대학과 연구소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사실상 그 바탕이 되는 과학교육의 중요성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화학을 전공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심정이라 생각한다.
"학력을 국제 비교하는 목적이 국가간에 등급을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발견하고 개선책을 모색하는데 있다"고 한 어느 정년 퇴임교수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의 참가 성적이 곧 참가국의 화학교육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고교평준화 시책 및 대입 학력고사의 여파로 기초과학 과목의 경시 풍조가 만연되고 변질된 과학교육방법에 의해 중·고생 과학 학력이 갈수록 낙후되어 가는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전환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전국 고등학생 수학 과학 경시대회의 결과는 과학학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재고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또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고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학과목이 고등학교 교과과정속에서 현재와 같이 찬밥(?)대접을 받는 우리 실정과 대학입시로 인하여 우수한 학생들이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기를 꺼려하는 현실은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니다.
국제 과학올림피아드에 참여하는 수준의 학생들은 개인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사절의 역할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들에게 희망대학 희망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특전을 부여함으로써 진정 이들 젊은 두뇌가 자기가 좋아하는 화학을 마음껏 공부하고 탐구하도록 용기를 복돋아 주었으면 한다.
화학 올림피아드 문제 예
황철광(Fe${S}_{2}$)의 산화환원반응과 호수의 오염문제(12점)
많은 강이나 냇물이 석탄이나 광물을 캐내는 지역에 흘러들어간다. 유황을 함유한 광물이 대기나 또는 산소가 녹아있는 물에 노출되기 때문에 이 냇물은 산성화되어 이들 광물을 녹인다. 이 때문에 냇물속에 철과 황산이온의 농도가 상당히 높아진다. 가장 흔한 유황을 함유한 광물은 황철광(Fe${S}_{2}$)이며 여기에서 철의 산화상태는 +2다. 철분이 많은 물이 다른 물과 섞이면 용해된 철은 고타이트, FeO(OH)로 침전되어 내의 바닥을 덮는다. 한편 냇물은 산성이 된다.
a) ${S}_{2}^{2-}$이온에 대하여 원자사이의 결합상태를 나타내는 전자구조식을 그려라. 모든 원자가 전자를 다 표시하여야 한다(전자는 점으로 표시하라).
b) 냇물속에서 황철광이 산화되어 철과 황산이온이 생성되며 이에 따라 수소이온(${H}^{+}$)이 생성되는 과정의 화학반응식을 써라.
c) 철(II)이 산화되어 침전광물 고타이트, FeO(OH)를 만들 때에 몇 몰의 수소이온이 더 생성되는가를 화학반응식을 써서 나타내어라.
d) 만약 황철광이 완전히 FeO(OH)와 수소이온으로 변한다면 순수한 물 1.0ℓ를 pH3.0까지 되게 하는데 필요한 황철광의 몰수는 얼마인지 계산하여라. ${HSO}_{4}^{-}$의 생성은 무시하여라.
e) 어떤 냇물 중의 Fe(II)로 존재하는 철의 농도는 0.00835M이었다. 이 냇물이 아주 좁은 수로를 통하여 분당 20.0ℓ의 유속으로 큰 호수로 흘러 들어 간다. 이 냇물은 좁은 수로를 지나는 사이에 충분히 공기와 접촉을 하여 Fe(II)의 75%가 Fe(III)로 산화된다. 이 호수의 pH는 7보다 높아서 Fe(III)는 즉시 Fe${(OH)}_{3}$로 침전되며 오래되면 ${Fe}_{2}$${O}_{3}$가 된다. 2년동안에 이 호수의 바닥에 ${Fe}_{2}$${O}_{3}$가 얼마나 가라앉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