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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1호가 촬영한 화성 표면.


1938년 10월 30일 유명한 만능 엔터테이너 오슨 웰스(1915-1985)가 진행하는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이 방송되자 미국 전역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시민들이 화성에서 우주인들이 침공한 줄 알고 1백만명이나 집을 버리고 피신했던 것이다. 1949년 2월 13일 에콰도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주전쟁’이 방송되자 폭도들이 방송국을 습격해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은 1898년 허버트 조지 웰스(1866-1946)가 쓴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 1894년 미국 리크천문대에서는 화성 표면에서 반짝이는 강력한 섬광을 발견했다. 그 섬광은 알고보니 추위를 견디다 못해 지구를 향해 떠나는 화성인들이 탄 우주선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들은 지구를 침공해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해가 없지만 화성인에게는 치명적인 박테리아 때문에 침공한 화성인들은 전멸한다는 게 우주전쟁의 스토리다. 지금 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당시 사람들은 진짜로 화성인이 침공해온 줄 알았다. 그만큼 화성인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다.

화성은 여러 면에서 지구와 닮았다. 자전주기가 비슷한 화성의 하루는 지구시간으로 24시간 40분이다. 자전축의 기울기는 24도로 역시 지구의 23.5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화성에는 뚜렷한 4계절이 존재한다. 비록 이산화탄소지만 대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화성에 생명체가 살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화성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던 때는 1894년이다. 당시 화성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충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로서는 연구하기 좋은 기회였다. 이때 이탈리아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1835-1910)가 1877년 화성을 관측하고 물이 흐르는 수로(canali)가 있다고 발표한 연구결과가 유럽으로 퍼졌다. 그런데 수로라는 말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운하(canals)로 와전돼, 결국 운하를 만든 화성인들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1894년 화성을 관측했던 사람들 중에는 화성에서 이상한 빛을 보았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타임머신(1895년)과 투명인간(1897년)을 썼던 SF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우주전쟁이란 명작을 남겼다.

행성 탐사는 1962년 12월 14일 금성에 도착한 미국의 마리너 2호가 처음이다. 그후 미국과 러시아(옛소련)는 많은 탐사선들을 금성과 화성으로 보냈지만, 금성과 달리 거리가 먼 화성에서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화성탐사가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1965년 7월 14일 화성궤도에 도착한 미국의 마리너 4호로, 당시 22장의 화성표면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1969년 두번째로 화성궤도에 진입한 마리너 6호와 7호 역시 2백여장의 사진, 대기온도, 대기압, 표면분자구성에 대한 자료 등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화성 운하를 확인하는데는 실패했다. 너무 높은 궤도에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화성에 운하가 없다는 사실은 2년 뒤 마리너 9호에 의해 확인됐다. 1971년 11월 24일 화성 최초의 인공위성이 된 마리너 9호는 화성을 저공비행하면서 9천장의 사진을 보내왔지만, 그 어디서도 운하의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마리너 9호는 화성에 생명체가 사는지, 산다면 어떤 생명체인지에 대한 숙제를 여전히 남겨두었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 1973년 아폴로계획 이후 최대의 프로젝트가 수립됐는데, 바로 바이킹계획이다.

바이킹계획의 예산은 30억달러. 2백50억달러를 퍼부었던 아폴로계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2년 동안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4개의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계획(7억달러)에 비하면 대단한 투자였다.

바이킹 1호는 1975년 8월 20일 출발해 1976년 7월 20일 화성에 착륙했다. 원래 바이킹 1호는 미국 독립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6년 7월 4일 크리세(황금)평원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돌풍이 심한 화성땅에 예정된 날짜와 장소에 착륙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1호와 쌍둥이인 바이킹 2호는 1975년 9월 9일 지구를 떠나 이듬해 8월 7일 유토피아평원에 착륙했다.


바이킹 2호 궤도선이 촬영한 화성. 왼쪽 화산 위에 얼음 구름이 뒤덮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두대의 바이킹 착륙선이 맡은 임무는 화성생명체를 조사하는 것. 이를 위해 광합성실험, 신진대사실험, 가스교환실험 등 3가지 실험이 실시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가지 실험에서 모두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생물이 광합성한 결과 나타나는 이산화탄소가 검출됐고, 영양분을 흡수했는지 알아보는 실험에서 유기물이 산화된 결과가 나타났고, 생물이 호흡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에서는 기체가 교환됐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실험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판명됐다. 화성의 대기온도, 습도, 낮과 밤이 변하는데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10억분의 1에 이르는 정밀한 분자검출기의 결과는 화성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오히려 부정적이었다.

그렇다면 3가지 실험이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태양 자외선이 화성대기를 통과하면서 만든 물질이 화성흙을 산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한편 일부에서는 지구에서조차 생명체를 발견할 수 없는 고물장치를 화성에 보내놓고 생명체를 발견하려고 한 것은 애초부터 억지였다고 말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화성에 보낸 바이킹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으며, 바이킹은 이를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화성생명체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은 아니다. 바이킹 탐사로부터 21년 뒤인 1997년 7월 4일(미국의 독립기념일) 패스파인더가 화성 아레스계곡에 착륙한 것이다. 그러나 패스파인더도 화성생명체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이제 화성에 남긴 과제는 과거에 물이 흘렀던 것처럼 먼옛날 생명체가 살았었나를 밝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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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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