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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폴, 레이첼. 만화영화 주인공의 이름인가? 아니다. 올 여름 우리나라를 찾아온 태풍의 귀여운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태풍은 엄청난 폭풍우를 동반하고 찾아오는 강하고 무서운 불청객이다. 이들은 먼 적도지방의 바다에서 생겨나 긴 여행 속에서 성장해서 우리에게 도달한다.

열대지방의 적도 저압대에는 남·북반구의 무역풍이 모여들어 열대수렴대를 형성하고 대류권 상층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적도동풍이 불고 있다(그림1). 여름철이 되면 열대수렴대는 북반구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열대수렴대는 수온이 높고, 수증기도 풍부하고, 대류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대기 중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많이 만들어진다.


(그림1) 태풍발생 모식도^열대 해역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편동풍을 따라 고위도로 올라오면서 세력을 확장해 태풍이 된다.


작은 소용돌이가 수증기 먹고 성장

작은 소용돌이는 곧바로 소멸하기도 하고 조금씩 성장해 아기 태풍이 되기도 한다. 열대지방에서 만들어진 작은 소용돌이는 하루 3백-5백km씩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 바다를 지나면서 수증기가 충분히 공급되고 지구 자전에 의한 전향력으로 소용돌이의 크기와 강도가 커지면 이들은 열대저기압으로 발달하게 된다.

태풍은 바로 이 열대저기압 중 비교적 세력이 강한 것을 일컫는 이름이다. 태풍(颱風)이란 명칭은 중국에서 전래한 것으로, 가장 맹렬한 바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저기압 중심부의 최대 풍속이 17m/초 미만인 경우는 약한 열대성저기압(TD: tropical depression)으로 분류하고, 중심부 최대 풍속이 17-32m/초인 경우 열대성폭풍(TS: tropical storm), 중심부 최대 풍속이 32m/초 이상일 때에만 태풍(Typhoon)이라 부른다.

열대저기압은 대체로 남·북위 8-15도 지역의 해양에서 발생한다. 해수면의 온도가 27℃ 정도 되는 바다가 열대저기압의 주된 발생지가 되고 있다. 한번 발생한 저기압은 서쪽으로 이동해 성장하다가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우리나라 근처를 통과한다. 이 열대저기압은 강한 저기압이기 때문에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크기는 지름이 1백50-5백km에 이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4백53km이니 태풍이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풍속은 시속 1백20-2백km나 된다. 때로는 시속 2백k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부는 경우도 있다.

열대 저기압은 지역에 따라 아시아에서는 태풍, 북미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에서는 사이클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윌리윌리로 부른다. 미국 중동부 지역에 큰 피해를 입히는 토네이도 또한 열대성 저기압이지만, 반지름이 50-1백km 정도로 태풍에 비해 작고 수명도 수시간-수일 정도로 매우 짧은 차이점이 있다.


토네이도. 태풍과 비슷한 열대성 저기압이지만, 짧은 시간에 발생했다 소멸하며 큰 피해를 남긴다.


빈도 적지만 피해는 더욱 커

서부 열대태평양(적도-북위 30도, 동경 1백도-1백80도)에서는 매년 20-30개 정도의 태풍이 발생해 그 중 2-3개 정도가 한반도에 영향을 준다. 태풍의 발생과 진로는 열대태평양의 대기-해양 상태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데, 특히 열대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엘니뇨는 대기-해양 순환을 변화시키고 이 때문에 여름철 태풍의 발생빈도, 진로, 강도 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여름철 이상저온과 고온, 가뭄, 홍수, 태풍 등 여러가지 이상기상이 더욱 자주 발생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998년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이상기상 현상이 빈발했는데, 기상학자들은 이 원인을 1997/98년에 발생한 금세기 최고의 엘니뇨 영향으로 보고 있다.

엘니뇨(El Nin~o)란 태평양 적도부근에 걸쳐 있는 넓은 해양에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그림2). 2-6년을 주기로 주로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다음해 3월 사이에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엘니뇨가 나타난 해에는 열대 해역에서 발생 빈도는 적지만, 비교적 강한 태풍이 형성된 후 아열대 태평양 고기압 주변을 따라 장시간 이동하게 돼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그림2) 엘니뇨로 인한 수온상승


특히 과거 자료를 분석해보면 엘니뇨 해에는 태풍의 발생 빈도는 적지만, 발생한 태풍이 우리나라에 올 경우 평년보다 피해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난다. 1951년부터 1998년까지(48년간) 발생한 태풍의 수는 약 1천3백개이고, 이 중에서 여름철(6월-8월)에 발생한 태풍은 약 8백개이다(평균 27.1개). 이 기간 동안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한 해는 라니냐 발생해인 1967년(39개)이고, 가장 적게 발생한 해는 1998년(18개)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심각한 피해를 준 태풍은 1959년 사라, 1972년 베티, 1987년 셀마와 다이애나, 1991년 글래디스로, 1959년의 사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엘니뇨 해에 발생했다.

1951-1998년 사이 서부 열대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발생수 편차와 동부 적도태평양의 열대해수면 온도 편차를 시간 순으로 배열해보면 태풍과 엘니뇨의 관계가 더 잘 드러난다. 적도태평양은 엘니뇨를 관측하는 지역으로, 약 6개월 정도 이 지역의 해수면 온도 편차가 평년보다 높으면 엘니뇨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대체로 엘니뇨가 나타난 해에는 태풍 발생수가 적고, 반대로 라니냐 해에는 태풍 발생수가 많은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해양에서 발생한 엘니뇨는 에너지를 대기쪽으로 공급한다. 그 결과 대기대순환이 평년과는 다르다. 특히 북태평양 고기압과 서태평양의 대류 활동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엘니뇨가 발생한 해에는 태풍이 발생하는 지역도 달라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엘니뇨 해에는 서부 열대태평양에서 대류활동이 평년보다 약해진다. 따라서 엘니뇨 현상이 여러 지역의 열대성저기압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98년에 달라진 태풍

1998년에는 태평양고기압의 위치가 남서쪽으로 이동해 원래 태풍의 최대 발생 지역인 필리핀 부근 바다를 덮고 있었다. 마치 이 지역을 담요로 덮어놓은 것처럼 태풍은 태평양 고기압의 중심부에서는 숨죽이고 있다가 가장자리 부근에서만 발생했다(그림3).


(그림3) 1998년 태풍 발생지역^1998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만 태풍(붉은 소용돌이)이 발생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는 바로 전해인 1997년 겨울 열대 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는 엘니뇨가 나타난 영향으로 분석됐다.


1997년과 1998년은 전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많이 발생했고, 그로 인한 피해도 많았다. 특히 1997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산불과 1998년 여름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집중호우가 대표적인 기상이변이었다. 기상학자들은 위와 같은 기상이변의 발생 원인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1997/98년 엘니뇨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1997/98년 엘니뇨는 1998년 태풍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998년 태풍의 발생은 평년과 다른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1998년 태풍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태풍 발생수가 가장 적었다. 1-8월까지의 발생수는 4개로 같은 기간 평년의 발생수 14.6개보다 훨씬 적었다.

②제1호 태풍이 관측사상 가장 늦게 발생했다. 1998년 제1호 태풍 발생은 7월 9일 15시로, 1951년 태풍관측을 시작한 후 가장 늦게 발생했다(표).

③태풍 발생 장소는 동경 1백35도보다 서쪽으로 평년에 비해 발생장소가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림3)은 1998년 8월의 태평양고기압의 세력권을 나타낸 것이다. 평년의 세력권(그림1)과 비교해 보면, 1998년에는 태평양고기압이 남서쪽으로 이동해 태풍의 최대 발생 지역인 온난해수역(warm pool, 해수면 온도가 일년 내내 27-29℃를 유지하는 해역으로 필리핀 부근 바다)을 덮고 있었다. 그러자 태풍은 태평양 고기압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부근에서만 발생했다. 그리고 온난해수역의 온도도 평년보다 낮았다.

④여름철에는 태풍의 영향이 거의 없었으나 오히려 9월 중순에 발생한 가을 태풍 제9호 애니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수확기에 있던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표) 태풍 제1호 발생의 순위표


또 달라진 올해의 태풍

그렇다면 올해 발생한 태풍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관측된 올해의 태풍을 토대로 분석해볼 때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발생 위도가 북위 20도대로 평년의 8-15도 보다 북상했다. 태풍이 발생해서 소멸하기까지의 일생(life time)이 짧아진 점도 지적돼야 한다. 일반적인 태풍의 주기는 약 20일 정도이지만, 올해의 태풍은 발생한 뒤 급격히 성장해 소멸까지 7-10일 정도만 소요됐다. 또한 올해는 크기가 제각각인 열대성 폭풍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7월 중순부터 제5호(니일), 제6호(열대성 저기압으로 이름이 없음), 제7호(올가), 제8호(폴), 그리고 제9호(레이첼)가 연속해 발생했다. 그러자 작년과는 달리 7월 31일-8월 3일의 경기북부 집중호우 시기와 태풍 상륙 시기가 일치해 더욱 큰 피해를 유발했다. 아직 정확한 분석 결과는 없지만, 위에서 서술한 1999년 태풍의 발생과 행동은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분포와 대류활동이 1998년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 또다시 달라질 올해 태풍의 특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태풍을 포함한 기후가 변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신만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1990년대 들어 한반도 주변지역에서도 예년의 기상현상과 구별되는 특징들이 여기 저기서 관측되고 있지만, 아직 누구도 이것이 장기적인 기후변동의 서막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 결론 내리지 못ㅎ고 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서는 토네이도가 불 지도 모른다"는 기상학자 로렌츠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대기의 카오스적인 행동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와 질서 속의 무질서를 추적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보통 엄청난 폭풍우와 해일까지 동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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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차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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