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태양계 탐사선이 주로 행성들의 대략적인 모습을 밝히는데 주력했다면 90년대는 탐사선을 직접 행성에 투입시켜 지형지질 대기 구성물질 등에 관한 구체적인 과학정보를 얻는 것이 주요 목표다.
1960년대 후반기 아폴로(Apollo)의 달탐험으로 시작된 인간의 태양계 탐사는 지난 20여년 동안 실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각종의 우주선이 수성에서 해왕성까지 모든 행성과 웬만큼 큰 위성들을 직접 방문해 근접 사진을 보내오고 여러가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태양계를 이해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아폴로계획에 이어 1970년대 초에는 마리너(Marine) 우주선들이 수성 금성 화성을 탐사했다. 또한 소련의 베네라(Venera)우주선들은 금성표면에 탐사선을 착륙시켰으며, 화성에는 마스(Mars)우주선들이 주변을 선회하면서 정밀관측을 시도했다.
1976년에는 바이킹(Viking) 1호와 2호가 화성에 연착륙(軟着陸)해 생명체 탐사를 비롯한 여러가지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파이어니어(Pioneer) 10호와 11호 우주선들은 각각 1973년에 목성에 접근한 후, 11호는 1979년에 토성 근처를 지나가면서 토성의 아름다운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동안의 태양계 탐사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다. 1977년에 지구를 떠난 이 우주선들은 1979년에는 목성에 접근했고, 토성에는 1호가 1980년에, 그리고 2호가 1981년에 접근 통과하면서 실로 놀랄만한 탐사자료를 보내왔다. 그후 보이저 2호는 1986년에는 천왕성, 1989년에는 해왕성에 접근해 이 먼 행성들의 상세한 모습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게 했다.
핼리(Halley)혜성이 76년만에 지구에 접근했을 때인 1986년에는 베 가(Vega) 1호와 2호, 지오토(Giotto), 수이세이(Sulsei) 등 여러 우주선이 핼리와의 랑데부를 성공시켜 그동안 수수께끼였던 혜성의 구조와 구성물질에 관한 정보는 물론, 더 나아가서 태양계생성의 신비를 풀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보내왔다.
새로운 비약, 2라운드 돌입
지난 20여년간 이룩한 태양계 탐사의 특징이라면 우주선들을 여러 미지의 천체에 접근시켜 처음으로 그들의 상세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이미 얻어낸 자료를 토대로 우주선들이 어떤 특정한 천체에 보내져서 그 천체의 지형 지질 대기 구성물질 자기장 등에 관한 질이 높은 과학정보를 얻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990년대는 태양계 탐사의 제2라운드(the second round) 시대라고 불리고 있다.
1990년대 태양계 탐사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가 냉전의 종식과 우호 협력의 새시대를 맞아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국제협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미래의 우주선들은 첨단기능을 가진 탐사장비를 필요로 하고 또 대형화돼 비용이 많이 든다. 또한 임무의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고도의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를 어느 한나라가 도맡아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 결과 국제간의 협력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태양계 탐사의 주역을 맡을 기관들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련의 우주개발기구, 그리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독일 핀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 등 14개국이 협력해 만든 유럽우주기구(ESA, European Space Agency)와 일본의 우주과학연구소다.
줄잇는 탐사선
1990년대의 태양계 탐사를 위한 준비는 이미 1980년대 말에 이루어졌다. 1989년에 합성개구(合成開ㅁ) 레이더 등 행성표면 지도작성의 장비를 갖춘 마젤란(Magellan)우주선이 금성을 향해 발사됐다. 이 우주선은 1990년 8월10일에 금성 주위 궤도에 진입한 후 레이더 테스트를 끝내고 9월부터 본격적인 관측에 들어갔다. 마젤란의 레이더는 1백20m 크기의 표면현상까지 식별할 수 있는 높은 분해능(分解能)을 가지고 있다. 마젤란은 금성의 극궤도를 돌면서 2백43일에 걸쳐 표면의 자세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이미 보내온 화상에는 충돌 크레이터, 강처럼 뻗은 침식지대, 바람으로 모래와 먼지가 날려서 생긴 줄무늬, 고원과 화산 등 흥미있는 지형이 선명히 나타나 있다.
목성 탐사를 위한 갈릴레오(Galilee) 우주선은 궤도선과 탐사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궤도선에는 카메라 분광계 자력계 등이, 그리고 탐사선에는 가스분석계가 갖추어져 있다. 이 우주선은 발사된 후 1990년 12월에 지구에 한번 접근했다가 1992년 12월에는 두번째로 지구를 접근 통과한 후 소행성대를 지나 1995년 12월에는 목성에 도착, 주변궤도에 진입해 1997년 10월까지 목성을 관측할 예정이다.
갈릴레오의 궤도선은 목성을 선회하면서 목성의 자기권(磁氣圈)과 위성들을 관측하고, 여기서 탐사선(probe)을 분리시켜 대기중으로 투입해 대기의 회학성분과 물리적인 상태에 대한 관측을 60분간 수행할 예정이다.
율리시스(Ulysses) 우주선은 일명 국제태양극궤도 미션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태양탐사를 목적으로 한다. 이 우주선에는 플라즈마계측기 자력계 등이 실려있다. 현재 목성을 향해 순조로운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이 우주선은 1992년 2월에는 목성 근처에 도달한 후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황도면을 이탈하면서 태양을 향해 비행하게 된다. 70°의 태양 고위도로 들어간 율리시스는 1994년 8월과 1995년 6월에 두차례 3억4천만km 상공에서 태양의 극을 통과한다. 태양의 양극지역은 아직까지 한번도 관측되지 않은 곳으로 이번에 그곳의 태양풍과 자기장을 관측한다면 우리는 태양의 전체 모습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우주선은 황도면을 떠난 공간을 비행하면서 태양의 입체적인 구조를 밝힐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스 업저버(Mars Observer) 우주선은 1993년 8월에 화성궤도에 진입한 후 싣고간 일곱종류의 기구를 활용해 화성의 지형지도를 작성하고, 표면물질의 화학조성을 밝혀내며 먼지 구름의 이동과 대기의 변화 등을 추적할 것이다. 마스 업저버 계획은 1994년 소련이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낼 콜럼/마스(Columb/Mars) 1994계획에 데이터를 중계하고, 1998년에 있을 화성 샘플 회수계획의 전초로서 계획되고 있다.
소련의 목표는 화성
1990년대 소련 행성 탐사의 주요 목표는 화성이다. 콜럼/마스 1994계획은 우주선을 1995년 화성에 도착시킨 후 1m의 높은 해상력으로 화성 표면의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우주선은 또한 기구(氣球)를 화성대기에 띄워 대기를 분석하고, 표면에는 탐사선을 보내어 표면 토양의 화학분석 실험을 하게 된다.
소련은 콜럼/마스 1994 이외에도 마스 로버 미션(Mars Rover Mission), 즉 표면 탐사차를 이용한 화성표면의 탐사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1996년에 화성표면에 탐사차를 보내어 5년동안 표면을 돌아다니면서 탐사하고, 토양의 분석과 지질학적 지도를 작성할 예정으로 있다. 1998년에 소련은 화성 표면물질의 샘플을 지구로 가져올 야심찬 계획 추진하고 있다.
크라프(CRAF, Comet Rendezvous and Asteroid Flyby)라 불리는 혜성 랑데부와 소행성 접근통과 계획은(미국과 독일 주도), 우주선을 1995년에 발사해 1998년에 소행성 함부르가(Hamburga)를 가까이 통과한 후, 2001년에는 주기혜성 코프(Kopff)와 랑데부시키는 것이다. 이 우주선은 혜성의 핵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침투선을 분리시켜 혜성의 핵내에서 직접 물질을 분석한 후 결과를 모선인 크라프 우주선에 보내 이를 지구로 전송하게 한다.
미국과 유럽우주기구(ESA)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카시니(Cassini)계획은 다음과 같다. 1996년에 우주선을 발사해 6년에 걸친 긴 여행 후에 2002년 토성에 도달하게 된다. 이 우주선은 4년에 걸쳐 고리로 둘러싸인 토성의 주변궤도에 진입해 59회를 선회하면서 토성과 그 위성 타이탄(Titan)을 관측한다. 카시니 우주선은 호이겐스(Huygens)라는 탐사선을 타이탄의 표면에 낙하시켜서 이 위성의 대기와 표면을 분석할 예정으로 있다.
베스타(Vesta)는 소련이 계획하는 소행성과 혜성의 탐사 우주선이다. 1996년에 발사된 후 7년동안 태양계 공간을 항진하면서 10개에서 12개에 이르는 소행성과 최소한 두개의 혜성과 조우시킬 예정이다. 소행성의 접근 통과 때마다 이 우주선은 침투선을 발사해 소행성 표면의 구성 물질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게 될 것이다.
달에도 새로운 관심을
1990년대 들어 미국의 유일한 달탐사 계획인 루나 업저버(Lunar Observer)는 마스 업저버가 화성에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경우에 우주선을 달로 보낸다는 것이다. 달탐사는 아폴로 이후 중단돼 있었다. 아폴로계획으로 얻은 결과는 우주선이 착륙한 지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지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달의 형성과 그동안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달 전체의 공통적인 특성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루나 업저버는 장기간 여러 종류의 탐사장치를 활용해 달의 전체적인 물리적 상태를 분석할 예정이다.
일본이 확정한 1990년대 유일한 태양계 탐사 계획은 루나A(Lunar-A)다. 일본의 우주과학연구소가 세운 이 계획에 따르면 루나A로 하여금 달을 선회케 한 후 이 우주선에서 3기의 침투선을 발사, 달 내부로 침투시켜 지진계와 열유량계 등으로 달의 내부 구조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1990년대 태양계 탐사의 하일라이트는 미국과 소련이 계획하고 있는 화성과 혜성 핵의 표본 물질을 지구로 가져오는 계획일 것이다. 화성 표본물질회수 계획(Mars Sample Return Mission)은 현재 미국과 소련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계획에 따르면 우주선이 화성에 연착륙한 후 화성면차로 표면을 주행하면서 샘플을 모은 다음 이를 지구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또 다른 임무는 2000년대 초에 있을 화성 유인 탐사때 착륙 후보지를 선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련도 화성 표면 물질의 표본을 지구로 회수하는 비슷한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그러나 미소의 화해 무드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계획이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나라는 공동탐사의 형태로 각각의 우주선을 화성으로 보낼 예정으로 있다.
이와 비슷한 또다른 계획은 유럽우주기구(ESA)가 수립해 놓고 있는 로제타 혜성의 핵 표본 회수 계획(Rosetta Comet Nucleus Sample Return Mission)이다. ESA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혜성의 핵물질 회수를 위한 우주선의 제작에 착수해 2001년에 이를 발사할 예정이다. 이 우주선은 2001년과 2004년 사이에 혜성과 랑데부하고 모선에서 침투탐사선이 분리돼 혜성의 핵에 접근, 샘플을 채취하여 모선으로 운반하면 모선이 지구로 샘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으로 혜성 물질 1kg을 회수하는데 20억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아직 문제로 남아있다.
혜성의 물질이 회수된다면 그 물질들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물질은 혜성의 기원 및 태양계의 생성과 진화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태양계 탐사의 제2라운드는 이미 시작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리가 맞보았던 감격은 1990년대에도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이 기간중에 태양계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거나 다른 천체에서 생명체가 발견될 수도 있다. 또한 21세기 초에 있을 행성들의 유인탐사계획의 기반이 1990년대에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인간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